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지 않은 시.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시. 더불어 마음에 콕콕 박히는 시. 그런 시를 읽으면 마음이 편안해 진다.

 

  시를 읽었다는 기쁨에 사로잡히게 된다. 이것이 바로 시집을 가까이 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한다.

 

  이은택 시집을 읽으며 가끔 미소를 짓기도 했다. 시에 나오는 장면들이 슬며시 떠올라 웃음을 띠게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시집에 있는 시들이 모두 마음에 편하게 다가온다. 그래서 특정한 어떤 시를 고르기가 힘들다.

 

시인 자신의 부모님을 노래한 시도 있고, 주변에서 만난 사람들을 노래한 시도 있고, 또 교사이다 보니 교육에 관한 내용, 학생들을 노래한 시도 있다.

 

뾰족뾰족하지 않고 시가 둥글둥글하다. 그래서 마음을 쿡 찌르지 않고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부소산길

 

이 길 끝에 그대가 있다면

난 매일 이 길을 걸어 그대에게 가리

 

이틀에 하루는

그대가 있어 그대에게 온 것이 아니고

이 길이 있어 그대에게 온 것이라고 말하리

 

이 길 따라 그대에게 오다가

저 혼자서도 외롭지 않은

다람쥐도 보았다고 말하리

이 길 따라 그대에게 오다가

제 잎 다 남의 거름으로 주는

굴참나무도 보았다고 말하리

 

또 이 길 따라 그대에게 오다가

아주 잘 늙은

굽은 길도 보았다고 말하리

나도 늙어

저 굽은 길처럼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리

내가 늙어 저 굽은 길처럼 누웠을 때

내 머리맡에

그대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리

 

이은택, 벚꽃은 왜 빨리 지는가, 삶창. 2018년.12-13쪽.

 

사랑노래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시다. 이런 사랑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대놓고 사랑해, 사랑해 하는 것이 아니라, 은은하게 그냥 그렇게 그 사람 주변에서 그 사람 편하게 해주는 그런 사랑, 그 사람이 언제든 자신에게 기댈 수 있게 해주는 그런 사랑.

 

그런 사랑은 직선이 아니다. 곡선이다. 부드럽게 다가가는 사랑.

 

강원도 쪽으로 여행을 가다가 산을 뻥뻥 뚫어놓은 터널들을 보며, 빠르게 휙휙 달리기 위해 직선으로 도로를 만들기 위해 그냥 산에 구멍을 내버린 그 터널들을 씽씽 달리는 차 속에서 보며, 이건 아니다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빨리 가서야 어디 마음을 놓을 수나 있나 하는 생각. 그냥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서 과정을 생략해 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길이 아니라 도로일 뿐이라고... 더이상 길에서 느끼는 감정을 느낄 수 없게 만들어버린 그 터널들, 그 직선 도로들.

 

세상이 빨라지면서 사랑도 그렇게 변해간 것은 아닌지. 그냥 들이댔다가, 다 왔다고 끝냈다가. 구불구불 천천히 쉬엄쉬엄 목적지에 도달하기까지 서로 겪어야 했던 수많은 경험들을 다 날려버리는 사랑. 그런 사랑이 도로의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가 해야 하는 사랑은 도로의 사랑이 아니라 길의 사랑이 아닐까. 구불구불 천천히 그렇게 당신에게 가 닿는 사랑.

 

시인이 노래하는 사랑이 바로 '길의 사랑'이다. 우리가 회복해야 할 사랑이고. 그런 마음이 든다. 이렇게 잔잔한 시를 읽으면...

 

덧글

 

출판사에서 보내준 시집이다. 덕분에 마음 따뜻하게 잘 읽었다. 마음 온도가 조금은 올라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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