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두사 - 신화에 가려진 여자
제시 버튼 지음, 올리비아 로메네크 길 그림, 이진 옮김 / 비채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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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속에 가려진 여자'라는 작은 제목을 달고 있다. 다른 말로 하면 메두사에 대한 재해석 정도 되겠다. 메두사 하면 뱀머리를 가진 괴물로, 페르세우스에 의해 목이 잘려 아테나의 방패에 박힌 존재로 기억한다.


그냥 그렇게 페르세우스의 모험에 등장하는 세 여자 중 하나로만 기억되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페르세우스 신화에는 세 여자가 등장한다. 한 사람은 페르세우스의 어머니인 다나에, 그리고 또 한 여자는 메두사, 마지막 한 사람은 안드로메다이다. 


이 중에 다나에는 탑에 갇혀 있을 때 제우스의 사랑을 받아 페르세우스를 낳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 신화를 여성의 입장에서 해석을 하면 여성은 성의 주체로 서지 못하고 남성에게 종속된 존재로, 그들의 욕망에 따라 자신의 운명이 결정되는 존재로 되어 있다. 이 소설에서도 마찬가지다. 다나에는 주체로 등장하지 않는다. 페르세우스의 말을 통해서 등장하긴 하지만 언제나 남성의 욕망에 휘둘리고 위협받는 존재로밖에 나오지 않는다.


또한 안드로메다는 이 소설에서 나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신화에서는 메두사를 죽인 페르세우스가 돌아가는 길에 안드로메다를 구출하는 것으로 나오는데, 이 소설에서 페르세우스는 돌이 되어 돌아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즉, 페르세우스가 메두사의 머리를 들고 가야 남성의 욕망에서 풀려나는 다나에는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하지 못하기 때문에, 더 이상 이 소설에서 의미를 지니지 못하며, 안드로메다 역시 남성의 힘에 자신을 맡기는 역할밖에는 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 소설에 등장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메두사는? 괴물로 알려진 메두사는? 사실 신화를 읽다가 의문이 가는 점이 있었다. 사고는 포세이돈이 쳤는데, 왜 아테나는 메두사에게 벌을 내렸을까? 같은 신이라서 책임을 물을 수가 없었는가? 아테나 역시 여신 아닌가? 그렇다면 여성의 편을 들고 포세이돈에게 항의를 했어야 하는데, 엉뚱하게도 벌을 메두사에게 내린다. 그것도 가장 위협적인 뱀의 머리를 하는 존재로.


이것은 여성이 여성을 억압하는 사례라고 해야 할까? 즉 아테나는 여성이지만 남성성을 추구한다. 남성이 추구하는 세상을 구현하려 하지 여성성이 구현된 세상을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생물학적 성이 여성이라고 해서 여성성을 발현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신화나 이 소설에서 아테나를 통해 알게 된다.


괴물이 된 메두사.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만 왜 메두사를 괴물로 여겨야 하는가? 단지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사회적 통념에서 벗어난 외모를 지니고 있다고 해서? 메두사의 외모가 변한 것은 우리나라 고전소설 [박씨부인전]에서 박씨 부인이 변한 것과 반대 방향이다.


메두사는 미인에서 추녀 혹은 괴물로, 박씨 부인은 추녀에서 미녀로 변신했다. 둘을 대하는 다른 사람의 태도는 어떠한가? 메두사는 아름다운 소녀에서 피해야만 할 (메두사의 얼굴을 똑바로 보면 돌이 된다) 존재가 되었다. 반대로 박씨 부인은 천대받는 여성에서 사랑받는 여성으로 변했다. 


이 둘의 변신을 보면 사회가 여성을 어떻게 보는지 알 수 있다. 즉 여성은 외모로 다른 사람의 판단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그 여성이 지닌 능력이나 성품은 그 다음이고.


이 소설에서 메두사 역시 페르세우스의 본질을 파악하기 전에는 그 점을 깨닫지 못했다. 진실을 말하면 진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페르세우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다하고 자신이 메두사임을 밝혔을 때, 페르세우스는 메두사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냥 괴물일 뿐이다. 자신이 처치해야 할.


처치하고 돌아가 엄마를 구해야 할 대상으로밖에 메두사를 여기지 않는다. 그때까지 둘이 터놓았던 마음들은 더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이는 페르세우스는 자신의 편견에 갇혀 있을 뿐임을 보여준다.


사회적 통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페르세우스, 그의 모습을 보면서 사회적 통념을 벗어나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알 수 있게 된다. 메두사임을 알지 못하고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지만, 대화의 상대가 메두사임을 알게 된 순간 과거의 마음은 모두 버리고 오로지 자신이 처치해야 하는 존재로만 여기는 페르세우스.


페르세우스는 사회적 통념에 갇혀 벗어나지 못하지만 메두사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자신의 머리에 있는 뱀들이 자신의 일부임을 인정한다. 그리고 자신의 힘도 인식하고, 이제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


언니들이 날개가 달린 존재로 변했다는 사실은 이들이 기존의 관습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의미하고, 그럼에도 메두사에게 날개가 달리지 않은 것은 메두사가 지내야 할 세상은 여전히 만만하지 않음을 생각하게 한다.


뱀이 달린 머리, 이는 우리들과는 다른 존재라고 생각하게 하는 장치다. 그런 다름이 차별로, 차별이 처단으로 이어지게 되는 사회가 과연 바람직할까? 그런 생각을 하게 한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신화 속 여성을 다른 각도에서 쓴 다른 소설들 생각을 했다. [페넬로피아드]와 [메데이아, 또는 악녀를 위한 변명]도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와 더불어 어쩌면 우리는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여성을 '메두사'처럼 괴물로 여기지 않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지금도 우리가 여성들을 '메두사'로 매도하고 있지는 않은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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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 지하철 - 닫힌 문 앞에서 외친 말들
박경석.정창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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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석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박경석 하면 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투쟁에 앞장선 사람으로 알고 있다. 


그의 얼굴을 뉴스에서 여러 번 본 적이 있고. 한때 노들장애인야학 교장으로 지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는데... 구체적인 그의 삶과 생각을 들은 적은 없었다. 그냥 시위를 하는 모습을 언론을 통해 보기만 했을 뿐.


그러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계속되고 있다는 말은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았다는 뜻인데, 아직도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지 않은 지하철 역사가 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한다 - 출근길 지하철 투쟁을 생각했다.


사람도 많고 바쁘기도 한 출근길에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함께 타려고 하는 모습을 보고, 어떤 사람들은 얼굴을 찡그리고 말지만, 어떤 사람들은 왜 이 시간에 나와서 우리 출근을 방해하느냐고 비난을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당신들을 지지합니다라고 하기도 하는, 서로 다른 관점들이 표출되는 그 투쟁이 지속되고 있다는 현실을 다시 직시한다.

 

그가 왜 출근길 지하철 투쟁을 포기할 수 없는지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것은 단순히 장애인도 지하철을 편하게 타자는 차원을 넘어서서 우리 사회의 근본 시스템을 바꿔보자는 것이다. 여기까지 나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장애인 투쟁이 단지 자신들의 편리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자는 운동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단순히 공감 차원을 넘어서서 지금 시스템이 얼마나 폭력적인지를 드러내고 ,그 시스템을 잠시라도 중지시켜보는 실천들이 필요한 거죠. 전장연처럼 지하철이라는 컨베이어 벨트를 멈춰 세우는 것 같은 실천이 그래서 저는 정말 중요한 거라고 생각을 해요. ... 지금 우리를 힘들게 만드는 건 이놈의 시스템인데, 정작 고 시스템은 전혀 공격도 안 받고 우리끼리 각자 권리를 두고서 서로 피터지게 싸우기만 하고. (65쪽)


그렇다. 그는 이를 원형경기장에 비유했다. 원형경기장에서 싸우는 검투사들. 그들은 상대를 향해 칼을 휘두른다. 그렇지만 정작 그들을 그곳으로 내몬 사람들은 그들의 싸움을 보면서 즐긴다. 이게 무엇인가?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싸우고 있는 현실. 그것이 지금 우리 사회가 지니고 있는 모습 아닌가. 이것을 극복해야 한다. 원형경기장에서 나와야 한다. 싸워야 할 대상은 바로 눈 앞에 있는 검투사가 아니라 원형경기장에 사람들을 몰아넣고 싸우게 만든 자들이다.


박경석은 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이야기를 하기 전에 내 무지를 탓해야 한다. 그들이 그렇게 우리 사회가 T4사회라고 외쳤는데, T4사회가 무엇인지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나의 무지를. 아니 T4사회라는 말을 이 책을 통해서 처음 들은 나의 무지를.


장애인을 조직적으로 말살한 나치의 정책이 T4정책이라고 하는데, 그들이 장애인을 제거한 것이나 지금 장애인들이 사회에서 배제되고 있는 현실이 그리 다르지 않다고 하는 박경석의 절규. 이 절규를 우리가 왜 듣지 않고 있는지.


그래서 박경석은, 그와 더불어 장애인들은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에서 보이는 존재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존재에서 목소리를 내는 존재로 당당하게 사회에 나서려 한다.


그들이 당당하게 나설수록 우리 사회는 더 좋은 사회기반을 마련할 것이고, 모두가 행복한 사회로 갈 수 있을 것이다.


서로가 원형경기장에서 바로 눈 앞의 상대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원형경기장을 부수려는 싸움을 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어야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 장애인 투쟁의 역사를 어느 정도 개괄할 수 있었는데... 새롭게 느낀 점은 많은 사람들이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냥 넘어가고 있었던 것.


국가 예산 편성권을 기재부(기획재정부)가 독점적으로 쥐고 있다는 것. 복지부나 기타 다른 부서와 합의가 되어도 기재부에서 예산 편성을 하지 않으면 합의된 정책들이 실시될 수 없다는 점. 그런데 기재부는 무슨 근거로 예산 편성권을 독점하고 있는 걸까? 그들은 철저히 경제(성과) 중심으로 예산을 편성한다고 하는데... 


국가는 비용(성과)보다는 국민들의 삶을 개선하는 쪽에, 사람을 중심에 두는 쪽에 예산을 편성해야 하지 않나. 그러니 기재부의 예산 독점권은 시민들에 의해 견제받아야 한다는 박경석의 말에 동감한다.


국민적 합의로 예산을 편성해야 사회적 합의를 이룬 문제들을 실행할 기반이 마련될 수 있다는 그의 말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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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얼마짜리입니까
6411의 목소리 지음, 노회찬재단 기획 / 창비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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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1번 버스. 고 노회찬 의원이 언급했던 버스 번호. 이 버스에는 새벽 일찍 일을 나가는 사람들이 탄다고 한다. 그것도 첫차와 두번째 차에...


그렇지만 이들의 삶은 밖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남들이 보이지 않은 데서 일을 하기 때문이고, 남들 눈에 띄지 않도록 일을 하기 때문이다. 힘들게 일하지만 그들에게 돌아오는 대가는 그리 좋지 않다.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마찬가지고.


성숙한 사회라면 자신들의 삶에서 보이지 않는 노동이 얼마나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 그런 그림자 노동으로 인해 자신들이 편리하게 생활하고 있음을 하고 고마워해야 하는데... 그런 고마움을 그들에 대한 처우 개선으로 이끌어내야 하는데...


과연 그런가? 아니다. 이들이 눈에 띄는 순간 인상을 쓰는 사람들도 많다. 왜, 남들 일하는 시간에 하느냐고 타박하는 사람들도 있다. 자신들의 일과 그들의 일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오히려 그들도 자신들이 일할 때와 같이 좀더 편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해야 하지 않나.


그런 사회가 성숙한 사회일텐데... 남들이 기피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더 좋은 대우를 해줘야 할텐데, 그와 반대인 것이 현실이다. 그런 현실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고, 그런 사람들로 인해 조금씩이라도 그런 사람들의 노동환경이 변하게 된다.


이 책은 우리 사회 각지에서 일하는 6411번 버스를 타는 사람들과 비슷한 환경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나는 얼마짜리입니까'라는 질문 형식으로 제목을 달고 있는데, 그들이 받는 임금은 최저임금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근무 환경이 좋은 것도 아니고, 온갖 질병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참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모르는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는 생각. 또한 그들로 인해 내가 편하게 생활하고 있다는 생각. 그럼에도 이들이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좋은 사회란 사회적 약자들이 조금이라도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사회 아니던가. 그런 사회를 우리가 추구하지 않는가.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한다.


고 노회찬 의원은 이들을 '존재하되 그 존재를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함께 살아가는 분들입니다(373쪽)'라고 했다. 그렇게 우리가 느끼지 못한다면 이들의 처우가 나아질 수가 없다. 그러니 우리 생활을 곰곰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내가 이렇게 살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동이 이루어졌는지를.


이 책은 이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이제 그들에게도 자신들의 소리를 남들이 듣게 해야 한다. 힘 있는 사람들만 소리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이런 그림자 노동을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사회에 들리게 해야 한다.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는 이 책 [나는 얼마짜리입니까], 소중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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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동사의 멸종 - 사라지는 직업들의 비망록 한승태 노동에세이 3
한승태 지음 / 시대의창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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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으로 인해 사라질 직업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아직은 현실로 다가오지 않았지만 곧 다가올 현실이기도 하고.


그렇다면 어떤 직업들이 사라질까? 아마도 지금 사회에서 하층에 속하는 사람들이 담당하는 직업들이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지금처럼 기계적으로 판결하는 사법부라면 사법부, 기존에 있던 법조문과 판례대로 판결만 하면 되니, 이들이 먼저 사라지고, 또 영상판독이나 간단한 치료를 하는 의사들, 또는 처방전대로 처방을 하는 약사들, 그리고 회계사 등등이 없어질 것이라고 예측할 수도 있으나, 힘있는 자리는 이상하게도 법을 이용해서 자리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으니.


이 책은 작가 한승태가 직접 경험한 직업들에서 경험한 노동을 보여주고 있다. 강도 높은 노동들이다. 이런 노동을 소개하기 전에, 그는 들어가는 말 '소개하다'에서 '직업소개소'를 소개하고 있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버글버글거렸던 직업소개소. 하지만 지금은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다고 한다. 그가 찾아간 직업소개소만 그런 것은 아니리라. 분명 예전보다 많이 줄어들었다.


그런데 이런 직업소개소가 사라지니 일을 구하려는 사람들이 모일 장소가 없어졌다고 한다.


직업소개소가 사라져서 가장 불행한 대목은 바로 이런 결속력이 산산조각 났다는 점이다. 20쪽.


그가 이렇게 표현한 것은 직업을 구하기 위해 직업소개소에 온 사람도, 또 그냥 무료해서 시간을 보내러 온 사람도 그곳에서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때로는 필요한 일들을 서로 해주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제는 온라인으로 대체되면서 이렇게 사람들이 부대끼는 일이 줄어들었기에, 사람들끼리의 결속력도 약화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한 직업이 사라진다는 것은 그 직업이 없어진다는 것을 넘어서서 다른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그것을 '직업이 사라진다는 것은 생계 수단이 사라지는 것만이 아니라, 그 노동을 통해 성장하고 완성되어 가던 특정한 종류의 인간 역시 사라지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10-11쪽)'고 표현하고 있다.


그렇다면 '사라지는 직업들의 비망록'이라는 작은 제목을 달고 있는 이 책에는 어떤 직업들이 나와 있을까? 아까 이야기한 직업소개소를 포함하여 


전화받다 콜센터 / 운반하다 까대기 / 요리하다 주방 / 청소하다 청소노동자 /쓰다 작가


이렇게 다섯 개의 직업이 나와 있다. 물론 작가는 아직 현실이 아니지만 그는 미래를 상상하여 작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것은 거의 후기나 다름없으니 작가를 제외하면 이 일들은 모두 우리 삶에 반드시 필요하지만 하기는 힘든 일이다.


어떤 사람들은 주방에서 하는 일이 그리 노동 강도가 높지 않다고 생각하겠지만, 이 책을 읽어보라. 주방의 노동 강도가 얼마나 높은지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내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이 나오기까지 많은 사람의 땀이 들어가 있음을, 그들이 쉴 틈도 없이 요리하고 청소하기에 편안하게 먹을 수 있었음을 느낄 수 있다.


'콜센터' 노동자들의 감정노동이야 많이 알려져 있지만, 그러한 감정노동에 더해서 그들도 장시간의 노동에 시달린다는 사실. 쉴 틈 없이 전화를 받아야만 하는 현실을 이 책에서 만나볼 수 있다. 택배 상하차를 하는 일명 '까대기'는 만화로도 책이 나왔기 때문에 그 일이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 책을 통해서 또다시 느낄 수 있었고, 청소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설렁설렁 일을 한다고 이야기 하지 말자. 우리들이 깨끗한 환경에서 지낼 수 있도록 애쓰고 있는지를 이 책은 가감없이 보여준다.


그럼에도 많은 일들이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것이다. 특히 이렇게 보이지 않는 노동부터 사라지겠지. 하지만 쉽게 대체될 수 있는 일은 없다.


삶을 최저선에서 더 낮은 곳으로 밀어내는 일. 여기에 작가 한승태가 직접 경험한 일들이 있다. 우리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일들. 그림자 노동이라고 하기에도 그런, 그런 일들.


그러나 이런 일들이 사라지는 것은 인간들의 문화가 사라지는 것이고, 노동을 더 보이지 않게 한다는 작가의 말을 명심해야 한다.


어떤 동식물이 멸종하면 생태계가 변하듯이, 직업이 없어진다는 것은 인류의 문화가 바뀐다는 것인데, 그 바뀜에 큰 영향을 받는 사람들은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 변화를 통해 생존에 위협을 받는다. 그러니 생각해 보자, 어떤 직업부터 없어질 것인가. 


사라짐을 뒤로 하고 이 책에선 치열한 노동현장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그러면서 지금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누구의 도움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힘든 일도 그들 나름대로의 문화를 지니고 있었음도.


아직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사라지게 된다면 그것과 함께 문화도 사라짐을 생각해 봐야 한다. 그렇다고 그렇게 힘든 일을 계속 사람들이 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그들이 좀더 쉽고 편하게 일을 할 수 있도록 인공지능이 보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한 방법을 강구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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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라닌 - 제29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하승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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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은 자신이 뭘 가졌는지 몰라." (264쪽)


소설 속 인물인 재일이 다른 아이들에게 한 말이다. 이 말이 나올 때까지, 자신이 뭘 가졌는지 모르는 아이들은 어떻게 행동했을까? 그냥 자신들은 농담으로 또는 아무런 생각 없이, 또는 남을 위한다는 마음으로 말을 하고 행동을 했겠지.


자신들의 말이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상처를 주는지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그렇게 자신이 가진 것을 알 필요가 없는 사람은 자신을 살필 기회를 갖지 않는다. 


하지만 없는 사람은? 그들은 끊임없이 자신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자신만이 아니라 주변을 의식한다. 자신이 뭘 가졌는지 모르는 사람이 아무렇지도 않게 한 말이나 행동이 이런 사람에게는 상처로 다가오게 된다.


재일이도 마찬가지다. 끊임없이 자신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그것도 자신의 주변 사람들에게 불행한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나니.. 어디를 가도 자신은 눈에 띌 수밖에 없으니...


파란색 피부를 갖고 태어난 아이. 그 자체로도 놀림감이 되기 쉽다. 어린 시절에 철 모르는 아이들은 분명 스머프니 슈렉이니 하면서 놀렸으리라. 이런 놀림이 자라면서 차별로 변해간다.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도 없고. 


같은 행동을 해도 다르게 해석되기도 하면서 이 아이에 대한 편견은 점점 더 쌓여갈 수밖에 없다. 다른 사람들의 편견과 차별이 쌓여갈수록 이 아이에게는 자신감, 자존감은 점점 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주변의 편견과 자존감은 반비례한다. 그러니 소설의 첫머리에 나오는 이 말이 깊은 울림을 줄 수밖에 없다.


'내 피부는 파랗고 엄마는 베트남 사람이다. 어느 쪽이 더 문제인지는 모르겠다.' (7쪽)


우선 엄마가 베트남 사람이라는 것이 왜 문제인가를 살피면, 베트남에 살고 있는 베트남 국적의 사람이면 상관이 없다. 그런데 이 말이 차별적인 말이 될 때 그것은 베트남 사람이 이주해서 다른 나라로 갔을 때다. 그것도 같은 동남아시아 나라가 아닌, 경제적으로 우위에 있는 나라에 갔을 때.


가령 한국같은 나라에 왔을 때 베트남 사람이라는 말은 차별을 받을 요소로 작동한다. 그러면 안 되는데.. 국적을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바꿔도 베트남 사람이라는 것은 바뀌기 않는다. 그런 인식이 죽 이어진다.


그런데 엄마가 베트남 사람인데 피부색이 파랗다. 과연 남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한국에서 살기 힘들다고 아빠는 미국으로 이민을 결심한다. 이민을 가면, 다민족 다인종 (요즘은 인종이라는 말을 잘 쓰지 않는다고 하지만) 국가인 미국이 한국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가족이 다 같이 가기로 했지만 여기서도 차별이 작동한다. 엄마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다. 엄마는 처음에 자리잡은 한국에 있고 싶어한다. 아니면 자신의 엄마가 있는 베트남에 사는 것도. 그러나 아빠는 엄마의 의견은 고려하지 않는다. 결국 엄마와 동생은 베트남으로 가고, 아빠와만 미국에 온 재일.


이곳에서도 파란 피부는 차별의 요소로 작동한다. 거기에 아시아 사람이라는 것이 더해지고... 무엇에 무엇이 더해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냥 자신이 지니고 있는 것으로 차별을 받게 된다. 어린 시절부터 이런 일을 겪으면 그것을 이겨내기 쉽지 않다.


무력하게 지내는 재일이에게 힘이 되어주는 친구들이 생긴다. 같은 피부색을 지닌 클로이, 차별을 반대하는 셸마와 함께 잘 지내지만, 곧 어려운 일이 닥치고, 이민온 재일이 가족에게도 힘든 일이 생긴다.


우여곡절을 보낸 재일이가 결국은 베트남으로 가면서 소설은 끝나게 되는데...


이 소설에 나온 이런 편견, 차별이 지금 사라졌을까? 아니다. 여전히 이러한 차별은 공고하게 남아 있다. 재일이가 앞으로도 계속 몸부림치면서 이런 차별을 겪고, 차별을 이겨내려는 노력을 할 수밖에 없는 세상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소설 속 이 대사, 명심해야 한다.


'사실 차별은 곳곳에 놓인 지뢰밭 같은 거야. 딱 한 번의 폭발에도 우린 불구가 된다고.'(185쪽)


그렇다. 이렇게 지뢰를 설치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지뢰를 놓았다는 사실도 모른다. 마치 재일이가 너희들은 자신이 뭘 가졌는지 몰라라고 한 것처럼.


읽으면서 답답하기도 했다. 그 답답함은 재일이의 무력함과 연결이 되기도 했는데, 재일이는 무력할 수밖에 없다. 무슨 재일이가 슈렉같은 괴력을 발휘할 수 있겠는가. 


이민온 아이아계 피부가 파란 힘없는 아이일 뿐인데... 그런 재일이게 그나마 숨통을 틔워주는 친구들이 있어서 그가 고꾸라지지 않았을 뿐. 그렇게 그나마 버티었던 재일이가 이제는 다른 사람들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사람으로 성장했음을 알게 되는데...


그 성장과정이 결코 만만치 않았겠지만... 지금도 여전히 재일이와 같이 차별받는 사람들이 있음을, 그래서 그들이 넘어져 일어나지 못하는 일이 생기지 않게 손을 내밀어줄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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