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에 가다. 예전에 하회마을, 병산서원, 도산서원을 갔었는데, 하도 오래되어 한 번 가보고 싶었고, 4대강 사업으로 낙동강이 많이 망가졌으리라는 생각에, 설마 하회마을과 병산서원의 풍경이 망가지지는 않았겠지 하는 확인하는 마음도 있었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하회마을은 갔었지만, 하회마을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부용대는 오르지 못했기에 이 참에 부용대도 들러보자고 마음 먹고 떠난 길.

 

토요일, 늘 여행객이 많은 때, 이 때 도로는 차들로 몸살을 앓는데... 이걸 고려해서 아침 일찍 떠나기로 하다. 덕분에 그다지 막히지 않아 쾌적한 여행이 되었다. 점심을 먹고 부용대에 오르려던 일정이 마땅한 음식점을 찾지 못한 관계로 그냥 부용대로 직행.

 

화천서원을 끼고 부용대로 오르는 길은 완만하고, 산책하기에 좋은 길이었다. 소나무들의 냄새도 좋고... 한 200미터 정도를 오르니 시야가 탁 트인다. 부용대다. 낙동강 건너 편으로 하회마을이 정말 물이 돌아가는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기와집과 초가집이 어울린 마을의 정경이 아름답다. 와 좋다. 이 여행의 처음을 이렇게 기분 좋게 시작하다니... 예감이 좋다.

하회마을 쪽으로 가기 전에 화천서원을 들르고, 옥연정사를 들르다. 좋은 곳에 위치한 건물들인데, 옥연정사는 특히 류성룡과 관련이 있다고 하니... 이 곳에서 조용히 집필을 할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징비록은 이렇게 해서 태어났으리라.

 

 

 

이제는 하회마을. 어라 이렇게 큰 주차장이 있었던가? 어, 음식점들이 이렇게 나와 있다니... 여기서 점심을 해결하고 표를 끊었는데... 차를 타고 가야 한단다. 셔틀 버스가 온다고. 예전엔 분명 그냥 걸어갔는데.. 바로 입구였는데...이게 무슨 일이지? 너무 많이 변했나?

 

셔틀을 타고 조금 가니 하회마을 입구가 나온다. 여기부턴 낯익다. 그래 이랬었어. 이게 하회마을이야. 정말 많이 변했네... 세계문화유산이 되어서 그런가.

 

하회마을의 건물들 하나하나 구경하고 나오는 길. 이제는 병산서원으로 간다. 다행히 하회마을은 4대강 사업의 여파를 받지 않았나 보다 안심하다.

 

병산서원... 처음 이곳에 들렀을 때 넋을 잃고 말았었다. 이렇게 좋은 곳에 이런 서원이 있다니... 기대없이, 울퉁불퉁한 길을 차로 갔을 때, 뭐 이런 곳에 볼만한 무엇이 있으려고 했다가 서원의 만대루에 올랐을 때 그 감격이란? 그 감동이란? 와 이곳이라면 정말 공부가 잘됐겠다 싶은 마음이 절로 들었으니...

 

이번에도 그 감동은 그대로 였는데, 아쉬운 점은 만대루에 오를 수 없었다는 것. 아마도 사람들의 발길이 너무 힘들었나 보다. 만대루 너머로 환하게 펼쳐진 낙동강의 백사장, 그리고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산들. 좋다. 여전히 좋구나. 게다가 들어가는 길이 아직도 비포장도로다. 이거 예전 정취를 불러일으켜 더 좋다.

 

정말 성공적인 여행이다. 이제는 안동시청을 가운데 두고 반대편이다. 도산서원 쪽으로 가자.

 

낮을 보내고 잠자리를 찾아가는 길이다. 도산서원이나 이육사 문학관이나 분명 관람시간이 지났을터. 먼저 잠자리를 잡고, 이곳들은 다음 날 들르기로 하다. 길을 가다 보니 안동군자마을이라고 나온다. 군자마을? 처음 듣는 곳인데, 하회마을에서 차를 마시며 주인장이 가르쳐준 곳이기도 하다. 좋다고 한다. 잠을 잘 수도 있고.

 

한옥들이 정말 멋지게 자리를 잡고 있다. 예전 세도가들의 집들은 이렇구나. 이들은 이렇게 멋지게도 살았구나. 하지만 우리가 자기에는 좀...하여 계속 방향을 틀어 청량산 입구에서 1박.

 

다음날 되짚어 나오면서 안동 관람을 하기로 하다. 먼저 들른 곳은 농암 고택. 농암 이현보.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어부사'를 쓴 사람으로 알려진 그. 햐, 이런 곳에, 이런 집에서 살았구나. 부럽기도 하다. 이렇게 멋있는 한옥들이 아직도 남아있다니.. 안동은 참 복받은 곳이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다음에는 이육사문학관을 향해 가는데, 여기 바로 전에 퇴계종택이 있다. 퇴계종택이라?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그다지 크지 않은 ㅁ자의 구조를 지닌 집. 좋다. 화려하지 않아서. 아직도 그 후손들이 살고 있어서 내당을 제외한 다른 곳을 볼 수밖에 없었지만, 퇴계의 향취를 느낄 수 있어서 좋았고...

 

이육사문학관은 현대식 건물인데... 그의 생가는 남아있지 않고, 생가터에 청포도 시비만이 있을 뿐이다. 그의 무덤까지는 가보지 못하고, 무언가 아쉬움을 가지고 떠났는데... 육사가 퇴계의 14대손이라고 하니, 이제 목적지는 도산서원이다.

 

퇴계의 학문을 전수받던 곳. 퇴계가 직접 학생들을 가르치던 곳. 그곳은 언제나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다시 한 번 퇴계의 고결함을 느끼면서 도산서원을 나왔는데... 문득 든 생각.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들은 이 서원 구경을 어떻게 하지? 계단도 높고 장애인이 다닐 수 있는 공간이 없다. 장애인은 이 학문의 전당을 구경하기도 힘들단 말인가? 어떻게 방법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

 

사람은 자신이 경험한 것들을 가지고 주로 판단을 한다고 하더니, 내가 다리가 불편해지니까 이런 점들이 마음에 들어오기 시작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도산서원을 보고, 이천동석불을 보고, 이 석불은 산 중턱 쯤에 있을 줄 알고 각오를 단단히 하고 갔는데, 이런 길 가에서 그냥 보인다. 거대한 석불, 민중들의 소망을 들어주는 부처. 민중들의 소망이 담겨있으리라.

 

이 석불을 거쳐 봉정사에 도착. 의상과 관련이 있는 절. 우리나라 이름 있는 절들은 대부분 의상 아니면 원효와 관계가 되는데, 봉정사는 부석사와 연결이 되더군. 좋은 위치에 자리잡고 있어서 도를 닦는데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목조건물이 있는 극락전을 보는 의미도 있고. 그런데 극락전을 색칠을 다시 해서인지 그리 오래되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 오히려 대웅전이 세월 그대로의 모습을 지니고 있어 더욱 운치를 더해주고 있었다.

 

이 곳을 끝으로 곧장 올라오려고 했는데, 오는 길에 학봉종택에 들르게 되었으니, 이 여행에서는 정말 한옥을 많이도 보게 되었다고나 할까...

 

이렇듯 안동은 유교와 불교 문화를 함께 경험할 수 있는 곳이었고, 또한 관람은 하지 못했지만 하회탈놀이라는 민속춤이 유명하기도 하다. 중간에 들렀던 하회탈박물관에는 우리나라 탈들뿐만이 아니라 세계 곳곳의 탈들이 전시되어 있어서 기대보다도 더 좋았는데... 유교, 불교, 민속까지 함께 아우러진 곳, 꼬장꼬장한 양반가의 후손들이 살아서인지 전통 가옥이 많이 보존되어 있는 곳.

 

눈이 호강한 여행이었다.

 

서애와 육사와 퇴계라는 정치가, 시인, 학자들을 만날 수 있는 여행이기도 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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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나는 학교 신나는 아이들 - 선구적 교육혁신 사례를 통해 살펴보는
밀턴 첸 / 타임북스 / 2012년 8월
평점 :
절판


미국 대통령인 오바마가 한국 교육을 부러워한다고 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 때 이 사람, 정말 한국 교육에 대해서 알고 하는 말이야 하는 생각을 했는데, 그리고 코웃음을 치고 말았는데...

 

이 책에도 가끔 한국 교육에 대해서 나온다. 교사의 질을 이야기할 때, 한국의 학생들은 상위 5%이내에 들어야 교육대에 진학한다는... 수치로 보면 너무도 자랑스러운, 그러나 내막을 알고나면 너무도 씁쓸한...

 

"교육은 교사의 질을 넘지 못한다."

 

이 당연한 말을 우리는 너무도 무시하고 있지는 않았던가 하는 생각을 한다. 외국에서 말하듯이 상위 5%안에 드는 뛰어난 학생들이 교사가 되기 위해 교육대나 사범대에 가는데, 그 중에서도 임용고사라는 시험을 통과한 학생들만이 교사로 임용이 되는데, 우리나라 교사들의 수준이 뛰어나다고 말하는 사람이 누가 있지 하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우리나라 교육은 학원에 넘기고 학교는 탁아소나 친구들 만나는 사교의 장소밖에 되지 않는다는 자조 섞인 소리가 나오고, 교사는 결국 아이들을 특정한 시간까지 맡아두었다가 별다른 사로 없이 무사히 집으로 돌려보내는 역할을 맡은 보모이지 않은가 하는 소리가 넘쳐나고 있는 이 나라 교육을 부러워하다니...

 

미국이나 우리나 교육개혁에 대한 목소리는 높은데, 실효성을 거둔 교육정책은 없나 보다. 이 책을 보니 미국도 벌써 20여년 전부터 교육개혁의 목소리가 높았고, 또 방법론도 많이 제기되었나본데, 현재 세계 최강대국이라는 미국을 이끌고 있는 대통령의 입에서 한국을 본받자는 말이 나오고 있으니 말이다. 

 

반대로 우리나라는 그 많은 미국 유학파들에 의해 미국교육을 따라가야 한다고, 배우자고 하는 소리가 드높은데 말이다.

 

학교 현장에서는 북유럽이나 또는 일본의 배움의 공동체에 관심이 많다면 교육정책입안자들은 미국식 자유경쟁교육에 더 관심을 많이 두고 있는 형편 아니던가?

 

그래서 오로지 눈에 보이는 성과를 추구하고, 그것으로 평가를 하고, 교사나 학교를 순서지우고 차등 지원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는가? 전국의 학교들을 줄세우기 위해 일제고사를 보고 말이다. 또 이 결과를 가지고 학교 평가를 하고 있으니... 세상이 참...

 

이런 미국에서 오래 전부터 교육개혁에 대해 나온 주장을 알기 쉽게 정리해서 낸 책이다. 단지 미국만이 아니라 전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통할 수 있는개혁에 대한 방향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어찌보면 상당히 어려운 일이고, 어찌보면 쉬운 일인데... 사실 진리는 단순함 가운데 있지 않은가.

 

6가지 처방을 내리고 있다. 처방이라기보다는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는 얘기고, 그렇게 한 결과들이 성공적이었음을 사례를 제시하며 보여주고 있다.

 

처방은 별 게 아니다. 사실 교육문제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해봤을 그러한 처방들이다. 다만 이를 얼마나 뚝심있게 밀고나가느냐다.

 

. 학습에 대해 좀더 현명하게 생각하라.

. 진정한 학습과 참 평가를 실시하라.

. 최신 도구를 학생에게 주어라.

. 언제, 어디서나 배울 수 있게 하라.

. 교사, 전문가, 학부모는 서로 협력하라.

. 디지털 학습자들을 생각하라.

 

다 옳은 말이다. 옳은 말이기에 실천해야 하는데... 왜 아직도 미국에서도 이 일이 실천되지 않았을까 의문을 던져 본다. 무언가 걸림돌이 있다는 얘긴데... 그 걸림돌이 무엇일까?

 

교사일까? 아니다. 이 책에서도 아니라고 한다. 이 책은 이러한 처방에 앞서 무엇보다도 교사들의 자존감을 높이고, 교사들을 인정해줘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아무리 최첨단 기술을 이용해 교육을 하더라도 교사의 존재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한다. 관계를 맺어줄, 사람으로서 격려를 해줄 온기를 지닌 교사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안되는 이유는? 여러가지다. 우선 교육 주변의 환경이 뒷받침해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최첨단 기술의 시대에, 교육은 시대를 뒤따라가지 말고 시대를 앞질러가야 한다고 하는데, 학교 현장에 들어온 기술기기들은 이미 한물 간 것들이 많다. 그것도 달랑 교실에 한 대씩.

 

이 책에서는 학생 한 명당 컴퓨터 한 대씩은 주어야 한다고 하는데... 예산 타령을 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투자라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약간의 투자라고 하는데... 그래서 미국에서는 이것을 실현한 주도 있다고 하는데.. 우리에게는 너무도 멀게 느껴지는 얘기다.

 

예산과 교육에 대한 고정관념, 관료들의 행정편의주의 등등 여러가지가 아직도 교육개혁을 부르짖게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늘 남탓만 할 수는 없는 일. 이 책에 나온 말대로 좋은 것들은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번져 나간다고 한다.

 

교육개혁은 결국 교사들로부터 시작하여 학생들로, 그리고 학부모들로 번져가는 아래로부터의 개혁을 택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현장에서 묵묵히 실천하고 있는 교사들을 격려해야 한다. 그들로부터 교육개혁은 번져나갈테니 말이다.

 

이런 과정을 조급해 하지 말고 길게 여유를 가지고, 또 믿음을 가지고 지켜보는 자세를 우리들이 지닌다면... 교육개혁은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을지라도 언젠가는 우리 눈 앞에 확 나타나게 될 것이란 생각을 한다.

 

그러면 이책의 제목처럼 "살아나는 학교, 신나는 아이들"이 될테고, 우리나라는 행복이 넘치는 나라가 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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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의지는 없다 -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지배하는 자유 의지의 허구성
샘 해리스 지음, 배현 옮김 / 시공사 / 2013년 2월
평점 :
품절


"신은 죽었다"라는 말만큼이나 도발적이다. 신을 광범위하게 믿고 있던 시대에 니체가 던진 이 말은 사회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을텐데...

 

신의 존재 증명과 더불어 인간이 무엇으로 이루어졌느냐 하는 문제도 역시 계속되는 논란거리다. 어떤 이는 인간은 단순한 물질적 존재일뿐이라고 하고(일원론), 어떤 이는 인간은 물질과 정신으로이루어졌다고 하고(이원론), 이 중에서도 물질(육체)가 더 큰 작용을 한다는 사람도 있고, 아니 정신(영혼)이 더 큰 작용을 한다는 사람도 있다.

 

무엇이 옳은지 우리는 알 수가 없다. 아직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사후세계에 대한 이야기와 통하게 되는데, 사후세계에 대한 그 많은 이야기들 중에 밝혀진 것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은 신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과 또는 죽음이란 무엇이냐라는 질문과도 통하는 해결하기 어려운, 어쩌면 해결할 수 없는, 또는 해결해서는 안되는 문제일지도 모른다.

 

여기에 비슷한 질문이 더해졌다. "자유의지는 없다"는 주장이 과연 타당한가 하는.

 

인간은 물질적 존재일뿐이라는 사람들에게는 이 말은 당연한 주장에 불과하리라. 인간의 모든 행동은 뇌 활동의 결과이며, 뇌 활동은 여러가지 복합적인 원인이 결합되어 이루어지고, 그러한 차원에서 우리가 정신이라고 하는 생각하는 활동도 이루어진다고 하니, 우리의 생각, 의지, 행동은 결국 뇌의 활동을 밝히면 되는 일이라고 주장하니 말이다.

 

행동을 고칠 때, "그건 네 의지에 달렸어."라는 말보다는, 뇌의 어느 부분이 어떻게 활동했느냐를 따져 뇌를 치유하면 된다는 주장, 그것이 인간은 물질적 존재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생각이니, 그런 사람들에게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는 주장은 터무니없게 들릴 수도 있겠다.

 

반면에 인간은 정신적 존재라고 하는 사람들, 아니면 정신이 더욱 큰 작용을 한다고 하는 사람들에겐 자유의지가 없다는 주장은 말도안되는 주장이 된다. 인간은 단순한 물질적 존재가 아니라 정신적 존재이기 때문에 만물의 영장이 되었고, 문명을 이루었으며, 자기 행동을 스스로 통제할 능력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려운 질문이다. 그리고 어떤 대답을 해도 반론이 들어올 수 있는 질문이기도 하다.

 

이 책의 저자인 해리스는 자유의지는 없다고 단호하게 주장한다. 우리가 어떤 행동을 했다면 그 행동의 저변에는 우리가 알 수 있는, 그리고 또 알 수 없는 어떤 원인이 있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그러한 사례들을 제시한다.

 

결과는 같지만 제시된 원인이 달라짐에 따라 우리는 판단을 다르게 하게 되는데... 자, 그 결과를 이루는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그것은 자유의지가 아니라 원인이 달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자유의지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는 얘기다.

 

무언가 답답하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지 않은가. 무슨 행동을 해도 그것은 내 자유의지가 아니라 어떤 원인에 의해 이루어진 결과일 뿐이라는 얘기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범죄자는? 그는 단지 꼭두각시에 불과하지 않았는가. 그를 어떻게 처벌해야 하는가? 이렇게 가다보면 회의주의에 빠지고, 반도덕적, 반사회적으로 가게 될 것 같은데, 그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그것은 자유의지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 그렇게 하도록 조건지워진 인간의 행동일 뿐이라고 한다.

 

자유의지를 부정하면 사회가 더 도덕적이고 협동적일 수 있다고 한다. 왜냐고? 인간에게 "넌 스스로 그렇게 할 수 있어."라고 얘기하기 보다는 그렇게 행동할 수 있게끔 환경을 조성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란다. 즉, 사람 개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그 때 그 자리에 존재하게 된 환경을 조정함으로써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일면 타당하기도 하지만...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왜 그 사람들은 그런 환경을 조성하려고 할까? 그들은 우연히 그러한 환경에서 지냈고, 그러한 환경이 자신의 생존, 생활에 더 좋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기 때문인가?

 

결국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와 비슷해지는 결론으로 가는 건가? 이기적 유전자도 한없이 이기적이지만,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는 이타적일 수밖에 없다는, 그리고 단편화되고 파편화된 작은 유전자에서 통합적인 유전자체로 존재하기도 한다는. 여기에는 어떤 자유의지가 개입할 수가 없다는.

 

책의 논리를 따라가면 책이 논리에 수긍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책의 내부에서 그 길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가끔 책의 바깥에서 그 책을 바라보면 안 보이던 길이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그 길이 어떤 길인지도 판단할 수도 있고.

 

자유의지가 없다는 이 논리도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똑같은 환경에서 똑같은 유전자를 가지고 똑같은 교육을 받고, 똑같은 음식을 먹으며, 똑같은 물질로 둘러싸여 생활한 사람은 과연 똑같이 생각하고 행동할까? 성범죄자의 화학적 거세, 사이코 패스의 뇌수술, 복제인간 문제, 또는 유전자로 그 사람의 질병, 반사회적 활동을 판단하는 문제 등에 어쩌면 이 책은 날개를 달아주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한 말은 이러한 문제를 이 책의 저자도 의식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유의지의 주술에서 벗어나면, 우리는 정확히 유용함의 정도에 따라 사람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게 된다. 사람들이 변할 수 있는 지점에서는, 그들에게 변하도록 요구할 수 있다. 변화가 불가능하거나, 변화에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지점에서는, 다른 길을 찾아볼 수 있다. 우리 자신과 사회를 개선하는데 있어서, 우리는 전적으로 자연의 힘과 더불어 노력하고 있다. 우리가 힘을 쏟을 대상은 다름 아닌 자연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이 책 79쪽)

 

이 말은 책임을 개인에게만 묻지 말아라. 책임은 사회에도 있다. 즉, 사회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병행하면서 개인에게 변화를 요구해야 한다는 말로 들리기도 한다.

 

자유의지는 없다는 말을 좋게 해석을 하면 더 좋는 사회를 위해서는 개개인의 의지에 호소하기 보다는 전체적인 환경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함께 해야 한다는 말로 들린다. 아니, 그렇게 듣고 싶다. 이건 내 자유의지가 아니라 내 안의 무언가가 그렇게 시키는 것이다. 샘 해리스의 이 책 주장에 따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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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마을에서 교육을 담당했다고 한다. 우리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교육은 학교라는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예전의 교육에서 지금의 학교와 비슷한 서당이나 서원을 다닌 사람들은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그 교육은 실생활과는 동떨어진 교육이라고 할 수 있었다.

 

실생활에 필요한 교육, 살아가면서 사람이 지켜야할 도리라든가, 먹고 살 문제들에 대해서는 마을에서 함께 지내면서 교육이 되고 배움이 이루어졌었다.

 

그런 마을들은 누구나 보듬어 안았으며, 아니 오히려 균일된 단일화된 동질화된 집단이 마을이 아니라, 다양한, 너무도 다른 사람들이 함께 모여 생활하는 그런 공간으로서의 마을이라고 해야 했다. 

 

마을에는 잘난 사람도 있어야 하지만, 못난 사람도 있어야 하며, 심지어는 착한 사람뿐만이 아니라, 나쁜 사람도 존재해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그래서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하는 곳은 마을이라고 할 수 없었다고 하는데...

 

이러한 마을 속에서 한 사람은 나고 자라고 죽었을 터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국가의 공적 보조없이도 마을에서 각 개인에게 맡기지 않고 상호부조를 이루고 살았을 터다.

 

이것이 바로 교육이 꿈꾸는 세상이 아니던가. 우리가 꿈꾸는 교육이 아니던가. 그러한 마을이 파괴된 것은 산업화가 이루어지면서이다. 산업화가 이루어지면서, 농민들이 살 길을 찾아 도시로, 도시로 이주해왔고, 농촌은 농촌대로 홀대를 받아 더욱 살기 어려워졌기 때문에 농촌 마을이 서서히 파괴되었으며, 도시는 살기에 바쁜 사람들이 공동체를 이루기 힘든 구조로 건설이 되었다.

 

특히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철저히 개인화된 생활을 많이 하게 되었는는데...

 

그런데, 요즘 다시 마을이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 관청에서도 마을만들기를 주도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마을이 만들기하자고 금방 뚝딱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데... 그래도 마을이라는 공동체를 되살리는 운동을 하는 곳이 여러 곳이라는 사실이 반갑기는 하다. 어떤 형식으로든 지금의 생활보다는 나은 생활을 이루어가려는 노력이기 때문이다.

 

다만, 관주도의 마을만들기는 분명 한계가 있다. 관주도는 어떤 가시적인, 계량적인 성과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를 조심하고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서로서로 관계를 맺기 시작하면서 마을만들기를 한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나은 공동체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한다.

 

그러한 이야기를 이번 민들레 85호에서는 다루고 있다. 우리가 만들어야 할 마을의 모습은 어떤 모습인지, 어떻게 만드는 것이 바람직한지, 어떤 성과들이 있었는지, 어떤 노력들이 있는지 차분히 점검하고 있다.

 

아마도 더욱 관심을 가지고 바람직한 방향을 모색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늘 새로운 관점으로 생각하게 하는 문제를 제시하고 있는데, 혁신학교 문제와 ADHD문제를 다루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지, 왜 문제인지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하는 문제들이기도 하다.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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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묘앞에 갔다.

 

동묘라고 하면 잘 모른다. 정식 이름이 동관왕묘다.

 

동쪽에 있는 관우를 모신 사당이다.

 

삼국지에 나오는 관우가 왕으로 추대되고 우리나라에서 추앙받고 있었던 모습이 남아 있는 현실이다.

 

이 동묘가 유명하다기보다는 동묘를 끼고 길거리에 늘어선 풍물시장이 유명하다. 예전의 황학동 풍물시장과도 연결이 되는데... 황학동 풍물시장은 새로 마련된 신설동 풍물시장으로 대부분 옮겨갔다고 하고, 얼마 남아 있지 않다.

 

온갖 물건들이 나와 있는데, 여기에는 책들도 마찬가지다. 헌책방들이 곳곳에 있다. 길거리에도 나와 있고, 건물 안에도 있다.

 

우연히 들르면 좋은 책, 품절된 책도 구할 수가 있다. 싼 값에.

 

골동들 사이에서 헌책을 보겠다고 들어선 순간, 눈에 띤 시집.

 

신경림의 "가난한 사랑노래"

 

이게 웬일인가! 무조건 집어든다. 혹시 책에 쓰여 있는 가격보다 비싼 거 아냐? 하는 생각도 드는데, 물어보니 아니다. 책에 쓰여 있는 정가는 2000원인데(1988년 재판) 주인은 1000원을 달란다.

 

두말않고 샀다. 기분이 좋다. 신경림 시집을 이런 데서 보다니... 이렇게 사다니...이제 이 판본은 헌책방 아니면 구할 수가 없다. 최근에 새로운 판본으로 책이 다시 나왔다.

 

사들고 읽기 시작한다. 아련하다. 이미 사라진 것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리고 이토록 쉽게 시를 쓸 수 있음에도 왜 요즘 시는 어려울까 생각도 한다.

 

쉽고 마음에 와닿는 시. 그게 필요한 시대 아닐까.

 

헌 책방에서 구한 신경림 시집을 읽으며 사라지는 것들을 추억한다. 그리고 과거, 우리의 아팠던 현실들도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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