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마을에서 교육을 담당했다고 한다. 우리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교육은 학교라는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예전의 교육에서 지금의 학교와 비슷한 서당이나 서원을 다닌 사람들은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그 교육은 실생활과는 동떨어진 교육이라고 할 수 있었다.

 

실생활에 필요한 교육, 살아가면서 사람이 지켜야할 도리라든가, 먹고 살 문제들에 대해서는 마을에서 함께 지내면서 교육이 되고 배움이 이루어졌었다.

 

그런 마을들은 누구나 보듬어 안았으며, 아니 오히려 균일된 단일화된 동질화된 집단이 마을이 아니라, 다양한, 너무도 다른 사람들이 함께 모여 생활하는 그런 공간으로서의 마을이라고 해야 했다. 

 

마을에는 잘난 사람도 있어야 하지만, 못난 사람도 있어야 하며, 심지어는 착한 사람뿐만이 아니라, 나쁜 사람도 존재해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그래서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하는 곳은 마을이라고 할 수 없었다고 하는데...

 

이러한 마을 속에서 한 사람은 나고 자라고 죽었을 터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국가의 공적 보조없이도 마을에서 각 개인에게 맡기지 않고 상호부조를 이루고 살았을 터다.

 

이것이 바로 교육이 꿈꾸는 세상이 아니던가. 우리가 꿈꾸는 교육이 아니던가. 그러한 마을이 파괴된 것은 산업화가 이루어지면서이다. 산업화가 이루어지면서, 농민들이 살 길을 찾아 도시로, 도시로 이주해왔고, 농촌은 농촌대로 홀대를 받아 더욱 살기 어려워졌기 때문에 농촌 마을이 서서히 파괴되었으며, 도시는 살기에 바쁜 사람들이 공동체를 이루기 힘든 구조로 건설이 되었다.

 

특히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철저히 개인화된 생활을 많이 하게 되었는는데...

 

그런데, 요즘 다시 마을이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 관청에서도 마을만들기를 주도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마을이 만들기하자고 금방 뚝딱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데... 그래도 마을이라는 공동체를 되살리는 운동을 하는 곳이 여러 곳이라는 사실이 반갑기는 하다. 어떤 형식으로든 지금의 생활보다는 나은 생활을 이루어가려는 노력이기 때문이다.

 

다만, 관주도의 마을만들기는 분명 한계가 있다. 관주도는 어떤 가시적인, 계량적인 성과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를 조심하고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서로서로 관계를 맺기 시작하면서 마을만들기를 한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나은 공동체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한다.

 

그러한 이야기를 이번 민들레 85호에서는 다루고 있다. 우리가 만들어야 할 마을의 모습은 어떤 모습인지, 어떻게 만드는 것이 바람직한지, 어떤 성과들이 있었는지, 어떤 노력들이 있는지 차분히 점검하고 있다.

 

아마도 더욱 관심을 가지고 바람직한 방향을 모색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늘 새로운 관점으로 생각하게 하는 문제를 제시하고 있는데, 혁신학교 문제와 ADHD문제를 다루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지, 왜 문제인지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하는 문제들이기도 하다.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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