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문이다" 제목이 참... 여러 가지 생각하게 한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문은 안과 밖을 연결해주는 공간이자, 안과 밖을 구별해주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 문으로 인해 안과 밖이 나뉘고, 안과 밖이 연결이 된다.

 

그렇다면 '나는 문이다'라는 말은 나는 경계에 서 있다는 말이 된다. 이 쪽도 아니고, 저 쪽도 아닌, 그러나 양 쪽을 다 아우르고 있는 그런 상태.

 

이 말은 바로 시인에게 해당한다. 시인은 이 세계와 저 세계를 연결해주는 경계인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또한 시인은 현실 세계에서 이상 세계를 꿈꾸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시인은 현실에 발디디고 있으면서도 이상을 추구하기에 어느 한 쪽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나는 문이다" 라는 제목은 참 도발적이다. 이 쪽과 저 쪽을 연결하겠다는 의지로 들리기도 하기에...

 

한데, 가만 생각해 보면 경계에 있다는 얘기는 이 쪽도 저 쪽도 모두 상관 안 하겠다는 얘기로도 들린다. 언제든지 닫을 수 있는 상태.

 

내 맘에 들지 않으면 과감하게 쾅 닫아버리면 되는 그런 상태. 이게 바로 문이다. 하여 문은 자신을 자신만의 세계에 가두는 역할도 한다.

 

내 의지에 따라 세상과 소통도 하고, 또 단절도 할 수 있는 상태. 그런 상태가 바로 "나는 문이다"라고 외칠 수 있는 상태다.

 

문정희 시인 정도 되면 이제는 원숙한 경지에 이르렀으리라. 그런 경지에서 이 시집에서는 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그런 시에 대한 이야기 속에 은연중에 현실의 모습이 함께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니 "나는 문이다"라고 할 수 있겠지. 여기서 시인은 자신은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는 그런 경계의 삶, 문의 삶을 살고 있다고, 그런 삶을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런 시대에 시를 쓸 수 없다고 절필한 시인도 있다고 하는데, 이 시인은 문을 닫아걸었다. 그 닫아걸음으로써 문을 열고 있다. 왜 문 닫음이 일어났는가를 사람들이 생각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시인으로서 이제는 노년의 경지에 든 문정희 시인은 어느 한 쪽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문이라고 한다. 이 쪽과 저 쪽을 다 들여다볼 수도 있고, 다 볼 수도 없는.

 

또 한 편 제목에서 문정희 시인의 성이 생각난다. "나는 문이다" 이 말이 "나는 문정희다"라는 말로 들릴 수 있는 이유도 바로 문정희 시인의 성에 있다.  

 

한자어를 쓰지 않음으로써 어느 쪽으로도 해석이 가능하게 하는 제목. 나는 나다. 그러므로 나에게 어느 한 쪽을, 어떤 경향을 강요하지 말아라. 어느 쪽을 선택하는 것은 전적으로 내 몫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는 듯한 느낌.

 

그래서 이 시집에서는 현실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고 소위 말하는 순수시라는 것도 나온다.  모두가 읽을 만한 시다. 시인의 경지가 느껴진다.

 

이 중에 내 맘에 드는 두 시.

 

"응"

 

햇살 가득한 대낮

지금 나하고 하고 싶어?

네가 물었을 때

꽃처럼 피어난

나의 문자

"응"

 

동그란 해로 너 내 위에 떠 있고

동그란 달로 나 네 아래 떠 있는

이 눈부신 언어의 체위

 

오직 심장으로

나란히 당도한

신의 방

 

너와 내가 만든

아름다운 완성

 

해와 달

지평선에 함께 떠 있는

땅 위에

제일 평화롭고

뜨거운 대답

"응"

 

문정희, 나는 문이다, 뿔, 2007. 초판 72-73쪽

 

 

물가

 

세상의 자식들은 모두 물가에 산다

세상의 어머니들은 그래서 늘 가슴을 태운다

발 하나만 잘못 디디면 절벽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식인 상어가 날뛰고

시퍼런 파도가 혀를 날름거리고 있어

더 말해서 뭐 하나

가시풀 속엔 뱀들이 우글거리고

어떤 꽃들은 독을 퍼뜨리니

어머니들은 자나 깨나 기도를 할 수밖에 없다

아무것도 모르는 세상의 자식들이

언제나 철부지로 물가에서 살기 때문에

더 말해서 뭐 하나

세상의 어머니들은

물가의 자식들을 걱정하느라

자신이 서 있는 절벽을 까맣게 잊는다

이런 효도가 또 어디 있겠는가

 

문정희, 나는 문이다, 뿔, 2007. 초판. 1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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