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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두사 - 신화에 가려진 여자
제시 버튼 지음, 올리비아 로메네크 길 그림, 이진 옮김 / 비채 / 2024년 7월
평점 :
'신화 속에 가려진 여자'라는 작은 제목을 달고 있다. 다른 말로 하면 메두사에 대한 재해석 정도 되겠다. 메두사 하면 뱀머리를 가진 괴물로, 페르세우스에 의해 목이 잘려 아테나의 방패에 박힌 존재로 기억한다.
그냥 그렇게 페르세우스의 모험에 등장하는 세 여자 중 하나로만 기억되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페르세우스 신화에는 세 여자가 등장한다. 한 사람은 페르세우스의 어머니인 다나에, 그리고 또 한 여자는 메두사, 마지막 한 사람은 안드로메다이다.
이 중에 다나에는 탑에 갇혀 있을 때 제우스의 사랑을 받아 페르세우스를 낳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 신화를 여성의 입장에서 해석을 하면 여성은 성의 주체로 서지 못하고 남성에게 종속된 존재로, 그들의 욕망에 따라 자신의 운명이 결정되는 존재로 되어 있다. 이 소설에서도 마찬가지다. 다나에는 주체로 등장하지 않는다. 페르세우스의 말을 통해서 등장하긴 하지만 언제나 남성의 욕망에 휘둘리고 위협받는 존재로밖에 나오지 않는다.
또한 안드로메다는 이 소설에서 나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신화에서는 메두사를 죽인 페르세우스가 돌아가는 길에 안드로메다를 구출하는 것으로 나오는데, 이 소설에서 페르세우스는 돌이 되어 돌아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즉, 페르세우스가 메두사의 머리를 들고 가야 남성의 욕망에서 풀려나는 다나에는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하지 못하기 때문에, 더 이상 이 소설에서 의미를 지니지 못하며, 안드로메다 역시 남성의 힘에 자신을 맡기는 역할밖에는 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 소설에 등장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메두사는? 괴물로 알려진 메두사는? 사실 신화를 읽다가 의문이 가는 점이 있었다. 사고는 포세이돈이 쳤는데, 왜 아테나는 메두사에게 벌을 내렸을까? 같은 신이라서 책임을 물을 수가 없었는가? 아테나 역시 여신 아닌가? 그렇다면 여성의 편을 들고 포세이돈에게 항의를 했어야 하는데, 엉뚱하게도 벌을 메두사에게 내린다. 그것도 가장 위협적인 뱀의 머리를 하는 존재로.
이것은 여성이 여성을 억압하는 사례라고 해야 할까? 즉 아테나는 여성이지만 남성성을 추구한다. 남성이 추구하는 세상을 구현하려 하지 여성성이 구현된 세상을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생물학적 성이 여성이라고 해서 여성성을 발현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신화나 이 소설에서 아테나를 통해 알게 된다.
괴물이 된 메두사.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만 왜 메두사를 괴물로 여겨야 하는가? 단지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사회적 통념에서 벗어난 외모를 지니고 있다고 해서? 메두사의 외모가 변한 것은 우리나라 고전소설 [박씨부인전]에서 박씨 부인이 변한 것과 반대 방향이다.
메두사는 미인에서 추녀 혹은 괴물로, 박씨 부인은 추녀에서 미녀로 변신했다. 둘을 대하는 다른 사람의 태도는 어떠한가? 메두사는 아름다운 소녀에서 피해야만 할 (메두사의 얼굴을 똑바로 보면 돌이 된다) 존재가 되었다. 반대로 박씨 부인은 천대받는 여성에서 사랑받는 여성으로 변했다.
이 둘의 변신을 보면 사회가 여성을 어떻게 보는지 알 수 있다. 즉 여성은 외모로 다른 사람의 판단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그 여성이 지닌 능력이나 성품은 그 다음이고.
이 소설에서 메두사 역시 페르세우스의 본질을 파악하기 전에는 그 점을 깨닫지 못했다. 진실을 말하면 진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페르세우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다하고 자신이 메두사임을 밝혔을 때, 페르세우스는 메두사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냥 괴물일 뿐이다. 자신이 처치해야 할.
처치하고 돌아가 엄마를 구해야 할 대상으로밖에 메두사를 여기지 않는다. 그때까지 둘이 터놓았던 마음들은 더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이는 페르세우스는 자신의 편견에 갇혀 있을 뿐임을 보여준다.
사회적 통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페르세우스, 그의 모습을 보면서 사회적 통념을 벗어나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알 수 있게 된다. 메두사임을 알지 못하고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지만, 대화의 상대가 메두사임을 알게 된 순간 과거의 마음은 모두 버리고 오로지 자신이 처치해야 하는 존재로만 여기는 페르세우스.
페르세우스는 사회적 통념에 갇혀 벗어나지 못하지만 메두사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자신의 머리에 있는 뱀들이 자신의 일부임을 인정한다. 그리고 자신의 힘도 인식하고, 이제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
언니들이 날개가 달린 존재로 변했다는 사실은 이들이 기존의 관습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의미하고, 그럼에도 메두사에게 날개가 달리지 않은 것은 메두사가 지내야 할 세상은 여전히 만만하지 않음을 생각하게 한다.
뱀이 달린 머리, 이는 우리들과는 다른 존재라고 생각하게 하는 장치다. 그런 다름이 차별로, 차별이 처단으로 이어지게 되는 사회가 과연 바람직할까? 그런 생각을 하게 한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신화 속 여성을 다른 각도에서 쓴 다른 소설들 생각을 했다. [페넬로피아드]와 [메데이아, 또는 악녀를 위한 변명]도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와 더불어 어쩌면 우리는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여성을 '메두사'처럼 괴물로 여기지 않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지금도 우리가 여성들을 '메두사'로 매도하고 있지는 않은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