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들과의 점심 - 상처 입은 우상들, 돈, 섹스, 그리고 핸드백의 중요성에 관하여
대프니 머킨 지음, 김재성 옮김 / 뮤진트리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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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제목 잘도 붙였다. 편집자들이나 또는 저자들이 제목을 붙일 때 독자들이 흥미를 가질 만한, 그래서 책이 팔릴 만한 제목을 붙이는데... 이 책 제목은 번역자가 번안하여 붙였다기 보다는 저자가 붙인 제목을 직역했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저자는 제목에 대해서도 고민을 많이 했다는 것인데... 이 책에는 잡다하다고도 할 수 있는 다양한 내용들이 섞여 있으니 어떻게 제목을 붙이느냐에 따라 책이 읽히느냐 읽히지 않느냐가 결정된다고도 할 수 있다.

 

저자는 제목을 붙인 일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제목에 대해 한 마디 해야 할 것 같다. 에세이 한 편을 쓰다 불현듯 떠오른 표현인데, 이 책을 묶으면서 생각해보니 모음집 제목으로도 적절할 듯싶었다. 유명한 사람들과 정말로 점심을 먹는다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이기보다는 형이상학적 묘사, 다시 말해서 유명인들에 대한 우리의 강박과 유명인들이 어떤 식으로든 그 광휘 안팎의 주변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논평이라고 해야 옳겠다. -18쪽

 

나는 서점에서 이 책을 훑어보지 못한 관계로 제목에 관한 저자의 이 글을 알지 못했다. 알지 못했음은 곧 내가 제목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얘기다. 유명인들과 점심을 하면서 그에게 이야기를 듣고 그 결과를 책으로 냈다고...

 

유명인들의 속살을 엿볼 수 있는 책이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에 책을 구입한 것이었는데... 이런, 역시 서점에서 직접 책을 넘겨보며 고르는 일과 인터넷으로 구입하는 일이 이렇게 차이가 날 줄이야.

 

그래도 처음엔 좀 흥미로운 부분이다. 우리에게도 너무나 잘 알려진 '마릴린 먼로와 다이애나 황태자비'에 대한 글이니 말이다.

 

그들의 죽음이 비극이었고, 죽음의 전모가 다 밝혀지지 않았기에, 그 죽음을 둘러싸고 여러 음모론도 제기되고 있는 실정에서, 이들에 대해서 글을 써서 우리에게 그들을 삶과 죽음을 다시 생각하게 해주고 있다.

 

하여 1부에는 책 제목과 어울리는 이야기가 실려 있어, 읽어가면서 나름 만족한다. 그러다 2부에 접어들면 문화적 충격, 생각과는 다른 내용에 어리둥절해지고, 이 책을 계속 읽어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내밀한 자신의 생활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유명인이 아닌. 게다가 이 사람의 생활이 나하고는 너무도 동떨어진 삶이니, 도대체 그 문화를 알지 못하니, 이해할 수가 없다. 그냥 남 이야기일 뿐이다.

 

그러다 하나하나 읽어가면서 이 글에서 보이는 미국문화를 읽는 것이 아니라, 글에 보이지 않는 우리 문화를 읽으려 한다.

 

사람들이 같은 시공간에 살더라도 다 다르게 살 수밖에 없음을 생각하면서, 내 삶의 방식만을 고집하려 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게 2부와 4부를 읽어갔다. 읽으면서 저자의 생각에 공감하는 부분도 있었는데... 특히 애완동물에 관한 글 (개털아 휘날려라)은 논쟁의 여지가 있는데... 읽으며 논점을 잡아 이야기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했다.

 

이 책을 읽어가면서 점점 읽기가 편해지고 더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게 읽어가면 3부와 5부, 6부에 이미 들어본 이름들이 나오니 읽기가 더 친숙해진다.

 

그리고 제목을 붙인 이유와 맞아떨어진다는 생각을 한다. 그들의 삶을 엿보는 그런 경험을 한다. 그래서 자연스레 다양한 간접경험을 한다.

 

우리 문화에서는 도무지 경험할 수 없는 것들, 그리고 글로 이렇게 표현해서 출간이 되기 힘든 것들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저자의 모습을 통해 다른 문화를 경험한다.

 

그 경험들이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하고 내 것만을 고집하는 고집을 버리게 할 수 있다는 생각도 한다. 

 

책을 덮으며 이런 다양성들이 어쩌면 서구 사회를 유지해 온 힘이 아니었나 싶다고 생각하고. 단일민족 운운하면서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배척하려는 우리의 모습을 비쳐주는 거울이 되는 책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한다.

 

이 다양한 다름 속에서 어떤 공통점들, 그래도 함께 살 수 있는 그 무엇을 서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사회가 좋은 사회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이 책 덕분에 다른 문화, 다른 생각 많이 접하고 많이 경험하게 됐다. 내 삶에 경험의 폭과 깊이를 더해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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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날 즈음해서 우리 소설을 읽으며 간단하게나마 맞춤법을 생각해 보자는 의미로 알라딘에서 기획한 책이다.

 

  소설을 읽으며 맞춤법도 한 번 생각해 보자는 그 기획 좋았다는 생각이 들고, 한글날이 지나기는 했지만, 책을 주문했더니 사은품 목록에 이 소설이 들어있다.

 

  물론 공짜는 아니다. 마일리지 1000점에 해당한다. 혹 소설의 전문이 아니라 발췌본이면 어떡하지 하는 우려도 잠깐 했지만, 밑져봐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사은품 신청.

 

  주문한 책들과 함께 온 이 책, 틀린 맞춤법으로 전문을 싣고, 그 뒤에는 다시 고친 맞춤법으로 전문이 또 실려 있다. 여기에 해설까지.

 

  더 마음에 드는 것은 맞춤법을 고치기는 했지만, 소설에서 꼭 사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표현은 맞춤법에 어긋나더라도 작가의 표현을 그대로 살려 표기했다는 것.

 

이런 이벤트 가끔 했으면 좋겠다. 마일리지 1000점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게다가 소설 한 편을 두 번 읽었으니 더 좋았고.

 

소설의 내용을 설명하지는 않으련다. 다만 이 소설의 주인공이 가난을 도둑 맞았다고 생각하는데... 가난을 부끄러워 하지 않았던 주인공이 가난을 부자에게 도둑맞은 다음에는 이전과 같은 생활을 할 수 없게 된 것.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부끄러움까지 안겨주면서 자신들의 경력을 하나 더 쌓으려 하니... 같은 하늘 아래 살아가는 사람들이라지만 이들 사이의 거리는 지구와 안드로메다 정도의 거리라고 할 수 있다.

 

가난이 일시적인 경험인 것과 삶 자체인 것에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는데... 이제 우리는 가난만을 도둑맞은 것이 아니라 삶에 대한 의욕까지도 도둑맞은 시대에 살고 있지는 않은지.

 

그래서 우리는 희망마저도 도둑맞은 시대에 살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작은 희망이라도 품고 만족하며 살고 있었는데... 보이는 모습이 온통 그런 희망을 짓밟는 일들 뿐이니...

 

이런 이벤트처럼 잘못된 맞춤법을 적절한 표현으로 고쳐 보여줄 수 있듯이, 희망을 도둑맞고 사는 시대에, 희망을 다시 찾아주는 그런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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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이나 쪼매 심고 놀지머 - 칠곡 할매들, 시를 쓰다 칠곡 인문학도시 총서
칠곡 할매들 지음, (사)인문사회연구소 기획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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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 할매들 두 번째 시집이다. "시가 뭐고?"에 이어 그동안 칠곡 할매들이 한글을 공부하고 글쓴 결과물이 나온 것이다.

 

시인들만이 시를 쓰는 세상은 고도로 전문화되고 분화된 세상이라고 할 수 있다. 시라는 것도 특정한 집단만이 써야 한다면, 그것은 자기 분야가 아니면 전혀 모르는 청맹과니들이 되는 세상이라고 할 수 있다.

 

시만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 자기 분야말고는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 세상에 살고 있지는 않은지.

 

의학분야만 하더라도, 우리는 통칭 의사라고 하지만, 의사들도 자기 전공 분야로 나뉘어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또한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니 다른 분야에 뭐라 말하기가 그런 세상이 된다.

 

뭐라 말하면 네가 뭘 알아? 하면 할 말이 없기도 하고. 이번 '백남기 농민 사망진단서' 건을 보아도 대다수의 의사들과 사람들은 사망진단서의 내용이 잘못되었다고 하는데도 주치의가 잘못되지 않았다고 하면 더이상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한다.

 

전문화는 곧 분업화요, 분업화는 곧 소통의 단절이 될 수 있음을 이런 사태를 보면서 절실히 느끼게 되는데... 이런 전문화ㅡ분업화를 거부하고 통합, 융합으로 갈 수 있는 분야가 바로 인문학 분야 아닌가 한다.

 

인문학이 아니더라도 요즘은 학문 간의 융합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는데,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굳이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전문가와 비전문가가 함께 하는 그런 분위기가 형성되었으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시 분야로 국한시켜 말해보면 요즘 시인들은 어려운 시들을 많이 쓴다. 그것이 시인이 해야 할 일인 양, 다른 사람과 시인을 구분해 주는 양 난해한 표현들, 자기만의 세계에 갇힌 표현들이 난무하고 있는 실정이다. 고도로 전문화, 분화된 지금 세상을 시인들이 반영한다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그래서 시 역시 사람들에게서 멀어지고 있고, 시 분야에서도 전문가와 비전문가로 나뉘고 있는 실정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디 그런가? 시라는 것은 자신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해 내는 행위 아니던가. 예전에는 시인이라는 직업이 없지 않았는가. 그냥 감정이 흘러 넘쳐 무언가로 표현해 내야 한다면 그것을 몸으로든 언어로든 표현하지 않았던가.

 

노래와 시는 그래서 삶과 하나였고, 누구나 만들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분야였는데... 근대에 접어들면서 '시인'이 하나의 직업이 되면서, 시는 누구나 쓸 수 있지만, 시인은 누구나 될 수 없는 구조가 되어 버렸다.

 

좋다. 시인은 누구나 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앞 부분에 중점을 두자. 시는 누구나 쓸 수 있다는 부분에 말이다. 그 누구나 쓸 수 있는 시를 누구나 쓸 수 있게 하는 사회가 바로 좋은 사회 아니겠는가.

 

시를 특정한 사람들만이 쓰는 문학 행위라고 여기게 하기보다는 누구나 자연스럽게 쓸 수 있고, 발표할 수 있는 문학 행위라는 인식이 확산된다면, 우리 사회에 시가 더 가까이 다가오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칠곡 할매들과 함께 한 인문학 교실, 여기서 한글을 배우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시로 쓴 할매들의 결과물은 소중하다고 할 수 있다.

 

무언가 화려하게 꾸미려 하지 않고, 자기만 아는 표현을 하려 하지 않고, 지금껏 살아온 삶을 그들의 언어로 표현해내고 있는 것.

 

그들 삶 자체가 시일텐데... 진솔한 표현들 속에서 할매들의 삶이 그대로 녹아나고 있어서 때로는 울컥하기도 하고, 때로는 웃음이 머금어지기도 한다.

 

시가 한층 더 가깝게 다가오고... 이런 활동을 한 사람들이 고맙고 그렇다. 이 시집에는 칠곡 할매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지만, 그 중에서도 이 시, 마음에 짠하게 다가온다. 이게 바로 우리 민초들의 삶이다.

 

민초들은 바로 이렇게 살고 있다. 이런 민초들의 삶, 그것을 소위 말하는 지식인들, 권력자들이 배워야 한다. 자신들의 삶을 강요하지 말고. 

 

  내 평생

            - 남영자

 

20살에 시집 가지고 아 다섯을 낳고

삼십다섯에

혼자 돼 아 다섯 지대로

키워주지 못하고 공부도 올재 못시킸다

그래도 여짓것 살면서

남 해롭게 안 하고 평생 거짓말

한 번 안하고 살었다

남 도와주지는 못해도

평생 남 해롭게 하지는 않았다

 

강봉수 외 118명, 콩이나 쪼매 심고 놀지머. 삶창. 2016년 초판. 20쪽.

 

이런 시들이 수두룩하게 실려 있다. 이게 바로 시라는 듯이. 이렇게 삶이 바로 시가 될 수 있다는 듯이. 그래서 시가 삶에 더 가까이 다가왔음을 느끼게 해준 시집이다.

 

* 표기는 할매들의 표기를 그대로 따랐다고 한다. 굳이 현대 맞춤법에 맞게 고쳐서 시에 쓰인 표현에서 들을 수 있는 할매들의 목소리를 지울 필요가 없었을 듯하다. 이것이 더 좋다. 그래서 이 시들에서 할매들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울린다. 눈만이 아니라 귀에도 들리는 듯

 

덧글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이다. 늘 고맙다. 이렇게 책을 보내주면. 특히 살아있는 목소리들이 담긴 글을 담아낸 책이 오면 더욱 반갑고 고맙다. 앞으로도 이런 책이 더 많이 사람들 곁에 다가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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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말이다.

 

'능력 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해 /  우리 부모 가지고 감놔라 배놔라 하지 말고. / 돈도 실력이야'

 

더 많은 말들이 있겠지만, '돈도 실력이야'란 말. 돈이면 다 된다는 식의 이런 말. 그렇지. 없어본 적이 없는 사람은 없는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게 사는지, 자신이 부모 잘만나서 남들보다 편하게 사는 것이 당연한 일인양 생각하지.

 

생각만 하면 그나마 다행인데, 꼭 이렇게 밖으로 이야기를 하지. 자기 노력도 없이 오로지 부모 잘만났다는 이유만으로 그 자리에 있으면서.

 

결국 '유전 무죄, 무전 유죄'의 현실이 또다시 반복되고 있는 셈이지. 돈이라는 막강한 권력 앞에서는 돈이 없는 사람은 결국 죄인인 거지.

 

돈 없으면 결국 죄악인 거지. 죄악을 저지르는 사람인 거지. 돈 있는 사람이 있다고 거들먹거리는 것이 죄악이 아니라.

 

이건 제대로 된 세상이 아니지. '부끄럼이 없는 세상'이지. 어떤 소설가(박완서)는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라고 했는데... 도무지 배우려고 하질 않으니, 가르칠 수가 없지.

 

게다가 부끄러움은 인간이 지닌 기본적인 성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을 가르쳐야 하는 세상도 말세라고 할 수 있는데, 그마저도 가르쳐지지 않는 세상. 오히려 돈 없는 것들이 말들만 많아, '그냥 조용히 있어. 아님, 돈 없는 네 부모를 원망하든지...' 하는 세상은 말세에서 더 나아간 세상아닐까.

 

소위 말하는 '아수라' 세상이지.. 하지만 이렇게 돈이 최고인 세상이 오래 갈까? 그런 세상이 유지될까? 자신들의 돈이 오로지 자신들만의 힘으로 그 수중에 있게 됐다고 생각할까? 그런 생각을 한다면 참...

 

없는 사람들이 돌아서면 그 돈이 계속 그들에게 머무를까? 이들은 경주 최부자집 가훈에 대해서 아마 알지도 못하겠지. 알려고 하지도 않겠지. 무엇이 자신들에게 계속 돈이 머무르게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을 거야.

 

그러나 신자유주의 세상에 돈이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사람 사는 세상은 돈보다는 사람이 우선인 세상이니.

 

이런 세상에서 문충성의 시집 "허공"을 읽다가 발견한 시...

 

가난에 대하여

 

요즘 가난은 죄악이라 한다

돈 없으면 가난하다고들 한다

나는 밖으로 가난하다

나는 안으로 가난하다

그러므로 나는 가난하다

그러므로 나는 죄악이다

그 죄악이 모여 돈 세상 이루나니

그러므로 돈 세상은 죄악이다

그 돈 세상 사는 눈뜬 나들아

헐뜯고 싸우며 죽지 않으려 하지만 생존 경쟁아

눈떠 있다는 것이 한 번씩

자기 죽음 완성하는 가난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보여다오 무엇인지

하루하루 죄악에서 벗어나는 일일까

 

문충성, 허공, 문학과지성사. 2001년.15쪽.


'하루하루 죄악에서 벗어나는 일' 이 고민을 없는 사람들이 해야 할까? 오히려 있는 사람들이 고민을 해야지. 그래야만 죄악의 세상, 돈 세상이 되지 않지.

 

사람이 없는 돈만으로는 살 수 없으니. 또한 그 돈은 자신만의 힘으로 오게 된 것이 아니니... 사람들이 함께 했기에 자기에게 남보다 많은 돈이 올 수 있었음을 안다면, 그 돈을 자기만을 위해 쓰는 일이 얼마나 부끄러운지 알 수 있게 될테니

 

그러면 돈 없는 것이 죄악이 아니라, 돈이 있는데 제대로 쓰지 않는 것이 죄악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텐데...

 

아, 정말, 이렇게 돈 없는 것이 죄악인 세상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주변에 없는 사람들이 많은데, 돈이 많은 것을 부끄러워하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돈도 실력이야'라고 말하지 않는 세상이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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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의 포도밭 - 읽기에 관한 대담하고 근원적인 통찰
이반 일리치 지음, 정영목 옮김 / 현암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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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의 변화에 대한 서술이라고 이 책을 정리할 수 있겠다. 독서의 역사와 비슷하지만, 일리치는 그런 통사적인 고찰을 하지 않고, 후고라는 사람의 책을 가지고 읽기에 대한 생각을 펼쳐 간다.

 

책에서 텍스트로의 변화... 그것은 소리내어 읽기에서 속으로 읽기로의 변화만이 아니라 삶 자체의 변화와도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읽기의 변화는 시대의 변화이고, 사람들의 변화라는 말이 되는데, 지금 우리는 책에서 텍스트로, 그리고 다시 전자문자로 변화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책을 읽던 시대에는 책은 글자로 치환되지 않는다. 책 자체가 존재다. 사람들과 함께 하는 존재. 그래서 책을 읽는 행위는 함께 하는 행위이고, 그것은 실천과 동떨어질 수 없는 일이었다.

 

입으로 소리내어 읽어야 했기에, 읽는 행위는 곧 듣는 행위와 함께 했고, 이때 읽을 때는 글자 하나하나를 읽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암송한 내용을 밖으로 펼쳐내는 행위였다. 그러니 읽기는 곧 수사(그냥 수도사라고 하자. 중세에는 수도사는 사람들의 삶을 규정하는 존재였으니)들의 읽기였다.

 

수사들의 읽기, 중세의 삶을 규정하는 행위, 그런 행위에서 책을 구성하고 있던 글자인 라틴어는 그야말로 개별 언어로 번역이 될 수 없는 언어였다. 그 언어는 자체로 존재했고, 그 언어들은 수사들의 입을 통해 말해져야 했고,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야 했다.

 

이런 읽기가 1200년대에 들어서서는 바뀌게 된다. 즉, 책이라는 존재가 텍스트라는 존재로 변모하는 것이다. 텍스트는 눈으로 보기 편하게 바뀌게 된다. 굳이 소리내어 읽을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눈으로 보아도 된다. 또 함께 할 필요가 없다.

 

하여 이 때부터 라틴어는 절대적인 자리에서 내려오게 된다. 라틴어를 구성하고 있던 알파벳이 각 나라의 언어가 되고, 그 언어들로 표기가 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자신들의 의미를 획득한 언어들, 각자에게 읽힐 수 있다. 굳이 소리낼 필요가 없게 된 것. 이것이 책에서 텍스트로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이때의 읽기는 학자들의 읽기라고 할 수 있다. 학자들의 읽기는 삶과 꼭 일치될 필요가 없다. 자기만의 읽기가 가능해지는 것이고, 자기만의 해석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읽기와 삶이 함께 가던 시대에서 삶과 읽기가 분리된 시대가 된다. 그렇게 시대는 흘러 이제는 읽기라는 말도 조금 어색해지는 '보기'라는 말이 더 친숙한 시대가 되었다.

 

그만큼 우리들 삶도 변했고.

 

일리치가 이 책을 통해 단순히 읽기의 변화를 우리에게 알려주려고 했을까? 그건 아니라고 본다. 그는 1200년대 이전의 사람들이 알파벳을 독자적인 글자로 인식하지 못하고 절대적인 그 무엇이라고 보고 생활했듯이, 지금 우리가 어쩌면 텍스트에 갇혀 변화를 깨닫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그는 병원이 병을 만들고, 학교가 교육을 망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었듯이, 우리가 지금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는 것들이 어쩌면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고 한 번 생각해보라고, 이렇게 읽기의 변화를 통해서 제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그런 점에서 이 책의 내용을 세세하게 마치 이 책에서 후고의 글을 분석하듯이 할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 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관념이 무엇인지, 그리고 지배적인 관념에 가려져 있지만 새로운 시대를 예비하는 생각들이 무엇인지 고민하면서 이 책을 읽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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