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호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폐양어장 길고양이 학대 사건을 다룬 글도 있고, 책에 대한 글, 돌봄에 대한 글도 있다.


  돌봄에 관한 글은 사람을 돌보는 일도 있지만, 식물과 함께 살아가는 돌봄도 있으니, 이번 호를 읽으면 이런 돌봄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이본 호를 관통하는 말은 돌봄이라는 생각을 한다. 사랑=돌봄=연대.


  돌봄이란 일방적일까? 일방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돌봄은 양방향일 때가 더 많다. 일방적으로 베푸는 경우는 없다. 베풀면서도 많이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돌봄의 가장 좋은 예가 바로 사랑이다. 로맨스라고 하는 것. 로맨스는 일방일 수 없다. 


사랑, 즉 로맨스는 양방향이다. 혼자만이 줄 수는 없다. 함께 할 때 사랑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이번 호 표지는 소설로, 웹툰으로도 나온 '상수리나무 아래'를 소개하고 있다.


소설을 읽지도 웹툰을 보지도 못했기에 무어라 말하기 힘들지만, 이번 호에 나온 내용으로 미루어보면 사랑이 돌봄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서로 상처가 있는 사람들이 그 상처를 보듬고, 상처를 딛고 좋아지는 과정. 이렇게 사랑은 완벽한 남과의 만남이 아니라 만나면서 완벽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결국 사랑은 돌봄이다.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일. 이 사랑이 사람에게만 해당할까? 아니다. 동물이나 식물 모두에게, 또 동식물이 아닌 다른 존재들에게도 해당이 된다.


이렇게 나와 함께 존재하는 모든 것들과 함께 하는 일. 그런 사랑, 내가 돌보고, 또 다른 존재들이 나를 돌보는 일. 그런 관계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다.


[빅이슈] 역시 마찬가지다. [빅이슈]를 구입해 보는 일이 일방적이 아니라 양방향적이다. [빅이슈]를 통해 얻는 것도 많기 때문이다.


자신의 세계를 넓혀가고, 또 생각하지도 못했던 존재들을 만나게 되는 일... 이번 호에서 언급한 2020년 임금근로일자리 월 소득 중간 값, 즉 중위소득 금액... (49쪽) 242만 원. 이 숫자가 사랑과 돌봄과 연대를 함축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242만 원.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숫자. 그러나 생각해야만 하고, 알고 있어야만 하는 숫자. 왜냐하면 이 중간 값보다 위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있음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돌봄이라는 말이 시혜라는 말을 연상시킨다면 '연대'라는 말로 바꿔 이야기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나아가게 한다.


'사회 연대는, 나도 힘들지만 내 눈길 밖에는 나보다 어려운 이들이 많다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과장된 빈곤감, 무리한 자기 연민은 여유 있는 이들이 소득을 갹출해서 약자를 위한 안전망을 만들고, 그래서 계층 하락에 대한 불안이 줄어들어 다시 창의적이고 모험적인 시도에 나설 용기를 내게끔 하는 복지의 선순환 구조로 향하는 길을 가로막는다' (성현석, 월급에 대해선 겸손하지 말자. 51쪽)


이 말을 확장하면 바로 사랑은 돌봄이고, 연대다. 나홀로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활동, 이것이 바로 사랑, 돌봄, 연대다. 이들은 결국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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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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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전에 읽은 소설. 테드 창이 쓴 [당신 인생의 이야기]


무언가 독특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단편집이어서 흐릿한 윤곽으로만 남아 있는 소설들이었다. 언젠가 다시 읽어야지 하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이번에 나온 테드 창의 [숨]을 읽으면서도 예전과 비슷한 감정을 느꼈으니... 그때 느꼈던 감정들보다는 좀더 명확해졌다고 해야 하나.


몇몇 소설들은 마음을 울리기도 했다. 그래, 이런 소설이 바로 상상 속에서 현실을 느끼게 하는 소설이지. 소설은 어차피 상상의 산물인데, 그냥 상상의 세계에만 머물지 않고 상상의 세계 속에서 현실 세계를 불러오는 역할을 하지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이 소설집 첫번째 실린 소설,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은 타임머신을 연상하게 하는 소설인데, 타임머신 하면 기계를 생각하지만, 이 소설에서 과거와 미래를 오가게 하는 대상은 문이다. 문은 물질적으로는 이쪽과 저쪽을 나누는 경계이기도 하지만 이쪽과 저쪽을 연결시켜주는 대상이기도 하다.


과거와 미래를 오가는데 기계보다는 문이 더 현실적으로 다가오는데, 이는 다른 많은 작품들에서도 다루고 있는 문제다. 전세계적인 열풍을 일으켰던 [해리포터] 시리즈에서도 기둥에 있는 보이지 않는 문으로 호크와트로 가는 열차 플랫폼으로 가지 않던가.


하지만 이 소설에서 중요한 요소는 문이 아니다. 과거와 미래로 여행을 한다? 이 얘기와 과거와 미래를 바꿀 수 있다가 연결이 되면? 


이런 '연금술사의 문'은 역사를, 삶을 바꿀 수 있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과거의 나를 바꾸면 현재의 나는 존재할 수 있을까? 미래의 나를 바꾸면 현재의 나는 어떻게 될까? 쉽지 않은 문제다.


이 소설에서는 운명을 바꿀 수는 없다. 운명은 시간의 문으로 아무리 들락거려도 바뀌지 않는다. 자신이 문으로 들어가 운명을 바꾸려고 행동을 해도 결과는 같다. 그렇게 되어 있는 자신을 만날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같은 지점으로 돌아온다. 비록 결말에서 상인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지만, 운명이 바뀌지 않는 소설 과정을 보면 그는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간다. 그리고 자신이 본 운명대로 살아가게 된다. 어떤 과정을 거치든.


이 소설과 더불어 소설집 마지막에 실린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이 연결된다. 운명은 우연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 우연들이 필연을 구성한다는 사실. 


'그렇게 되었다'는 결론이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 다만, 그렇게 되는 계기는 다양하고, 거기에 관여하는 존재들도, 상황들도 다양하다는 점을 이 소설이 잘 보여주고 있다. 이상하게 자유의지가 개입할 여지가 없는 소설들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중간중간에 변하지 않는 운명을 만들어가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자유의지'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즉, 자기 삶에 책임을 지는 사람은 자신일 수밖에 없으며, 그것을 남에게 전가하는 일은 어리석은 자기기만에 불과함을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이란 소설을 통해서 알 수 있게 된다.


물론 이 소설에서는 평행우주와 같은 과학적 상상력이 도처에서 나오고 있다. 최첨단 기술들과 수많은 평행우주에서 살아가는 나'들'이 나온다. 


그럼 이런 나'들'은 같은 삶을 살까? 아니다. '나'라고 해서 모두 '나'와 똑같지 않다. 나'들'은 '나'가 나름대로 살아가는 존재일 뿐이다. 모두 다른 삶을 산다. 어떤 계기로? 수많은 계기들이 있다. 그러니 똑같이 행동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나'는 그 많은 나'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일무이한 '나'로 존재해야 한다. 그러니 불안할 수밖에 없다. 이 불안이 바로 자유다. 불안은 '나'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 자기의지로 결정해야 하는 데서 나온다. 


결말이 정해져 있는 듯하지만, 결정론으로 자유의지는 전혀 없는 듯 여겨지지만, 이 소설을 읽다보면 자유의지가 결국 그런 삶으로 자신을 이끌어가고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이 소설집 마지막에 실린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에서는 특히 더...


여기에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는 조금 긴 소설인데, 여러모로 생각할거리를 주고 있다. 역시 가상세계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 사람과 동물과의 관계, 사람과 식물, 또 사람과 기계와의 관계 모두에 적용될 수 있는 소설이다.


함께 지냄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정성이 필요한지를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기도 하다. 이런 소설들과 더불어 짧은 소설을 통해서도 테드 창의 상상 세계를 만날 수 있다.


그 상상세계들이 상상 속에만 머물지 않고 우리 현실로 오고 있음을 이 소설집은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다. 상상을 현실로!와 더불어 상상 속을 노닐면서 현실의 내 삶을 생각하게 하는 소설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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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에게 배우는 네 글자
이선 지음 / 궁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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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석이조(一石二鳥). 제목이 식물에게 배우는 네 글자니까, 이렇게 사자성어로 시작하자. 그만큼 이 책은 식물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면서 인생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람은 다른 존재들에게서 무언가를 끊임없이 배운다. 공자도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그 중에 반드시 스승이 있다고... 사람 사이에서만이 아니라 모든 존재에게서 스승을 찾을 수 있는 존재, 그것이 바로 우리 인간 아닌가.


그래서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했는데, 이때 영장은 다 알아서 베풀고 지배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꾸준히 배움으로써 어제의 자신보다 오늘의 자신이, 오늘의 자신보다 내일의 자신이 더 나은 존재가 된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배울 수 있는 존재... 그것은 현재에 머물지 않고 계속 나아가는 존재라는 의미인데, 멈춤이 죽음이라면 움직임은 삶이다. 그렇게 사람은 모든 존재에게서 배움을 얻는다. 늘 움직인다. 살아있는 존재, 배우는 존재다.


이번에는 식물에게서 배운다. 식물의 삶에서 사람의 삶을 보고, 자신의 삶을 관조하면서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려는 자세를 지니게 된다. 그런 자세를 구구절절 정리하기보다는 네 자로 간략하게 줄여서 정리한다.


네 글자 속에는 진리가 담겨 있다. 네 글자 속에 삶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으니, 우리는 그 네 글자를 풀어서 우리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면 된다.


어떤 네 글자가 있을까? 이 책에 나온 많은 성어들을 다 언급할 필요는 없다. 그냥 첫번째 네 글자를 예로 들자.


비익연리(比翼連理)다. 새 중에 눈과 날개가 하나뿐인 새가 있다고 한다. 비익조라고 하는데, 그 새는 다른 새를 만나야 비로소 두 눈과 두 날개를 갖춘다고 한다. 홀로는 불완전한 존재지만 함께 했을 때 완전한 존재가 되는 새.


새만이 아니라 서로 다른 뿌리에서 자라지만 하나로 연결되는 나무가 있다. 또는 두 줄기가 하나로 연결되는 나무도 있고. 그를 연리지라고 한다. 다르게 지내면서도 둘은 하나가 된다. 사람도 그렇다.


다르게 살면서도 함께 살아가게 된다. 똑같지 않고 그렇다고 완전히 홀로도 아닌 삶을 사는 존재, 인간이다. 인간이라는 말에 벌써 하나가 아니라는 뜻이 담겨 있으니... 비익연리... 둘이 함께 지내는 존재.


그래서 비익연리라는 네 글자를 통해 새와 나무의 세계를 보여주고, 그를 통해 우리들 삶에 대해서 성찰하게 하고 있다.


이 비익연리란 글 말미에 코로나19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가 비익조나 연리지는 못 되더라도 인의를 저버릴 수 없는 노릇 아닌가요. 혐오와 차별보다는 용기와 희망을 품을 수 있도록 서로 위로하고 포용하며 다독여주는 마음이 절실히 필요한 시절입니다'(25쪽)라고.


이뿐만이 아니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는 너무도 잘 알려져 있다. 그림에 담긴 뜻과 글로 인해서 더욱 가치가 있는 그림. 이 그림에 나오는 소나무와 잣나무는 어려운 시절에도 뜻을 굽히지 않고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저자는 세한송백(歲寒松柏)이라는 네 글자를 설명하면서, '어려울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는 말을 들고 있다. 어려움에 처했을 때 나를 외면하지 않는 친구. 어려운 시절이라고 자신만이 살겠다고 자기이익만 추구하는 존재들이 넘치는 사회에서 송백과 같은 존재는 얼마나 귀한가.


이러한 세태를 소나무와 잣나무를 통해서 저자는 꼬집고 있다. '표리부동하고 꼼수가 넘쳐나는 현대 사회에서 절개와 지조, 군자라는 단어는 이미 외래어처럼 들립니다.'(133쪽)고 하고 있는데, 여전히 절개와 지조가 필요한 시대다. 지금 시대는.


다양한 네 글자들. 사자성어들을 배우게 되기도 하고, 식물들의 생태에 대해서도 알게 되고 이를 통해 삶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를 넘어선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무엇보다도 움직임을 잘 느끼지 못하는 식물들도 치열하게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때로는 경쟁하고, 때로는 협력하면서 살아가고 있음을 잘 설명하고 있으며, 그것이 바로 우리들 인생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게 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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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04-27 21: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비익연리! 세한송백!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 모들 씨어터북 2
김정숙 지음 / 모시는사람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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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랫동안 공연이 되었던 연극 대본이다. 그냥 대본집이라고 하기보다는 뒤에 대담집과 그 연극에 대한 비평도 실려 있어서, 이 작품에 대한 전반적인 모습을 알게 해주는 책이다.


세탁소. 빨래를 해주는 곳이다. 빨래란 더러움을 씻어내는 행위인데, 이 희곡은 옷만이 아니라 마음도 빨아주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돈에 눈먼 사람들... 또 갈수록 각박해져 가는 세태. 인정이 메말라가는 세상이라고 하지만, 그럼에도 인정을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어서 위안이 된다.


우리 삶이 사막을 건너는 행위라면, 인정을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런 사막에서 만날 수 있는 오아시스라고 할 수 있다.


희곡은 1편과 2편이 있는데, 내용은 조금 다르지만 등장인물들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는다. 다만 돈때문에 삶이 더 힘들어지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1편보다는 2편에서 더 쪼들리는 세탁소 주인 강태국의 모습이 드러난다.


그럼에도 희망을 잃지 않는다. 사람다움을 잃지 않는다. 잃을 뻔하기도 하지만,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오아시스를 발견하기는 어렵지만, 오아시스를 발견한 다음에는 얼마나 위안을 받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오아시스 세탁소 주인인 강태국은 비록 자신의 삶은 힘들지라도 그가 살아가는 모습 자체가 다른 사람들에게 위안을 준다. 그들이 계속 살아갈 수 있는 희망, 힘을 준다.


1편에서 아이에게 친절을 베풀지만 성추행으로 오해하는 젊은 엄마, 이만큼 사람들 사이에 믿음이 사라졌다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지만, 또 어머니보다는 어머니의 돈이 더 귀중한 자식들의 모습에서 물질만능주의에 빠진 사회를 보여주고 있기도 하지만, 세탁소 주인 강태국을 통해서 그들 또한 위안이 필요한 존재임을 드러내고 있다.


한번에 변하지는 않겠지만, 강태국이라는 사람의 존재가 그들 마음에 서서히 스며들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1편 끝부분 사람들을 세탁하는 장면에서 옷만이 아니라 마음까지도 세탁하는 통쾌함을 만날 수 있어서 좋고, 2편에서는 그렇게 살아가는 강태국을 인정하는 모습이 드러나서 좋다.


극적인 반전은 없지만 희곡을 읽으면서 강태국에게서 어떤 위안을 받게 된다. 그런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것과 같은 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1,2편을 다 읽고 나면 마음 한구석이 따스해진다.


아직도 이러한 사람들이 있음을, 그러한 사람들로 인해 세상은 조금이라도 따스해지고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옷만이 아니라 마음도 세탁해주는 세탁소, 오아시스 세탁소. 그런 세탁소를 습격한다는 내용의 작품. 읽어도 좋고, 연극으로 봐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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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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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책을 읽다가 우연히 [오베라는 남자]라는 소설을 알게 됐다. 이란에서 온 사람과 더불어 살아간다는.. 고집불통의 남자 이야기.


단순히 그렇게만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은 어떻게 펼쳐질까 하는 궁금증에 읽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웃음을 머금게 하지만 나중에는 눈물을 흘리게 한다.


철저한 원칙주의자 오베... 그러나 그 원칙은 자신에게 엄격한 원칙이지만 다른 사람을 위하는 일에는 원칙에서 벗어나도 되는 원칙이다.


그렇다. 철저한 원칙은 포용에서 빛을 발한다. 원칙은 배제가 아니라 포용이다. 융합이다.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이 바로 원칙이다.


그래서 오베는 말이 별로 없고, 다른 사람에게 무뚝뚝하게 대해도 주변 사람들이 그의 주위에 몰리게 된다.


특히 그의 아내 소냐. 지적인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오베와 결혼한다. 누가 보더라도 전혀 다른 사람인 둘이 행복하게 살아간다. 아니 오베에게는 소냐가 전부다. 그는 소냐와 함께 하는 삶에서 행복을 느낀다.


그런 그에게 소냐가 떠난다. 그는 소냐를 따라갈 생각만 한다. 오늘도, 내일도... 그렇지만 그가 소냐를 따라가려고 할 때마다 일이 벌어진다. 그의 이웃들에게서.


이웃들이 벌이는 일에 휘말리게 되는 오베는 자신의 원칙에 따라 행동하지만, 그들이 제대로 지낼 수 있게 도움을 준다.


그의 원칙은 남에게 절대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렇다. 그의 원칙은 바로 함께 삶이다. 그는 고립되어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고립은 자신의 원칙을 지키려는데 있다. 사람들이 원칙을 지킨다면 그 역시 고립되어 있지 않다.


이렇게 처음에는 오베의 자살 실패담이 웃음을 유발한다. 그리고 자살이 실패할 때 만나게 되는 사람들의 사연과 그들을 포용하는 오베의 모습이 따스하게 그려진다. 그에게 행동의 기준은 바로 소냐가 좋아하느냐 아니냐이고, 소냐가 원하는 삶은 바로 자신만이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한 삶이기 때문이다.


이란인 여자, 비만인 남자, 치매에 걸린 친구, 동성애자 등이 오베의 주변에서 살아간다. 사회에서 무시당하거나 차별당하는 존재들이기 쉬운데, 오베는 이들에게 어떤 편견을 갖지 않는다. 그들은 그냥 이웃일 뿐이다. 그 이웃들이 지닌 문제들에 대처하는 오베의 행동에는 어떤 편견도 없다. 그는 그냥 자신의 원칙대로만 행동할 뿐이다.


지켜야 할 것과 해서는 안 될 것. 그리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은 도와야 한다는 것. 그래서 그는 기차역에 떨어진 사람을 구하면서도 어떤 보상도, 또 어떤 칭찬도 받길 원하지 않는다. 그 일은 그가 해야만 할 일이었을 뿐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일은 전혀 하고자 하지 않는 오베.


마찬가지로 자신의 행동이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도 참지 못하는 오베... 그렇기 때문에 그는 자살에도 번번이 실패할 수밖에 없다. 우선 남들의 일을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소냐에게 빨리 못 가서 미안하다고 하면서도, 그런 문제를 외면하고 갔을 때 소냐가 싫어할 것을 알기에...


또 오베는 자신의 일은 자신이 해결해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다. 이런 소신 때문에 남들과 부딪치기도 하지만, 그 소신을 행동으로 옮기는 실력 때문에 다른 많은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게 된다.


결국 오베는 자살에 실패하고 삶을 마치게 된다. 간단하게 치러달라는 그의 장례식에 모인 많은 사람들... 이것은 바로 원칙은 포용에서 빛을 발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고집불통인 한 남자 이야기가 아니라 원칙을 지키면서 그 원칙으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는 한 남자, 원칙이 배제가 아니라 포용이 됨을 이 소설은 잘 보여주고 있다.


원칙은 배제가 아니라 포용이고, 바로 사랑임을, 오베라는 남자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소설이다. 그의 소냐에 대한 사람이 주변으로 잔잔하게 번져가는 과정, 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 과정에 함께 할 수 있다. 


마음을 따스하게 하는, 마음이 감동으로 차오르는 그런 소설이었고, 영화도 있다고 하는데, 찾아서 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 소설이었다. 감동이 진한 여운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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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22-04-25 21: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가 읽은 첫번째 소설이에요. 오랜만에 보니까 넘 반갑네요🙂

kinye91 2022-04-25 21:21   좋아요 2 | URL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소설이었어요. 읽으면서 즐거웠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