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꿈치를 주세요 큐큐퀴어단편선 4
황정은 외 지음 / 큐큐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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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은, 올빼미와 개구리

안  윤, 모린

박서련, 젤로의 변성기

김멜라논리 

서수진, 외출금지

김초엽, 양면의 조개껍데기


역시 다름과 함께함이다. 함께함이 같음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는 소설들. 이번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이 나온다. 물론 다른 편에서도 다양한 삶의 형태들이 나오기는 했지만.


황정은의 '올빼미와 개구리'에서는 동성가족이 나이들어서 병원에 갔을 때를 생각하게 한다. 법적인 보호자로 인정을 받지 못하는 상황. 정말 힘든 상황이다. 주변의 시선보다도 사랑하는 사람이 아파서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 보호자가 될 수 없는 상황. 자칫하면 병원에 면회조차도 힘든 상황. 


이 소설은 그런 상황까지 가지는 않아도 충분히 그런 상황을 생각하게 만든다. 의사는 동성인 나이 든 사람이 오자 당연히 가족 중 한 명일 거라고 생각하고 말한다. 동성가족일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런 상황, 가장 바라지 않는 상황이지만, 서류를 요구하지 않는 것이 어딘가. 그냥 동생이라고 하면서 병원을 드나들지만, 그것조차 힘든 상황이 있음을, 동성가족이나 또는 다른 형태의 가족들에게도 법적으로 서로를 돌보고 보호할 수 있는 권리를 주어야 한다. 이제 세상은 충분히 변하지 않았던가.


안윤이 쓴 '모린'을 읽으면서 소수자로서의 삶이 중첩된 사람의 모습. 아니, 그런 것을 신경쓰지 않고 그냥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을 발견했다고 할까? 장애인이 성공하면 '와, 대단하다. 장애를 극복하고'라는 말을 하는데, 그것이 아니라고. 그냥 누구나 할 수 있고, 또 해야할 일을 했다고 여기면 된다고.


이 '모린'이라는 소설에서 이 소설집 제목이 왔다. "팔꿈치를 주세요." (71쪽)이라고 말하는 영은. 자신의 팔꿈치를 어떻게 주어야 할지 모르는 미란에게 '제 왼편에 서서 미란 씨 오른쪽 팔꿈치를 살짝 내밀어주세요.'(71쪽)라고 말하는 영은이다.


이런 영은에게 여자친구 선주가 있었는데, 그 친구의 말이 '오랜 시간 동안 돌본 거였더라고요. 그걸 너무 늦게 알았던 거죠. 제가'(70쪽)이란 말이다. 돌보았다는 말은 시혜와 같은 말로, 한쪽이 한쪽보다 우위에 있다는 말이다. 사랑이란 관계를 만들기 힘든 상황.


선주는 그것을 늦게 깨달았고, 미란에게 너무 늦지 말라고 말한다. 그렇다. 사랑은 상대를 가엾게 여기는 마음이 아니다. 상대를 동등하게 인정하고, 상대와 함께하는 것이다. 팔꿈치를 내주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상대가 부담을 갖지 않게, 그렇다고 상대의 상태를 무시하는 것이 아닌, 상대의 상태를 인정하되 함께하는 길, 팔꿈치를 내어주는 일이다.


서로 시간을 둔 뒤 영은이 '다시 팔꿈치를 주세요'(78쪽)라고 말하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누가 누구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지 않은 것이다. 내 상태에 최선의 모습은 이것이다. 함께하자고 하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


다른 소설들도 할 말이 많지만 그것은 직접 읽어야 더 맛이 나겠고... 김멜라가 쓴 '논리'는 동성애를 범죄 취급하는 종교, 특히 기독교에 과연 사랑에 논리를 들이대야겠냐고, 그것이 논리냐고 묻는 소설이다.


신을 믿기에 딸 이름도 '엘리'라고 지은 사람이, 딸이 동성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럼에도 딸의 앞길이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을 지니는 모습을 보여주는 소설. 


사랑은 '논리'이기보다는 '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고, 그렇다면 어떤 사랑이든 기적이니, 자신이 지니고 있는 논리를 기준으로 들이대지 말라고. 당신이 논리라고 하는 것이 사실은 논리가 아닐 수 있음을, 교통사고로 죽은 엄마가 사고에서 살아남은 딸의 모습을 보면서 깨닫게 되는 서술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엄마의 말이 가슴을 울린다. '어떤 논리도 너에게서 기적을 빼앗아가지 못하게 할 거야.'(157쪽)


그렇다. 사랑은 기적이다. 그런 사랑에 기존의 관습을 논리처럼 들이대서는 안 된다. 그것 자체가 비논리다. 모든 사랑은 기적이므로.


박서련, 서수진, 김초엽의 소설도 좋다. 자신의 마음을 알아가는 과정, 그러한 과정 속에서 다름을 받아들이는 모습들이 잘 표현되어 있다. 한편한편 마음에 새길 만한 소설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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