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 BC급 전범, 해방되지 못한 영혼
우쓰미 아이코 지음, 이호경 옮김 / 동아시아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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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부끄러운 일이다. 조선인 전범 문제에 대해 이 정도로 무지했다는 사실이. 그리고 우리나라 정부도 일본 정부도 애써 눈감으려 했다는 사실이.

 

소녀상에 대한 문제로 일본과의 관계가 껄끄러운데, 그것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끌려가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는 우리 정부에 대해 도대체 이 나라에 국민이란 어떤 존재인가 하는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나라는 국민의 생명과 생활을 보장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게 바로 나라 아닌가. 그런데 그 나라 국민이 겪은 비극을 나 몰라라 하는 것이 어떻게 나라일 수가 있는가? 나라라는 것이 실체가 없다면 어떻게 국민들의 비극, 희생을 나 몰라라 하는 존재가 정치인일 수 있는가. 나라를 운영한다는 행정부일 수 있는가 이렇게 질문을 할 수가 있다.

 

이 책이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나온 지 10년이 되어간다. 그 동안 사실 조선인 전범으로 사형을 당한 사람이 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그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그들이 무슨 일을 해서 사형까지 당했는지 알지 못했다.

 

굳이 알고 싶지도 않았고, 학교 역사 교육에서 다뤄주지도 않았기 때문에 완전히 관심 밖이었다. 그러다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10년 전쯤에 방송에 다큐멘터리로도 나갔다고 하는데, 그 때 본 기억이 가물가물하고... 책으로 읽어서 더욱 암담한 현실을 느꼈다고나 할까.

 

책이 나온 지 10년이 지났는데, 강제동원된 위안부 문제도 제대로 해결을 하지 못했는데, 포로수용소 감시원으로 간 사람들 문제야... 그들이 나중에 전범이 된 문제를 제대로 해결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더욱이 잘못 알고 있었던 사실... 전범을 A,B.C로 분류하는데 난 그것이 전쟁에 가담해서 책임져야 할 비중의 정도를 등급으로 나눈 것이라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참 단순한 생각이었다. 그래서 조선인 B급 전범이 왜 사형을 당했지 하는 생각만 했었는데...

 

이 책에 그 구분이 명확히 나와 있다. 보자.

 

'A급 전범이 '특정 지역을 불문하고, 연합군에 속한 모든 정부가 내리는 공동 결정에 따라 처벌해야 할 중대 범죄인'임에 반해, B·C급 전범은 일본이 점령했던 '대동아공영권'(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이 아시아 대륙에 대한 침략을 합리화하기 위해 내건 정치 표어-옮긴이) 각지에서 열린 전쟁범죄재판 법정에서 형을 받은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곧 특정 지역에서 '통례의 전쟁범죄'를 저지르고, 각국의 군사 재판에 회부되어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을 말하며, 뉘른베르크 재판과 달리, 일본의 경우에는 B급과 C급을 구별하지 않았다.'  (8쪽)

 

한마디로 BC급 전범은 동남아시아에서 네덜란드나 호주, 영국 등에 의해 재판을 받은 사람을 의미한다고 보면 된다. 그렇게 전범이 된 사람이 148명이고 그 중에서 23명이 사형을 당했다고 한다. (8쪽)

 

또 그곳에는 일본군에게 포로가 된 네덜란드, 호주, 영국 군인들이 많았고, 이들을 감시하기 위해 일본 군부는 조선인들을 고용(? - 참 문제 많은 단어다. 일본 정부는 지원을 받아 이들에게 월급을 주고 고용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당시 조선인에게는 징용이나 징병을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것을 피하는 길, 그것도 2년이라는 기간을 약속했다고 하는데, 그것이 바로 포로 감시원이었던 것. 징병도 피하고 돈을 벌 수 있는 길... 과연 이것을 고용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들에게 어떤 선택지가 있었을까...)한 것이다.

 

이 책에서 강조하는 포로에 대한 관념 차이가 있다. 서양인들에게 포로란 명예로운 군인이라면, 일본인에게 포로란 수치스러운 존재라는 것. 일본인들은 포로가 되느니 차라리 자결하라고 했다고 하니, 그들이 포로를 보는 눈이 어땠을지, 포로를 어떻게 대했을 지는 알고도 남는다.

 

그렇다고 그들이 자기들 손에 직접 피를 묻혔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들은 장교와 하사관들이고, 포로들과 직접 마주치는 존재들은 바로 조선인 포로 감시원이었던 것.

 

군대라는 명령계통에서 명령불복종은 곧 죽음인데... 명령을 거부할 권한도 개선을 건의할 권리도 전혀 없었던 조선인 포로감시원들이 일본 패망후 포로들에 의해 전범으로 기소된다.

 

포로들 관점에서는 일본인 장교나 조선인 감시원이나 같은 존재였을 것이고, 그들의 학대는 딱히 장교의 책임이라고만 생각하지 않았을 수도 있으나, 조선인 감시원 입장에서는 명령을 거부할 수도 없었고, 자신들이 포로들을 딱히 악랄하게 대하지도 않았을 거라는 생각. 그리고 식민지인으로서 어쩔 수 없었다는 생각. 이 차이가 꽤나 있었을 거란 생각을 한다.

 

그리고 이런 차이에 대해서 이 책도 조심스레 제기하고 있다. 이런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포로 감시원이 된 것을 잘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모두 죽일 놈이라고까지도 할 것은 없다. 그들 역시 살기 위해 선택한 길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발적으로 유대인 학살에 가담한 아이히만에 비유할 수도 있겠지만, 아이히만과는 좀 다르다. 아이히만은 자발적으로 학살에 가담했다면, 이들은 생존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가담했다는 차이가 있다. (모두가 그렇다고 단정할 수만은 없지만 대다수는 그랬을 것이다. 그렇지 ㅇ낳았다면 감시원으로 모집된 3,000명 중에 129명만이 전범이 될 이유가 없다. 그 129명도 오랜 시간 포로들과 생활해서 얼굴과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 대부분이다. 이들 포로를 특별히 적대시 하거나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9쪽 참조)

 

물론 그 차이가 책임을 면할 수는 없겠지만, 그것이 목숨을 빼앗을 정도의 책임인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보다 더한 위치에 있던, 자발적으로 전쟁에 참여했던 일본의 고위급 전범들이 살아남아 전쟁 뒤 일본의 고위 정치인이 된 현실과 비교해보면 정작 책임져야 할 존재들 - 특히 일본의 히로히토 천황과 같은 - 은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고, 힘없고 돌봐줄 나라가 없는 존재들이 더 많이 당했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그것만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이들은 일본에서도 우리나라에서도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지금도 제대로 해결이 되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선 이들을 희생자로 규정했다고 하는데...그렇다고 해서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졌다고는 볼 수 없고, 이들의 영혼이 해방되기 위해서는 책임을 명확히 가리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이런 책이 소중하다. 역사를 기억하게 해주니까. 역사를 기억해서 그런 비극이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하니까. 다만, 이 책이 1982년에 일본에서 처음 나왔다는데... 그때까지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전쟁에 대한 책임과 사죄, 용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일본은 다시 군국주의로 가기 시작했고, 우리는 그에 대해서 명확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닌지, 읽으면서 분노하고 한탄하고 씁쓰레한 마음을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도 읽어야만 하는 책이다. 이런 비극을 잊지 않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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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02 09: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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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02 13: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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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물에만 살지 않는다


물고기는 물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는데

나무에 올라서는 물고기를 구할 수 없다는데

깊은 산 속 절에는 물고기가 산다

쇠가 되어

나무가 되어

바람과 함께

잠든 이 정신을 깨운다

순수의 시대로

사람들을 되돌아가게 한다


태고적을 잊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들 집에 물고기를 매달아 놓는다

문 앞에 창문 앞에

가끔 태고적 순수함을 잃었을 때

문을 열면 들어오는 바람에 물고기는

온몸을 맡겨 헤엄치면서

자연을 벗어나면 안 된다고

우리를 물가가 아닌

산 속으로 데려간다


집 안에서

자연 속에 퍼지는

풍경 소리를 듣고

정신을 깨우는 목어 소리를 듣는다


이제 물고기는

물에만 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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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이 아련해져 왔다. 제대로 읽지 않고 읽다가 포기한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처럼 무언가가 과거로 나를 데려갔다.

 

  그 무언가는 바로 정지원의 시 몇 편이다. 시 몇 편이 나에게 이제는 잊혀졌다고 생각한 과거를 일깨워줬다.

 

  잊혀진 것이 아니라 잠시 묻혀 있었을 뿐이라고, 그 과거는 내 기억 속에서 내 맘 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고.

 

  또 우리 현실에서도 역시 사라지지 않았다고, 다만 드러나고 있지 않을 뿐이지, 그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 아직도 많이 있다고.

 

국민학교 졸업 당시, 지금은 초등학교라고 하지만 대도시가 아닌 곳에 살던 우리들은 같은 반에도 여러 나이의 아이들이 있었다.

 

기껏해야 생일이 빠른 아이가 있는 한 살 차이가 나는 학급이 아니라 두세 살도 더 나이 차가 나는 아이들이 있는 학급이었다.

 

어떤 연유로든 부모가 출생신고를 늦게 했던지, 아니면 출생 신고를 했음에도 학교를 늦게 보냈다든지 해서 나보다 두세 살이 많은 아이들과 같은 학급에서 지냈다.

 

형이라고 하지도 않고 그냥 친구로. 이런 친구들이 학교를 졸업할 즈음 중학교에 진학하지 않았다. 아니, 진학할 수가 없었다.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 아이들은 최종학력이 국민학교로 끝났다.

 

공장으로, 공장으로... 그리고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내가 다니는 중학교 또한 동네에는 없어서 걸어서 한 시간이나 가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렇게 서로 다른 길을 가기 시작했다.

 

그때 들어간 중학교에 산업체 학급이라는 것이 있었다. 산업체 학급. 요즘 말로 하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공장에 들어간 아이들이 중학교 졸업장을 따기 위해 일을 마치고 야간에 공부하러 오는 학급이었다.

 

이런 산업체 학급에 대해서 잘 표현된 소설이 바로 신경숙의 "외딴방"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 산업체 학급의 현실에 대해 잘 알 수 있다.

 

우리들이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그때서야 그 아이들, 나보다 나이도 훨씬 많은, 우리 학교는 여학생들-여자 노동자들-만 받았으니, 여학생들이 우리가 떠난 교실에 앉아 공부를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한 번도 책상이 더러워졌다거나 물건이 흩어져 있다는 생각을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냥 그대로였다. 분명 우리 교실을 썼고, 내 책상을 썼을텐데, 다른 사람이 썼다는 흔적이 없었다.

 

그만큼 아껴서 썼으리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졸업식 날... 우리는 중학교를 떠난다는 것이 마냥 기뻤다. 기뻐서 생글거리면서 졸업식이 빨리 끝나기를 기다리는 우리와는 달리, 그 날만은 주간에 학교에 와서 졸업식을 우리와 함께 하는 산업체 학급 학생들은 울음을 터뜨렸다.

 

어린 마음에 이 좋은 날 왜 울어 했지만, 그것이 이들에게는 학교 교육의 마지막이었음을 생각하지 못했다. 더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 없는, 그런 처절함. 그것을 이해하기엔 중학생이라는 나이는 너무 어렸다.

 

아니, 어쩌면 외면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고등학교에 갈 수 있었으니까. 그들이 더 이상 배울 수 없는 것에 내 책임은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과연 내 책임이 없었을까? 그들의 책임, 그들 부모의 책임일까? 아니다. 그런 바로 우리의 책임, 우리 사회의 책임이었던 것이다.

 

산업체 학급을 담당하고 있던 선생님이 우리 학급에 수업을 들어오시기도 했음에도 그런 말을 들은 기억이 없다. 선생님들이 했어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을지도 모른다.

 

학교 동창들 중에 고등학교에 진학 못한 학생이 있음을 알고 있었고, 그를 안타까워 하고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도 종종 그 아이의 소식을 듣기도 했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산업체 학생들에 대한 생각은 거기서 더 나아가지 않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 없는 사람들이 있음을, 그것은 사회의 책임임을 나이 들어서 통감하고 있는데...

 

이런 과거로 정지원의 시가 나를 다시 이끌었다. 이런 일이 다시 생기지 말아야 하는데, 이제는 대학교가 그런 역할을 하고 있지 않은가.

 

터무니 없이 비싼 등록금 때문에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배우고 싶어도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허덕거리고 있는가. 그것을 개인 탓으로 돌리고 있는 우리 사회, 내 어린 시절, 나 몰라라 했던 나를 보는 듯해 더 부끄럽다.

 

그러면 안 되는데... 이것을 책임져 줄 사회, 그것이 바로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 아니던가. 그런 사회를 우리가 이루어야 하지 않는가.

 

많은 시들 중에 이 시 '덕순이'라는 시가 특히 나를 과거로 데려갔다. 시를 보자.

 

덕순이

 

고등학교 원서를 쓰던 가을

덕순이가 쓰게 웃었습니다

고등학교 갈 돈이 없어서

공장에 간다는 말에 기가 막혀서

어둠이 덮치도록 빈 교실에 앉아 있었습니다

 

산업체 고등학생이 되어 덕순이는

공장을 마치면 우리 반 복도에서

단어장을 들고 자율학습이 끝나길 기다렸습니다

다가가 말 붙일 수도 없게 입 꽉 다문 채

꼿꼿이 자존심을 지키며 서 있었습니다

 

내가 줄 수 있는 건 책상에 올려놓는

보름달빵 정도였지만

덕순이는 용케도 내 자리를 찾아서 앉곤 했습니다

 

책상 서랍 속에 쪽지가 들어 있기라도 한 날이면

참고서 잘 썼다는 한 줄의 글에

나는 기나긴 답장을 써서 넣어두곤 했습니다

 

누구는 너무도 당연하게 누리는 일이

또다른 누구에게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결코 놓을 수 없는 목숨줄 같다는 걸

 

파르르 떨리던 촉촉한 속눈썹과

다부진 입 매무새를 꼭 닮은

덕순이 딸도 아마 제 엄마처럼 야무질 거라고

선뜻한 가을이면 날이 선 희망에 대해 생각합니다

 

정지원, 내 꿈의 방향을 묻는다, 문학동네, 2008년 개정판 2쇄. 60-61쪽.

 

이 따스함이 내 과거를, 나는 중학교 때 산업체 학급을 경험했지만 시의 화자는 고등학교에서 경험한 차이가 있을지라도, 부끄러움과 함께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누구는 당연하게 누리는 일이 / 또다른 누구에게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 결코 놓을 수 없는 목숨줄 같다'는 말에서 주위를 살펴보게 한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가 아니라 '낮은 곳으로 임하소서'라는 말을 생각나게 한다. 시인의 이 따스한 눈길이 아마도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낳게 했나 보다.

 

안치환이 곡을 붙여 부른 노래로 더 유명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가 이 시인의 시라는 사실을 시인이 쓴 다른 그림에 관한 책에 실려 있는 시인에 대하여에서 알게 되었지만, 그 시가 이 시집에 실려 있어서 더 반가웠다.

 

시인은 그만큼 따스한 시선으로 사회를 본다. 결코 군림하지 않고 낮은 곳에 함께 서서. 우산을 펴는 사람이 아니라 비를 함께 맞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주는 시들이 시집 곳곳에서 발견된다. 좋다. 그리고 따스하고 편안하다.

 

간만에 마음이 푸근해지는 그런 시집 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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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 전쟁을 그리다 - 화가들이 기록한 6.25
정준모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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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그림을 보면 역사화가 참 많다. 화려한 색채와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는 역사화. 그 중에서 신고전주의파라고 하는 다비드의 나폴레옹에 관한 그림들이 잘 알려져 있는데...

 

그들은 전쟁의 역사를 그림으로도 잘 표현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전쟁에 대한 그림이 별로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전쟁이 있었고, 자랑스러워할 역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인 사건이나 전쟁을 그린 그림은 별로 없다. (내가 잘 몰라서 그러는지는 몰라도 배운 적도 본 적도 별로 없다)

 

아마도 전문적인 화가들은 도화서에 소속되어 시키는 그림만 그리는데, 우리나라 왕들은 전쟁에 대한 그림을 선호하지는 않았나 보다.

 

그런 점이 좀 아쉬웠는데, 현대에 들어 가장 비극적인 전쟁을 그림으로 남긴 화가들이 없을 리가 없다는 생각을 했고, 그림으로 그 비극을 기억하려는 노력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책을 찾다가 이 책을 발견했다.

 

"한국미술, 전쟁을 그리다"

 

그렇지. 전쟁 때 종군작가단이 있었는데, 종군작가단에 미술가들이 포함되지 말라는 법이 없지 않은가. 역시 이 책에 의하면 종군미술가들이 꽤 있었다. 종군 사진가도 있었고. 다만, 사진은 인화를 일본을 통해 했기 때문에 원본 필름을 사진작가가 지니고 있는 경우가 별로 없어서 우리나라에서 전시회를 하기는 힘들었겠단 생각을 하고.

 

자기의 보조카메라로 촬영한 사진들로 전시회를 연 작가는 있었다고 이 책에 나와 있지만 대부분의 사진작가들은 이런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당시의 물질적, 기술적 한계였으리라.

 

그 반면에 미술은 그렇지 않다. 화가들이 그리면 되는데... 물론 그림 도구들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고, 그래서 유럽처럼 대작이 나오기는 힘들었겠지만, 종군미술가들은 자신들이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그림으로 그려 남겼다.

 

그림으로 역사를 기억하게 하는 일에 미술가들이 참여한 것이다. 그럼에도 얼마 자료가 남아 있지 않은 까닭을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전쟁기간 동안 종군화가로, 군 연예대로, 정훈업무로, 선무공작대로 전쟁을 기록하는 시대의 눈으로 당시를 살아야 했다. 그렇게 제작된 전쟁화 또는 전투화는 약 300여 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우리의 빈곤과 두려움과 무지로 인해 이들 작품은 산실되고 말았다. 아니, 그간 우리가 관심이 없었던 탓에 지금 찾지 못하면서 당시의 그들을 방관자라고 부르는지도 모를 일이다.' (354쪽)

 

시대적 상황 때문에 작품이 많이 사라져 전쟁의 비극에 관한 그림이 별로 남아 있지 않지만, 작가들도 나름대로 이를 역사에 남기기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에는 많은 그림은 아니지만 전쟁 당시 (1950-1953년)에 그려진 그림들이 제법 나와 있다. 그 중에는 도판으로만 확인 가능한 작품도 있다고 하지만 미술가들이 노력한 것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왜 전쟁 그림에 대해 알아야 할까? 이 책에도 나오지만 그림은 직접적으로 충격을 줄 수 있다. 전쟁에 대해서 이렇게 저렇게 말하는 것보다 그림 한 편을 보여주는 편이 빠를 수 있다. 이런 역할을 하기 때문에 전쟁 중에 만화가들이 소위 '삐라'라고 하는 선전물을 만들어 배포했던 것이기도 하다.

 

전쟁을 담은 그림을 보면서 이런 비극이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아야 된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전쟁 영웅에 대한 환상을 품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은 극소수다. 전쟁을 겪는 보통사람들에게는 전쟁만큼 힘든 상황도 없다. 피난민들, 부상당한 사람들, 폐허가 된 도시를 그린 그림들을 보라.

 

이런 비극을 누가 되풀이 하고 싶겠는가. 그런 이유로도 우리가 겪었던 전쟁을 그림으로 표현한 작품들 보존하고 알려야 한다. 지금까지는 무관심했다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 찾으려는 노력, 기억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 책을 읽으며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는 장면이 있었는데... 화가들 중에서도 줄이 좋거나, 능력이 있는 사람은 그 전쟁 중에 외국으로 나갈 생각을 했고, 또 나가기도 했다는 사실... 전쟁 중에도 예술은 지속되어야 하나, 위험한 상황을 벗어나려고만 했던 예술가들도 있었다는 사실이 씁쓰레했고, 부산 임시청사에 걸려 있었다는 대형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는 실소를 금할 수가 없었다.

 

그 그림은 '6.25전쟁 기념행사를 위해 1952년 6월 정부의 공보처장 이헌구는 부산시 공관 벽을 장식할 대형작품의 제작을 현역 화가들에게 의뢰했다. 이들은 프랑스 낭만주의 화가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차용한 작품을 선보였는데, 중앙의 '여신'이 장총과 태극기를 들고 전진하며 '민중'은 한국 사람들로 표현되어 있는 모습이었다.' (316쪽)고 한다.

 

이런 표절도 버젓이 일어나다니. 그것도 우리나라 현역 화가들이 집단적으로 그린 그림에서. 아무리 전쟁 때라고 해도 그렇지 자신들의 재능과 상상력과 현실을 살펴서 종합적으로 우리나라 그림을 그려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이런 부끄러운 일도 일어나곤 했다고 하니...

 

그래도 전쟁을 기억하려는 화가들의 작품은 우리가 보존할 필요가 있다. 그림을 통해서 우리가 배울 점, 기억할 점이 많을 테니까. 그 점에 대해서 전쟁 기간을 통틀어 화가들, 조각가들, 사진가들이 어떻게 대응했고, 어떤 작품을 남겼으며, 그들이 누구인가에 대해서 종합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우리 미술사를 위해서도, 우리 역사를 위해서도 더 많은 사실이 밝혀지고 작품들이 발굴되어 이 책이 보완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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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지 그림이 예쁘다. 예쁘다고 하기 보단 마음이 밝아진다고 해야 더 어울릴 듯하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어놀고 있는 모습. 이제는 그림에서나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아이들 노는 모습을 본 적이 언제인가 싶다.

 

  놀 공간이래야 겨우 놀이터라고 변화할 수 없는 고정된 공간밖에 없는데, 그나마도 놀 시간이 없다.

 

  오죽하면 아이들이 친구 만나기 위해 학원에 간다고 하겠는가. 어린아이 시절부터 정신없이 공부란 놈에게 매여 지내는 것이 요즘 아이들의 현실이 아닌가 한다.

 

그러니 이런 아이들이 이 책의 표지 그림처럼 이렇게 해맑게 뛰어노는 모습을 보기는 힘들다. 어느 시인은 어린이를 볼 수 없으면 천사를 볼 수 없는 것과 같다고 했는데, 우리 어른들은 어린이에게 이러한 천사가 될 기회를 박탈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표지그림에서 알 수 있듯이 이번 호에는 육아에 대해서 많은 글들이 있다. 교육을, 배움을 생각하는 책이 바로 "민들레"니 공교육이나 대안교육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아이들이 어떻게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삶을 살지를 고민하는 글들을 싣는 것도 더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호 기획기사는 "함께 자라는 아이들"이다. 육아에 대한 글인데, 부모 혼자, 특히 엄마 혼자 키우는 육아를 독박 육아라고 한다.

 

부담이 많은 육아인 것이고, 그런 부담은 부모를 지치게도 한다. 부모가 지치지 않고 아이가 행복해지는 육아, 정답이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그 방법을 찾아 노력하는 사람들의 글이 이번 호에 실려 있다.

 

아직 아이가 어린 사람들, 이번 호를 읽으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육아를 내팽개칠 수는 없고, 그렇다고 제도권에만 맡길 수도 없으며, 혼자만의 육아를 할 수도 없으니, 어떻게 아이를 위하고 또 부모를 위하는 육아를 하고 있는지 참조할 수 있다.

 

이 중에 마음에 와닿았던 육아가 바로 '부엌 육아'다. 아이에게 손끝 하나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든지 - 넌 공부만 잘하면 돼 -, 아이가 다칠까봐 두려워 부엌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래서 아이들이 청소년이 되어서도 요리 하나 할 줄 모르는 아이가 되기 쉬운데 - 학교에서 가정이라는 과목이 있음에도 아이들은 이 시간에 주로 이론을 배우지 요리를 하거나 다른 일을 실습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실습할 장소도 시간도 부족한 것이 제도권 교육의 현실이다 - 아주 어려서부터 아이와 함께 부엌에서 일을 하는 '부엌 육아'에 대한 글을 읽고 생각을 다시 하게 됐다.

 

그래, 아이들도 부모와 함께 요리를 해야 한다. 그래야 가족이다. 식구다.

 

이런 식으로 육아에 대해서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주고 있고, 요즘 상황과 관련하여 '시민 교육, 정치 교육'에 관한 글도 있어서 교육 전반에 관한 생각을 할 수 있다. 

 

책 뒷부분에 민들레 읽기 모임도 소개하고 있으니, 관심 있는 사람들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날 수도 있는 그런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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