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이라는 유령 - 우리는 왜 4차 산업혁명에 열광하는가
김소영 외 지음, 홍성욱 기획 / 휴머니스트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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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어떤 것에도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을 붙였다. 이제는 그렇게 시대가 바뀌었다고, 뒤쳐지면 안 된다고...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해야 한다고, 교육도, 경제도, 사람도...

 

그런데 그렇게 호들갑을 떤 지 몇 년 -아마도 2016년부터 이 말이 유행이 되기 시작했다고 알고 있는데- 이 지났는데, 뭐가 달라졌는지 잘 모르겠다. 여전히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을 뿐이다.

 

하루만 지나도 확확 바뀌는 이 시대에,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이 나온 지가 2년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그냥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해야 한다든지, 그런 시대에 맞는 일자리, 또는 사람을 양성해야 한다는 말만 나오고 있다.

 

그만큼 실체가 없다. 무엇이 4차 산업혁명이지? 우리 삶을 어떻게 바꾸지? 어떻게 대비해야 하나?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은 추상적이다.

 

그냥 그 시대에는 일자리가 많이 없어질 것이고, 기계가 또는 인공지능이 일을 대부분 할 것이기 때문에 엄청난 실업자가 생길 것이며, 과학기술이 뒤떨어진 나라는 도태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더 살기 힘들어지는 것을 '혁명'이라고 하나? '혁명'이라는 말 속에는 사람들의 삶이 더 좋아진다는 의미가 들어 있는 것 아닌가?

 

일자리가 줄어든다? 그렇다면 여가 시간이 더 생겨서 다른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어야 하는데, 실업자가 생기고 비정규직이 더 늘어난다면 그것이 어떻게 '혁명'이 될 수 있나?

 

성장, 성장만을 외치며 앞으로 달려오기만 했던 전세계에 어쩌면 사람들이 이제는 성장이 아니라 분배에, 일보다는 여가를 더 누릴 수 있는 세상, 그것이 바로 '혁명' 아닐까.

 

대다수의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발전, 그것을 4차 산업혁명이라고 하면 그 혁명에 대해서 우리가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는데.

 

그런데 그것이 아닌가 보다. 뒤쳐지면 안 된다고 언론, 정부에서 계속 강조를 하는 것을 보니... 결국 이것 역시 부가가치를 창출하여 다른 사람들의 삶을 마이너스(-힘들게)로 몰아가면서 자신들이 플러스(+풍요롭게)가 되도록 하는 방향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지구촌이라는 지구에서도 마찬가지. 뒤쳐지는 나라는 더 살기 힘들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가 오기 때문에 4차 산업혁명 운운하는 것 아닌가 싶은데,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유독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이 더 많이 쓰인다고 한다.

 

다른 나라들도 변화를 추구해야 함을 인정하지만 우리나라처럼 그렇게 호들갑을 떨지 않는다는 것. 그렇다면 뭔가 이상하다? 왜 우리나라만? 이 책은 여기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이런 요란한 구호들이 과거에도 있어왔음을...

 

박근혜의 창조경제나 문재인 정부에서 말하는 4차 산업혁명이나 그렇게 다르지 않음을, 또한 과학기술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박정희 정권 때나 지금이나 그렇게 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위로부터 추진되는 일들이 내실을 다지기보다는 결과 중심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고, 이것은 과학기술의 발전보다는 이윤을 중심으로 정책을 펼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기본적인 과학이 발전하지 않고 오로지 기술만 발전하는 형태가 된다는 것. 4차 산업혁명이라 이름하든 다른 이름을 쓰든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토대를 튼튼하게 해야 한다는 것. 과학에 대한 장기적인 투자 없이는 자체 발전은 힘들다는 것.

 

이제 우리나라는 서양을 추격하는 모습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발전을 이루어야 하는데, 4차 산업혁명 논리는 결국 서양 추격논리에 불과하다는 것. 이런저런 점을 고려하건대, 4차 산업혁명을 주장하는 논리가 사회 전체의 발전, 이익으로는 가지 못한다는 것을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니 '유령'이라고 하는 거다. 아직은 제대로 실체를 파악하지 못했는데, 그냥 언론에서 떠들어대고, 정부는 이것을 받아 이렇게 하겠다는 구체적이지 않은 정책을 남발하고 있는 모습이 아닌가 하는 지적.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에 현혹되지 말고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우리 사회가 행복해질 수 있는 그런 정책을 펼쳐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기본에서부터 시작해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조금 시일이 지난 책이지만 읽어보면서 생각해 볼 것이 많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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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은 불온하다. 불온해야 한다. 시인은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누구도 시인에게 세상을 어떻게 보라고 강요할 수 없다. 그러므로 시인은 불온하다.

 

  주류에서 한발 비켜서 있는 존재. 그래서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는 존재. 남들이 이야기하지 않는 것들을 이야기하는 존재, 그런 존재가 시인이다.

 

  그런 시인들이 세상에 내놓은 시, 불온할 수밖에 없다. 주류의 눈에 차지 않을 수가 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시는 세상을 더 다양하게 볼 수 있게 하고, 세상을 더 풍요롭게 한다.

 

  이것이 시인이, 시가 지금까지 사라지지 않고 존재한 이유가 될 것이다. 그런데 어떤 권력자들은 이런 시인을 억누르려 한다. 표현하지 못하게 하려 한다.

 

이렇게 해서 나온 것이 그 유명한 블랙리스트... 시를 검은 감옥에 가두려 했다. 아니 시가 하얀 종이 위에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게 아예 검은 종이로 덮어버리려 했다고 해야 한다.

 

그러나 가둔다고 갇혀 있을 시들인가? 표현을 막는다고 알았다고 그냥 침묵할 시인들인가? 세상, 필화 사건이 끊이지 않는 것은 표현을 억압하려는 자들과 그럼에도 표현을 하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시는 이런 억압을 뚫고도 제 존재를 드러낸다. 오히려 더 우뚝하게...

 

에밀 졸라가 생각났다. 드레퓌스를 희생양으로 삼았던 이데올로기 광풍 시대에 '나는 고발한다'고 분연히 일어났던 문인. 나는 졸라가 쓴 '나는 고발한다'를 '나를 고발하라'로 읽기도 했다.

 

'자, 나도 고발해 봐라'라는 결기.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대놓고 지적하는 용기. 그런 용기를 문인들은 지녔다. 이렇게 대놓고 지적할 수도 있지만 그냥 자신이 하던 일을 계속함으로써 반항할 수도 있다.

 

"네가 나 하는 일을 막아? 어디 막아 봐!" 하면서 당당하게 계속하는 것. 시인들은 블랙리스트라는 검은 수갑에도 굴하지 않는다. 그것으로 막을 수 없으니까. 이 시집은 그렇게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간 시인들의 시를 모아놓은 시집이다.

 

블랙리스트 시인이라고 하니 불온한 시들이 난무할 거라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부패한 정권을 대놓고 비판하는 시인들만이 블랙리스트에 오르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 마음을 잘 표현한 시를 쓰는 시인들도 블랙리스트에 오른다. 너무도 순수하기 때문에, 그 순수의 눈으로 보면 부패한 정권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99명의 시인들뿐만이 아닐 것이다. 더 많은 시인들이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렸겠지. 책 뒷편에 가수 이승환이 글이 이를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이거 죄송스럽고 송구스러울 따름입니다. 나도 넣어라 이놈들아!  - 이승환

 

아마, 블랙리스트 존재가 알려진 다음에 대다수 시인들이 이승환처럼 말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런 일이 다시 생기게 하지 않기 위해. 좋은 시들이 많으니 어떤 시를 인용해도 무방하겠다. 이럴 땐 그냥 짧은 시... 함민복이 쓴 '막걸리'라는 시.

 

  막걸리

 

윗물이 맑은데

 

아랫물이 맑지 않다니

 

이건 아니지

 

이건 절대 아니라고

 

거꾸로 뒤집어 보기도 하며

 

마구 흔들어 마시는

 

서민의 술

 

막걸리

 

안도현 엮음, 검은 시의 목록. 걷는사람. 2017년 1판 2쇄. 1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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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배꼽, 그리스 - 인간의 탁월함, 그 근원을 찾아서 박경철 그리스 기행 1
박경철 지음 / 리더스북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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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팔로스'라는 말, 많이 쓰는 말인데, 이 말이 '배꼽' 또는 '중심'이라는 뜻을 지닌 말이라는 것을 안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지구의 중심, 우주의 중심. 옴팔로스. 이것은 아폴론 신전이 있는 곳에 붙인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그만큼 자신들의 삶에 자부심이 있었던 것이라 하겠다.

 

그리스 중에서도 델포이를 옴팔로스라고 하면 너무 범위가 좁아지니, 세계 문명으로 확대를 하면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이 세계 문명의 중심, 또는 발상지라고 생각해서, 자신들이 지구의 옴팔로스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그리스로마 신화에 너무도 익숙한 그들의 사고방식이 그리스를 그렇게 여기기도 했을 거고. 우리 동양에서야 중국이 자신들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해서 가운데 중자를 써서 중국이라고 하겠지만, 동서양에서도 문명이 발달했던 나라들은 자신들의 민족에 대해서 자부심을 지니고 있을 수밖에 없다.

 

동양이나 아메리카를 제외하고 유럽 쪽으로 한정을 하면 그들 문명의 근원을 그리스에서 찾는데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만큼 그리스는 서양 문명의 근원을 이루고 있다.

 

그리스 신화가 로마 신화로 변질되고, 로마는 유럽을 제패했으니, 그 문화가 유럽 각지로 번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수천 년을 이어온 문명의 근원이 바로 그리스 문명이라고 할 수 있다.

 

시골의사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박경철이 그리스 여행을 하고 여행기를 썼다.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다. 그 나라의 문명을 소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이 책에서는 그리스 여행을 통해 자꾸 우리를 불러내고 있다.

 

우리들은 무엇인가? 우리들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이런 질문을 하게 한다. 이 여행기는 그가 직접 그리스 전역을 돌면서 보고 듣고 느낀 점을 쓴 것이다.

 

그것도 특이하게 카잔차키스와 함께 하는 여행이다. 여행기 곳곳에서 카잔차키스의 글이 나온다. 그를 수시로 불러낸다. 자신이 잘 이해가 되지 않을 때도 카잔차키스에 의지하기도 한다. 그리고 크레타 섬에서 겪었던 일.

 

카잔차키스 무덤에 절을 하는 그를 보고 왜 그렇게 하느냐고 묻고는, 박경철이 그는 내 영웅입니다라고 대답하자, 물었던 사람이 자기가 택시 기사인데 내일 자기 택시로 무료로 카잔차키스를 만날 수 있는 곳을 다 보여주겠다고 하고, 그렇게 한 다음에 집에 초대에 성대한 저녁 식사까지 대접했던 일화.

 

그에게도 카잔차키스는 영웅이었다는 것, 같은 사람을 영웅으로 여기는 사람은 친구라는 것, 친구는 대접해야 하고 환대해야 한다는 것. 그리스 인들의 성정.

 

그리스 신화에도 나온다. 제우스법이라고... 손님은 잘 환대해야 한다고. 그러니 그리스 사람들이 친절한 것이, 동네에 숨어 있는 음식점만이 아니라 유원지 근처의 음식점도 다들 개성있고 성의있게 요리를 해서 맛집이 도처에 있다는 것.

 

이렇게 그리스 신화와 또 카잔차키스의 흔적까지 만날 수 있는 여행기다. 무엇보다도 이들을 통해서 우리를 만날 수 있게 해주는 여행기라서 더 의미가 있다.

 

이런 것들보다 이 여행기가 더 반가운 것은 우리는 그리스 여행하면 제일 먼저 아테네와 파르테논 신전을 떠올리는데, 박경철은 펠로폰네소스 반도부터 갔다는 것. 그리스에 대해서 식상하지 않은 접근을 하게 한다.

 

코린토스->네메아->올림피아->아르고스-> 스파르타

 

친숙한 이름들이다. 코린토스는 펠레폰네소스 반도로 들어가는 입구에 해당하고, 철벽을 자랑하는 성벽이 있었지만 결국 여러 나라로부터 침략을 당하는 역사를 지닌 곳. 이곳은 아프로디테의 욕망이 잘 구현된 도시였다는 것.

 

네메아는 헤라클레스가 사자를 퇴치한 곳, 올림피아는 지금도 열리는 올림픽의 원조가 되는 곳, 아르고스는 나중에 트로이 전쟁이 일어나게 되는 원인을 제공하는 이오가 납치되는 도시,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스파르타 교육으로 잘 알려진 스파르타.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실질적 지배자, 스파르타. 과거에 영광을 누렸던 곳, 그러나 멸망한 이후 지금은 어느 곳에서도 그때의 영광을 찾을 수 없는 곳. 박경철의 말을 빌리면 하다못해 다른 도시에서 볼 수 있는 고대 유물들, 신전들조차 잘 찾을 수 없는 곳이라고 하니, 관광객들에게도 외면받는 곳이라고 한다.

 

과거의 영광이, 힘으로 유지되던 영광이 무너지면서 후대에 남지 못하게 된 것. 스파르타는 지금 우리가 어떤 정치 체제를 지녀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알려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이 여행기는 스파르타에서 끝난다. 다음에는 다른 곳으로 가겠지. 위대한 여행자라는 칭송을 받는 카잔차키스와 계속 함께 하면서.

 

혹 나도 나중에 그리스를 여행할 일이 생기면 그때 나는 카잔차키스가 아니라 박경철이 쓴 이 책을 읽고 또 들고 가겠다. 가서 박경철이 본 그리스에 내가 보고 듣고 느낀 그리스를 덧불이겠다. 그런 생각이 들게 한 책이다. 물론 그 전에 카잔차키스 책들을 더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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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정주가 그랬던가. 그의 시 '자화상'에서. '나를 키운 것은 팔 할이 바람이었다'고.

 

  그렇다면 60-70년대 청소년기를 서울에서 보낸 사람들을 키운 것은? 바로 청계천 뒷골목 또는 세운상가가 아닐까...

 

  이곳에서는 못 구할 것이 없었다고 하고, 청소년들은 자신들이 욕망하던 것들을 은밀하게 이곳에서 얻었다고 한다. 이들은 이렇게 세운상가를 통해서 어른이 되어갔다.

 

  아니 어른들의 세계를 만났다고 할 수 있다. 어른들이 절대로 보여주지 않으려 하던 세계를 세운상가에서 만나고, 경험하고 자란 세대들.

 

그들은 그래서 세운상가의 아이들, 또는 세운상가를 통해 사랑을 배운 세대들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서울에 살던 청소년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세운상가를 통해 어른의 세계로 진입한 청소년들이 있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이 시집에는 그래서 뒷골목에서 이야기되던 것들과 대중문화가 자주 등장한다. 지금은 연예인이 되고자 하는 욕망으로 시달리는 청소년들이 많지만, 그 당시에는 차마 연예인이 된다는 생각은 못하고 그저 연예인들을 우상으로 섬기던 청소년들이 있었음을...

 

이 시집 도처에 나오는 연예인들 이름은 그래서 그 당시에 욕망하던 것들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해준다. 그 욕망이 과연 채워졌을까는 논외로 하자. 그렇게 욕망하던 것들을 통해 성숙이라는 길에 들어서게 된 청소년들의 모습을 이 시집에서 만날 수가 있다.

 

그렇다고 욕망만으로 살아갈 수는 없는 법. 지금은 비록 비루할지라도 이들이 꿈꾸는 모습은 저 하늘 위에 있는 별과 같은 것이었으니. 그 별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나를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꿈만 꾸어서는 안 된다.

 

지금의 나와 미래의 나는 같은 존재. 그러나 어떻게 살아가냐에 따라 달라지는 존재가 된다. 그런 생각을 하게 한 시. '흑연과 다이아몬드'

 

탄소라는 같은 구성 원소로 이루어져 있지만, 너무도 다르게 느껴지는 이 두 물질을 하나로 묶어 놓은 시.

 

  흑연과 다이아몬드

 

다이아몬드와 흑연은

같은 구성 원소로 이루어져 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흑연은

원자의 결합 상태가 느슨하고

조직이 헝클어져 있을 뿐

 

그렇다면 혹 나도, 심신의 조직이

미세하게 헝클어진 관계로

광휘만을 숭배하는 이 인생의 광산 속에서

흑연을 닮은 사람으로 살고 있는 게 아닐까

 

매순간, 자신의 육체를

값싼 종이의 여백과 기꺼이 맞바꾸고 있는,

캄캄한 흑연의 운명

 

같은 구성 원소? 물론 다아이몬드는 간단히 비웃겠지

같잖은 흑연의 광물적 몽상과 비약을,

그러나 닳아지는 살들이여, 난 끝끝내

흑연의 영혼으로 걸어갈 것이다

저, 노래의 다이아몬드를 향하여

 

유하, 세운상가 키드의 사랑, 문학과지성사. 1996년 초판 3쇄. 56쪽.

 

발은 땅에 딛고 있지만 머리는 하늘을 꿈꾸는 우리 인간들 모습, 그래서 우리는 흑연처럼 살아가지만 결국은 다이아몬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시다. 

 

세운상가 키드라는 그리 좋은 이름을 달고 있지는 않지만 이들은 자라서 다이아몬드처럼 인정받는, 빛나는 존재가 되려고 한다.

 

우리네 삶도 그렇지 않은가? 삶의 진창에서 허덕일지라도 우리는 밝고 빛나는 미래를 꿈꾸지 않는가. 새해, 이제 그렇게 흑연처럼 살아갈지라도 우리가 최종적으로 도달할 곳은 다이아몬드임을 이 시를 통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올 한 해 '끝끝내 / 흑연의 영혼으로 걸어갈 것이다 / 저, 노래의 다아이몬드를 향하여'라고 한 구절처럼 그렇게 지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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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위화 지음, 백원담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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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기 중국 현대사를 살아온 한 노인의 이야기다. 중국도 우리나라만큼이나 어려운 일들을 겪었는데, 그 일들을 겪는 모습이 소설 속에 잘 드러나 있다.

 

제목이 [인생]인데, 예전에 나온 책은 [살아간다는 것]이라고 번역을 했다고 한다. 중국어 제목이 '활착(活着)'이니 살아간다는 것, 그것이 곧 인생이니 어떤 제목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한 사람의 일생을 이렇게 요약할 수가 있는데, 이 사람의 인생에서 중국 현대사까지 겹치고 보니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중국 현대사를 비판한다기보다는 사회가 아무리 변화가 심하고 사람들을 힘들게 해도 사람들은 살아가기 마련이라는 것, 그것이 바로 인생이라는 것을 이야기하지 않나 싶다.

 

푸구이. 지주의 아들. 젊은 시절까지 남부러울 것이 없는 인생. 다른 사람 눈으로 보면 개차반인 인생이다. 술과 도박, 그리고 여자. 젊은 지주들이 빠지기 쉬운 길에 들어서 그곳에서 헤어나지 못하던 인생 전반부.

 

도박판. 결국 인생은 도박과 같다지만 아니다. 도박판은 거짓과 사기가 난무하는 현장이다. 인생은 그런 거짓과 사기를 딛고 현실에 살아가는 과정이고. 그는 전재산을 날린다. 지주에서 소작농으로 전락. 그나마 원하지 않게 군대에 끌려가는 푸구이. 국민당 군대. 얼마나 썩었는지 소설에서 국민당 군대의 중대장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현대 중국은 아무리 비판을 하더라도 국민당에 의해 유지될 수는 없는 법. 푸구이는 공산당에 포로가 되지만 그들은 자유의사를 존중해 준다.

 

여기서 위화가 어떤 관점을 지니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에게 중국은 비판받을 수도 있지만 부패한 국민당 치하의 중국은 아니다. 장점이 많았던 공산당.

 

'은혜 갚는 건 포기하자. 대신 해방군이 잘해준 건 절대 잊지 않기로 하자.' (105쪽)

 

이 문장에 현대 중국을 바라보는 관점이 들어있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은 선택을 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난봉꾼에서 착실한 농군으로 돌아온다. 아내를 사랑하고 아이들을 사랑하는 평범한 삶.

 

마냥 평범한 삶이 지속되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만은 세상일은 그렇게 되지 않는다. 우리는 많은 고난을 겪게 된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문화대혁명. 사람들을 비껴가지 않는다. 푸구이도 마찬가지다.

 

그가 보고 겪게 되는 문화대혁명의 모습은 중국 사회주의가 어떻게 변질되어가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당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되고 실행되지만 그것은 사람들의 삶에 행복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

 

사람들 삶의 행복은 거대한 목표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들은 소소한 일상에서 나온다. 푸구이의 삶은 그것이다. 비록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지만 가족이 함께 살아단다는 것, 그것이 행복이다. 이런 행복이 끝까지 유지되면 좋겠지만, 어디 인생이 그러한가?

 

푸구이는 가족들을 모두 자신보다 먼저 떠나보낸다. 그리고 늙은 소와 함께 늙어간다. 이것이 바로 인생이라는 듯이.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살아가야 한다는 듯이.

 

인생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하는 말이 있다. 어떻게 될지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우리 인생이라는 것이다. 복이 화가 되기도 하고, 화가 복이 되기도 하는 그런 삶들.

 

사람들이 평생을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길흉화복을 겪게 되겠는가. 그 어느 것도 인생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내가 잘나간다고 마냥 우쭐해서도 안 되고, 지금 힘들다고 좌절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해도 안 되는 것이다.

 

어떻게든 살아가야 한다는 것, 어떻게든 살아진다는 것, 그것이 바로 인생이라는 것을 푸구이 노인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위화 특유의 경쾌한 문체, 빠른 전개로 한 노인의 인생이, 한 가족의 삶들이 소설 한 편에 실려 있다. 극심한 슬픔을 동반하는 장면에서도 해학을 잃지 않는 그의 소설 전개는 이 소설을 단숨에 읽게 만든다. 그리고 비관에 젖어 헤어나지 못하게 하지 않는다. 슬픔 속에서도 웃음을 찾아내고, 그것을 이겨내는 등장인물을 보여주고 있다.

 

바로 이것이 인생이라는 듯이. 그래 우리네 인생에는 이렇들 모든 것이 들어 있지. 어느 하나만으로 우리 인생이 만들어지지는 않았지.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든 살아가야 하지. 우리 인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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