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우리 문화 - 일상 속 우리 역사와 문화 제대로 읽기, 2016년 올해의 청소년도서(봄분기) 선정
김진섭 지음 / 지성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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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통된 기억. 참으로 소중하다. 이런 기억들이 모여 한 사회를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하나되게 한다. 그러므로 공통된 기억이라고 하는 문화는 소중한 존재다.

 

급속도로 변해가는 현대사회에서 옛것에 대해서 잘 생각하지 않고,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옛것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앞으로만 나아갈 수는 없다.

 

이런 옛것에 대해 아는 일, 그것을 좀더 쉽고 가깝게 알 수 있게 하는 일을 이야기가 맡는다. 이야기 싫어하는 사람은 없고,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이야기는 우리와 함께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우리 문화와 관련된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이야기를 통해 우리 문화에 대해 알아가게 하고 있다.

 

동물 속 우리 문화 이야기에서 동물들에 대한 생각, 그것이 지닌 의미를 들려주기도 하고, 음식과 관련된 우리 문화 이야기, 인물과 관련된 우리 문화 이야기, 소통 속 - 일상 속 우리 문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대부분 여러 책에서 읽었던 이야기들이지만, 그래서 새로운 이야기는 없다고 할 수 있지만 그런 이야기들을 우리 문화와 관련지어 한 책 속에 담아 놓아서 읽으면서 우리 문화를 좀더 넓고 깊게 알아갈 수가 있다.

 

동물들에 대한 재미 있는 이야기를 통해 우리 곁에 친근하게 있었던 동물들을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있으며, 유명한 인물, 특히 강감찬과 같은 경우, 장군으로만 기억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강감찬은 무인이 아니라 문인이었음을 알려주고 있는 경우, 그리고 왜 담배를 어른들 앞에서 피우면 안 되는지 등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반만년 역사를 자랑하는 민족이라고 우리는 말하지만, 반만년이란 세월 동안 우리가 쌓아왔던 문화들에 대해서는 그만큼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또 잘 모르기도 하고. 그래서 이런 책을 통하여 우리 문화에 대해서 알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냥 사실들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우리 문화를 알게 되는 것. 먼저 읽은 사람이 재미있게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로 전달할 수도 있어서 좋다.  

 

이렇게 곁에 두고 시간 날 때마다 찾아 읽으면 우리 문화에 대해서 좀더 넓고 깊게 알 수 있게 만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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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의 부드러운 손'

 

  그렇다. 시간은 결코 거칠게 다가오지 않는다.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스윽, 시간은 나를 쓰다듬고 지나갈 뿐이다.

 

  시간이 스윽, 나를 부드럽게 만지고 지나가는 동안 내 몸은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시간에게 하나하나 무언가를 맡기고 만다.

 

  예전엔 내 것이었던 것들이 시간의 부드러운 손으로 넘어가 이제는 내 것이 아니게 된다. 그렇게 시간은 부드럽게 나를 다른 존재가 되게 이끌고 간다.

 

  이 시집에는 이러한 늙음에 대한 시들이 많다. 시인이 정년을 하게 된 나이라서 그런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몸에서 하나하나 기능을 잃어가는 것들과 또 전화번호부에서 하나하나 지워지는 번호들, 사람만이 아니라 예전 것을 잃어가는 사회, 자연의 모습들을 담은 시들이 시집 곳곳에서 나온다.

 

시간은 절대로 거칠게 나를 다루지 않는다. 그냥 부드럽게 나를 만진다. 나를 이끈다. 그런데 그 손길을 거부할 수 없다. 부드러움 속에 무서움이, 냉정함이 담겨 있음을 알면서도 그냥 그렇게 몸을 맡길 수밖에 없다.

 

이 시집을 읽으며 늙어감에 대해서, 거부할 수 없는 변함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하나 더, 과연 내가 추구하는 삶은 무엇이었나 하는 생각.

 

이제는 시간의 부드러운 손을 인식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는데, 내가 살아오면서 추구했던 것들이 가짜 아름다움은 아니었는지 생각해 보기도 한다. 마치 이 시처럼.

 

밤바다

 

집어등 눈부시게 바다를 밝히는 한밤중

어선들 주변으로 떼 지어 몰려드는

오징어와 갈치 들 앞 다투어

줄줄이 갑판으로 잡혀 올라온다

깊은 물속 어둠을 헤치고 다니던

물고기의 날카로운 눈도 아무 쓸모없이

빛의 꾐에 홀려서

목숨을 잃어버린다

죽음의 불빛들 찬란하게 반짝이는

수평선의 아름다운 야경

 

김광규, 시간의 부드러운 손, 문학과지성사. 2017년 초판 6쇄.  15쪽.

 

내가 앞으로만 앞으로만 달려온 삶을 이제는 '시간의 부드러운 손'을 통해 되돌아 볼 수 있게 되었을 때, 내가 헤쳐온 삶들이 어쩌면 집어등을 보고 몰려든 물고기들과 같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면, 아찔하다.

 

결국 '죽음의 불빛'을 '삶의 불빛'으로 착각하고 살아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아직은 더 시간의 부드러운 손길을 느낄 수 있다. 그럴 때 이제는 '죽음의 불빛'을 보고 달려들지 말아야 한다.

 

시간이라는 것이 몸을 약하게는 하지만 정신은 오히려 더 넓게 깊게도 하지 않던가. 힘이 넘쳤을 때 보지 못하던 것들을 보게도 하지 않던가.

 

최소한 죽음의 빛과 삶의 빛은 구분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게 시간의 부드러운 손을 느끼기 시작했을 때 제일 먼저 해야 할 일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시를 읽었다.

 

여전히 앞으로만 앞으로만 달리는 사람이 많다. 그 빛이 어떤 빛인지 구분하지 않고. 그러나 이제는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제대로 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시를 통해 이 점을 깨달을 수 있다는 것, 그것도 축복이다. 

그리고 하나 더, 죽음의 불빛을 향해 달리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도, 그들이 우리에게 그 빛이 삶의 빛이라고 우겨도 따라가지 않을 수 있도록 '날카로운 눈'을 지녀야 하겠다는 생각도 이 시집을 통해 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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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 없는 교실은 어디 있나요? - 가해자, 피해자, 방관자의 시선으로 살펴보는 학교 폭력의 진실, 그리고 치유의 다독임
김국태 외 지음 / 팜파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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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교사들이 자신들이 한 경험을 바탕으로 학교 폭력에 대하여 쓴 책. 가해자와 피해자, 방관자로 책이 구성되어 있는데...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가해자가 될 수 있음을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방관자는 아무런 책임이 없지 않고 오히려 더 많은 책임이 있을 수도 있음을 자신들의 교육 경험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학교 폭력이 통계상으로는 줄어들고 있다지만 오히려 더 심각해지고 빈도수도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이 책은 말해주고 있는데...
 
학교 폭력 가해자라고 해서 특별한 아이가 아니라는 것, 마찬가지로 피해자도 어떤 특성을 꼭 지니고 있지는 않다는 것.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청소년들에게 학교 폭력의 실상을 이야기해주고 있는 책인데... 문제는 과연 학교 폭력을 저지른 학생들이 이런 책을 읽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학교폭력대책위원회인가 뭔가에서 징계로 이런 책을 읽고 이야기하기 또는 써오기 등을 징계의 한 분야로 결정하면 읽을까, 도대체 이런 책을 대상자들이 읽을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또 징계로 이런 책을 읽으면 생각이 바뀌고 행동이 바뀔까? 오히려 콧방귀를 뀌지 않을까 하는 생각.
 
여기에 피해자도 마찬가지다. 방관자는 혹 읽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이런 학교 폭력에 관한 책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쓴다고 해도 자신이 목표로 했던 독자가 독자가 되지 않을 확률이 높다.
 
대체로 부모와 교사가 읽으면 읽었지. 그런데 이 책은 교사나 부모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철저하게 청소년을 대상으로 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방향을 바꿨으면 어땠을까? 3부로 나뉘어 있지만 각 부에 있는 첫번째 글은 하나로 연결이 된다.
 
가해자인 학생 편에서 서술한 글, 피해자 학생 편에서 서술한 글, 그리고 방관자 편에서 서술한 글. 이 글들이 각 부로 나뉘어 있는데, 차라리 이 글을 서문 격으로 하나로 묶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런 글의 형식으로 계속 썼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할까.
 
그냥 아이들 관점에서 이야기가 펼쳐지기 때문에 인물의 입장을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제외하고는 다른 글들은 어른이 청소년에게 훈계하는 듯한, 가르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글들이다.
 
그런 글들 우선 청소년들에게 다가가지 않는다. 도덕적인 너무도 도덕적인(니체의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을 흉내낸다면) 글들을 청소년들은 외면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심각하고 많이 일어나는 학교 폭력에 대해서 경각심을 일깨우는 것이 목표라면 이 책이 그 목표를 달성했을지도 모르지만, 학교 폭력을 방지하거나 줄이는 것을 목표로 했다면 이루기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학교 폭력이 지닌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비록 어른들이 읽어도 학교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폭력들에 대해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일은 이제 학교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직장에서도 많이 일어난다. 학교가 직장으로 연장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점에서 어른이 된 청소년들이 읽어도 좋을 거라는 생각은 든다. 
 
학교 폭력을 대상으로 책이 쓰였지만 학교 폭력은 이제 학교라는 울타리를 넘어 직장에까지 광범위하게 퍼져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될 수 있는 가해자란 말을 누구도 되어선 안 될 가해자로 바꿀 수 있게 고민하고 행동할 수 있는, 그런 발판을 마련해주려는 책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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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은 벽이다


“새물결”이 몰아친다

묵은 것, 낡은 것을 밀어내려

거대한 파도가 되어

쏴, 쏴아~

몰려든다.


파도는 방파제에

부딪쳐 철썩……

하얗게 흩어진다.

흩어지고 흩어져도

또 다시 밀려오는 파도.


그러나 벽은 여전하다.

새물결의 흐름을 막아서는.


성난 파도는 이를 삼키려는 듯

넘어서려는 듯, 부숴버리려는 듯

으르렁, 으르렁

힘차게 도약하는데

하, 그래도 그들은 그냥 서 있다.


움직이면 죽는다는 듯

그대로 서 있는 관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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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라고밖에는 할 수 없는 시들.

 시에 대한 의미를 한 번에 파악하기 힘든 시들. 언어는 많으나, 대체로 시들이 길다, 그러나 그 언어들은 의미를 피해서 에둘러 간다.

 

  의미에 다가가지 않는다. 마치 카프카의 소설 '성'애서처럼. 성은 눈 앞에 보이는데 절대로 성에 들어갈 수가 없다.

 

  이 시집도 그렇다. 시인의 말에서 이 점을 느낄 수 있다.

 

  '말의 회오리는 고요의 축 주변에서 / 모래알 하나도 선명하게 포착하지 못한다. // 바람 지난 자리의 유령 발자국들. / 말은 늘 마지막이길 바랐다.' (5쪽)

 

  그러나 말은 늘 마지막이길 바라지만 말은 늘 처음이다. 밖으로 나온 말은 한 사람에게는 마지막이 될 수 있어도 듣는 사람에게는 처음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시인이 시로 표현한 말들을 시인은 마지막이길 바랐겠지만, 독자에게는 처음이어야 하는 말들이다.

 

독자에게도 마지막이 되는 말들은 시로써 존재하지 못한다. 그것은 죽은 말, 종이에 갇힌 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강정의 시는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든다. 더 이상 들춰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집에서 나온 언어들은 '모래알 하나 선명하게 포착하지 못'하고 있다.

 

모래알은 구체적이다. 실체다. 그런 실체를 잡지 못하는 말. 그야말로 귀신일 수밖에 없다.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는 존재. 그렇게 시들은 독자들 주변을 맴돌지만 절대로 독자들에게 들어오지 않는다. 포착되지 않는다.

 

해설에서, 참으로 심오한 시 해설인데, 이렇게 강정 시를 말하고 있다.

 

'이 시집에서 일상의 사물과 일상의 시간에 대한 차분한 묘사나 관찰은 없다.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경험이나 그 경험에 대한 관찰도 없다.  ... 강정 시가 처음부터 공공적이라는 현실에 대해 시건방진 표정을 짓거나 시큰둥했지만, 이 『귀신』은 지독하다.' (105쪽)

 

이렇게 지독한 시집을 읽다니... 공유하기 힘든 감정들을 시로 표현한 시집을 일다니... 시인이 마치 빙의 또는 접신이 되어 방언을 내뱉은 말들에서 무언가를 찾으려 하다니...

 

읽고서도 귀신에 홀린 양 그냥 제자리로 돌아오기 위해서 다른 곳을 빙빙 돌았다는 느낌만을 받는다.  허무하다. 읽었는데 읽지 않았다. 귀신이다.

 

『귀신』이라는 시집, '바람 지난 자리의 유령 발자국들'처럼 실체가 없게 나에게 다가왔다. 그렇게 우리네 삶에 명확히 무엇이라 지칭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듯이.

 

그럼에도 삶은 실체가 있어야 한다. 우리는 유령이 아니므로. 귀신이 아니므로. 시라는 회오리는 실체를 거머쥐어야 한다. 사람들로 하여금 실체를 보고 잡을 수 있게 해야 한다.

 

어쩌면 강정 시를 읽으며 실체를 파악하려면 더욱 더 미궁으로 빠져드는 이 현실세계에서 그래도 실체를 찾으려는 노력을 멈춰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는지도 모른다.

 

이런 『귀신』같은 시집이 정말로 귀신 같이, 유령 같이 내게 다가왔다면, 나는 이런 유령같은, 귀신같은 시집을 거부하련다. 내게는 삶이 보이는, 실체가 느껴지는 그런 시집이 지금은 더 필요하니까.

 

시들이 길고, 유령발자국같이 실체를 파악할 수 없고, 바람같이 휙 지나가버려 인용하기가 힘들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무언가를 보는 것이 사람이라면, 우리는 실체를 잃어가는 시대에 실체를 찾기 위한 노력을 더 해야 한다. 이 시집을 읽으며 든 생각이다.

 

나중에 다시 읽어보면 귀신조차 사람이 만들어낸 존재, 사람이라는 실체를 좀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실체라면, 이 시집 다시 읽으면 어떤 실체를 찾아낼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가능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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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03 09: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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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03 17: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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