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중국사 1 - 중국 고대부터 전한시대까지 이야기 역사 11
김희영 지음 / 청아출판사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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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적으로 알고 있는 중국 역사에 대해서 처음부터 개괄적으로 훑어보기로 했다. 어려운 전문서적을 읽기는 힘들다고 생각해,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을 고르기로 했다.


사실 역사책을 쉽고 재미있게 읽으려면 문화사보다는 정치사를 읽는 편이 좋다. 숱한 인물들이 갈등하고 해결이 되는 과정을 읽는 일은 소설을 읽는 일만큼이나 흥미진진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이야기 중국사 책은 문화, 경제를 다루기도 하지만 주로 정치를 다루고, 정치 사상을 깊게 다루기보다는 인물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기에 중국의 역사를 개괄적으로 훑는데는 적격인 책이다.


그동안 역사적 사실로 밝혀진 내용들이 있어 개정이 되어야 할 내용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정치적으로 일어났던 사실들은 바뀌는 경우가 별로 없고, 그 사실에 대한 해석에는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일어난 일 자체는 바뀌지 않는다.


세세한 내용은 이 책을 읽은 다음에 채워넣어도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 읽는데, 중국 고대 역사에서 요 임금, 순 임금까지는 신화와 혼동이 되어 있으니, 많이 들어본 일화들이 이 책에도 많이 실려 있다.


그동안 알고 있었거나, 잊혀졌던 일들을 읽으면서 다시 떠올리게 된다. 요-순 시대를 지나 이제 하나라, 은나라 일이 서술되고 있다.


물길을 잡은 우 임금 이야기, 폭군의 대명사가 된 걸, 주 임금 이야기, 그리고 그들을 멸망으로 이끌었던 미녀, 경국지색이라는 말을 만들어낸 말희, 달기 이야기...


그 다음은 주나라다. 문왕과 무왕은 우리나라 조선 시대 지식인들이 추종했던 인물이고, 이 주나라의 법도를 따르려고 했던 공자가 다음 시대에 나오게 되니, 주나라 이야기에 이어, 춘추전국시대 이야기가 이어진다.


수많은 고사성어를 만들어낸 춘추전국시대. 그리고 제자백가로 중국 철학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이 때 활동했음을... 공자, 맹자, 순자를 비롯한 유가와 노자와 장자를 일컫는 도가, 한비자 중심의 법가, 묵자의 겸양가 등등.


전국시대를 통일한 진시황. 그에 대한 평가는 역사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중국의 혼란을 끝낸 사실은 변함이 없다. 전쟁을 종식시킨 왕. 그것이 중국 역사에서 진시황이 차지하는 위치라고 할 수 있다.


그 다음부터는 혼란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통일왕조가 중국에 들어서게 된다. 진나라가 망한 뒤 잠시 전쟁이 있었지만 한나라로 통일이 되고, 한나라부터 중국의 지배 이념으로 유교가 자리잡게 된다.


유교가 자리잡는 과정은 법만으로는 통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법은 최소한에 그치고 사람들이 안정되게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고 법으로만 다스리려고 하면 사람들은 안정을 누릴 수가 없다.


법가에 해당하는 법을 최우선시하던 상앙을 보더라도 그렇다. 자신이 만든 법에 걸려 죽음에 이르게 되는 사람. 그리고 그런 법가를 우대했던 진나라는 오래도록 왕조을 유지할 수 없었다. 천하를 통일하는 데는 일사불란한 행동을 요구하는 법가가 필요할지 몰라도, 왕조를 유지하는데는 법가보다는 유가가 더 효율적임을 중국 역사에서 배울 수 있다.


타산지석이라고... 아니면 반면교사라고, 중국 역사에서 춘추전국시대를 끝내고 통일을 이룩한 진나라와 한나라 이야기에서 정치행태에 대해서 배워야 한다. 이것이 역사를 읽는 이유이기도 하다.


1권에서는 이렇게 법가만으로는 안 된다는 사실, 그리고 자신의 뜻을 이루려는 정치가는 반대되는 편에 선 사람이라도 필요하고 능력이 있으면 등용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제나라 환공과 관중이다. 관중은 환공을 죽이려 했던 인물. 그러나 환공은 관중을 등용함으로써 춘추시대에 패자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시대의 필요를 읽는 눈, 그리고 사람을 보는 눈. 정치란 결국 법이 아니라 사람이 하는 일 아니겠는가.


더불어 주변 인물들, 특히 가족 및 친인척 관리에 힘써야 한다는 점. 이것이야 말로 역사를 통해서 계속 경계되어왔던 사실 아니던가.


춘추전국시대도, 진나라, 한나라 역시 부패하면서 발흥하는 친인척 세력들을 통제하지 못하면서 멸망의 길로 접어들었음을 1권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이 책에서는 고대부터 한나라 전기, 즉 왕망에 의해서 신나라가 세워지는 15년, 그리고 다시 한나라가 세워지는 때까지가 서술된다.


중국 역사의 초창기, 현대 중국의 토대를 다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2권으로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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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돌 키우기
한승원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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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작가가 평생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준다. 보통의 자서전처럼 내용을 길게 서술하지 않고, 제목마다 짧은 글을 싣고 있다.


길어야 4쪽을 넘기지 않는 글들이 모여 작가 한승원의 삶을 보여준다. 태어나면서부터 지금 80을 넘은 나이까지의 삶.


작가의 삶을 알면 작품을 더 잘 이해할까? 아마도 이해의 폭을 넓힐 수는 있겠지. 그렇지만 그 점을 떠나서 작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책을 읽으면 또다른 한 편의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사실을 다루고 있지만, 소설가로 만난 기억이 자꾸만 사실과 허구를 넘나들게 한다. 그러다가 그의 작품이 이런 과정을 거쳐서 나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도 된다.


뒤로 갈수록 자신의 작품, 특히 역사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정약전, 정약용, 원효, 초의 선사'를 다룬 소설들 이야기를 읽으면 그 작품들을 창작한 배경에 대해 알 수 있어서 좋다.


여기에 작가의 가족 이야기. 이미 한승원은 한강의 아버지로 알려져 있지 않은가. 한승원의 딸 한강에서 한강의 아버지 한승원이라고 불리게 되니, 아버지이자 선배 작가인 한승원 처지에서는 이보다 더 기쁜 일이 없을 터이다.


자기를 넘어서는 자식을 보는 일, 부모의 기쁨일테고, 자신보다 더 알려지는 소설을 쓰는 자식을 보는 일은 작가로서도 기쁜 일일테니 말이다. 여기에 이름이 한강보다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한규호(큰아들)와 한강인(작은아들) 역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고 하니, 집안이 예술가 집안이라고 할 수 있다.


전라도 섬에서 자란 한승원, 자신은 바다에 관해서는 동시대 작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잘 쓸 수 있다고 한 사람. '목선'으로 작가로 등단했다고 할 수 있으니, 이는 젊은 시절 자신의 경험을 소설 속에 녹여냈다고 할 수 있다.


그 작품을 출발점으로 자신이 겪어왔던 일들을 소설을 통해서 풀어내지만, 참여냐 순수냐 하는 논쟁에서는 어느 쪽에도 발을 딛지 않고 예술은 진리 구현을 목표로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작품활동에만 매진했다고 하는 그.


제목인 '산돌 키우기' 세상에 돌을 키울 수 있나? 하지만 한승원이 어렸을 적에 동네 형으로부터 들은 이야기, 산돌이라고 키울 수 있는 돌이 있다고, 대신 바르게 지내야 돌이 자란다고.. 그 돌을 키우기 위해 남 몰래 노력했던 모습. 그것이 비록 거짓이었을지라도... 한승원의 삶은 그 산돌 키우기에서 벗어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산돌을 키우기 위해서 지녀야 했던 마음가짐과 행동이 결국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고 해야 한다. 그러니 제목을 '산돌 키우기'라고 했겠지.


산돌 키우기라는 말을 바꾸면 진리 찾기, 진리를 행하기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작품 속에 진리를 담아야 한다는 말. 작품을 통해서 인류에게 진리를 안겨줄 수 있는 작가로 살아가려고 하는 모습.


그런 모습이 나중에 역사적 인물을 소설을 통해 형상화함으로써 나타나게 된다. 그가 참여냐 순수냐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모습도 바로 여기에서 비롯되었을 것이고.


산돌 키우기 방법을 이 자서전에 나와 있는 대로 소개한다. 어릴 적 이런 거짓에 속아넘어간다면, 그 또한 자연스레 윤리를 익히게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하얀 거짓말이라고 해야 하나...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해서 저절로 바른 행동을 하는 하는 그런 거짓말. 


"그늘진 땅속에 묻어놓고 쌀이나 보리 씻은 뜨물을 날마다 한번씩 부어주어야 하는데, 그때부터는 절대로 파보아서는 안 되고, 참을성 있게 자라나기를 기다려야 한다. 산돌을 키우는 사람은 남의 못자리 논에 돌을 던진다거나, 남의 감을 따먹는다거나, 남의 수수모가지를 자른다거나, 누구를 때린다거나, 뱀이나 개구리를 잡아 죽인다거나 그래서는 안 된다. 거지가 밥을 얻으러 오면 후하게 곡식을 퍼주기도 하고, 맛있는 것은 동무하고 나눠 먹고, 책도 돌려 보고, 모르는 것을 가르쳐주기도 하고, 싸우지도 말고, 양보를 하고 …… 그래야 그 돌이 쑥쑥 잘 자란단다." (72-73쪽)


이 산돌을 한승원은 자신의 삶을 마무리지어야 하는 노년에 다시 마당에 심는다. 그에게 산돌 키우기는 거짓이 아니라 삶을 완성하는 진실, 진리였다.


"망구(83세)의 나이인 나는 내 토굴 뜨락에 산돌 하나를 묻어놓고 키운다. 그 돌이 내가 저 세상으로 떠나간 다음에 보라색 자색의 유리 기둥처럼 자라기를 희망하며." (75쪽) 


작가 한승원. 그는 소설가로 등단했지만, 시도 써서 발표를 했고, (어쩌면 이 점에서 딸인 한강도 아버지와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강 역시 소설과 시를 함께 쓰고 있으니) 대학에서 후배들을 지도하기도 한다.


한국 현대사의 질곡을 온몸으로 겪은 사람. 그런 삶 속에서도 작가로서의 길을 잃지 않고 꾸준히 작품을 써온 사람. 그런 한승원의 삶에 대해서 이보다 더 잘 말해줄 수 있는 책은 없으리라.


이 책을 읽으면서 한승원의 작품을 찾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편 한 편 찾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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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미술관 - 아름답고 서늘한 명화 속 미스터리 기묘한 미술관
진병관 지음 / 빅피시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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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나라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그림을 책 한 권에 모았다. 그리고 미술관처럼 분류를 했다. 미술관에 전시실에 따라서 작품들이 배열되어 있듯이, 이 책에도 각 전시실을 마련하고 작품들을 배치했다.


그래서 각 관에 따라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물론 작품에 대한 풍부한 설명이 곁들여 있어서 작품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된다. 작품 이해뿐만 아니라 작품들이 칼라로 인쇄되어 있고, 크기도 적당해서 그림을 감상하는데 좋다.


1관은 취향의 방이다. 앙리 루소, 한스 볼롱기에르, 에두아르 마네, 에드가르 드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를 다루고 있다.


2관은 지식의 방이다. 미술과 관련된 지식들을 알려주고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아뇰로 브론치노, 오노레 도미에, 조토 디본도네를 다루고 있다. 


3관은 아름다움의 방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아름다움에 더해 과연 아름다움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관이다. 마리 로랑생, 렘브란트 판레인, 프랑수아 부셰, 라파엘로 산치오를 다루고 있다.


여기서 라파엘로가 그린 '아테네 학당'에 대해서 어디선가는 들어보았지만, 다시 알게 된 사실이 있다. 과연 아름다움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알려지지 않은, 또는 당시에 천시되거나 무시되었던 존재들을 작품에 들여왔다면 그것 역시 아름다움이라고 할 수 있겠단 생각. 아름다움의 방에도 어울리지만, 지식의 방에도 어울릴 그림...


이 그림에 여인이 등장한다는 사실... 눈여겨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여자의 이름은 히파티아... 고대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사람. 그리고 또 이 그림에 아랍인이 등장한다고 한다. 그리스 철학을 아랍어로 옮기고 공부한 사람. 이븐 루시드.


'아테네 학당'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리스 철학자들만이 아니라 이렇게 세계 철학(수학) 세계에서 알면 좋을 사람들을 함께 그렸다는 점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4관은 죽음의 방이다. 죽음을 다룬 화가들이야 많지만, 이 책에서는 빈센트 반 고흐, 테오도르 제리코, 라비니아 폰타나, 페르디난트 호들러, 프란시스 고야를 다루고 있다. 


5관은 비밀의 방이다. 작품 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 또는 아직도 논쟁 중인 여러 의미를 지니고 있는 그림들에 대한 소개다. 디에고 벨라스케스, 장 프랑수아 밀레, 히에로니무스 보스, 한스 홀바인, 안드레아 만테냐를 다루고 있다.


이렇게 총 5관으로 구성하여 각 관에 맞게 그림을 소개하고 있다. 그 그림들을 통해서 세계 미술관 이곳저곳을 다니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작품을 만날 수 있게 됐다. 물론 미술관에 가서 직접 작품의 원본을 보는 것이 더 좋겠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책이 차선의 미술 감상 책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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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제목을 봤을 때 착각을 했다. 쥐와 굴이라고 하니 쥐가 사는 장소를 뜻하는 굴인줄 알았다. 그런데 시를 읽어보니 그런 동굴할 때 굴이 아니라 먹는 굴을 말하고 있다. 쥐와 먹는 굴이라니...


  카프카가 쓴 소설 중에 굴이 있는데, 그렇게 자기만의 공간을 만들어가는 존재를 시로 썼다고 생각했다가, 이게 아니네 하는 생각을 했으니...


  왜 쥐와 굴이 함께 나오지? 쥐가 못 먹는 음식이 없다고 하지만, 굴을 잘 먹던가? 굴을 구하기는 쉽지 않을텐데... 사람들도 굴을 자주, 많이 먹지는 않으니...


 시에는 쥐와 노인이 주로 나온다. 이 시집에서 쥐를 다루면서 도시, 집, 방, 그리고 노인을 다루고 있다. 오히려 시집 제목이 쥐와 굴이 아니라 쥐와 노인이라고 하면 더 좋지 않았을까?


그럼 읽는 독자는 현대를 살아가는 소외된 존재를 표현한 시라고 쉽게 생각할텐데... 시인은 이렇게 쉽게 생각하기를 멈추라고, 더 생각해 보라고 하는지도 모른다.


쥐는 도시와 집, 방에서 쫓아내야 할 존재...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활동할 수밖에 없는 존재. 자신의 먹이를 남에게 의존해야 하는 존재. 그런 존재다. 있어도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존재.


노인도 그렇게 변해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초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노인문제가 대두하고 있는데, 그들을 우리와 같이 살아가는 존재,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라기보다는 짐이 되는 존재로 여기고 있지 않나.


그런 노인들에게 무릎은 자신이 힘이 없어졌음을 상징하는 존재 아니겠는가? 시인은 '쥐와 굴'이란 시에서 '쇠고리에 걸어둘 / 한 솥 뼈만 남은 / 노인이여 / 공기처럼 소파 위에 얹어놓은 / 무릎이여'(11쪽)라고 표현하고 있다. 노인은 스스로 움직이기 힘든 상태. 


그러면서 '어른이 된다는 건 자기 손으로 수염을 쓰다듬는 일' (12쪽)이라고 표현한다. 자기 스스로 자신을 돌볼 줄 아는 존재, 그런 존재가 어른이다. 


이와 더불어 시인은 '쥐와 노인'(58-59쪽)이라는 시에서 어떤 노인을 원하는지를 말하고 있다. 기존 통념과는 좀 다른. '이봐, 노인 / 늦잠을 자는 노인은 없나? 열 시 열한 시까지 자는 노인 / 나는 그런 노인이 될 거다' (58쪽)고 하고 있으니... 노인이라고 자신만의 삶이 왜 없겠는가.


'무릎과 발목, 심장이나 얼굴이 / 굴처럼 생긴' (13쪽)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 표현에서 굴처럼이란 말을 생김새가 아니라 '유연한'이라고 읽으면 경직됨이 죽음과 가깝다면 유연함은 삶과 가까우니 쥐와 노인에게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자기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존재, 그런 존재는 무릎을 세우고 사는 존재가 아닐까 한다. 있어도 없는 것처럼 여겨지는 존재지만, 이들은 엄연히 존재한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쥐와 굴'에서 마지막 구절, '쥐는 무릎을 완성한다'(14쪽)고 하고 있으니... 무릎을 완성한다는 말은 자신의 의지로 꿇을 수도 (초자연적인 존재에게) 있고, 무릎을 펴고 일어나 걸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제 무릎은 그냥 공기처럼 소파 위에 얹어놓은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의지로 꿇을 수도 펴고 걸을 수도 있는 존재인 것이다. 현대 일상에 치여 살아가는 우리들, 어쩌면 이렇게 무릎을 완성하지 못한 존재들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무릎을 완성하고 자기 의지로 살아가야 함을 이 시를 통해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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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 주택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81
유은실 지음 / 비룡소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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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따스해지는 소설이다. 어려운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그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 주눅든 모습을 발견하기 보다는, 씩씩하게 그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모습을 만나게 된다.


어렵다고 인상쓰고 포기하고 더 자신을 힘들게 하는 사람들을 보면 바라보는 사람도 힘든데, 밝고 힘차게 살아가는 사람을 보면 보는 사람도 힘을 얻게 된다.


소설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비춰주면서 어둠 속에서 좌절해 가는 사람들을 등장시켜서 그런 환경을 고쳐야 한다는 의지와 행동을 유발할 수도 있지만, 어두운 면에서도 밝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여주면서, 그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 소설은 우리 사회에서 통념이라고 할 수 있는 여러 관점들을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


우선 정상가족이라는 말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소설 속 주인공인 수림은 남들과 다른 환경에서 자랐다. 부모에게서 떨어져 할아버지와 순례 씨(소설에서 순례 주택의 주인인 여성 이름이다. 할머니라고 불러야 하지만, 할머니보다는 순례 씨로 불리기를 원한다)의 보살핌으로 자라게 된다.


이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수림은 순례 주택을 자신의 집처럼 생각한다. 오히려 부모와 함께 살게된 아파트를 낯설어하면서. 


순례씨와 할아버지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이 재혼을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결국은 결혼이라는 틀로 묶이지 않는다. 그러면서 친구로, 동반자로 함께 살아간다. 같은 공간이 아니라 순례 주택이라는 같은 장소에서. 소설 속 수림이나 순례 씨를 통해 정상가족이라는 말에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된다.


주거 공간으로 사람들을 분리하는 일이 잘못이라는 점을 깨닫게 한다. 소설 속에서도 이 문제가 다뤄지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종종 붉어지는 문제, 아파트 정문을 폐쇄해서 다른 사람들이 드나들지 못하게 한다든지, 다른 거주지 아이들과 같은 학교에 배정되지 못하게 한다든지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니...


소설에서도 아파트 사람들 중에 특히 엄마가 주택 단지에 사는 사람들을 비하한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그것도 주인공인 수림의 엄마. 인터뷰에서도 그런 말을 했다가 도처에서 비난을 받은 엄마. 이렇게 주거 공간에 따른 갈등이 소설에 나오지만, 그것을 전면에 다루지는 않는다. 그냥 지나가듯이 수림의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다. 물론 엄마는 그 일로 인해 사람들의 비난을 받고 아파트 카페 운영진에서도 밀려나고 만다. 암암리에 구분을 해도 드러내놓고 구분을 하는 모습은 어디서도 인정받지 못한다.


이와 더불어 소설은 주거가 사람들이 풍요롭다는 증거라는 사실을 부정하고 있다. 주거 장소의 차이가 차별로 나타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소설에서는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보다 주택 단지에 사는 사람들이 더 실속있고 알차게 살고 있다는 점을 드러내면서 사는 곳만으로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됨을 생각하게 해주고 있다.


마찬가지로 집을 투자의 대상, 돈벌이의 수단, 그리고 부를 과시하는 대상으로 여기는 풍조를 비판하고 있다. 순례 씨는 집세를 결코 비싸게 받지 않는다. 보증금이 있지만, 어려운 사람에게는 보증금조차 받지 않는다. 그렇지만 공동생활에서 지켜야 할 일들은 재계약의 조건이 된다. 돈보다는 공동체를 우선하는 모습. 옥상을 공동의 공간으로 만들어놓고, 누구나 자유롭게 쓸 수 있게 하는 순례 씨.


이런 모습을 보면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던 전세, 월세, 집값을 생각하게 된다. 과연 집이 무엇인가? 적절한 집값은 얼마인가 순례 씨를 통해 집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주거 장소의 차이에 따른 차별과 더불어 고학력 실업자 문제 (소설 속 박사는 시간 강사로 전전하고, 수림 아빠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둘이 대응하는 방식은 다르다. 수림 아빠는 전임이 되기 위해 전념하고 다른 일은 전혀 하지 않는 전형적인 강단형 학자라면, 수림 주택에 사는 박사는 시간 강사 일을 하면서도 온갖 다른 일을 마다하지 않는 현실형 학자라고 할 수 있다)를 드러내고 있다.


참 심각한 주제인데, 순례 주택에 사는 박사의 삶을 통해서도 그들이 얼마나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이런 박사와 대조되어 나오는 인물이 순례 주택에 세들어 사는 미용실 주인의 아들이다.


공부는 못한다. 그래, 이 아이는 고학력 실업자가 될 가능성이 없다. 우선 고학력자가 되지 못할 테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될까? 이 아이에게는 확고한 목표가 있다. 미용사가 되는 일. 그만큼 손재주가 좋다. 그리고 자신도 그것을 알고 그쪽으로 나아가려 한다.


이런 아이에게 대학교육이 필요할까? 고학력이 필요할까? 아니다. 다른 일을 하지 못하는 고학력자보다는 자신의 앞가림을 할 수 있는 이런 아이가 세상에 더 필요하다. 


그러니 학교 성적이 나쁘다고 구박할 일이 아니다. 온갖 특목고를 만들어 (특목고라는 이름으로 어린 시절에 진로를 정하고, 그 쪽 방면으로 뛰어난 인재를 키우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지만, 과연 그런가? 우리나라 특목고는 좋은 대학을 가게 하는 특수한 목적을 지닌 고등학교의 줄임말 아니던가. 특목고 출신들이 어느 대학을 갔는지, 어떤 학과를 갔는지 살펴보라. 오죽했으면 서울영재고(예전 서울과학고)같은 학교에서 의대에 진학하면 학비를 다 반납하라고 하겠는가) 성적 우수자를 우대하는 정책을 펴고 있는 현실에서, 특성화고(어린 시절에 진로를 정하고, 그 쪽 방면으로 나아가는 학생을 키우겠다는 학교... 특목이 아니라 특성이다. 성적을 가지고 이미 차별을 하고 있다)에 진학하는, 또는 진학하겠다는 학생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지 소설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성적 문제는 수림과 언니 미림 사이에서도 서술되고 있다. 성적만이 우선이라는 가정이 어떤 모습인지를 미림과 미림을 대하는 가족들의 모습을 통해서 볼 수가 있다. 마찬가지로 가정에서 수림의 위치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눅들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는 인물을 통해 소설은 밝은 분위기를 유지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으니, 소설을 통해서 대리 만족을 할 수밖에 없다.


그밖의 인물들 역시 나름 사연을 지니고 있고, 우리 사회의 한 면을 보여주고 있지만, 이들은 순례 주택에 살면서 서로를 인정하고 이해하고 도우며 살아가고 있다.


특히 순례 주택의 주인인 순례 씨는 불의한 돈을 참지 못하는, 자신의 재산을 불리는 목적으로 집을 이용하지 않고,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장소로 집을 생각하고 있으니... 그런 순례 씨의 모습을 통해서 집을 재산가치로만 여기는 사람들을 비판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저런 사건들이 일어나고, 그 사건들을 수림의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지만, 소설은 우리 사회가 지닌 모습을 개선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사람과 사람이 부대끼면서 살아가다 보면 서로가 서로를 돕게 되고, 그때는 겉모습이 아니라 그 사람의 진면목을 알아가게 된다는 그런 소설.


한번 읽기 시작하면 끝을 보아야 할 정도로 몰입할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소설 속에 나온 순례 씨의 좌우명이라 할 수 있는 말... 수림이가 가슴에 새기고 있는 말... 이 말이 이 소설을 대변하고 있다고 본다. 우리 역시 이 말을 명심하면 좋겠다.


어두우면 어두워서 밝음을 생각할 수 있어서 감사하고, 그 어둠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게 해줘서 감사하다고... 이때 감사는 현실에 만족하고, 현실에 주저앉으라는 소리가 아니다. 할 일이 있다는 점에 감사하라는 말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니 소설에 나오는 어둠들, 우리 사회에 있는 이런 어둠들, 가볍게 지나가지 않고 우리가 밝음으로 바꾸어야 함을 명심해야 한다.


순례 씨의 말은 다음과 같다.


"관광객은 요구하고, 순례자는 감사한다." (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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