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 주택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81
유은실 지음 / 비룡소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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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따스해지는 소설이다. 어려운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그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 주눅든 모습을 발견하기 보다는, 씩씩하게 그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모습을 만나게 된다.


어렵다고 인상쓰고 포기하고 더 자신을 힘들게 하는 사람들을 보면 바라보는 사람도 힘든데, 밝고 힘차게 살아가는 사람을 보면 보는 사람도 힘을 얻게 된다.


소설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비춰주면서 어둠 속에서 좌절해 가는 사람들을 등장시켜서 그런 환경을 고쳐야 한다는 의지와 행동을 유발할 수도 있지만, 어두운 면에서도 밝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여주면서, 그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 소설은 우리 사회에서 통념이라고 할 수 있는 여러 관점들을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


우선 정상가족이라는 말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소설 속 주인공인 수림은 남들과 다른 환경에서 자랐다. 부모에게서 떨어져 할아버지와 순례 씨(소설에서 순례 주택의 주인인 여성 이름이다. 할머니라고 불러야 하지만, 할머니보다는 순례 씨로 불리기를 원한다)의 보살핌으로 자라게 된다.


이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수림은 순례 주택을 자신의 집처럼 생각한다. 오히려 부모와 함께 살게된 아파트를 낯설어하면서. 


순례씨와 할아버지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이 재혼을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결국은 결혼이라는 틀로 묶이지 않는다. 그러면서 친구로, 동반자로 함께 살아간다. 같은 공간이 아니라 순례 주택이라는 같은 장소에서. 소설 속 수림이나 순례 씨를 통해 정상가족이라는 말에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된다.


주거 공간으로 사람들을 분리하는 일이 잘못이라는 점을 깨닫게 한다. 소설 속에서도 이 문제가 다뤄지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종종 붉어지는 문제, 아파트 정문을 폐쇄해서 다른 사람들이 드나들지 못하게 한다든지, 다른 거주지 아이들과 같은 학교에 배정되지 못하게 한다든지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니...


소설에서도 아파트 사람들 중에 특히 엄마가 주택 단지에 사는 사람들을 비하한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그것도 주인공인 수림의 엄마. 인터뷰에서도 그런 말을 했다가 도처에서 비난을 받은 엄마. 이렇게 주거 공간에 따른 갈등이 소설에 나오지만, 그것을 전면에 다루지는 않는다. 그냥 지나가듯이 수림의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다. 물론 엄마는 그 일로 인해 사람들의 비난을 받고 아파트 카페 운영진에서도 밀려나고 만다. 암암리에 구분을 해도 드러내놓고 구분을 하는 모습은 어디서도 인정받지 못한다.


이와 더불어 소설은 주거가 사람들이 풍요롭다는 증거라는 사실을 부정하고 있다. 주거 장소의 차이가 차별로 나타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소설에서는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보다 주택 단지에 사는 사람들이 더 실속있고 알차게 살고 있다는 점을 드러내면서 사는 곳만으로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됨을 생각하게 해주고 있다.


마찬가지로 집을 투자의 대상, 돈벌이의 수단, 그리고 부를 과시하는 대상으로 여기는 풍조를 비판하고 있다. 순례 씨는 집세를 결코 비싸게 받지 않는다. 보증금이 있지만, 어려운 사람에게는 보증금조차 받지 않는다. 그렇지만 공동생활에서 지켜야 할 일들은 재계약의 조건이 된다. 돈보다는 공동체를 우선하는 모습. 옥상을 공동의 공간으로 만들어놓고, 누구나 자유롭게 쓸 수 있게 하는 순례 씨.


이런 모습을 보면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던 전세, 월세, 집값을 생각하게 된다. 과연 집이 무엇인가? 적절한 집값은 얼마인가 순례 씨를 통해 집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주거 장소의 차이에 따른 차별과 더불어 고학력 실업자 문제 (소설 속 박사는 시간 강사로 전전하고, 수림 아빠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둘이 대응하는 방식은 다르다. 수림 아빠는 전임이 되기 위해 전념하고 다른 일은 전혀 하지 않는 전형적인 강단형 학자라면, 수림 주택에 사는 박사는 시간 강사 일을 하면서도 온갖 다른 일을 마다하지 않는 현실형 학자라고 할 수 있다)를 드러내고 있다.


참 심각한 주제인데, 순례 주택에 사는 박사의 삶을 통해서도 그들이 얼마나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이런 박사와 대조되어 나오는 인물이 순례 주택에 세들어 사는 미용실 주인의 아들이다.


공부는 못한다. 그래, 이 아이는 고학력 실업자가 될 가능성이 없다. 우선 고학력자가 되지 못할 테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될까? 이 아이에게는 확고한 목표가 있다. 미용사가 되는 일. 그만큼 손재주가 좋다. 그리고 자신도 그것을 알고 그쪽으로 나아가려 한다.


이런 아이에게 대학교육이 필요할까? 고학력이 필요할까? 아니다. 다른 일을 하지 못하는 고학력자보다는 자신의 앞가림을 할 수 있는 이런 아이가 세상에 더 필요하다. 


그러니 학교 성적이 나쁘다고 구박할 일이 아니다. 온갖 특목고를 만들어 (특목고라는 이름으로 어린 시절에 진로를 정하고, 그 쪽 방면으로 뛰어난 인재를 키우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지만, 과연 그런가? 우리나라 특목고는 좋은 대학을 가게 하는 특수한 목적을 지닌 고등학교의 줄임말 아니던가. 특목고 출신들이 어느 대학을 갔는지, 어떤 학과를 갔는지 살펴보라. 오죽했으면 서울영재고(예전 서울과학고)같은 학교에서 의대에 진학하면 학비를 다 반납하라고 하겠는가) 성적 우수자를 우대하는 정책을 펴고 있는 현실에서, 특성화고(어린 시절에 진로를 정하고, 그 쪽 방면으로 나아가는 학생을 키우겠다는 학교... 특목이 아니라 특성이다. 성적을 가지고 이미 차별을 하고 있다)에 진학하는, 또는 진학하겠다는 학생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지 소설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성적 문제는 수림과 언니 미림 사이에서도 서술되고 있다. 성적만이 우선이라는 가정이 어떤 모습인지를 미림과 미림을 대하는 가족들의 모습을 통해서 볼 수가 있다. 마찬가지로 가정에서 수림의 위치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눅들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는 인물을 통해 소설은 밝은 분위기를 유지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으니, 소설을 통해서 대리 만족을 할 수밖에 없다.


그밖의 인물들 역시 나름 사연을 지니고 있고, 우리 사회의 한 면을 보여주고 있지만, 이들은 순례 주택에 살면서 서로를 인정하고 이해하고 도우며 살아가고 있다.


특히 순례 주택의 주인인 순례 씨는 불의한 돈을 참지 못하는, 자신의 재산을 불리는 목적으로 집을 이용하지 않고,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장소로 집을 생각하고 있으니... 그런 순례 씨의 모습을 통해서 집을 재산가치로만 여기는 사람들을 비판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저런 사건들이 일어나고, 그 사건들을 수림의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지만, 소설은 우리 사회가 지닌 모습을 개선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사람과 사람이 부대끼면서 살아가다 보면 서로가 서로를 돕게 되고, 그때는 겉모습이 아니라 그 사람의 진면목을 알아가게 된다는 그런 소설.


한번 읽기 시작하면 끝을 보아야 할 정도로 몰입할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소설 속에 나온 순례 씨의 좌우명이라 할 수 있는 말... 수림이가 가슴에 새기고 있는 말... 이 말이 이 소설을 대변하고 있다고 본다. 우리 역시 이 말을 명심하면 좋겠다.


어두우면 어두워서 밝음을 생각할 수 있어서 감사하고, 그 어둠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게 해줘서 감사하다고... 이때 감사는 현실에 만족하고, 현실에 주저앉으라는 소리가 아니다. 할 일이 있다는 점에 감사하라는 말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니 소설에 나오는 어둠들, 우리 사회에 있는 이런 어둠들, 가볍게 지나가지 않고 우리가 밝음으로 바꾸어야 함을 명심해야 한다.


순례 씨의 말은 다음과 같다.


"관광객은 요구하고, 순례자는 감사한다." (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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