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을 떠나 헌책방에 숨어 있었다

스스로 떠나지 못했으니 버림 받았다 해야 옳았다

헌책방 서가에 숨어서 또다른 주인이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는 슬픈 시집

제목도 슬픔이 나를 깨운다다

세상이 온통 슬픔으로 차 있다

슬픔으로 차 있는데 누구도 슬픔을 슬퍼하지 않는다

그냥 그러러니 한다

정치도 경제도 교육도

정치는 바르게 다스린다는 의미를 벗어나 제 이익 찾기 바쁘고

경제는 있는 자들의 잔치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교육은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교육을 죽이고 있으니

슬픔이 온 세상에 가득 차 있다

그런데 이 슬픔이 나를 깨우지 못한다

나를 잠기게 한다

이 황인숙의 시집은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처럼 우울하다

우울함이 가득차 있다

그래서 제목들도 밤, 덤, 슬픔, 가을 등이 많다

하나같이 어두운 측면이다

이런 어두운 측면에 주목하는 것은 밝음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슬픔이 나를 깨운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를 깨우지 않는 슬픔, 그것은 슬픔이 아니다

우울, 절망, 좌절

이 속에 웅크리고 웅크리고 침잠해 들어갈 뿐이다

그 침잠 속에서 깨어나 움직이는 것, 그것이 바로 슬픔의 힘이다

기쁨을 의식하기에, 기쁨을 향해서 움직이기에

'슬픔이 나를 깨운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헌책방에 숨어 있던 이 책이 내 손에 들어오게 된 것은

오직 하나의 시 때문이다

이 시집에 나오는 세 행짜리 시, '삶'

 

   삶

 

왜 사는가?

 

왜 사는가......

 

외상값.

 

황인숙, 슬픔이 나를 깨운다. 문학과지성사. 1997년. 재판 2쇄. 34쪽

 

빚지고 있다. 삶이란 아직 빚을 갚지 못했기에 살아가고 있는 것.

빚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면, 그 빚을 갚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런 생각도 없이 살면 그것은 삶에 대한 배신이다

이 짧은 시에서 이것을 말해주고 있다

무엇을 갚아야 할까?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 삶은 시인이 이야기한 '덤'에 불과해진다

우리 인생, 결코 덤이어서는 안된다

하여 밤은 아침을 예비하고, 가을은 봄을 예비하며, 슬픔은 기쁨과 함께 존재하고, 덤은 무엇이 있다는 얘기를 들려주고 있다

시가 우울하다고 시를 읽는 사람까지 우울해지지 않는다

우울한 시를 읽으며 자신의 우울을 치유할 수 있다

또한 슬픔의 시를 읽으며 자신의 슬픔을 치유할 수 있다

다시 주인을 맞이한 이 시집

슬픔을 통해 나를 일으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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