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출 수 있는 용기"가 이번 호의 기획 주제다. 삶을 살면서 앞만 보고 살아왔다고 말을 하는 사람이 많은 사회가 우리 사회 아니던가.

 

  '앞만 보고 살아왔더니 남는 것은 회한이더라'라는. 그러나 나중에 회한에 잠겨봤자 시간은 되돌아 오지 않는다.

 

  되돌아 오지 않는 시간, 그 시간을 잘 활용할 수 있는 길은,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리지 않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게 어디 가능한가? 우리나라 교육제도가 우선 이를 막고 있다. 이상하게도 사회 생활을 하면 한두 살 차이야 차이도 아닌 나이가 되는데, - 예전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5살 정도 차이가 나도 친구로 지내는 경우도 많았으니, 친구가 꼭 나이가 같아야 된다는 법이 없었는데- 학교 제도에서 나이대로 학년이 정해지고 선후배가 정해지니, 그 틀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한번 학교를 쉬면 후배들과 다녀야 한다는 부담이 있는데, 이를 이겨내기가 그리 쉽지는 않다. 그러니 모두들 어떻게든 제 나이 또래들과 함께 진급을 하고 졸업을 하기 위해 시간을 버텨내기만 한다.

 

여기서 멈춘다는 것은 정말로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익숙한 환경에서 벗어나 낯선 환경에서 지내야 한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생에서 어디 같은 나이 대끼리만 지낼 수 있나? 또 같은 나이 대라고 해도 지적 수준이나 흥미가 같을 수가 있나? 오히려 다른 나이 대에서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지 않나. 마찬가지로 평생을 익숙한 환경에서만 지낼 수는 없다.

 

그런 기회를 학교가 박탈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보아야 하는데.. 이렇게 학교에서 일직선으로 주변을 볼 틈도 없이 달리기만 하는 학창시절을 보내고 나면 청년이 되어도, 또 기성세대가 되어도 앞만 보고 달리게 된다.

 

마치 달리지 않으면 도태되는 것처럼, 무작정 달린다. 그 끝이 무엇인지 생각도 않은 채. 그러다 생을 마감할 때쯤, 또는 큰일을 겪을 때 내가 왜 이렇게 살았던가, 이런 삶이 무슨 의미가 있었던가 하는 회한에 잠기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번 "민들레"에서 생각해 보자고 제안하고 있다. 이미 이런 달리기에서 멈춘 사람들을 우리에게 보여줌으로써.

 

달리기에서 멈추고 쉬거나 다른 샛길로 접어들거나 천천히 걷는 사람들 이야기. 삶이라는 직선에 주름을 잡아가는 사람들. 그래서 자신의 삶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가는 사람들 이야기. 나중에 '그때 그럴 걸' 하지 않고 지금 그것을 하는 사람들 이야기.

 

삶에는 어차피 종착역이 있는 것. 그 종착역을 향해 전력질주를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종착역에 도달하기 전에 여러 곳을 들러 다양한 경험을 하는 사람들. 조금 늦게 도착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삶을 즐기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바로 '멈출 수 있는 용기'를 발휘한 사람들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하는 "민들레 107호"였다. 이 주제말고도 다양한 글들이 있어서 읽으면서 여러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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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서 가장 쉬운 어휘 2 - 예비중학생과 현실중학생을 위한 어휘 학습법 우주에서 가장 쉬운 어휘 시리즈 2
강영미 외 지음 / 우리학교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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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말들을 주고받지만 사실 우리가 쓰는 어휘에는 한계가 있다. 국어사전에 등재되어 있는 어휘들을 모두 알 수는 없는 일이고, 모두 안다고 해도 일상생활에서는 아주 적은 수의 어휘들만 사용하게 된다.

 

글을 쓰더라도 마찬가지다. 특이한 경우를 빼고는 일상에서 쓰는 어휘에서 그리 많이 늘어나지 않는다. 그만큼 우리가 쓰는 어휘는 한정적이다. 즉, 우리는 쓰는 말만 쓴다.

 

그렇게 우리는 자신이 주로 쓰는 어휘들을 통해서 일상을 살아가는데 지장을 받지 않는다. 그럼에도 일상에서 모르는 말이 불쑥불쑥 나올 때가 있다. 이게 무슨 뜻이지? 사전을 찾기는 힘들고, 그렇다고 남에게 묻기도 그렇고 해서 그냥 넘어가는 경우도 많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쓰는 어휘가 그리 많지 않은 까닭이다. 가령 이문구의 소설을 읽으면 토속적인 말들이 참 많이 나온다. 그 말들을 하나하나 사전을 찾아가며 읽으려 하다간 소설의 내용도 놓치고 재미도 놓치고 만다. 그래서 그냥 모르는 어휘들을 문장 속에서 의미를 짐작하면서 넘어가기도 한다.

 

나중에라도 그 중에 몇 어휘를 기억하면 그만큼 자신의 어휘 용량을 늘렸다고 볼 수 있는데... 그런데, 요즘 학생들은 더 바쁘다.

 

급변하는 시대에 모르는 어휘를 차분히 찾을 시간이 없다. 그냥 모르고 넘어가거나 대략 의미를 짐작하고 넘어갈 뿐이다. 그래서 점점 더 학생들의 어휘 실력이 떨어진다.

 

요즘 학생들은 기본적인 어휘의 뜻도 모를 때가 많다. 그만큼 어휘 공부가 안 되어 있다. 예전에는 책을 많이 읽으면 자연스레 어휘가 는다고 했는데, 이제는 그렇게 책을 많이 읽을 수 있는 시간도 부족하다.

 

세계 최장의 공부 노동에 시달리는 학생들에게 책읽기는 또 하나의 공부에 불과하게 되니, 그만큼 책읽기 역시 학생들에게 고역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어휘 실력은 점점 떨어지고, 이것이 결국 쓰는 말들만, 그것도 몇 안되는 어휘들만 사용하는 언어의 황폐화를 가져온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학교에서 어휘 교육을 하느냐, 그건 아니다. 예전보다도 더 못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이래저래 학생들의 어휘 실력은 줄고 있는 형편인데, 그를 안타깝게 여겨 학생들의 어휘 실력을 향상할 수 있는 책을 현직 국어교사들이 펴냈다.

 

일명 우주에서 가장 쉬운 어휘. 우선은 예비 중학생과 중학생이 읽으면서 어휘력을 키울 수 있는 책을 냈는데...

 

그중 이 책 2권은 중학생 수준에서 알아두어야 할 어휘들을 분야별로 나누어서 실었다. 가족과 친척, 의례 분야부터 시작하여 지리와 장소 분야로 끝내고 있는데...

 

240개의 필수 어휘와 472개의 관련 어휘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우리가 영어단어 외우는 책처럼 문장 하나에 단어 뜻, 그래서 외울 수밖에 없게 구성되어 있는 그런 책이 아니다.

 

그냥 읽어가면 자연스레 다양한 어휘를 익힐 수 있도록 했다. 처음에는 문장 속에서 그 어휘들을 만나고, 각 어휘의 뜻 풀이와 문장 속에서 어휘 찾기, 관련 어휘 익히기 등을 읽고, 나중에 학습활동을 통해 어휘를 어느 정도 익혔는지 스스로 확인할 수 있도록 구성하고 있다.

 

그래서 부담없이 한 분야씩 읽고 풀어보는 사이에 어휘력을 향상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냥 외우라고 윽박지르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이 책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조금 아쉬운 점이 이 책에 실린 어휘들이 거의 한자어라는 사실. 우리말의 70% 정도가 한자어에서 유래했다지만, 중학생이 알아야 할 필수 어휘들에 이렇게 한자어가 많다는 사실... 토박이말도 자꾸 써서 활용도를 높여 일상생활에서, 또 학생들의 읽기 자료에서도 많이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 않으면 한자어에서 온 말이 이렇게 많듯이 미래에는 영어에서 온 말들이 필수 어휘의 자리에 더 많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면서.

 

덧글

 

출판사에서 한 출간기념 이벤트에 응모하여 당첨이 되어 받은 책이다. 덕분에 중학생들에게 어떤 어휘들이 필요한지 알게 되었고, 우리나라도 이제는 어휘 교육에 대해서도 고민을 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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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막힌 표현에 어찌 감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시인이란 자고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줄 아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이렇게 따스한 마음을 품고 대상을 대할 수 있는 시인이 있다는 것에 행복을 느낀다.

 

 차가움의 대명사인 얼음을 따뜻하다고 표현했다. 그런데 그 따뜻하다는 표현이 엉뚱하지가 않고 가슴에 와 닿는다. 그렇다, 얼음은 이렇게 따뜻하다. 그 표면만을 보고 얼음을 차가움의 대명사로 여기고 있었다니.

 

 어떤 대상이든 한 면만 있지 않다는 사실, 다른 면도 있으니 다른 면도 보아줄 줄 알아야 한다는 사실.

 

 그러다 이런 눈을 지닌 사람이 시인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겨울을 대표하는 '눈' 역시 차가움 보다는 따스함이라고 노래한 시인들도 있지 않은가.

 

윤동주는 눈을 추위를 덮어주려는 이불에 비유했었고, (윤동주의 '눈') 안도현은 눈 중에서도 '함박눈이 되자'고 했었다. 함박눈이 되어 '편지'가 되고 '새 살'이 되자고... (안도현, '우리가 눈발이라면')

 

여기에 몇 해 전에 인기를 끌었던 영화 '겨울왕국'을 생각해 보자. 겨울왕국의 또다른 주인공은 '엘사'는 모든 것을 얼리는 능력이 있다. 그러나 엘사는 자신의 능력을 두려워한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까 봐. 이것은 통상 우리가 얼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이런 엘사도 나중에는 자신의 능력이 사람들을 위해서 쓰일 수 있음을 깨닫는다. 사람들이 즐거워할 수 있게 자신의 능력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사랑'의 힘으로 가능해졌다.

 

얼음이 차가움, 두려움에서 따스함, 즐거움, 사랑으로 변해 가는 과정, 그것이 주인공 엘사를 통해 잘 드러나고 있다고 보는데...

 

시인 박남준은 '따뜻한 얼음'이라는 시에서 얼음의 따스한 면을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아, 정말, 이렇구나, 무릎을 탁 칠 정도다.

 

 따뜻한 얼음

 

옷을 껴입듯 한겹 또 한겹

추위가 더할수록 얼음의 두께가 깊어지는 것은

버들치며 송사리 품 안에 숨 쉬는 것들을

따뜻하게 키우고 싶기 때문이다

철모르는 돌팔매로부터

겁 많은 물고기들을 두 눈 동그란 것들을

놀라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얼음이 맑고 반짝이는 것은

그 아래 작고 여린 것들이

푸른빛을 잃지 않고

봄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겨울 모진 것 그래도 견딜 만한 것은

제 몸의 온기란 온기 세상에 다 전하고

스스로 차디찬 알몸의 몸이 되어버린 얼음이 있기 때문이다

쫓기고 내몰린 것들을 껴안고 눈물지어본 이들은 알 것이다

햇살 아래 녹아내린 얼음의 투명한 눈물자위를

아 몸을 다 바쳐서 피워내는 사랑이라니

그 빛나는 것이라니

 

박남준, 적막, 창비. 2006년 초판 5쇄. 14-15쪽.

 

'쫓기고 내몰린 것들'을 껴안아 주는 얼음, 얼음은 그 차가움으로 인해 다른 존재들이 작고 약한 것들을 더이상 괴롭히지 못하게 막아주고 있다. 그러나 때가 되면 이제는 자신의 역할이 끝나야 함도 알고 있다. 이게 바로 얼음이 따뜻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햇살 아래 녹아내린 얼음'이 된다. 봄이 왔는데도 녹지 않고 버티고 있으면, 얼음은 자신이 사랑하고 보호해주려 했던 것들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자라고 행복하게 사는데 장애가 될 뿐이다.

 

얼음은 그것을 안다. 보호해야 할 때와 가야할 때. 그래서 얼음은 '맑고 반짝이는' 것이다. 차가운 겨울에 밖의 차가움을 자신이 다 받아들여 자신도 차가워 보이지만 속으로는 더 작은 것들을 보호해주고 있는, 따스한 봄이 오면 자신을 녹여 그들을 세상 밖으로 내보내주고야 마는 얼음.

 

그런 얼음을 어찌 따스하지 않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이런 얼음은 그래서 '따뜻한 얼음'이다.

 

이제 곧 겨울이 다가온다. 매서운 추위가 닥칠 것이다. 이미 계절 말고도 혹한의 겨울을 나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 사회가 겨울에 접어든 지가 꽤 오래 되었다. 

 

우리 사회에도 얼음이 많이 있다. 얼음 속에서 우리는 간신히 숨을 쉬면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봄이 왔는데도 얼음이 봄을 거부하고 계속 존재한다면, 그래서 봄을 늦춘다면 그것은 '따뜻한 얼음'이 아니라 우리를 괴롭히는 '차가운 얼음'일 뿐이다.

 

우린 충분히 얼음을 경험했다. 이제는 그 얼음을 녹여야 할 때다. 얼음이 '차가움'의 대명사가 아니라 '따뜻함'을 뜻할 수도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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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그들의 다른 선택 - 광복을 염원한 사람들, 기회를 좇은 사람들
선안나 지음 / 피플파워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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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이들이 평범한 장삼이사(張三李四)였으면 이런 책도 나오지 않았으리라. 이렇게 역사에서 책임을 묻는 일을 끊이지 않고 하지도 않았으리라.

 

이들에게 자꾸 과거의 행적을 떠올리게 하고, 역사에 기록을 남기고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그것도 청소년들로 하여금 계속 읽게 하는 이유는, 이런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다.

 

그리고 사회의 지도층, 주도층, 또 지식인의 책무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하기 위해서다. 그냥 한 시대를 함께 살아간다는 데서 끝나지 않고 이들에게는 보통사람들에게 거는 기대보다 더한 기대를 하고, 책임을 묻게 된다.

 

그만큼 이들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이들이 사회에서 받은 혜택이 많기 때문이다.

 

(이들 중에는 그것은 다 자신의 노력과 능력으로 이룬 것이지, 사회에 기댄 것은 하나도 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자기 혼자 이룬 것은 없다. 모두 다른 사람과 또 사회적 환경과 관련이 되어 있다. 따라서 사회 지도층, 주도층, 지식인이 되었다 함은 그만큼 사회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았다고 생각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 그들은 자신의 행동을 결정할 때 자기 이익이 아니라 어떤 것이 사회를 바람직한 쪽으로 이끌어 가는가를 우선시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생일대의 선택 상황, 갈림길에 처할 때가 있다. 그것도 자신이 출세해서 잘 사느냐 아니면 자신을 희생해서 사회 발전의 토대를 마련할 것이냐 하는 갈림길.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갈림길이 몇 번 나오고, 그 갈림길에서 많은 이들이 선택을 하게 되는데, 그 대표적인 갈림길이 바로 일제강점기라고 할 수 있다.

 

30여 년을 식민지 지배에서 살아가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독립을 위한 활동을 하느냐 (이 길은 얼핏 생각해도 험난한 길이다. 갈림길에서 보면 가시밭길이다) 아니면 식민지배에 협력하느냐 (이 길은 평탄한 길이다. 출세를 향한 탄탄대로, 잘 포장된 길이다)의 선택에 처하게 된다.

 

특히 사회 지도층, 주도층, 지식인들에게는 이 선택의 길이 더 선명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이들의 선택은 개인의 선택으로 묻히지 않고 역사라는 책에 선명히 기록되고, 지워지지 않게 된다.

 

이 책은 일제시대라는 갈림길을 다시 세분한다. 명문가, 부자, 여성, 문인, 언론, 여성지도자, 독립군과 토벌군으로.

 

각 갈림길에서 두 명씩을 배치해 상반된 선택을 했던 사람들의 삶을 보여준다. 어느 길이 올바른 길이었는지 우리에게는 이미 답은 정해져 있다. 다만, 그 시대에는 그 답이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이 말도 어폐가 있다. 답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아마 답을 보지 않으려 했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공부했던 사람이라면, 어떤 길이 옳은 길인지는 분명 알았을 것이다. 다만, 옳은 길이 늘 자신의 행복을 담보해주는 길이 아니라는 사실, 옳음보다는 개인의 행복을 우선으로 한 선택을 한 경우가 많았으리라)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 약간 편파적이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한 길은 비록 험난한 길이지만 칭송받는 길이고,  한 길은 편안한 길이지만 대대로 욕을 먹는 길이기 때문이다. 서술에서도 한 편은 존경으로, 한 편은 아쉬움과 비판으로 나아가고 있으니, 읽으면 답은 너무도 명확하다.

 

이 상황에서는 이렇게 했어야 했다. 딱 정해져 있다. 그런데도 이렇게 정해진 길을 가기는 정말 힘들다. 당위와 현실은 거리가 너무도 멀기 때문이다. 이 먼 거리를 좁혀 당위를 현실로 끌어와 행한 사람들, 그래서 이들이 더 위대하고 소중한 존재인 것이다.

 

누구누구가 나오는지 보자. 우선 조선시대에 명문이라는 소리를 드는 집안에서는 이회영 집안과 이근택 집안이 나온다. 부자에서는 안희제와 김갑순, 여성에서는 남자현과 배정자, 문인에서는 이육사와 현영섭, 언론에서는 안재홍과 방응모, 여성지도자에서는 김마리아와 김활란, 독립군과 토벌군에서는 장준하와 백선엽.

 

많은 사람들 이름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친일파로 분류된 사람들 중에서 자신들은 친일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한 사람들도 많고, 그 후손들도 조상의 친일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으니...

 

이 책을 통해서 다시 한 번 그들의 행위가 친일 행위였음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역사에 사실로 남아 있는 친일 행위를 그토록 부정하고도 여전히 사회주도층으로 살아남은 그들과 그들의 후손들에게 역사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아무리 부정해도 그들의 행위는 역사를 통해 기억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단지 과거의 사실만을 알기 위해서, 또 친일 행위를 단죄하기 위해서 이 책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과거의 사실을 기억한다는 것, 그것은 비슷한 상황에 처했을 때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를 알게 한다는 것이다.

 

좋지 않은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역사는 기록을 남기고, 우리는 그 역사를 배우는 것이니까.

 

일제강점기라는 갈림길 앞에서 상반된 선택을 한 사람들... 역사가 누구를 더 칭송하는지, 누구를 오욕의 역사로 기억하는지 이 책을 통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또한 청소년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썼다는 것, 이 책의 장점이기도 하다. 많은 청소년들이 읽고 아직도 왜곡된 주장을 하는 사람들에게 속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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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과 망각
김용진.박중석.심인보 지음 / 다람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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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면 제목을 아마도 '친일과 기억'이라고 붙였겠지. 친일을 기억해야 한다고. 그런데 '친일과 망각'이라고 제목을 붙였으니, 아마도 그 의미는 친일의 주체들이 (이들 중 살아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이미 그들은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 기억을 할 수도 없을 뿐더러 반성이나 책임을 질 수도 없게 되었다) 또는 그 후손들이 지금 우리 사회에서 '망각' 쪽에 서 있지 않나 하는 마음이 작동했으리라.

 

우리 사회에서 반발을 일으키는 말들을 꼽으라고 하면 나는 두 단어를 꼽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는 '친일'이고 하나는 '빨갱이'(종북이니 좌파니 다 같은 의미로 이 말에 포함시킨다)다.

 

'친일'이라는 말이 주로 보수 쪽의 반발을 강하게 불러일으키는 말이라면, '빨갱이'라는 말은 주로 진보 쪽의 반발을 많이 불러일으킨다. 아마 상대방을 비방하는데 이 말들보다 좋은 말은 없을 터. 또한 그들이 처한 위치가 그만큼 다르다는 말도 될 것이고.

 

그런데 과연 이 말들이 실체가 있느냐 하면 그게 참 모호하다. 실체 없는 말들이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구속하기도 한다. 또 한 때 이 말들이 막 나왔다가 어느 순간이 되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쏙 들어가 버리고 만다.

 

'친일'은 분명 실체가 있는 말이어야 하는데.... 당사자들은 이미 저 세상으로 떠났고, 이제는 자식 정도가 아니라 2대, 3대 후손들을 대상으로 너희 조상이 친일을 했다고 해야 하니, 조상의 잘못을 후손에게 책임을 묻는다는 식으로, 왜 나에게? 난 아무 상관도 없는데? (지금 자신의 자리를 잘 돌아보면, 아무 상관도 없는데... 라는 말이 얼마나 잘못된 말인지를 깨달을 수 있을텐데)라는 반응이 나온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 후손들 가운데 조상의 친일을 인정하는 사람도 드무니... 법적 소송을 통해서 자신의 조상이 친일을 하지 않았다고 증명하려는 일까지도 하고 있으니... '친일'이라는 말이 정확한 실체로 다가오지 않고 상대를 비방하는 말로 전이되는 기묘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의 현실이다.  

 

'빨갱이'라는 말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이건 아예 상대방을 찍어누르려고 쓰는 말이니, '친일'이라는 말과 같은 위상에 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말이다. 실체를 찾기 힘든 말.

 

그러니 책 제목에서 친일과 관련된 사람들의 관점이 '망각'이라는 말로 표현되었다는 생각을 한다. 그들은 잊고 싶고, 다시 언급되지 않았으면 할테니 말이다.

 

하지만 반대로 우리는 '친일'을 '기억'해야 한다. '기억'해야만 제대로 된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우리가 제대로 살 수 있다. '기억'을 하고 있어야 '용서'를 할 수 있다. '망각' 속에 함께 빠져 있다가는 '용서'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망각' 속에서 허우적 댈 뿐이다.

 

이 책은 해방 70년을 맞이하여 친일 문제를 다룬 방송에서 '취재한 내용 중 핵심적인 사실과 다큐멘터리에서 제대로 담지 못한 내용, 취재 뒷얘기 등을 엮어서' (9쪽) 낸 것이다. 따라서 <친일과 망각>이라는 방송을 본 사람들에게는 그 방송을 더 풍부하게 하는 책이 될 것이고, 방송을 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우리 사회에 존재하고 있는 친일의 잔재들에 대해서 알 수 있게 되는 책일 될 것이다.

 

친일파 후손들을 추적하여 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직업, 교육 수준, 경제적 조건 등을 살펴보고 있다. 결과는 우리가 추측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면도 있기는 하지만 - 이는 책에도 나오는데, 친일파들의 후손들이 우리나라를 움직이는 권력으로 존재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그들 후손이 가장 많이 택한 직업이 의사, 교수 등이라는 사실 - 대체로 우리의 추측과 맞아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직업들이 대체로 좋으며, 교육 수준이 상당히 높고, 경제적 수준 역시 상류층에 해당하는 비율이 매우 높다는 사실. 이것은 그들이 직접 친일을 한 조상들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지 않았더라도 그가 물려준 사회, 경제, 문화적 배경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보다는 쉽게 그 자리에 오를 수 있었음을 보여준다.

 

반면에 독립운동가들의 자손들은? 이들과 거의 대칭이 되는 삶을 산다고 보면 된다. 직업도 변변찮고, 교육 수준도 낮으며 - 하다못해 대학 중퇴 수준의 학력이 높은 편에 속한다 - 경제적으로도 빈곤 수준에 가깝다는 사실.

 

출발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 출발점이 후손들의 삶을 결정해 주는 주요 요소로 작동했음을 알 수 있다. 이건 문제다. 출발점이 다르면, 그 출발점을 고쳐주는 역할을 국가가 해야 했음에도, 하지 못 했음을 - 안 했다고 해야 더 정확한 표현이 될 듯, 그래서 '친일'을 직접 친일을 한 당사자들과 그 후손들이 '망각' 했지만, 이것을 바로잡아야 할 나라도 '망각' 했음을, 그것도 '의도적으로 망각' 했음을 알 수 있다.

 

이게 이 책이 지닌 의미다. 친일파들의 후손들에게 무슨 연좌제를 씌워 책임을 묻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잘못된 출발은 이미 어쩔 수 없지만, 최소한 그것을 기억하고 성찰할 수 있어야 함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이 전제가 되어야 '용서'가 나오고, '화해'가 된다. 바람직한 사회가 되는 것이다. 처음이 시작도 안 되고 있는데... 이 <친일과 망각>이라는 방송을 통해서, 또 이런 책을 통해서 그 처음이 시작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아직 '망각' 속에 완전히 빠지지 않았음을... 그래서 '친일'이라는 말이 보수층을 겨냥하는 화살로 아직도 작동하고 있음을, 이것이 화살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인정'이 우선되어야 함을... 최소한 '기억'해야 함을.

 

특히 후손들은 자신들이 개인적으로 접한 조상들의 모습과 사회적으로 판단되는 조상들의 모습이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사적인 자리에서 자상하고 좋은 사람이었던 조상이, 공적 사회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았을 수도 있음을 먼저 생각하고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만 그 다음이 시작될 수 있다.

 

여전히 친일 문제는 해결이 되지 않았다. 무슨무슨 위원회들 해체된 상태고, 아직도 정확히 '기억'으로 남지 않았으니...  

 

그러나 끝나지 않았다. '친일'은 실체가 있는 활동이었으니... 그 실체를 기록으로 남겨 기억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해야 한다. 그것, '망각'의 반대 편에 서 있어야 하는 존재들, 바로 '기억'의 편에 서 있어야 할 존재는 바로 우리들이다.

 

그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책은 바로 그 점을 상기시켜준다.

 

덧글

 

의문 1. 153쪽. 친일파 정교원에 대한 설명 중 ... 그는 1944년 3월 중일전쟁에 협력한 공로를 인정받아 일제로부터 1940년 4월 29일자로 욱일중수장을 받았다.  -> 년도가 앞뒤가 안 맞는다. 반민규명위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보고서]를 볼 수 없는 나로서는 앞뒤 년도 중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알 수 없다.

 

의문 2. 227쪽. 일제 강점기 시기, 누군가는 일제에 종속적으로 협력했고, 또 누군가는 일제에 저항했으며, 어떤 이들은 반일도 극일도 아닌 '회식지대'에서 살아가기도 했다. -> 이건 누가 봐도 오타겠지. 회식지대... 회색지대

 

아쉬운 점. 책에 부록으로 친일반민족행위자 진상규명위원회 (줄여서 반민규명위)에서 발표한 1006명의 명단을 실어줬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의 활동을 요약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분야별 명단만이라도.  

 

마음을 울리는, 너무도 슬픈 사실... 심산 김창숙 선생의 시... '아들에게' (189쪽) 독립운동으로 평생을 바친 분이 이승만에게 쫒겨나고... 그 아들 둘은 독립운동 과정에서 죽고, 셋째 아들이 자동차 운전으로 부친을 부양하는 모습. 그 아들에게 준 당당한 시. 그러나 우리는 지금 심산 김창숙을 더 존경하는가? 아니면 성균관대를 인수한 삼성 일가를 더 선망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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