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령길에서 본 큰바람 

버스 타고 오는 미시령길
산들이 내게 바람을 보여주었다
시인 황동규는
‘미시령 큰바람’이라고 노래했는데
거대한 능선들이
출렁출렁 흔들흔들
춤을 추며 큰바람을 보여주었다
미시령 큰바람을 맞아
우리도 큰산이라고
갖가지 나무들이
색색 옷을 입고
다른 하나가 되어
여기저기서 바람을 보여주었다
큰산이 있어야 큰바람을 보고
큰바람이 있어야 큰산을 본다고
 
그러나
큰산은 통이 아니라
낱낱인 하나라고
작은 것들이 모여야
큰것이 된다고
미시령길에서 본 큰바람이
산을 통해
나무를 통해
말해주고 있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2018-06-02 10: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02 12: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가끔 헌책방에 가면 뜻하지 않은 책을 발견하게 된다. 한치 망설임도 없이 손에 들게 되는 책.

 

  알라딘 중고서점에 들러서 이 책 저 책을 보다가 눈에 확 들어온 책이다. 처음에는 '이오덕 선생님 10주기 추모 시집'이라고 되어 있어, 이오덕 선생을 기리는 사람들이 모여 시를 썼나 보다 했다.

 

  그런데 책을 들쳐보다보니 그게 아니다. 이오덕 선생이 쓴 시들을 모아놓은 시집이다. 이오덕 선생이 쓴 시들이 유고시집으로 나왔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는데...

 

  이 시집은 그 유고시집에서 35편을 골라 엮었다고 한다. 이오덕 선생을 더 알리기 위해, 그가 쓴 시를 알리기 위해 작은 시집을 내었다고 한다.

 

시집을 읽으며 예전 어려웠던 시대, 학교가 배움의 전부였던 그 시대에 배우고자 했음에도 배울 수 없었던 ('출석부'라는 시를 보면 학교를 벗어나는 아이들 이야기가 나온다) 시절을 떠올리기도 하고, 개발로 인해 우리가 잃은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기도 한다. ('길'이란 시를 보면 개발에 열광했던 사람들, 그러나 그것은 우리를 행복으로 이끌지 않고 오히려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었음을 알게 된다)

 

지금은 학교만이 배움터는 아니다. 배움은 도처에 있다. 너무도 많은 배움들이 있기에 아이들은 배움으로부터 도망치려 하고 있다.

 

교육, 교육, 배움, 배움... 여기에 아이들은 정작 없다. 어린이는 없다. 청소년도 없다. 청년도 없다. 오로지 '학생'만이 있을 뿐이다.

 

다시, 어린이를, 청소년을, 청년을 불러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사회가 좀더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있다.

 

이오덕 선생의 시집을 읽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수십 년 동안 교사로, 또 우리말을 사랑하고 우리말을 갈고 닦아 널리 알리는데 힘쓴 선생으로 한 평생을 살았지만, 이오덕 선생에게는 늘 아이들이 있었다.

 

그렇게 아이들과 평생을 살아간 분. 그 삶이 이 시집에 실린 첫번째 시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참된 아름다움이 무엇인가

 

행복하여라.

어린이와 함께

이름 없이

가난하게 살아가는 자여.

그는 아름다운 삶이 무엇인가를

알 것이며

평화와 기쁨을 누릴 것이니다.

 

1978년.

 

이오덕, 얘들아 너희들의 노래를 불러라. 고인돌. 2013년. 7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술관 옆 인문학 2 - 미술과 인문학의 크로스, 세상의 중심에서 나를 만나다 책상 위 교양 25
박홍순 지음 / 서해문집 / 2013년 6월
평점 :
품절


그림을 통해 세상을 읽을 수 있다. 그림이 세상과 단절되어 나온 것이 아니니, 그림을 보면서 세상을 만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림에 나와 있는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책은 그에 대하여 답을 해주고 있다고 보면 된다.

 

인문학. 미술이 인문학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인문학과 함께 할 때 더 깊고 넓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가령 예를 들면, 로트레크의 그림에서 푸코를 만날 수 있다는 것, 우리가 성에 대해서 어떤 관념을 지니고 있었는지를 그림을 통해서 그 변천사를 볼 수 있다는 것, 더불어 성에 대해서 정리를 한 푸코의 '성의 역사'를 만날 수도 있다는 것, 이것이 바로 '미술관 옆 인문학'이라는 책이 지닌 장점이다.

 

2권은 깊은 성찰을 필요로 하는 그림들, 인문학들이 소개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성찰의 시간, 사랑과 성, 역사와의 대화로 나누어진 네 부분에서 그림과 그와 관련된 인문학들이 소개되고 있다.

 

그림을 그냥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통해 우리 삶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는 것, 그것이 바로 그림을 만나는 의미일 것이다.

 

단지 그림을 자기 재산증식의 수단으로, 자기 교양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를 성찰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참으로 다양한 주제, 논란이 되는 주제를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데, 이들을 하나의 주제로 삼아 토론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렵지 않은 시.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시. 더불어 마음에 콕콕 박히는 시. 그런 시를 읽으면 마음이 편안해 진다.

 

  시를 읽었다는 기쁨에 사로잡히게 된다. 이것이 바로 시집을 가까이 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한다.

 

  이은택 시집을 읽으며 가끔 미소를 짓기도 했다. 시에 나오는 장면들이 슬며시 떠올라 웃음을 띠게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시집에 있는 시들이 모두 마음에 편하게 다가온다. 그래서 특정한 어떤 시를 고르기가 힘들다.

 

시인 자신의 부모님을 노래한 시도 있고, 주변에서 만난 사람들을 노래한 시도 있고, 또 교사이다 보니 교육에 관한 내용, 학생들을 노래한 시도 있다.

 

뾰족뾰족하지 않고 시가 둥글둥글하다. 그래서 마음을 쿡 찌르지 않고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부소산길

 

이 길 끝에 그대가 있다면

난 매일 이 길을 걸어 그대에게 가리

 

이틀에 하루는

그대가 있어 그대에게 온 것이 아니고

이 길이 있어 그대에게 온 것이라고 말하리

 

이 길 따라 그대에게 오다가

저 혼자서도 외롭지 않은

다람쥐도 보았다고 말하리

이 길 따라 그대에게 오다가

제 잎 다 남의 거름으로 주는

굴참나무도 보았다고 말하리

 

또 이 길 따라 그대에게 오다가

아주 잘 늙은

굽은 길도 보았다고 말하리

나도 늙어

저 굽은 길처럼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리

내가 늙어 저 굽은 길처럼 누웠을 때

내 머리맡에

그대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리

 

이은택, 벚꽃은 왜 빨리 지는가, 삶창. 2018년.12-13쪽.

 

사랑노래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시다. 이런 사랑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대놓고 사랑해, 사랑해 하는 것이 아니라, 은은하게 그냥 그렇게 그 사람 주변에서 그 사람 편하게 해주는 그런 사랑, 그 사람이 언제든 자신에게 기댈 수 있게 해주는 그런 사랑.

 

그런 사랑은 직선이 아니다. 곡선이다. 부드럽게 다가가는 사랑.

 

강원도 쪽으로 여행을 가다가 산을 뻥뻥 뚫어놓은 터널들을 보며, 빠르게 휙휙 달리기 위해 직선으로 도로를 만들기 위해 그냥 산에 구멍을 내버린 그 터널들을 씽씽 달리는 차 속에서 보며, 이건 아니다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빨리 가서야 어디 마음을 놓을 수나 있나 하는 생각. 그냥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서 과정을 생략해 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길이 아니라 도로일 뿐이라고... 더이상 길에서 느끼는 감정을 느낄 수 없게 만들어버린 그 터널들, 그 직선 도로들.

 

세상이 빨라지면서 사랑도 그렇게 변해간 것은 아닌지. 그냥 들이댔다가, 다 왔다고 끝냈다가. 구불구불 천천히 쉬엄쉬엄 목적지에 도달하기까지 서로 겪어야 했던 수많은 경험들을 다 날려버리는 사랑. 그런 사랑이 도로의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가 해야 하는 사랑은 도로의 사랑이 아니라 길의 사랑이 아닐까. 구불구불 천천히 그렇게 당신에게 가 닿는 사랑.

 

시인이 노래하는 사랑이 바로 '길의 사랑'이다. 우리가 회복해야 할 사랑이고. 그런 마음이 든다. 이렇게 잔잔한 시를 읽으면...

 

덧글

 

출판사에서 보내준 시집이다. 덕분에 마음 따뜻하게 잘 읽었다. 마음 온도가 조금은 올라간 듯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우스트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정서웅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부다. 내용이 워낙 방대하다. 서양 신화와 역사와 철학과 문학이 모두 나오는 듯하다. 그냥 읽어서는 무엇인지 모르겠는데, 주를 보면 참... 너무도 방대한 서양 문화가 종합되어 나온다. 그래서 서양 사람들은 파우스트, 파우스트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렇게 서양문화를 온몸으로, 온정신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에게는 이 책은 그냥 책에 불과하다. 내 정신에 충격을 주거나 마음을 뒤흔들어 놓거나 하지 않는다. 이쯤되면 책읽기는 의무가 된다.

 

한번 잡았으니, 끝까지 가봐야지 하는 오기가 생긴다. 어차피 책읽기는 잘못읽기라면 그냥 읽으며 내 멋대로 생각해 보는 것도 괜찮다 싶기도 하다.

 

1부에서 개인이 겪는 사랑을 이야기했다면 이번에 범위가 확장된다. 정치 사회로까지 나아간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 정치적 동물이라고 했으니, 인간의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선 정치 사회로 나아가는 것이 당연하다.

 

메피스토펠레스는 파우스트를 그 세계로 인도한다. 그런 정치사회라고 해봐도 사랑이 빠질 수가 없다.

 

그리스와 트로이 전쟁을 일으킨 주요 요인이라 할 수 있는 '헬레나' 가 등장한다. 물론 그 전에 파우스트의 제자가 창조했다는 작은 인간 '호문쿨루스'도 나오지만.

 

호문쿨루스 이야기를 하자면 인간은 자신이 신이 되고 싶어한다. 그래서 자신과 같은 생명체를 만들어내고 싶어한다. 파우스트의 제자인 바그너는 그런 인간을 만든다. 그러나 완전하지는 않다. 아주 작은 생명체, 그것도 유리 안에 있어야 할 존재다. 그러니 만족할 수는 없다.

 

이런 호문쿨루스 이야기를 지나 헬레나로 넘어간다. 과거 신들을 소환하라는 왕의 명령, 메피스토펠레스의 도움으로 헬레나를 지상으로 데려오자 파우스트는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그 사랑으로 인해 아이까지 낳는다. 전쟁까지 일으킨 여인과 행복하게 사는 것. 하지만 거기서 만족할 수 있을까?

 

아이는 죽고, 헬레나는 돌아가고. 이것은 인간이 이룰 수 없는 욕망이다. 이룬다고 해도 영속할 수 없는 욕망이다. 영속할 수 없는 욕망을 가지고 '멈추어라' 할 수는 없는 법.

 

그렇다면 다른 세계를 창조해야 한다. 파우스트는 악마의 도움을 받아 왕에게서 해안선을 받게 된다. 이것을 간척하는 사업을 하고, 그 사람들이 일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그는 드디어 '멈추어라'라고 말한다.

 

영혼은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잡히게 되지만 그는 구원받는다. 바로 그레트헨으로 인하여. 여성성, 사랑이 영원함을 여기서 보여주는데...

 

그 유명한 구절이 파우스트 마지막에 나온다.

 

일체의 무상한 것은

한낱 비유일 뿐,

미칠 수 없는 것,

여기에서 실현되고,

형언할 수 없는 것,

여기에서 이루어진다.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이끌어올리도다. (388-389쪽)

 

남성성이 욕망으로 가득찬 세계라면 여성성은 사랑으로 넘쳐나는 세상이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세상은 이런 남성성의 세계가 아니라 여성성의 세계라는 것.

 

그렇다면 파우스트가 영혼을 빼앗기게 되는 장면을 생각해 보자. 그 장면은 남성성, 여성성 어디에 속하는가.

 

해안을 개척하고, 그곳에 사람을 이주시키는 것, 이건 남성성이라고 해야 한다. 무언가를 정복하고, 그 정복된 곳에서 살고 싶어하는 욕망. 없는 것에서 있는 것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자신의 업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욕망, 바로 이것이 남성성이다.

 

이런 남성성이 충족된다고 해도 우리 영혼은 신에게 가지 못한다. 그것은 악마에게 갈 영혼일지도 모른다.

 

파우스트 끝부분을 읽으며 그가 쫓아내는 노인부부 이야기는, 서양이 자신들의 제국을 확장하기 위해 쫓아내는 원주민들의 모습과 겹친다.

 

원주민들을 쫓아내고 그곳에 자신의 깃발을 꼽고 여기가 바로 내 땅이다. 자유로운 땅이다. 이리로 와서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아라 하는 것, 남의 눈물을, 피를 바탕 삼아 세운 땅이 어찌 자유롭고 행복한 땅일 수 있을까?

 

그러니 그는 죽을 수밖에 없다. 여기서 만족하기 때문이다. 영혼이 구원받을 수 없는 욕망에 멈추었기 때문이다.

 

파우스트가 좋은 점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파우스트로 인해 파멸에 이른 그레트헨이 그를 구원해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포용하는 정신, 마음이 바로 여성성이고, 우리가 추구해야 할 길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이것이 바로 내 멋대로 읽은 파우스트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8-05-29 09: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29 09:5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