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아련해져 왔다. 제대로 읽지 않고 읽다가 포기한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처럼 무언가가 과거로 나를 데려갔다.

 

  그 무언가는 바로 정지원의 시 몇 편이다. 시 몇 편이 나에게 이제는 잊혀졌다고 생각한 과거를 일깨워줬다.

 

  잊혀진 것이 아니라 잠시 묻혀 있었을 뿐이라고, 그 과거는 내 기억 속에서 내 맘 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고.

 

  또 우리 현실에서도 역시 사라지지 않았다고, 다만 드러나고 있지 않을 뿐이지, 그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 아직도 많이 있다고.

 

국민학교 졸업 당시, 지금은 초등학교라고 하지만 대도시가 아닌 곳에 살던 우리들은 같은 반에도 여러 나이의 아이들이 있었다.

 

기껏해야 생일이 빠른 아이가 있는 한 살 차이가 나는 학급이 아니라 두세 살도 더 나이 차가 나는 아이들이 있는 학급이었다.

 

어떤 연유로든 부모가 출생신고를 늦게 했던지, 아니면 출생 신고를 했음에도 학교를 늦게 보냈다든지 해서 나보다 두세 살이 많은 아이들과 같은 학급에서 지냈다.

 

형이라고 하지도 않고 그냥 친구로. 이런 친구들이 학교를 졸업할 즈음 중학교에 진학하지 않았다. 아니, 진학할 수가 없었다.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 아이들은 최종학력이 국민학교로 끝났다.

 

공장으로, 공장으로... 그리고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내가 다니는 중학교 또한 동네에는 없어서 걸어서 한 시간이나 가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렇게 서로 다른 길을 가기 시작했다.

 

그때 들어간 중학교에 산업체 학급이라는 것이 있었다. 산업체 학급. 요즘 말로 하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공장에 들어간 아이들이 중학교 졸업장을 따기 위해 일을 마치고 야간에 공부하러 오는 학급이었다.

 

이런 산업체 학급에 대해서 잘 표현된 소설이 바로 신경숙의 "외딴방"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 산업체 학급의 현실에 대해 잘 알 수 있다.

 

우리들이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그때서야 그 아이들, 나보다 나이도 훨씬 많은, 우리 학교는 여학생들-여자 노동자들-만 받았으니, 여학생들이 우리가 떠난 교실에 앉아 공부를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한 번도 책상이 더러워졌다거나 물건이 흩어져 있다는 생각을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냥 그대로였다. 분명 우리 교실을 썼고, 내 책상을 썼을텐데, 다른 사람이 썼다는 흔적이 없었다.

 

그만큼 아껴서 썼으리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졸업식 날... 우리는 중학교를 떠난다는 것이 마냥 기뻤다. 기뻐서 생글거리면서 졸업식이 빨리 끝나기를 기다리는 우리와는 달리, 그 날만은 주간에 학교에 와서 졸업식을 우리와 함께 하는 산업체 학급 학생들은 울음을 터뜨렸다.

 

어린 마음에 이 좋은 날 왜 울어 했지만, 그것이 이들에게는 학교 교육의 마지막이었음을 생각하지 못했다. 더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 없는, 그런 처절함. 그것을 이해하기엔 중학생이라는 나이는 너무 어렸다.

 

아니, 어쩌면 외면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고등학교에 갈 수 있었으니까. 그들이 더 이상 배울 수 없는 것에 내 책임은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과연 내 책임이 없었을까? 그들의 책임, 그들 부모의 책임일까? 아니다. 그런 바로 우리의 책임, 우리 사회의 책임이었던 것이다.

 

산업체 학급을 담당하고 있던 선생님이 우리 학급에 수업을 들어오시기도 했음에도 그런 말을 들은 기억이 없다. 선생님들이 했어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을지도 모른다.

 

학교 동창들 중에 고등학교에 진학 못한 학생이 있음을 알고 있었고, 그를 안타까워 하고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도 종종 그 아이의 소식을 듣기도 했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산업체 학생들에 대한 생각은 거기서 더 나아가지 않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 없는 사람들이 있음을, 그것은 사회의 책임임을 나이 들어서 통감하고 있는데...

 

이런 과거로 정지원의 시가 나를 다시 이끌었다. 이런 일이 다시 생기지 말아야 하는데, 이제는 대학교가 그런 역할을 하고 있지 않은가.

 

터무니 없이 비싼 등록금 때문에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배우고 싶어도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허덕거리고 있는가. 그것을 개인 탓으로 돌리고 있는 우리 사회, 내 어린 시절, 나 몰라라 했던 나를 보는 듯해 더 부끄럽다.

 

그러면 안 되는데... 이것을 책임져 줄 사회, 그것이 바로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 아니던가. 그런 사회를 우리가 이루어야 하지 않는가.

 

많은 시들 중에 이 시 '덕순이'라는 시가 특히 나를 과거로 데려갔다. 시를 보자.

 

덕순이

 

고등학교 원서를 쓰던 가을

덕순이가 쓰게 웃었습니다

고등학교 갈 돈이 없어서

공장에 간다는 말에 기가 막혀서

어둠이 덮치도록 빈 교실에 앉아 있었습니다

 

산업체 고등학생이 되어 덕순이는

공장을 마치면 우리 반 복도에서

단어장을 들고 자율학습이 끝나길 기다렸습니다

다가가 말 붙일 수도 없게 입 꽉 다문 채

꼿꼿이 자존심을 지키며 서 있었습니다

 

내가 줄 수 있는 건 책상에 올려놓는

보름달빵 정도였지만

덕순이는 용케도 내 자리를 찾아서 앉곤 했습니다

 

책상 서랍 속에 쪽지가 들어 있기라도 한 날이면

참고서 잘 썼다는 한 줄의 글에

나는 기나긴 답장을 써서 넣어두곤 했습니다

 

누구는 너무도 당연하게 누리는 일이

또다른 누구에게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결코 놓을 수 없는 목숨줄 같다는 걸

 

파르르 떨리던 촉촉한 속눈썹과

다부진 입 매무새를 꼭 닮은

덕순이 딸도 아마 제 엄마처럼 야무질 거라고

선뜻한 가을이면 날이 선 희망에 대해 생각합니다

 

정지원, 내 꿈의 방향을 묻는다, 문학동네, 2008년 개정판 2쇄. 60-61쪽.

 

이 따스함이 내 과거를, 나는 중학교 때 산업체 학급을 경험했지만 시의 화자는 고등학교에서 경험한 차이가 있을지라도, 부끄러움과 함께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누구는 당연하게 누리는 일이 / 또다른 누구에게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 결코 놓을 수 없는 목숨줄 같다'는 말에서 주위를 살펴보게 한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가 아니라 '낮은 곳으로 임하소서'라는 말을 생각나게 한다. 시인의 이 따스한 눈길이 아마도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낳게 했나 보다.

 

안치환이 곡을 붙여 부른 노래로 더 유명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가 이 시인의 시라는 사실을 시인이 쓴 다른 그림에 관한 책에 실려 있는 시인에 대하여에서 알게 되었지만, 그 시가 이 시집에 실려 있어서 더 반가웠다.

 

시인은 그만큼 따스한 시선으로 사회를 본다. 결코 군림하지 않고 낮은 곳에 함께 서서. 우산을 펴는 사람이 아니라 비를 함께 맞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주는 시들이 시집 곳곳에서 발견된다. 좋다. 그리고 따스하고 편안하다.

 

간만에 마음이 푸근해지는 그런 시집 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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