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치매 - 머리를 쓰지 않는 똑똑한 바보들
만프레드 슈피처 지음, 김세나 옮김 / 북로드 / 201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의 뒷표지에 자극적인 문구가 실려 있다.

 

"미쳤군! 학교에서 전자 교과서를 사용한다고?"

 

우리나라에서 모든 학교에 디지털 교과서를 사용하겠다는 발표를 한 지가 얼마 지나지 않았다. 또 어떤 나라에서는 학생들 개개인에게 노트북을 지급하는 일을 목표로 삼고 있기도 하다.

 

하긴 전자 교과서가 도입이 되면 자연스럽게 학생 개개인은 노트북이나 아니면 다른 전자기기를 지닐 수밖에 없다.

 

이것이 미래 교육의 모습이라고 한다.

 

한 때 유행했던 말, '유비쿼터스'가 학교 현장에서도 적용이 되기 시작한다고 봐야 하는데...

 

디지털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들이 있다. 또한 디지털 매체의 사용에 대해서는 찬반 연구가 있기도 하다.

 

여기서 우리는 어떤 입장에 서야 하는가?

 

디지털 시대를 비판하는 사람은 산업혁명 초기의 '러다이트 운동'을 하는 사람처럼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는 사람일까? 아니면 산업혁명의 부작용을 미리 읽어내고 다른 대안을 마련하는 사람일까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정해야 한다.

 

여기에 "디지털 치매"란 책이 나왔다. 사회가 점점 컴퓨터에 익숙해질수록 사람들의 뇌는 점점 치매에 가까워진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책.

 

사람의 뇌는 퇴화를 할 수밖에 없는데, 이런 퇴화의 속도는 정신의 높이에 반비례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정신의 높이가 높은 사람은 뇌의 퇴화, 즉 치매에 걸릴 확률도 그만큼 준다는 얘긴데, 정신의 높이는 디지털로는 이룰 수 없다는 주장을 한다.

 

독일을 중심으로 여러가지 연구자료들을 가지고 디지털이 결코 우리의 정신적 능력을 높여주지 않는다는 주장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고 있다.

 

한 가지 놀란 점은 이 '디지털 치매'라는 말을 우리나라에서 먼저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점. 그만큼 우리나라 사람들도 이러한 디지털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는 점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에서 가장 앞서서 초고속 인터넷망을 건설했으며, 국민들 개개인들이 휴대전화(스마트폰)를 지니고 있고, 이것도 모자라서 모든 학교에 전자기기를 도입했으며, 이제는 교과서마저도 디지털 교과서를 쓰겠다고 하고 있으니... 놀랄 수밖에.

 

마치 사람들이 충치에 잘 걸리니 수도물에 불소를 넣어서 충치를 예방하자는 주장이 생각났는데, 어떤 위험성이 있는지 충분히 검토도 하지 않고 좋다고 알려지면 추진하려고 하는 그 모습, 과연 이것이 전문가들의 모습인지.

 

전문가라면 쉽게 하지 못할 일이지 않나 싶은데...

 

이러한 디지털의 광범위한 사용으로 멀티태스킹이 가능해졌다고 우쭐했었는데, 이런 멀티태스킹은 오히려 정신의 높이를 낮추는 일을 한다고 이 책에서 주장하고 있으니,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깊이 생각하지 않더라도 지금 우리나라는 게임 중독이라는, 다른 말로 하면 컴퓨터 중독이라는, 스마트폰 중독이라는 현상이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이를 단지 미디어 사용교육으로 무마하려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 책을 보라.

 

그런 미디어 교육은 아무런 효과도 발휘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지 않은가. 인간의 다양성이, 인간의 복잡성이 디지털이라는 0과1로 조합될 수 없다는 사실을, 오히려 우리의 몸은, 우리의 정신은 아날로그라는 사실을 이 책은 알려주고 있다.

 

이 책에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말을 인용하고 있는데, 그 말은 다음과 같다.

 

"정신은 생각이 선택한 색깔을 드러낸다." (361쪽)

 

그렇다. 디지털은 오히려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고, 우리 정신의 높이를 낮추는 역할만을 할 뿐이다. 그러니 디지털에 익숙한 세대들의 정신은 어떠하겠는가... 정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미쳤군! 학교에서 전자 교과서를 사용한다고?"

 

이런 말이 나오지 않도록 무엇이 정말로 사람을 위한 것인지, 무엇이 나를 위한 것인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의 마지막에는 우리의 정신 건강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 제시되어 있다. 일상생활에서 우리들 누구나 할 수 있는 방법.

 

명심하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울 풍물시장을 가다.

 

풍물시장과 동묘 벼룩시장이 연결이 된다.

 

이 곳을 다 돌려면 발품이 많이 든다. 다리도 아프고, 또 많은 사람들 속에서 머리도 아프고.

 

풍물시장답게 노인들이 많다.

 

옛것에 대한 향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싸다는 얘기도 된다.

 

예전 놋그릇도 사고, 또 나무 조각도 사고, 그리고 요즘 유행하는 LP 턴테이블도 샀다.

 

물론 잘 알지 못하면 수업료를 톡톡히 치러야 한다.

 

턴테이블도 마찬가지다. 그냥 이것만 있으면 LP판을 돌려 음악을 들을 수 있겠거니 했던 무지함.

 

턴테이블을 돌리려면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번 기회를 통해서 알게 되었으니, 수업료를 지불한 것이 아깝지 않다고 해야 하나...덕분에 더 많은 발품을 팔았지만.

 

풍물시장에서 내게 가장 큰 기쁨을 주는 곳은 헌책방이다. 작은 책방이 아니다. 엄청나게 많은 책들이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고서라는 값나가는 책이 아닌, 정말로 주인의 품에 안겨 읽힐 책들이 말이다.

 

이런 서점에 들어가면 책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아야 하는데, 그럴 시간이 별로 없다. 물론 핑계다. 다른 물품들을 보아야 한다는 핑계로 헌책방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시가 꽂혀 있는 서가로 간다.

 

그리고 죽 훑어본다. 얼마 걸리지 않는다. 이 중에 맘에 드는 시집이 있으면 망설이지 않고 집어든다.

 

시집 가격은 대체로 1000원이기 때문에 가격 부담도 없다.

 

이번에 고른 시집은 두 권. 그 중에 한 권인 도종환의 "접시꽃 당신"

 

집에 "접시꽃 당신2"가 있기에, 그리고 이제는 그가 국회의원이 되었기에, 처음 그의 이름을 전국적으로 알린 시집이 있다는 사실이 반갑기 그지 없다. 그냥 집어든다.

 

아내에 대한 그리움, 사랑이 절절하게 드러나 있다. 그런 사랑, 가슴 아프게 다가오지만...너무 많이 알려진 영화로도 만들어진 '접시꽃 당신' 말고, 이런 시, 그냥 조용히 마음에 스며드는 시.

 

봉숭아

 

우리가 저문 여름 뜨락에

엷은 꽃잎으로 만났다가

네가 내 살 속에 내가 네 꽃잎 속에

서로 붉게 몸을 섞었다는 이유만으로

열에 열 손가락 핏물이 들어

네가 만지고 간 가슴마다

열에 열 손가락 핏물자국이 박혀

사랑아 너는 이리 오래 지워지지 않는 것이냐

그리움도 손끝마다 핏물이 배어

사랑아 너는 아리고 아린 상처로 남아 있는 것이냐

 

도종환, 접시꽃 당신, 실천문학사, 1990. 16판. 75쪽

 

그리고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교사로서, 또한 전교조 교사로서 그가 고민했던 내용들이 4부에 시로 담겨져 있다는 사실.

 

그래서 그는 아내에 대한 그리움만을 이 시대 담고 있지 않고, 시대의 아픔을, 제자들에 대한 사랑도 이 시집에 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예전에 다른 어떤 책에 소개되어 알고 있었던 '앉은뱅이 민들레'란 시와 '김선생의 분재'라는 시는 여전히 맘에 울림을 주었으며, 또한 이 시집의 마지막에 수록되어 있는 시, '답장을 쓰며'는 지금,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과 겹쳐져서 여전히 쓰라린 울림을 주고 있다.

 

이 시의 마지막에 나온 '우리의 생명을 기쁨과 고마움으로 누리는/그날은 반드시 오고야 만다./반드시 오고야 말 것이다.'라고 했던 시인.

 

이제 그는 국회의원이 되었다. 이제는 시에서만 외치는 것이 아니라, 도종환 스스로, 국회의원 도종환으로서, 정치인 도종환으로서 그런 날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래야 그는 시를 배신하지 않게 된다.

 

그걸 기대한다. 그것이 헌책방에서 이 시집을 구한 보람이기도 할 테니...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현대시작법
오규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시는 누구나 쓸 수 있다.

 

그러나 좋은 시는 누구나 쓸 수 없다.

 

우리 모두는 시인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좋은 시인은 아니다.

 

시는 감정의 솔직한 표현이다.

 

그러나 감정만 내서워서는 안된다.

 

시는 세계를 자기 안으로 들여와 표현해낸다.

 

그러나 세계를 자기만의 것으로 만들어서는 안된다.

 

시쓰기, 누구나 한 번은 도전을 해보고 싶지만 이상하게도 시인이라는 족속이 따로 있을 것 같고, 시에 대한 재능이라는 것이 천부적으로 주어진 사람만이 써야 할 것 같고, 또 시란 나의 삶과는 거리가 먼 저 높은 하늘 나라의 형이상적인 이야기 같고...

 

그냥 끼리끼리만 모여 자기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표현을 하고, 자기들끼리 읽고 비평하고 마는 그러한 문학으로 인식하기 십상인데...

 

이것은 학교에서 가르치 시 교육의 부작용이기도 하겠고, 또 국어 시험의 부작용이기도 하겠지만, 정작 시에 대한 좋은 책을 읽지 않았기 때문익도 하겠다.

 

시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해주는 쉽고도 재미있는 책이 김상욱이 쓴 "시의 길을 여는 새벽별 하나"이다. 이 책은 시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꿔줄 수 있다. 이 책이 시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꿔준다면, 시 쓰기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꿔줄 수 있는 책이 있다.

 

그것이 바로 오규원의 이 책이다.

 

시 쓰기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좋을 이 책은, 시에 대해서 친절하고도 자세하게 그러나 엄정하게 안내해주고 있다.

 

시인인 저자 자신의 경험도 있겠고,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시를 가르쳐본 경험도 작용을 해서인지, 시 쓰기에서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 그런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를 잘 알려주고 있다.

 

처음에는 시를 쓰고자하는 예비 시인들을 위해 쓴 책이라고 하지만, 일반인들에게 많이 읽혔다고 하는 이 책은, 시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사람들, 또 좋은 시가 무엇일까 생각하는 사람들, 전문적인 시인이 되고자 하지는 않지만 시를 써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겠단 생각이 든다.

 

시를 쓰지 않더라도 좋은 시를 읽을 수 있는 안목을 키워줄 수도 있는 책이다. 여러모로 도움이 되는 책이다.

 

시에 대해 고정관념을 갖고 있던 사람, 이 책을 한 번 읽어보라. 시가 이런 거였어, 정말, 시란 멋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또다시 맞이하는 부처님 오신 날.

 

부처님은 신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지 않고, 인간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왔다.

 

인간의 모습으로 왔기에,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온갖 고난들을 겪었다.

 

그러한 고난을 통해 부처님은 인류의 스승이 될 수 있었다.

 

부처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오지 않고 신의 모습으로, 인도의 신화에서 말하는 비슈누의 환생으로

우리에게 왔다면 그는 신으로만 존재하지 인류의 스승으로는 존재하지 않았으리라.

 

인간의 모습으로 와서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고통들을 겪었으며, 이를 극복해가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몸소 인간이 인간으로서 가야할 길을 보여주신 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인생의 고통들(苦)들이 모여서(集) 우리를 괴롭게 하지만, 그것을 없애서(滅) 진리의 경지(道)에 오르게 되리라.

 

이러한 단계에서 겪게 되는 우리의 일곱가지 마음들...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

 

이 중에서 통제를 잘못해 나락으로 떨어진 사람들이 많지 않은가.

 

이 중에서 자기가 원하는 감정만을 추구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가.

 

이렇게 이들에게 세상을 그렇게 살지 말라고, 세상을 이렇게 살라고 말하는 스승이 필요한 시대가 아닌가.

 

말로는 멘토, 멘토 하지만, 진정 스승을 찾으려는 노력을 해봤는지 생각해보게 하는 부처님 오신 날이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우리네 삶에서 덜어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이미 부처님은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단지 부처님 오신 날만이 아니라, 평소의 생활에서도 우리는 이러한 스승의 가르침을 실천해야 하지 않겠는가.

 

스승은 있다. 다만 우리가 찾지 않을 뿐이다.

부처님 뿐만이 아니라, 예수도 공자도 또다른 다른 성인들도 모두 우리의 스승이 아니던가.

 

그런 스승들은 모두 하나로 통하지 않던가.

 

바로 잘 삶. 어떤 삶이 잘 삶인가. 다시 스승을 찾자.

 

스승을 찾아나선 선재동자처럼. 우리도 스승을 적극적으로 찾아나서자. 그러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더불어 그러한 스승들이 존재하는 곳, 절에 대해서도 종교를 떠나 한 번은 가보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김종삼 시인에 대해서는 그냥 모더니즘 시인 정도로 알고 있었다.

 

그의 시들은 짧고, 또 내용없는 아름다움을 추구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왜 내용없는 아름다움이었을까?

 

그것은 그의 시 "북치는 소년" 때문이었다.

 

북치는 소년

 

내용 없는 아름다움처럼

 

가난한 아희에게 온

서양 나라에서 온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카드처럼

 

어린 양들의 등성이에 반짝이는

진눈깨비처럼

 

김종삼 시선, 스와니강이랑 요단강이랑, 미래사, 1994. 1판 4쇄. 28쪽

 

바로 이 시 때문에 내용보다는 어떤 분위기로 시를 느끼게 하는 그런 시인으로 알고만 있었다. 여기에 "묵화"란 시에서 느껴지는 한 편의 그 고요한 동양화 같은 느낌. 분위기...

 

그런데 "삶창"을 읽다가 김종삼 시를 소개하는 글을 만나게 되었다.

 

어? 김종삼 시를 이렇게 읽을 수도 있네. 이런 면이 있네.

 

시인에 대해서 시 한두 편으로 고정관념을 지니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던가 하는 반성.

 

요즘 시대와 맞물려 가슴 아프게 다가온 시도 있고.

 

또 그의 이번 시집에 등장하는 전봉래나 김관식 등과 가까이 지냈다는 사실에서 그를 단순히 모더니즘 시인으로만 규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단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와 같은 다른 좋은 시들도 많지만, 지금 현재 우리의 상황과 우리의 역사와 관련지어 내 맘을 때리던 시...

 

마음에 큰 울림을 준 시. 왜 이리 서글퍼지는지...

 

민간인(民間人)

 

1947년 봄

심야

황해도 해주의 바다

이남과 이북의 경계선 용당포

 

사공은 조심 조심 노를 저어가고 있었다.

울음을 터뜨린 한 영아(嬰兒)를 삼킨 곳,

스무 몇 해나 지나서도 누구나 그 수심을 모른다.

 

김종삼 시선, 스와니강이랑 요단강이랑, 미래사, 1994. 초판 4쇄 69쪽

 

슬프다. 지금 우리도 그 수심을 모른다. 끝도 없는 수심. 

 

세월이 흘러 이제는 이런 시가 과거의 시로만 존재했으면 좋겠다.

 

이렇게 김종삼은 짧은 시 속에서 우리 민족의 현실을 담아내고 있기도 하다. 이것이 김종삼 시에 대해서 다시 보게 한 이유이기도 하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