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를 듣기도, 신문을 펼치기도 싫다.

 

들리는 소리는 다 귀를 씻어도 시원찮을 소리고(허유와 소부의 고사처럼, 귀를 씻은 물이 강물을 오염시킬까봐 두렵기만 한 나날들이다), 신문을 보면 열통이 터지는 기사들만 난무하고 있다.

 

그러다 오늘 본 <한겨레 신문>, 첫 면. 커다랗게 나온 사진. 전봉준.

 

그 눈빛, 끌려가면서도 세상을 꿰뚫을 것 같은 그 눈빛을 지닌 사람, 녹두장군. 그의 사진을 보며 마음이 뭉클했다.

녹색평론 11-12월호에서도 전봉준에 대해서 다루었는데, <한겨레 신문>에도 그의 사진이 나오다니... 이게 우연일까?

 

아니라는 생각. 그만큼 이런 인물이 필요한 시대라는 생각이 든다.

 

전봉준은 허균의 말대로 한다면 '호민'에 해당할 터.

 

항민들이 그냥 그대로 순응하면서 살아가고 있는데, 탐학이 겹치니 이러한 항민이 원민이 되어 버린 시대. 원민을 그대로 놓아두지 않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던 사람, 그가 바로 호민이다.

 

그 호민을 따라 원민도 항민도 함께 일떠섰던 일, 동학 혁명.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우리나라에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보여주었던 그런 혁명.

 

전봉준에 겹쳐 허균이 떠오르고, 허균의 호민이 생각나니, 자연스레 홍길동이 나타나게 되고. 홍길동, 그는 호민이었음에 분명하지만, 전봉준이 농민이 주인이 되는 세상, 아니 모든 사람이 평등한 인내천(人乃天) 세상을 꿈꾸었다면 홍길동은 차별이 없는 세상을 꿈꾸었으되, 그것이 자신에 대한 차별 철폐에 그치고 만 한계가 있는데, 이는 시대적 한계이겠지만, 적어도 허균은 사람들이 신분으로 차별받는 세상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그의 유재론을 보라)

 

무상급식을 없애고 누리교육과정에 돈을 써라. 정부에서 3-6개월은 양보할 수 있다. 절충안 제시.

 

이상하다. 절충안은 교육청에서 제시해야 하는 것 아닌가?

 

누리교육과정은 대통령 공약이고, 조례든 법령이든 이는 정부가 해결해야 할 문제인데, 이를 교육청에 넘기면서 무상급식을 폐지하란다.

 

말을 한 번 잘못 썼더니 이런 일을 당한다. 무상급식이 아니라 의무급식이다. 의무교육에는 학생들의 심신을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다.

 

학교에 학생을 보내지 않으면 부모에게 과태료를 물게 할 정도로 학교에 꼭 보내라고, 그것이 의무교육이라고 하면서 왜 학교에서 밥을 책임지지 말라고 하는지, 그것은 부모가 알아서 할 문제라고 하는지 이해가 안된다.

 

교육기관도 아니고 보육시설로 되어 있는 어린이집을 교육기관인 교육청에서 책임지라니, 우리나라 보건복지부는 뭐하는 부서인지.

 

세월호법 역시 유가족들의 뜻과는 멀게 정리가 되어 가고 있고, 무상급식이 아닌 의무급식은 자꾸 하지 말라고 해서 아이들을 굶주리게 하거나, 아니면 남 눈치 보면서 밥 먹게 하면서, 비정규직은 차별을 견디지 못해 힘들게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데, 우리나라 학생들의 만족도, 행복지수는 선진국 가운데 꼴찌라는데...

 

학생들뿐만이 아니라 부모들도 살기 힘들다고 아우성치는데... 공무원연금법은 개정한다고 하는데, 당사들과 또 제3자들과의 합의도 없이 먹고살기 편안한, 아니 지들은 너무모 편하게 세비를 받아 쓰고 있는 족속들이 나서고 있는데...

 

우리나라 국민들이 항민에서 원민으로 넘어가고 있는 상태 아닌가? 힘들다고 힘들다고, 이건 아니라고 아니라고 외치고 있는 상태 아니던가. 

 

여기에 호민이 나서기만 한다면, 그렇다면 세상이 어떻게 될까? 호민, 그리워지는 시대다.

 

갑자기 정여립이 생각났다. 요즘 돌아가는 꼴을 보면서 이렇게 정여립처럼 팽당한 사람이 있지 않을까?

 

그가 꿈꾸던 대동세상은 어쩌면 허균이 말하던 호민이 나서서 건설하려던 세상과 같은 세상이 아니었을까? 녹두장군이 꿈꾸던 세상 역시 대동세상 아니던가.

 

그 때보다 모든 면에서 풍족해진 시대. 그럼에도 왜 이렇게 살기 힘들다는 말이 나오는 걸까? 아직도 국민은 졸인가? 호민이 필요한가? 국민은 졸이 아니라 주인이라고 외치는. 그렇게 함께 외치는.

 

그런 호민.

 

제발 국민들을 원민으로 만들지 말라. 원민이 많아지면 홍길동, 녹두장군같은 호민이 나타난다. 호민을 사람들이 부른다. 호민은 그 자체로 호민이 아니다. 세상이 만들고 세상이 부를 때 나타난다.

 

오늘 본 전봉준의 사진. 그 눈빛.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슬프다. 그의 눈빛이 아직도 내 가슴에 파고드는 이 현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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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도시 - 건축으로 목격한 대한민국
서현 지음 / 효형출판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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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빨간 도시"

 

"회색 도시"라는 말은 들어보았어도, 빨간 도시라는 말은 처음 듣는다. 낯설다. 이 낯섦이 책을 읽게 만들었다.

 

빨강이라는 색채에서 연상되는 것은?

 

아마도 붉은 악마로 대표되는 역동적이고 열정적인 모습일 수도 있고, 축구에서 심한 반칙을 범한 선수에게 내미는 퇴장 카드를 떠올릴 수도 있고, 무언가 해서는 안된다는 금기를 생각할 수도 있다. 아니면 조심하라는 경고의 표시로 받아들일 수도 있고.

 

이 책을 읽으며 '빨간 도시'라고 표현한 것은 우리나라 도시들이 형편없음을, 마치 축구에서 불필요한 행동을 한 선수를 퇴장시키듯이 이러한 건축을 퇴장시켜야 한다는 뜻으로 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어떤 건축에 대하여라는 1부에서 우리나라 건축의 야만성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과 동떨어진 건축에 의한, 건축을 위한, 건축만의 건축을 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실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제도 '건축으로 목격한 대한민국'이다.

 

건축으로 본 우리나라는 후진성을 면치 못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도시에 사는 사람과는 상관없이 보여지기 위한 건축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현실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런 우리나라 도시 건축과 그 도시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배려해서 결국은 관광객까지 끌어들인 다른 나라의 도시를 보여주는데, 그런 작업이 2부 어떤 도시에 대하여에서 펼쳐지고 있다.

 

건축은 결국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건축과 어울릴 때 그 건축이야말로 좋은 건축이라는 사실을, 무엇보다도 사는 사람을 우선으로 해야 함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런 도시와 우리나라 도시를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 도시들은 건물이나 자동차에게 주요한 자리를 내주고, 사람들은 주변으로 밀려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걷는 사람을 배려한, 아니 이것은 배려가 아니라 당연히 고려해야 할 첫째 순위인데, 길이 거의 없고, 오로지 바퀴달린 기계가 잘 다닐 수 있도록 계획한 도로만이 떡하니 버티고 있는 상황을 이 책을 읽어가면서 머리 속에서 그릴 수 있게 된다.

 

더불어 분노도 치밀고. 사람이 잘 살기 위해서 존재해야 할 도시가 사람을 주변으로 내몰고, 기계나 건물 중심으로만 남아 있음을 보게 되니 말이다.

 

그러나 이렇게 분노하게 만드는 데 이 책의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목이 바로 "빨간 도시"이지 않은가.

 

빨강이라는 강렬한 색채를 책의 제목으로 선택한 이유가 바로 우리에게 선명한 인상을 남기기 위해서 아니겠는가.

 

우리 도시는 지금 위험에 처해 있다는, 그래서 이렇게 가면 안된다는, 이 지점에서 멈춰야 한다는 "빨간 신호등" 역할을 이 책이 하고자 하는 것 아니겠는가.

 

이 책이 그런 역할을 하고자 한다면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은 도대체 우리에게 지금 멈추라고 신호를 보내는 건축이 무엇인가 찾아야 한다. 찾아서 고쳐야 한다.

 

우선은 건축가들이 먼저 나서면 좋겠지. 왜냐하면 이들은 건축에 관해서는 전문가니까. 그리고 진정한 건축은 바로 사람이 행복한 건축이니까. 이들의 눈에 행복하지 않은 건축은 잘못된 건축일테니.

 

그래서 자연스레 3부는 어떤 건축가에 대하여다. 건축가로서 지은이가 느꼈던 점들, 건축가가 되고자 하는 학생들이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하는지, 어떤 공부를 해야 하는지,문과 이과의 구분이 얼마나 야만적인지,  왜 건축이 인문학일 수밖에 없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아마도 건축을 공부하고 싶은 사람은 이 3부를 읽으면 도대체 건축가는 어떠해야 하는가를 알게 될 수 있으리라.

 

하여 다시 "빨간 도시"다. 충분히 경고를 했다. 이제는 멈추어야 한다. 멈춘 다음에는 다시 나아가야 한다. 제대로 된 방향으로. 열정을 가지고. 이 때 '빨강"은 열정이 된다.

 

이렇게 된 "빨간 도시"는 열정이 넘치는 도시, 사람들이 활기차게 살아가는 도시가 된다. 이런 도시에서는 사람들의 숨이 행복으로 가득차게 된다.

 

이전의 빨간 도시가 아니다. 활력과 열정으로 살아 움직이는 생생한 도시가 된다. 그런 "빨간 도시"가 되어야 한다. 그게 건축가들이 꿈꾸는, 또 우리들이 꿈꾸는 도시 아니었던가.

 

이제는 멈출 때가 되었다. 다시 시작할 때가 되었다. 적어도 우리나라가 그 정도는 되지 않았는가.

 

그러니 "빨간 도시" 이 의미가 우리에게 살아 있게 우리 관심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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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꾸준히 정기 구독을 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책 가운데 하나.

 

두 달에 한 번 나오지만, 그 동안에 내가 살아온 방식을 반성하게 만드는 책이기도 하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하게 하기도 하는 책이기도 하고.

 

근본주의자라는 말을 듣기도 하지만, 세상에서 근본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없다면 세상은 더 좋아질 가능성이 없다는 생각도 든다.

 

근본을 추구하되, 다름을 인정하고, 근본을 남에게 강요하지 않고, 자신의 삶으로 보여주는 일.

 

그것이 지식인의 역할이고, 지금 녹색평론과 같은 책이 해야 할 역할이다.

 

이번 호는 " 대안학고, 희망의 교육을 위하여"이다.

 

녹색평론이 생태주의를 표방하고 있는데, 이 생태주의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교육을 간과할 수가 없다. 교육은 생태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할 수도 있는데, 그럼에도 어떤 교육이냐가 중요한데, 이런 교육에 대해서 우리는 제도권 교육이나 학원 교육으로 대표되는 사교육에 대해서는 이야기도 많이 하고, 고민도 많이 하지만, 대안교육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는다.

 

대안교육. 말 그대로 이것이 아닌 저것을 추구하는 교육. 이곳이 아닌 우리가 원하는 세상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교육이 대안교육이라고 해야 할텐데, 지금 수많은 대안학교들 중 대안교육을 실질적으로 행하고 있는 학교는 그리 많지 않다는 생각이다.

 

이번 호에서 대담에 참여한 분들도 우려하고 있는 것이 대안이라는 이름으로 전혀 대안적이지 않은 기관까지 묶여 있으며, 정부에서는 대안교육을 인가라는 무기로 간섭하고 통제하려 한다는 점이다.

 

대안교육은 그냥 놓아두어야 한다. 마음껏 할 수 있도록, 대신 대안교육이니 너희들 맘대로 할 것이니 우린 모른다 하는 자세가 아니라, 너희들이 꿈꾸는 교육을 해라, 그런 교육을 할 수 있도록 우리가 뒷받침해주겠다 하는 자세를 지녔으면 하는데...

 

꿈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지금처럼 대안교육이 들불처럼 일어나지도 않았겠지.

 

그럼에도 대안교육은 필요하다. 왜냐하면 대안교육이 제도권 교육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좌담에서도 나오지만 혁신학교가 만들어지고 나름 성과를 거두게 된 데에는 대안학교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므로 교육은 죽었다. 학교는 죽었다는 말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는 지금 이 시대, 대안 교육은 여전히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서 제도권 교육과 대안 교육이 함께 가야 한다.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제도권 교육과 대안 교육이 함께 가는 사회, 이런 사회는 생태적 사회가 될 수 있다.

 

생태적 사회라는 이야기는 다양성이 존중받는 사회, 다양성을 이루는 사회일테니 말이다.

 

이런 대안 교육에 대한 글과 더불어 배병삼의 글이 마음에 와 닿았다. 한자어를 풀이하는 과정에서, 아니 유교 경전을 읽어내는 과정에서 우리에게 늘 다가왔던 말, 인(仁). 이 말을 이야기하면서, 배병삼은 날것 그대로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도대체 지식인으로서 감정을 숨기기에는 지금 우리 사회가 너무 저열하다. 그들에게 고급스런 단어(이런 말이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걸 사교적인 언어라고 하지)를 쓸 수가 없는 상태라는 사실을 이 글을 읽으면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단장의 슬픔을 애써 외면하려는 그런 집단에게 인(仁)이란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찾을 수 없는 그런 족속들이니, 어찌 고운 말이 나올 수 있겠는가.

 

이런 애타는 마음이 날것 그대로 글에 드러나 있는데, 이것이 바로 공부한 사람들이 지닌 마음의 자세 아닐까.

 

공부란 나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해서 하는 것일텐데, 이기적이기 위해서는 이타적이어야 하듯이, 공부는 남과 나를 잇는 다리가 되어야 할텐데,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서 공부를 하는 집단. 오로지 제 말만 하는 집단. 그런 집단들에게 이번 호 배병삼의 글을 그대로 들려주고 싶다.

 

"불인하도다, 이 땅이여. 잔인하도다, 이 땅 사람들이여. 아! 슬프다." (71쪽)

 

이 땅, 이 땅 사람들. 누구를 말하는지 꼭 짚지 않아도 알만한 사람은 다 알 터.

 

두 달에 한 번 여전히 내 생각보다 앞서 간 책을 읽는 재미는 단지 재미로 그치지 않는다. 나를 되돌아 보게 한다. 내 삶을 성찰하게 한다. 내가 어떤 삶길을 걸어가야 하는지 보여준다.

 

그래. 이것이다. 이것이 바로 책의 역할이다. 책은 시간을 때우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책은 단지 시간을 때우게 해서는 안된다.

 

한 사람의 영혼에 자리잡아 그 사람의 삶을 이끌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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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4-11-09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녹평 독자를 만나면 언제나 반가워요!!
그나마 녹평이 있어 이 사회가 이 정도라도 유지하고 있는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어요.
 
나는 왜 이렇게 산만해졌을까 - 복잡한 세상, 넘쳐나는 기기 속에서 나를 잃지 않는 법
알렉스 수정 김 방 지음, 이경남 옮김 / 시공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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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메일 무호흡증이라고 들어 보았는지. 수면무호흡증은 들어보았어도, 이메일 무호흡증은 처음 듣는 말이었는데, 잠잘 때 숨을 쉬지 않는 경우가 있듯이 이메일의 홍수 속에서 그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숨을 무의시적으로 쉬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경우가 있는 정도가 아니라, 점점 더 빈도수가 많아지고 있다고 하는데... 그만큼 우리는 잠만큼이나 이메일과 같은 전자기기, 즉 디지털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다고 할 수 있다.

 

함께 하는 시간은 많아지는데, 의식적으로 이용하는 시간은 적어지니, 자연스레 무호흡증이 생길 수 있고, 이 무호흡증이 당장은 건강에 영향을 미치지 않더라도, 장기적으로 몸에 좋을 리가 없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 않을까.

 

그럼에도 이것이 의식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데 문제가 있는데, 이메일 무호흡증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스위치 태스킹을 멀티 태스킹으로 착각을 하고 지내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고 한다.

 

한꺼번에 여러 일을 한다고 착각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 일들을 순서대로 할 뿐이고, 체계적이지 않은 그 일들을 처리하기 위해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사용하면서도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

 

이것이 바로 디지털 주의 결핍 상태, 즉 디지털로 인한 주의 산만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산만함을 다방면의 일을 동시에 처리함으로 착각하고 지내는 일, 그것이 디지털 시대의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한다.

 

이를 우리나라에 적용해 보자. 우리나라는 이메일 무호흡증이라기 보다는 카톡 무호흡증이라고 해야 하고, 컴퓨터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스마트폰 중독으로 인한 스마트폰에 의한 주의력 결핍 상태가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아이들의 일상을 관찰해 보라. 아이들은 한 순간도 스마트폰을 손에서 떼지 않는다. 또 언제든지 스마트폰이 울린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이 책에 나와 있는 현상을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더 심하게 겪고 있는 것이다.

 

물론 늦게 스마트폰을 만나게 된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사람들을 관찰해 보면 모두들 손에 이 작은 기기를 들고 몰두하고 있다. 여기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 기기가 잠시라도 없으면 불안해 한다.

 

그렇다고 일의 능률, 학생들의 학습 집중력이 높아졌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학습 효과를 이루는 것 같지만, 그것은 착가에 불과하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이 책은 그 점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고 디지털 시대를 벗어나야 한다고, 거부해야 한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이미 그럴 수는 없다.

 

이런 디지털 기기는 이미 우리 몸의 일부가 되었고, 우리 몸은 이런 기기들로 인해서 확장이 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얽힘'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 얽힘을 인정하고, 여기에서부터 시작하자고 한다.

 

어떻게? 우선 "관조"

 

디지털 기기를 다루고 있는 나를 관찰하는 연습부터 하자는 것이다. 이를 거리두기라고도 할 수 있는데, 명상이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이런 명상과 같이 디지털 기기를 다루는 나를 생각하고, 인식하면서 기기를 다루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한다.

 

명상에서 호흡을 하면서 호흡이 내 몸에 어떻게 들어오고, 어떻게 나가는지를 의식하면서 하듯이 디지털 기기를 다루면서 내가 지금 왜, 어떻게 이 기기를 다루고 있는지를 생각하면서 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의식적으로 디지털 기기에 매달릴 때보다 훨씬 더 디지털 기기를 제대로 잘 다룰 수 있다고 한다.

 

이에 더불어 하나 더 디지털 안식일을 갖자는 것이다. 러다이트운동처럼 기기를 거부하고 파괴할 수는 없으니, 이를 이용하되 일정한 시간을 두고 디지털 기기를 닫아두는 생활을 하자는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디지털 안식일을 갖는다면 디지털에 대해 더 의식적인 사용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좋은 말이다. 디지털에 몰입을 하더라도 그렇게 몰입하는 자신을 바라보는 관조가 필요하고, 디지털 세계에서 잠시 벗어나 자신의 세계를 갖는, 오프라인에서 자신의 생활을 하는 그런 디지털 안식일을 갖는 것, 그것이 바로 디지털로 인한 산만함에서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한다.

 

여기에 자연 속을 산책하는 일... 오프라인의 결정체. 그런 일들. 우리 아이들에게 온라인 상의 세계만이 아니라 오프라인에서의 세계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경험하게 하는 일. 그것을 어른들이 먼저 실천하는 일.

 

디지털 홍수 시대에서 나를 잃지 않는 법이다.

 

적어도 디지털 기기를 만지면서 왜 만지는지, 어떻게 만지는지를 생각하는 관조의 습관을 갖고, 또 일주일에 한 번만이라도 디지털에서 멀어져 실생활에서 직접 온몸을 사용하는 그런 디지털 안식일을 갖는 생활을 하자.

 

그것이 나를 찾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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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에 대해 알고싶은 모든 것들 - 이명옥 사비나 미술관장의 톡톡튀는 교과서 미술 읽기
이명옥 지음 / 다빈치 / 2004년 3월
평점 :
절판


미술관장이 들려주는 미술 이야기다.

 

미술에 관한 모든 것이라는 제목이라고는 하지만, 여기서는 교과서에 실린 작품을 중심으로 미술에 관해서 알려주고 있다.

 

교과서란 정석이라는 말로도 통하고, 기본이라는 말로도 통하니, 미술에 관해서 미술 교과서 만큼 정통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없으리라.

 

그럼에도 우리는 미술 교과서를 제대로 본 적이 있었던가?

 

학교에서 미술 교과서는 능력있는, 또는 그 쪽으로 나아가려는 몇몇 학생들을 제외하면 관심있게 들쳐보지 않았던 책이고, 들쳐보더라도 흥미로운 그림이나 쓱 훑고 지나가고 마는, 시험 때나 돼야 억지로 외우기 위해 펼쳐들던 책 아니던가.

 

미술에 관해서 가장 기본적인 작품들을 담고 있는 책임에도 가장 홀대받는 책이 미술 교과서였는데, 작가는 교과서 전을 연 경험으로, 그 때 많은 사람들이 관람했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어쩌면 우리나라 사람들도 미술에 대해 관심이 많았음에도 미술을 제대로 만날 기회가 적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미술에 관심을 가지고 즐길 수 있게 하는 방법이 무엇일까? 그것은 미술과 자주 만나게 하는 일이다. 미술에 거리를 두지 않게 하는 일이다.

 

미술과 거리를 두지 않는 일. 어차피 우리는 학창시절을 통해 미술을 배우지 않았던가. 전국민이 모두 미술에 관해서는 10년이 넘도록 배워왔는데, 무엇이 문제인가.

 

미술에 관해서는 이미 교과서가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교과서를 중심으로 미술에 대해서 알려준다면?

 

어른들은 과거를 떠올리며 다시 한 번 미술과 만나게 될 것이고, 아이들은 지금 배우는 교과서와 비교하면서 미술과 만나게 될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쓰여졌다고 볼 수 있는데...

 

따라서 이 책은 교과서라는 미술관에 있는 17개의 전시관을 돌아보면서 미술과 만나게 해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장르별, 주제별로 17개로 나누어 그림을 보여주고 설명해주고 있는데, 교과서에 실릴 정도면 이미 많이 알려진 작품들이라서 우선 눈에 익은 그림들이고, 이 그림들에 대해서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고 있기 때문에 그림에 대해서 또 조각에 대해서 좀더 알게 된다.

 

처음부터 순서대로 읽을 필요도 없이 미술관에 가면 자기가 보고 싶은 전시관부터 들르듯이, 보고 싶은 그림, 읽고 싶은 부분부터 보면 된다.

 

이게 옳은 관람 순서이고, 옳은 책읽기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좋아하던 그림은 더 좋아하게 되고, 낯설었던 그림은 친숙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17개 전시관. 실제 미술관에 가면 엄청난 시간을 들여야 할테지만, 책의 장점이 무엇인가, 시간을 압축해서 우리에게 미술을 보여주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물론 직접 미술관에서 진품을 보는 감동만은 못하겠지만, 미술을 배우고, 미술을 즐길 준비를 하는데는 교과서만한 것이 없으니, 이 교과서 미술관, 관장과 함께 떠나는 여행, 한 번 해 볼 만하다.

 

이런 여행을 한 다음 꼭 미술관에 들러볼 것. 나에게 다짐하는 말이다.

 

덧글

 

에고, 책이 절판되었다네...

 

하지만 도서관에는 있을테니, 찾아서 읽어보면 좋겠지. 현대 사회, 모든 것이 너무도 빨리 바뀌는데, 요즘은 책들의 수명도 참 짧다. 절판 되는 책이 너무 많다.

 

이런 책은 미술 시간에 교과서와 함께 보면 좋을텐데,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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