세속 도시의 시인들 - 삶의 진부함에 맞서는 15개의 다른 시선, 다른 태도
김도언 지음, 이흥렬 사진 / 로고폴리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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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15명에 대한 인터뷰집이다. 어떤 시인들이 나오는지 먼저 보자.

 

김정환, 황인숙, 이문재, 김요일, 성윤석, 이수명, 허  연, 류  근, 권혁웅, 김이듬, 문태준, 안현미, 김경주, 서효인, 황인찬

 

대놓고 말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시인들을 만났다고. 그리고 소설가이자 시인이고 출판업에 종사하는 저자가 자기가 그 시인의 작품을 어떻게 만났는지, 또 얼마나 좋아하고 있었는지도 고백하고 있다.

 

인터뷰어로서 인터뷰이에 대해서 많이 알고 갈수록 얻어낼 것이 많을수도 있지만, 자기의 인식틀에 갇혀 새로운 무엇을 얻어내지도 못하는 일도 있는데, 이 책에서 저자는 그 점을 넘어섰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이 궁금증을 바탕으로 우리에게 시인들의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시인들이 참 다른 사람들인 것 같지만 사실은 우리와 같은 사람임을, 우리와 같은 세속 도시에 살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덕분에 이 책에 나온 시인들, 이미 읽어서 알고 있는 시인도 있지만 처음 이름을 들어본 시인도 있는데, 그들의 시집을 읽고 싶은 욕구가 생겨났다.

 

딱히 어떤 시인에 대한 이야기가 기억에 오래 남는다는 말을 하기는 힘들지만 첫 시작을 한 김정환 시인에게서는 집안의 자유로움을, 즉 자식이 무엇을 하든 부모의 생각과는 다르더라도 허용해주는 그런 분위기가 얼마나 중요함을 기억했고,

 

황인숙 시인에게서는 언어적 감각이 매우 뛰어난 시인이라고, 달랑 두 권의 시집밖에는 읽지 못했지만 그렇게 느끼고 있었는데, 그가 길고양이들을 위해 먹이를 날마다 가져다 주고 있다는 삶에서도 생명에 대한 결이 참으로 부드러운, 시인들이 좋아하는 시인이라는 구절이 기억이 나고, 

 

이문재 시인은 최근에 내가 좋아해 그의 시를 많이 읽는 시인이었는데, 시대가 점점 더 엉망으로 흐트러져 가는 것에 대한 분노가 인터뷰 내내 묻어나와서 그에 동감하고 있기도 했고,

 

김요일, 성윤석, 이수명, 허연, 류근, 김이듬, 김경주, 황인찬 시인의 작품은 읽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이들 역시 나름대로 자신의 시세계를 개척하고 유지해 나가고 있다는 느낌, 그래서 한 번은 이들의 시도 읽어보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고,

 

권혁웅 시인의 작품에서 '독수리 오형제'를 계속 마음 속에 담아 두고 있었는데, 그가 젊은 시인들에게 '미래파'라는 이름을 붙여 기존 평단의 문학권력들로부터 새로운 감수성을 인정하자는 운동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 이것은 그가 어느 한 곳에 머물지 않고 마음을 열고 시를, 세상을 본다는 얘기라고 생각해 그의 시를 더 좋아하게 됐고, 

 

문태준, 안현미, 서효인 시인의 작품들은 최근에 한 번 정도 읽어봤는데, 괜찮은 시도 있었고, 이해하기 힘든 시도 있었는데. 특히 문태준 시인의 작품은 우리의 토속적 정서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는데, 여기서 그것을 확인하는 기쁨 뭐 이런 것들...

 

단지 시인이 시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면 시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재미없는 책일 수밖에 없겠지만, 이 책에서는 작가의 이력도 나와 있고, 또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고 그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할지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기 때문에...

 

혼란스러운 세상, 일명 세속 도시... 그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들은 시인은 무슨 사회와는 초현한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사는 무슨 탈속적 존재로 생각하는데, 그것이 전혀 아님을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시인도 사람이라는 것, 우리와 같이 세속 도시에 살고 있다는 점,, 그 속에서 우리가 느끼는 감정들, 어려움들을 함께 겪으며 살아가고 있다는 점, 다만 그들은 그것을 자신의 시로 표현해내고 있다는 것, 그것을 생각하게 해준 책이다.

 

많은 시인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후속 편이 나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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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호의 기획기사는 "청소의 대발견"이다.

 

교육에 관한 잡지라면 청소에 대해서는 한 번 다뤄볼 만하다고 생각했는데, 드디어 청소 문제가 나왔다.

 

지금 교육현장에서 청소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뭐, 생각할 것도 없다. 학생들이 한다. 학교 대부분의 공간을. 그래도 지금은 나아져서 화장실은 용역을 고용하여 청소를 하게 하지만, 각종 특별실부터 교사들이 사용하는 공간까지 학생들이 청소를 한다.

 

그렇다면 청소가 잘 될까? 그럴 리가 없다. 학생들 자신들이 주로 생활하는 교실 청소조차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 청소를 하라고 하면 빗자루를 들고 비질을 하는 시늉만 하거나, 또는 빗자루로 칼싸움을 하거나, 대걸레로 교실을 한 번 밀라고 하면 물을 묻혀와서 - 묻혀와서다, 빨아서가 아니라 - 대충 쓱 훑고 마는 게 끝이다.

 

자기들이 주로 지내는, 주로 자신들이 어지럽힌 공간을 청소하는 것도 이런데, 다른 곳이야 말할 것도 없다. 이렇게 청소 못하는 이유를 사람들은 문명의 발달에서 찾기도 하는데, 기계들이 속속 나와 제대로 청소를 해보지 못하는 경우도 많지만, 사실은 아이들이 집에서 청소를 해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와 있다.

 

이번 호에도 나와 있지만 집에서 청소를 하는 문제로 가정에서 많은 갈등이 일어나고 있으니, 대부분 아이들 있는 집에서 아이들 방을 보며 한숨을 푹푹 쉬는 부모들이 많을텐데...

 

그렇다고 청소를 대신해줄 수만은 없는 일. 최소한 자신이 어지럽힌 것은 자신이 치워야 한다는 원칙은 확고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습관이 되지 않았을 때 어지럽히는 사람 따로, 치우는 사람 따로인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이 재반복되기 때문이다.

 

이래서 청소는 중요하다. 정말로 자신이 조금만 귀찮아지면 청소가 그리 힘들지 않기 때문이다. 청소의 기본은 있는 쓰레기를 버리는 일이 아니라,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일이다. 쓰레기를 만들지 않고 가장 기본적인 것만 청소한다면 청소가 그다지 힘든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 교육으로써 청소는 반드시 필요하다. 어떻게 하느냐는 각자의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적어도 내가 주로 생활하는 공간은 내가 치워야 한다는 원칙만은 지켰으면 좋겠다. 이 원칙을 지키는 상태에서 어떻게 하면 쓰레기를 만들지 않을까 하는 교육이 되어야 할테고.

 

이런 청소가 생활습관이 되면, 사회의 여러 면으로 이것들이 확산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데... 사실 우리 사회에 청소가 필요한 부분이 한둘이 아니니.

 

이번 호에서 언급하고 있는 유전자조작식품 문제도 역시 우리 식탁에서 청소가 필요한 문제고 (류외향, 자연주의 밥상 한 끼가 지구를 살린다), 청년수당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것들, 그것을 좀더 확대한 기본소득 논의도 우리 사회에서 불필요한 갈등을 어떻게 청소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나아가지 않을까 한다.

 

사실, 청소는 우리 삶 전반에 걸쳐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니, 우리가 흔히 말하는 청소 말고도 내 건강을 위해서 내 몸 청소를 해야 하는 문제부터 크게는 사회 청소, 지구 청소, 우주 청소까지 나갈 수 있으니, "청소"를 주제로 다양한 분야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것도 필요할 거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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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와인버그의 세상을 설명하는 과학
스티븐 와인버그 지음, 이강환 옮김 / 시공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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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을 때 사실 좀 어렵다는 생각을 했다. 과학이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우리 삶에 가장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삶에서 죽어라 멀어져 가는 것이 과학 아니던가.

 

그냥 시험을 위해서만 어쩔 수 없이 이해도 없이, 탐구도 없이, 흥미도 없이 외워야만 했던 과목 중 하나. 물론 과학을 좋아하는 학생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말이지만.

 

어떤 통계에서 이런 결과가 있다고 한다. 20여 년 전만 해도 서울대 이과계열에서 가장 커트라인이 높은 학과는 물리학과였는데, 요즘은 의대라고 한다. 그만큼 순수과학은 우리나라의 영재라고 불리는 학생들에게서도 관심 밖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과학 중에서도 물리학에 중점을 두고 과학의 역사를 살피는 책이다. 그것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이론물리학자가 자신의 관점을 포기하지 않고, 현재 발전된 지금의 자리에서 과거의 과학을 평가하면서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객관적이라기보다는 저자의 주관성이 개입되어 있다. 신랄한 비판도 나오고, 아직 모르는 것에 대해서도 인정을 하고 있다.

 

주로 뉴턴까지를 자세하게 다루고 뉴턴 이후의 양자역학과 같은 현대 물리학, 현대 과학분야는 마지막 장에서 아주 소략하게 다루고 있다.

 

아마도 이 부분은 계속 연구되어야 하고 논란이 될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뉴턴까지의 과학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으니 접근하기가 쉬울 듯하고.

 

세 학문을 중점으로 책의 내용을 전개해 가고 있다. 천문학과 물리학, 그리고 이 둘을 관통하는 수학. 우리는 이 지구상에 살고 있고, 지구는 우주의 일부다. 그러니 옛날 사람들도 천체에 대해, 지구에 대해 관심이 많았을 것이고 이를 설명하는 과학이 천문학이고 물리학인데, 이들의 기초가 바로 수학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는 수학이나 과학이 과거보다 더 발전했으므로 과거의 과학에 대해 정리를 좀더 잘할 수 있겠지만, 당시 사람들도 자신들의 한계 속에서 세상을 이해하려는 치열한 노력을 했음을 이 책의 곳곳에서 알 수 있다.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 프톨레마이오스, 갈릴레이, 뉴턴이라고 보면 된다. 물론 이 중간중간에 많은 과학자들이 나오는데... 과거에는 우리가 고대 그리스 철학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나오고, 중세에는 천문학에 관한 여러 학자들, 그리고 근대에 들어서는 티코 브라헤, 케플러, 하위겐스, 등이 나온다.

 

더 많은 과학자들이 나오나 언급하면 머리만 복잡해지고, 지상과 천상으로 나뉘어 있던 천문학이 뉴턴에 의해 통합이 된다는 관점으로, 즉 과거의 과학은 뉴턴을 정점으로 통합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있었겠는가? 그 중에서 가장 큰 장애물은 바로 종교다. 신의 권위다. 신의 권위로 과학의 발전을 억눌러 왔음이 이 책의 중세 부분에 너무도 절절하게 나와 있다.

 

그것은 그리스에서 꽃피웠던 과학이 서양에서 계속 발전하지 못하고 아랍세계로 넘어가게 된 이유가 바로 종교, 아랍 세계에서 꽃피워 서양에까지 전파되었던 과학의 발전이 정체하게 된 이유도 역시 종교.

 

과학자들이 자신들의 발견을 출간하지 않거나 또는 사후에 출간하는 경우, 또 출간했다가 재판을 받고, 그의 저작들이 금서가 되는 경우 역시 종교.

 

그러나 과학은 꾸준히 발전해 왔다. 그것을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진보는 관찰과 실험의 결합으로 이루어지고, 이를 통해 일반적인 원칙이 제안되고, 이 원칙에서 유도된 것은 새로운 관찰과 실험으로 검증된다. 실용적인 가치가 있는 지식을 찾는 것은 근거 없는 추측을 교정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세상을 설명하는 것은 직접적으로 실용적인지와는 관계없이 그 자체로 가치를 가진다. 273쪽.

 

과학자들, 그들은 종교와 상관없이 세상을 좀더 아름답고 단순하게 설명하고자 했던 것이다. 복잡해 보이는 여러 현상들을 관통하고 있는 어떤 원리, 단순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발견했을 때 그들의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찼을 것이다.

 

이렇게 먼 길을 온 과학자들, 그러나 그들의 길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우주를 가득 채우고 있다는 암흑물질에 대해서도, 우주의 어딘가에 존재할지도 모르는 다른 생명체들에 대해서도, 빛보다 빠른 물질에 대해서도, 우리는 아직 잘 모르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그 길을 끝까지 갈 것이라고. 우리가 사는 세상, 우리가 보는 세상, 우리가 알고자 하는 세상을 알기 위해서, 그 세상을 좀더 쉽고 명료하고 아름답게 설명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 길을 따라 먼 길을 왔고, 그 길은 아직 끝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것은 거대한 이야기다. 천상과 지상의 물리학이 뉴턴에 의해 어떻게 통합되었는지, 통합된 전기와 자기 이론이 어떻게 만들어져서 빛을 설명할 수 있게 되었는지, 전자기의 양자이론이 어떻게 약한 핵력과 강한 핵력을 포함하도록 확장되었는지, 화학과 생물학이 자연에 대한 불완전한 관점이긴 하지만 어떻게 물리학에 기반을 두고 통합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이것은 단순화되어 왔고 단순화되고 있는, 우리가 발견한 넓은 범위의 과학 원리인 더 기본적인 물리 이론을 향한 것이다. 351-352쪽.

 

이 구절을 읽으며 과학자들, 멋있는 사람들이란 생각을 했다. 적어도 이들은 세상을 이해하고, 설명하려고 노력하고 있지 않은가.

 

다시, 우리나라 기초과학에 얼마나 투자하고 있는가? 혹, 기초과학에 관심이 있어도 생계 때문에 포기하는 사람이 나오지는 않는가? 그런 사람이 만에 하나라도 있다면 그것은 과학이 발전할 수 있는 여지를 잘라버리는 것이다.

 

뉴턴은 어느 순간 나온 것이 아니니까. 아인슈타인도 마찬가지고. 그동안의 과학적 업적들이 쌓이고 쌓여 그것을 정리할 누군가가 필요할 때 나온 사람들 아닌가.

 

우리나라도 기초과학에 투자를 많이 해야 한다. 그래야 그것들이 누적되어 세계적인 과학자, 우리에게 세상을 과학적으로 쉽고 단순하고 아름답게 설명할 과학자가 나올 수 있게 된다.

 

덧글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 과학의 세계에서 참 많이도 멀어져서 몇몇 과학자들의 이름을 보면서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면서 읽은 책. 내용을 다 이해했다고는 전혀 할 수 없음. 그러나 과학에 흥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나름 재미 있을 책. 특히 뒤에 부록으로 실어놓은 과학 원리들은 과학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유용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과학이 연구실에만 처박혀 자기만의 세계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이 세계를 설명할 수 있는 단순한 방법, 그리고 이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단순한 원리를 찾으려는 사람들이 하는 학문이라는 생각을 하게 해줬다. 과학에 대한 다른 생각을 하게 해줘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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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어루만지다
김사인 엮음, 김정욱 사진 / 비(도서출판b)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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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 방송 중에 "너의 목소리가 보여"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목소리가 보인다고? 그럴 리는 없다. 다만, 목소리를 듣지 않고 그 사람의 외형이나 다른 행동을 보고 추측하는 것이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목소리를 보고 판단하면 된다.

 

마찬가지다. 시는 어루만질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시는 눈으로 읽거나 입으로 소리내어 읽을 것이지 손으로 어루만지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시를 어루만지다"라는 말을 하는 것은 시를 자신의 마음으로 어루만진다는 뜻이다.

 

시를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고 애틋한 마음으로 읽어보고, 그 시를 제 마음 한 곳에 잘 간직해서 두고두고 필요할 때 꺼내서 바라보는 것, 읽어보는 것, 낭송해보는 것, 그것이 바로 시를 어루만지는 일이다.

 

그런 사람이 많은 사회, 이렇게 시를 어루만질 수 있는 사람이 많은 사회는 아름다운 사회일 것이다. 모두가 시인일 수는 없지만 모두가 시를 사랑할 수는 있다.

 

그 사랑하는 시가 모두 같을 필요는 없다. 어떤 사람에게는 짧은 시가, 어떤 사람에게는 긴 시가, 어떤 사람에게는 마음을 울리는 서정시가, 어떤 사람에게는 사회적인 의미를 전달하는 주제가 강한 시가, 어떤 사람에게는 실험적인 시가, 어떤 사람에게는 우리나라 전통시가 마음에 들 수도 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시들을 어루만질 수 있다. 아니, 어루만져야 한다. 사랑도 받아본 사람이 사랑을 줄 수 있다고, 시도 어루만져본 사람이 다른 사람이 어루만지는 시의 사랑스러움을 느낄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 점에서 시와 관련된, 시인이자 학자인 저자가 자신이 어루만지는 시에 대해서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들을 만하다. 그가 왜 그 시들을 어루만지며 사랑하는지를 알 수 있고, 그와 비교해 우리는 어떤 시들을 어루만지는지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이 아주 좋았다. 김소월이 번역시를 썼다는 것, 잘 모르는 사실이었는데... 두보의 시를 이렇게 감상적으로 번역해내다니. 김소월식 두시언해다. 그리고 저자가 말한 것처럼 시번역의 전범이라 할 수 있다.

 

두보라는 당나라 말기, 혼란스러운 시대에 살던 시인이 어떤 마음으로 그 시를 썼을지, 그 시에 쓰인 표현들이 어떤 의미일지를 비슷하게 혼란스러운, 아니 더 혼란스러운 일제강점기에 시인인 김소월이 두보의 시에 두보의 마음과 자기의 마음을 담아 이렇게 아름답게, 처연하게 번역을 해내다니...(번역문을 옮기지는 않는다. 직접 읽어보라. 과연 이것이 두보의 시를 번역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놀라운 김소월식 번역이다)

 

과연 시는 국경을 떠나서도 공유될 수가 있는 것이구나, 그리고 시를 어떻게 번역하느냐에 따라 시가 국경을 넘어 살아남느냐 마느냐가 결정될 수도 있구나 하는 점을 생각하게 했다. 첫 장부터.

 

이 책에 나온 시들은 철저하게 저자의 취향이 반영된 시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래서 글을 읽으며 어떻게 이 시에서 감흥을 받지, 이런 시를 어떻게 어루만질 수 있지 할 필요가 없다. 그냥 아, 이 사람은 이 시를 이런 점에서 좋아하고, 어루만지는구나 하면 된다.

 

나는, 내 마음에 들어온 시, 내가 언제든지 어루만질 수 있는 시를 지니면 된다. 그것이면 이 책은 제 할일을 다한 셈이다. 즉, 이 책은 다른 시들을 찾아 읽고 자기만의 시들을 마음 속에 담아두고 언제든지 꺼내서 어루만지는 사람이 많아지는 사회가 되는데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싶은 것이다.

 

굳이 그러지 않더라도 이 책에 소개되어 있는 시를 읽으면 또 그것대로 맛이 있으니... 읽자, 읽어야 어떤 시를 어루만질지 찾을 것 아니겠는가. 그리고 내가 어루만질 수 있는 시들, 다른 사람에게도 선물하자.

 

특히 제 메마른 감성을 지니고 있는 소위 높다 하는 분들에게 이런 시들 선물하자. 마음을 좀 촉촉하게 적시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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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 겉 알베르 카뮈 전집 6
알베르 까뮈 지음, 김화영 옮김 / 책세상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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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인지도 잘 모르면서 카뮈에 빠져 있다.

 

그냥 매력적인 사람이다. 카뮈는. 사진이 무언가 있어 보이게 나와서 그런가.

 

하여간, 그의 책은 내용을 이해했느냐 여부는 둘째치고 무언가 계속 작품을 읽게 만드는 요소가 있었다.

 

그래서 카뮈 전집에 있는 책을 한권 한권 사서 읽고 있는 중인데...

 

이번엔 안과 겉"이라는 표제를 단 책이다. 공식적으로 카뮈가 발간한 첫 책이고, 오랜 시간이 지나서 다시 발간된 책이라고 하는데..

 

에세이집이라고 하면 좋을 듯. 젊은 시절 카뮈를 만날 수 있는 글이기도 하고.

 

그에게는 나라로 치면 프랑스와 알제리라는 두 곳이 모두 그에게 소중했고, 그를 결정짓는 요소였을테고, 알제에서 본 해변과 태양, 그리고 그것과는 다른 비참한 사람들의 모습. 이것 역시 카뮈를 이루고 있는 요소이지 않을까 싶다.

 

무엇보다 이 책에서 카뮈는 진리를 단순화시키고 있다. 아니 절망에 빠져본 사람이 사랑을 할 수 있다는 말처럼, 세상은 복잡함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 같지만 그것을 하나하나 해체해 나가다 보면 단순함이 드러난다.

 

삶에의 진실. 그것은 삶에의 욕구다, 삶이 아무리 비루하고 힘들지라도 삶은 살아갈 무엇이고, 그 속에서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것. 그것이 단순한 진리다.

 

비참한 생활을 한다고 해서 그들에게 희망이 없는 것도 아니고, 사랑이 없는 것도 아니고, 어떤 욕구가 없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비참한 생활 속에서도 광대한 바다를 추구하거나 하늘의 태양을 희구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점을 알아야 한다. 세계적인 작가로 대우를 받지만 카뮈에세도 이렇게 밝음과 어둠의 세계가 공존한다. 그의 작품을 보면 그렇다. 절체절명의 순간인 "페스트"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사람이 나오고 있지 않은가.

 

인간은 단 하나만 추구하는 존재, 또는 현실 속에서만 안주하는 존재, 또는 이상만을 추구하는 존재가 아니라 이 세계와 저 세계, 그리고 땅과 하늘, 비참과 숭고를 모두 지니고 추구한다는 사실.

 

그 점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 책이기도 하다. 그래서 카뮈는 인간 삶의 단 한 면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은 이 세상에 살더라도 저 세상을 꿈꾼다는 것, 그것이 바로 단순한 진리임을 생각하게 해주기도 한다.

 

이런 카뮈의 책을 읽으면 현실의 비참함에 빠져 허우적거리기만 하거나, 또는 현실에 안주하거나, 또는 이상만을 추구하는 일은 진리에서 멀어지는 길임을, 우리가 복잡한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이 단순한 진리라는 생각을 하게 해준다.

 

덧글

 

그런데 제목이 참 마음에 걸린다. "안과 겉"이라니... 우리나라 언어구조에 의하면 "안과 밖"이 적절한 표현 아닌가. 속과 겉, 안과 밖. 한자어로 표리(表裏), 내외(內外). 왜 안과 겉이라고 했는지 잘 모르겠다. 속과 겉 하면 왠지 사람의 마음과 외형을 표현한다는 느낌, 그리고 안과 밖 하면 사람의 마음이 아닌, 사람을 제외한 다른 사물이나 공간들을 표현한다는 느낌을 주어서 그런가. 그렇기에 두 개를 합친 "안과 겉"이라고 했는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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