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은 불온하다. 불온해야 한다. 시인은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누구도 시인에게 세상을 어떻게 보라고 강요할 수 없다. 그러므로 시인은 불온하다.

 

  주류에서 한발 비켜서 있는 존재. 그래서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는 존재. 남들이 이야기하지 않는 것들을 이야기하는 존재, 그런 존재가 시인이다.

 

  그런 시인들이 세상에 내놓은 시, 불온할 수밖에 없다. 주류의 눈에 차지 않을 수가 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시는 세상을 더 다양하게 볼 수 있게 하고, 세상을 더 풍요롭게 한다.

 

  이것이 시인이, 시가 지금까지 사라지지 않고 존재한 이유가 될 것이다. 그런데 어떤 권력자들은 이런 시인을 억누르려 한다. 표현하지 못하게 하려 한다.

 

이렇게 해서 나온 것이 그 유명한 블랙리스트... 시를 검은 감옥에 가두려 했다. 아니 시가 하얀 종이 위에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게 아예 검은 종이로 덮어버리려 했다고 해야 한다.

 

그러나 가둔다고 갇혀 있을 시들인가? 표현을 막는다고 알았다고 그냥 침묵할 시인들인가? 세상, 필화 사건이 끊이지 않는 것은 표현을 억압하려는 자들과 그럼에도 표현을 하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시는 이런 억압을 뚫고도 제 존재를 드러낸다. 오히려 더 우뚝하게...

 

에밀 졸라가 생각났다. 드레퓌스를 희생양으로 삼았던 이데올로기 광풍 시대에 '나는 고발한다'고 분연히 일어났던 문인. 나는 졸라가 쓴 '나는 고발한다'를 '나를 고발하라'로 읽기도 했다.

 

'자, 나도 고발해 봐라'라는 결기.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대놓고 지적하는 용기. 그런 용기를 문인들은 지녔다. 이렇게 대놓고 지적할 수도 있지만 그냥 자신이 하던 일을 계속함으로써 반항할 수도 있다.

 

"네가 나 하는 일을 막아? 어디 막아 봐!" 하면서 당당하게 계속하는 것. 시인들은 블랙리스트라는 검은 수갑에도 굴하지 않는다. 그것으로 막을 수 없으니까. 이 시집은 그렇게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간 시인들의 시를 모아놓은 시집이다.

 

블랙리스트 시인이라고 하니 불온한 시들이 난무할 거라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부패한 정권을 대놓고 비판하는 시인들만이 블랙리스트에 오르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 마음을 잘 표현한 시를 쓰는 시인들도 블랙리스트에 오른다. 너무도 순수하기 때문에, 그 순수의 눈으로 보면 부패한 정권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99명의 시인들뿐만이 아닐 것이다. 더 많은 시인들이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렸겠지. 책 뒷편에 가수 이승환이 글이 이를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이거 죄송스럽고 송구스러울 따름입니다. 나도 넣어라 이놈들아!  - 이승환

 

아마, 블랙리스트 존재가 알려진 다음에 대다수 시인들이 이승환처럼 말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런 일이 다시 생기게 하지 않기 위해. 좋은 시들이 많으니 어떤 시를 인용해도 무방하겠다. 이럴 땐 그냥 짧은 시... 함민복이 쓴 '막걸리'라는 시.

 

  막걸리

 

윗물이 맑은데

 

아랫물이 맑지 않다니

 

이건 아니지

 

이건 절대 아니라고

 

거꾸로 뒤집어 보기도 하며

 

마구 흔들어 마시는

 

서민의 술

 

막걸리

 

안도현 엮음, 검은 시의 목록. 걷는사람. 2017년 1판 2쇄. 199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