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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 전쟁을 그리다 - 화가들이 기록한 6.25
정준모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4년 6월
평점 :
유럽의 그림을 보면 역사화가 참 많다. 화려한 색채와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는 역사화. 그 중에서 신고전주의파라고 하는 다비드의 나폴레옹에 관한 그림들이 잘 알려져 있는데...
그들은 전쟁의 역사를 그림으로도 잘 표현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전쟁에 대한 그림이 별로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전쟁이 있었고, 자랑스러워할 역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인 사건이나 전쟁을 그린 그림은 별로 없다. (내가 잘 몰라서 그러는지는 몰라도 배운 적도 본 적도 별로 없다)
아마도 전문적인 화가들은 도화서에 소속되어 시키는 그림만 그리는데, 우리나라 왕들은 전쟁에 대한 그림을 선호하지는 않았나 보다.
그런 점이 좀 아쉬웠는데, 현대에 들어 가장 비극적인 전쟁을 그림으로 남긴 화가들이 없을 리가 없다는 생각을 했고, 그림으로 그 비극을 기억하려는 노력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책을 찾다가 이 책을 발견했다.
"한국미술, 전쟁을 그리다"
그렇지. 전쟁 때 종군작가단이 있었는데, 종군작가단에 미술가들이 포함되지 말라는 법이 없지 않은가. 역시 이 책에 의하면 종군미술가들이 꽤 있었다. 종군 사진가도 있었고. 다만, 사진은 인화를 일본을 통해 했기 때문에 원본 필름을 사진작가가 지니고 있는 경우가 별로 없어서 우리나라에서 전시회를 하기는 힘들었겠단 생각을 하고.
자기의 보조카메라로 촬영한 사진들로 전시회를 연 작가는 있었다고 이 책에 나와 있지만 대부분의 사진작가들은 이런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당시의 물질적, 기술적 한계였으리라.
그 반면에 미술은 그렇지 않다. 화가들이 그리면 되는데... 물론 그림 도구들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고, 그래서 유럽처럼 대작이 나오기는 힘들었겠지만, 종군미술가들은 자신들이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그림으로 그려 남겼다.
그림으로 역사를 기억하게 하는 일에 미술가들이 참여한 것이다. 그럼에도 얼마 자료가 남아 있지 않은 까닭을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전쟁기간 동안 종군화가로, 군 연예대로, 정훈업무로, 선무공작대로 전쟁을 기록하는 시대의 눈으로 당시를 살아야 했다. 그렇게 제작된 전쟁화 또는 전투화는 약 300여 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우리의 빈곤과 두려움과 무지로 인해 이들 작품은 산실되고 말았다. 아니, 그간 우리가 관심이 없었던 탓에 지금 찾지 못하면서 당시의 그들을 방관자라고 부르는지도 모를 일이다.' (354쪽)
시대적 상황 때문에 작품이 많이 사라져 전쟁의 비극에 관한 그림이 별로 남아 있지 않지만, 작가들도 나름대로 이를 역사에 남기기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에는 많은 그림은 아니지만 전쟁 당시 (1950-1953년)에 그려진 그림들이 제법 나와 있다. 그 중에는 도판으로만 확인 가능한 작품도 있다고 하지만 미술가들이 노력한 것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왜 전쟁 그림에 대해 알아야 할까? 이 책에도 나오지만 그림은 직접적으로 충격을 줄 수 있다. 전쟁에 대해서 이렇게 저렇게 말하는 것보다 그림 한 편을 보여주는 편이 빠를 수 있다. 이런 역할을 하기 때문에 전쟁 중에 만화가들이 소위 '삐라'라고 하는 선전물을 만들어 배포했던 것이기도 하다.
전쟁을 담은 그림을 보면서 이런 비극이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아야 된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전쟁 영웅에 대한 환상을 품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은 극소수다. 전쟁을 겪는 보통사람들에게는 전쟁만큼 힘든 상황도 없다. 피난민들, 부상당한 사람들, 폐허가 된 도시를 그린 그림들을 보라.
이런 비극을 누가 되풀이 하고 싶겠는가. 그런 이유로도 우리가 겪었던 전쟁을 그림으로 표현한 작품들 보존하고 알려야 한다. 지금까지는 무관심했다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 찾으려는 노력, 기억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 책을 읽으며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는 장면이 있었는데... 화가들 중에서도 줄이 좋거나, 능력이 있는 사람은 그 전쟁 중에 외국으로 나갈 생각을 했고, 또 나가기도 했다는 사실... 전쟁 중에도 예술은 지속되어야 하나, 위험한 상황을 벗어나려고만 했던 예술가들도 있었다는 사실이 씁쓰레했고, 부산 임시청사에 걸려 있었다는 대형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는 실소를 금할 수가 없었다.
그 그림은 '6.25전쟁 기념행사를 위해 1952년 6월 정부의 공보처장 이헌구는 부산시 공관 벽을 장식할 대형작품의 제작을 현역 화가들에게 의뢰했다. 이들은 프랑스 낭만주의 화가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차용한 작품을 선보였는데, 중앙의 '여신'이 장총과 태극기를 들고 전진하며 '민중'은 한국 사람들로 표현되어 있는 모습이었다.' (316쪽)고 한다.
이런 표절도 버젓이 일어나다니. 그것도 우리나라 현역 화가들이 집단적으로 그린 그림에서. 아무리 전쟁 때라고 해도 그렇지 자신들의 재능과 상상력과 현실을 살펴서 종합적으로 우리나라 그림을 그려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이런 부끄러운 일도 일어나곤 했다고 하니...
그래도 전쟁을 기억하려는 화가들의 작품은 우리가 보존할 필요가 있다. 그림을 통해서 우리가 배울 점, 기억할 점이 많을 테니까. 그 점에 대해서 전쟁 기간을 통틀어 화가들, 조각가들, 사진가들이 어떻게 대응했고, 어떤 작품을 남겼으며, 그들이 누구인가에 대해서 종합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우리 미술사를 위해서도, 우리 역사를 위해서도 더 많은 사실이 밝혀지고 작품들이 발굴되어 이 책이 보완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