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를 듣기도, 신문을 펼치기도 싫다.

 

들리는 소리는 다 귀를 씻어도 시원찮을 소리고(허유와 소부의 고사처럼, 귀를 씻은 물이 강물을 오염시킬까봐 두렵기만 한 나날들이다), 신문을 보면 열통이 터지는 기사들만 난무하고 있다.

 

그러다 오늘 본 <한겨레 신문>, 첫 면. 커다랗게 나온 사진. 전봉준.

 

그 눈빛, 끌려가면서도 세상을 꿰뚫을 것 같은 그 눈빛을 지닌 사람, 녹두장군. 그의 사진을 보며 마음이 뭉클했다.

녹색평론 11-12월호에서도 전봉준에 대해서 다루었는데, <한겨레 신문>에도 그의 사진이 나오다니... 이게 우연일까?

 

아니라는 생각. 그만큼 이런 인물이 필요한 시대라는 생각이 든다.

 

전봉준은 허균의 말대로 한다면 '호민'에 해당할 터.

 

항민들이 그냥 그대로 순응하면서 살아가고 있는데, 탐학이 겹치니 이러한 항민이 원민이 되어 버린 시대. 원민을 그대로 놓아두지 않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던 사람, 그가 바로 호민이다.

 

그 호민을 따라 원민도 항민도 함께 일떠섰던 일, 동학 혁명.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우리나라에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보여주었던 그런 혁명.

 

전봉준에 겹쳐 허균이 떠오르고, 허균의 호민이 생각나니, 자연스레 홍길동이 나타나게 되고. 홍길동, 그는 호민이었음에 분명하지만, 전봉준이 농민이 주인이 되는 세상, 아니 모든 사람이 평등한 인내천(人乃天) 세상을 꿈꾸었다면 홍길동은 차별이 없는 세상을 꿈꾸었으되, 그것이 자신에 대한 차별 철폐에 그치고 만 한계가 있는데, 이는 시대적 한계이겠지만, 적어도 허균은 사람들이 신분으로 차별받는 세상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그의 유재론을 보라)

 

무상급식을 없애고 누리교육과정에 돈을 써라. 정부에서 3-6개월은 양보할 수 있다. 절충안 제시.

 

이상하다. 절충안은 교육청에서 제시해야 하는 것 아닌가?

 

누리교육과정은 대통령 공약이고, 조례든 법령이든 이는 정부가 해결해야 할 문제인데, 이를 교육청에 넘기면서 무상급식을 폐지하란다.

 

말을 한 번 잘못 썼더니 이런 일을 당한다. 무상급식이 아니라 의무급식이다. 의무교육에는 학생들의 심신을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다.

 

학교에 학생을 보내지 않으면 부모에게 과태료를 물게 할 정도로 학교에 꼭 보내라고, 그것이 의무교육이라고 하면서 왜 학교에서 밥을 책임지지 말라고 하는지, 그것은 부모가 알아서 할 문제라고 하는지 이해가 안된다.

 

교육기관도 아니고 보육시설로 되어 있는 어린이집을 교육기관인 교육청에서 책임지라니, 우리나라 보건복지부는 뭐하는 부서인지.

 

세월호법 역시 유가족들의 뜻과는 멀게 정리가 되어 가고 있고, 무상급식이 아닌 의무급식은 자꾸 하지 말라고 해서 아이들을 굶주리게 하거나, 아니면 남 눈치 보면서 밥 먹게 하면서, 비정규직은 차별을 견디지 못해 힘들게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데, 우리나라 학생들의 만족도, 행복지수는 선진국 가운데 꼴찌라는데...

 

학생들뿐만이 아니라 부모들도 살기 힘들다고 아우성치는데... 공무원연금법은 개정한다고 하는데, 당사들과 또 제3자들과의 합의도 없이 먹고살기 편안한, 아니 지들은 너무모 편하게 세비를 받아 쓰고 있는 족속들이 나서고 있는데...

 

우리나라 국민들이 항민에서 원민으로 넘어가고 있는 상태 아닌가? 힘들다고 힘들다고, 이건 아니라고 아니라고 외치고 있는 상태 아니던가. 

 

여기에 호민이 나서기만 한다면, 그렇다면 세상이 어떻게 될까? 호민, 그리워지는 시대다.

 

갑자기 정여립이 생각났다. 요즘 돌아가는 꼴을 보면서 이렇게 정여립처럼 팽당한 사람이 있지 않을까?

 

그가 꿈꾸던 대동세상은 어쩌면 허균이 말하던 호민이 나서서 건설하려던 세상과 같은 세상이 아니었을까? 녹두장군이 꿈꾸던 세상 역시 대동세상 아니던가.

 

그 때보다 모든 면에서 풍족해진 시대. 그럼에도 왜 이렇게 살기 힘들다는 말이 나오는 걸까? 아직도 국민은 졸인가? 호민이 필요한가? 국민은 졸이 아니라 주인이라고 외치는. 그렇게 함께 외치는.

 

그런 호민.

 

제발 국민들을 원민으로 만들지 말라. 원민이 많아지면 홍길동, 녹두장군같은 호민이 나타난다. 호민을 사람들이 부른다. 호민은 그 자체로 호민이 아니다. 세상이 만들고 세상이 부를 때 나타난다.

 

오늘 본 전봉준의 사진. 그 눈빛.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슬프다. 그의 눈빛이 아직도 내 가슴에 파고드는 이 현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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