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동안 만나왔다. 만날 때마다 실망하지 않는다. 친구는 자주 만나도 반갑고, 오랜만에 만나도 반갑다. 그냥 그렇게 나와 함께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빅이슈를 보면서, 이 빅이슈가 어떤 사람들에게는 친구가 되어주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빅이슈와 친구가 되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눈이 많이 내리고, 추위는 강해지는 이번 겨울. 따스하게 품어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면 지내기가 한결 수월하지 않을까.


  빅이슈가 바라는 점이 바로 이것이겠지. 이번 호를 읽으면서, 국가가 국민들에게 친구처럼 다가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어려울 때 기댈 수 있는 존재. 국가는 그렇게 존재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존재가 되는 첫출발은 복지다. 복지... 누구나 힘들 때 견뎌낼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정책. 따라서 선별 복지든, 보편 복지든 국가는 국민에게 믿음을 주어야 한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갈수록 느는 복지가 아니라 갈수록 줄어드는 복지가 되고 있지 않은가. 미래를 불안하게 바라보고, 연금(국민, 공무원, 군인 등등)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오히려 국민들이 더 불안해 하고 있지 않은가.


사회 기반 시설에 대한 투자, 확충이 중요하고, 또한 기후위기를 넘어서 기후재앙에 이르고 있는 지금 시대에 그것을 이겨낼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한데...


그렇게 하기 위해선 세금을 빗겨갈 수가 없다. 국가가 집행하는 예산은 대부분 세금에서 나오니... 세금은 또한 국민이라면 누구나 내야 하는 의무 아니던가. 국민의 4대 의무라고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데...


세금이 무엇인가? 바로 국민에게서 나와 국민에게로 가는 돈 아닌가? 내가 힘들 때 나를 도와줄 친구같은 존재로 역할해야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세금 아닌가. 따라서 복지, 복지 하면 당연히 세금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한다.


세금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고 '복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공허하다. 말놀음에 그칠 가능성이 많다. 그러니 이번 호 성현석이 쓴 '더 나은 사회는 공짜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글.


이 글 마지막, 더 많은 이야기가 필요하다. '대출이 아니라 복지를 통해 삶의 안전을 보장하는 방향이다. 그러자면 명백한 사실부터 인정해야 한다. 더 나은 사회는 거저 이뤄지지 않는다. 다수 시민이 더 많은 부담을 짊어져야만 한다. 낮은 세금과 열악한 복지의 조합은 이제 불가능하다.'(17쪽)


함께 살아간다는 것. 누군가에게 친구가 되어준다는 것. 그런 삶. 연말에 생각해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말부터 조심하자. 다른 사람을 부르는 말. 다른 사람에 대한 존중. 그것은 곧 나에 대한 존중이다.


정문정이 쓴 '타인을 부르는 호칭은 상대가 아닌 나의 격을 보여준다'는 글은 지금 이 시대 우리들의 언어를 돌아보게 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떤 말들이 나돌고 있는지... 올해 마지막 호, 빅이슈. 아이들이 그린 산타 그림이 표지 사진이 되었다. 세상에 따스함을, 사랑을 선물로 주는 산타. 모두에게 이 산타의 선물이 깃들기를 바라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난의 도시 - 우리 시대 노점상을 말하다
최인기 지음 / 나름북스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노점상이라는 말에서 '노'자가 길 '로(路)'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길 가에서 장사하는 사람이라고... 한데, 이 책은 시작에서 노점상에서 '노'자가 길 '로'자가 아니라 이슬 '로(露)'자라고한다. 이슬을 맞으면서 장사하는 사람이라고 해야 하나.


이슬을 맞는다는 말, 이는 길 가에서 생활한다는 말이다. 다른 말로 하면 이슬을 피할 집이 없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노숙인이라는 말에서 '노'자 역시 길이 아니라 이슬을 뜻하는 이슬 '로'자를 쓴다고 한다.


그러니 노점상이나 노숙인이라는 말에는 이미 가난이 포함되어 있다. 이슬을 피하지 못하고 맞는 사람이니까.


그런 그들에게 이슬보다도 무서운 일은 단속이다. 그냥 단속이 아니다. 과태료를 물게 되는 일도 그들의 생활에 큰 타격을 주기는 하지만, 지금까지 단속은 과태료 부과뿐이 아니라 아예 장사하는 물건들을 압수하는 일이었다. 압수만이 아니라 파괴까지 했으니...


그것도 공무원들이 하지 않고 용역을 써서... 영화 [똥파리]를 보면 용역들이 어떻게 노점상들을 괴롭히는지, 그것이 경찰의 묵인 아래서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노점상들도 그런 일을 겪어 왔다. 살기 힘들어서 살 수 있는 도시로 왔지만, 도시에서도 직장을 구하지 못해 마지막으로 몰린 것이 바로 노점. 그러나 그 노점마저도 불법이라는 이름으로 덮이고, 언제든 쫓겨날 위기에 처하고 있으니...


노점상들은 그래서 목숨을 걸고 자신의 노점을 지키려고 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 그들의 죽음을 딛고 노점들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고 하겠지만, 노점들은 여전히 이슬을 맞는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책은 그러한 노점상들에 대해서 역사적으로 살펴보고, 노점상들이 싸워온 역사를 보여주며, 세계의 노점상들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도 간략하게 살피고 있다.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노점상들이 합법적으로 장사할 수 있도록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공존할 수 있는 도시... 가난과 부가 함께 지낼 수 있는 도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가난의 도시라는 말을 떨쳐낼 수 있지 않을까.


지금 서울에서 노점상들이 많은 곳은 주말 신설동과 동묘다. 그 거리에는 온갖 노점들이 들어서고 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신설동, 동묘에는 큰 건물들이 들어서고 있다. 예전에 노점상들이 물건을 늘어놓던 곳들이 하나하나 사라져 가고 있다.


최대의 벼룩시장이라고 할 수 있는 그곳, 주말이면 엄청나게 많은 인파가 몰리는 그곳도, 개발을 피해가지 못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버티고 있지만, 그것이 언제까지 갈지 알 수가 없다.


도시는 계속 화려해지고, 부유해지는 외관을 지니지만, 그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특히 가난한 사람들은 더욱 가난해지고, 자신이 살던 곳에서마저 쫓겨나고 있다. 그래서 '가난의 도시'다.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말을 쓰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쫓겨나고 있는 상황을 많은 사람들이 안다. 다행히도 노점을 합법화하는 경우도 있어서, 어느 정도 그들이 살 길을 열어주고는 있지만, 그것 역시 노점상들이 지난한 투쟁을 통해서 얻어낸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노점상들의 역사, 과거와 현재를 살필 수 있게 해주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가 한 말을 인용하면서 맺는다. 이런 사회가 잘사는 사회 아닐까 하면서.


'노점상은 사라질 수 없고 결코 사라져서도 안 된다. 노점상의 역기능을 최소화하고 순기능을 살리면서 노점상을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이 절실하다. 그러면 노점상은 이슬처럼 모든 이와 어울려 도시를 촉촉하게 하는 존재로 날마다 새로 태어날 수 있지 않을까?' (323쪽)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얄라알라 2022-12-26 13: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좋은.글.감사드립니다. 거리의 노/이슬 노..어느쪽이든.가난과 결부되는.거네요....^^;;;

kinye91 2022-12-27 11:35   좋아요 1 | URL
맞아요. 길거리나 이슬이나 다 가난하고 결부되죠. 가난으로 인해 절벽으로 내몰리는 사람들이 없었으면 해요.
 
우주에서의 삶 (리커버 에디션) - 우주인에게 묻다
팀 피크 지음, 이광식 옮김 / 들메나무 / 201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주에 관한 이야기에는 사람보다는 천체에 관한 이야기가 더 많았다. 광활한 우주, 그 끝없는 공간에 대한 탐구는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것들이 더 많은 우주.


그래서 우주에 관한 책은 별들에 관한 책이기도 하고, 과학기술에 관한 책이기도 했다. 여기에 직접 우주에 나가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는 별로 없었다.


기껏해야 우주개발의 역사에서 우주인들이 어떻게 생존하는지, 그들이 착용하는 우주복은 어떻게 개발되었는지 등등에 대해서 이야기했을 뿐이다.


우주에 직접 가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 영화나 소설 속에서 만나는 우주 공간에 있는 사람이야기를 이 책은 다루고 있다.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약 6개월을 생활하고 돌아온 우주인. 그가 겪은 이야기를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이 책은 전개되고 있다.


먼저 우주로 나가기 전, 즉 발사되기 전까지의 준비과정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어떻게 우주인을 선발하고 교육하고 준비하는지... 또한 우주로 나아갈 때 어떤 상태로 우주선에 타는지 등등에 대해서.


그 다음은 국제우주정거장에서의 생활을 이야기해준다. 우리의 일상생활과 어떻게 다른지.. 세상에 시속 26,000킬로미터 정도로 돌고 있는 우주정거장에서의 생활이라니... 그런데 예상과는 다르게 우리의 생활과 별로 다르지 않다.


시간을 정해놓고 일하고 쉬고, 먹고 자고... 음식이 지구의 것과는 조금 다를지라도 그렇게 크게 다르다고 할 수 없고, 샤워를 하지 못할 뿐이지, 다른 생활들은 큰 차이가 없다고...


물론 차이는 있다. 거의 무중력이라고 할 정도니,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는 사실. 그리고 우주 밖으로 유영했을 때 일어나는 위험에 대해서도, 또 우주충돌이 상상이 아니라 현실이 될 수도 있음을 경험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수많은 우주쓰레기들이 있는데, 이들이 어쩌면 우리가 우주로 나아가는데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 


예전에 읽고 아직 실제로 사용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오줌의 식수화. 국제우주정거장에서는 이미 실현되었다고. 그렇게 오줌을 정화해서 다시 순환시킨 물도 사용했다는 말이 이 책에 직접 나온다.


우주로 가면 피가 끓는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라고 대답도 하고, 다만 끓는 것처럼 보일 수는 있다고 하고, 우주에서 생활하다보면 소위 잠수병과 비슷한 병에 걸리기도 한다고 한다.


국제우주정거장에서 반 년을 산다고 생각해 보라. 지구와 전혀 다른 환경에서 생활하는 우주인들은 더욱 세심하게 자신들을 관리해야 한다. 그럼에도 좋은 점은 지구를 볼 수 있다는 점. 지구에서 40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바라보는 지구.


저자는 국제우주정거장에 있으면서 사진 찍기를 취미로 삼았다고 하는데, 그야말로 장관이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 다음에는 지구로 귀환하는 모습을 이야기해준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착륙하는 것처럼, 그렇게 여행처럼 돌아오기는 힘들다고. 앞으로는 나아지겠지만, 적어도 저자가 돌아온 2016년 러시아 소유즈 우주선은 쾌적한 착륙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돌아오는 과정에서도 수많은 위험이 있다는 사실. 우주인들의 삶이 환상이 아니라 실제임을 이 책은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도 국제우주정거장에서 10일 넘게 생활한 우주인을 배출했다. 물론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를 기반으로 우주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우주인을 꿈꾸는 사람들도 있을테고... 그런 사람들에게 우주인들의 삶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주고 있는 이 책은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달에 대해서 다시 관심을 가지고 달에 기지를 건설하려는 노력을 하고, 누구는 화성에 사람을 보내겠다고 호언을 하고 있는 이 시대. 우주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지금, 우주인을 꿈꾼다면 우주에서의 삶이 어떤지를 경험을 통해서 보여주는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있다.


평소 우주에서의 삶에 대해서 궁금한 것이 있었다면, 질문에 대한 답을 하는 형식으로 쉽게 설명하고 있는 이 책. 전문적인 지식보다는 쉽게 풀어서 설명해주고 있으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


  그러면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죽음과 삶은 양면이다. 한 면이 보이면 다른 면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은 아니다. 늘 함께 존재한다.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죽음은 삶과 함께 있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삶은 죽음과 함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살면서 죽음을 생각해야 한다. 


  죽음은 끝이라고 하지만, 그 끝은 개인에게 끝일뿐, 다른 존재에게는 지속일 수 있다. 결코 끝이 아니다. 기억 속에서 죽음은 삶으로 지속된다.


  그러므로 죽음을 생각하면 막 살아서는 안 된다. 죽음을 가볍게 여겨서도 안 된다.


세상 어떤 죽음이 가볍겠는가? 죽음은 한 사람에게는 전부다. 아니, 모든 사람들에게 죽음은 전부다. 그래서 죽음 앞에서는 다들 겸허해진다. 허튼 소리를 하지 않는다. 하지 않아야 한다고 해야 한다. 요즘은 죽음 앞에서도 허튼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있으므로.


하지만, 그런 허튼 소리를 하는 사람들 역시 언젠간 죽음에 이른다. 죽음에 맞닥뜨린다. 자신의 죽음이 아니더라도 자신과 관계 있는 죽음을 만나게 된다. 죽음 앞에서 겸허해져야 할 이유다.


김혜순 시집을 읽었다. 죽음에 관한 시 49편이다. 49재를 연상하게 하고, 티벳사자의 서에서 죽은 후 49일동안 겪는 일들을 생각하게도 한다.


웹툰과 영화로 나온 '신과 함께'도 연상하게 하고... 그렇지만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은 죽음들이 연속되지 않는다. 한 죽음이 49일동안 겪는 일이 아니라, 여러 죽음들이 나온다. 어쩌면 죽음의 양상들을 살피고, 죽은 뒤에 겪는 일들을 생각하게 하는지도 모른다.


어차피 죽음이란 결과는 같지만, 그 과정은 다들 다를테니까. 49일동안의 죽음 여정 또한 같을 수가 없겠지.


이 시집에서 34일째에 해당하는 시가 와닿았다. 요즘 일어난 사건들과 연관지어서. 이렇게 비슷한 사건들이, 막을 수 있었던,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사건들이 일어나는데, 제대로 된 사과는 그때나 지금이나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니...


우글우글 죽음

  서른나흘


네위에

네아래

네곁에

네밑에

네옆에

네너머

네뒤에

네안에


누가 밤을 면도날로 긁고 있다고 말해야 하나

면도날 긁힌 자리마다 밤이 잠깐씩 환해진다고 말해야 하나


네가 울고 있다고 말해야 하나

네가 칭얼거리는 어린 죽음들에게 젖을 물린다고 말해야 하나


통 잠을 잘 수 없다고 말해야 하나

우리는 지금 마악 만난 사이라고 말해야 하나


벽에 머리를 쿵쿵 박고 있다고

비명이 수정처럼 차오른다고

벌써 목구멍까지 투명하고 딱딱한 수정이 올라왔다고 말해야 하나


김혜순, 죽음의 자서전, 문학실험실. 2019년 초판 4쇄. 87-88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약탈자들 - 폭력은 빈곤을 먹고 자란다
게리 하우겐 외 지음, 최요한 옮김 / 옐로브릭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THE LOCUST EFFECT'라고 한다. 우리말로 간단하게 번역하면 '메뚜기 효과'다. 메뚜기? 곤충, 그리고 그가 일으키는 효과? 잘 이해가 안 되지만, 메뚜기를 메뚜기떼이라고 번역하면 이해가 될 수 있다.


한두 마리가 아니라 백, 천 마리가 아니고 수 억마리의 메뚜기떼가 날아온다면, 그 마을은 폐허가 된다. 식량을 비롯해서 메뚜기떼는 우리가 쓸 수 있는 것들을 남겨놓지 않는다. 그들이 휩쓸고 지나간 마을은 그야말로 폐허가 된다.


이 책 제목이 그렇다. 어떤 것이 메뚜기떼와 같은 역할을 할까? 바로 폭력이다. 사람을 강압으로 다루는 일. 성폭력부터 시작해서 현대판 노예제라고 할 수 있는 강제노동까지.


많은 구호단체에서 가난을 구제하기 위한 활동을 많이 한다. 지원도 많다. 그런데도 세계에서 가난은 없어지지 않는다. 지금도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이 무척 많다고 한다. 굶주리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여성들은 여전히 강간과 살인의 위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나라도 많다.


왜 그럴까? 그많은 구호는 다 어디로 갔을까? 저자는 지원의 우선 순위가 바뀌었기 때문에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고 한다. 즉 빈곤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물질적인 지원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사법체계를 정상화해야 한다고 한다.


빈곤한 사람들을 폭력으로부터 지켜주지 못한다면, 그들에게 지원한 구호물품들 역시 그들 생활을 개선하는데 쓰일 수 없다고 한다.


구호물품을 받으면 무엇하나? 금방 빼앗기거나 또는 목숨을 잃게 되는데... 빼앗아간 사람들이나 목숨을 앗아간 사람들, 또는 성폭행을 한 사람들을 처벌할 수 없는 나라라고 하면, 빈민들에게 제공되는 구호물품은 그들에게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물론 목숨을 얼마간 연장할 수는 있겠지만.


그런 점을 이 책 앞부분에서 사례와 더불어 잘 보여주고 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구호물품보다는 폭력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제도라는 것을.


그래서 이 책의 후반부에서는 사법체계를 개선하는 노력을 보여준다. 폭력을 휘두른 자들을 제대로 처벌한다면 빈민들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것.


가난에서 벗어날 기회를 잡아도 자신의 생명이나 재산을 언제든 빼앗길 수 있다면, 그리고 가해자를 처벌할 수 없다면 어떤 마음으로 가난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할 수 있을까?


그들에게는 희망이 없을텐데, 바로 그 희망을 찾아주는 일, 그것은 사법체계를 제대로 세우는 일이라고 한다. 즉, 빈곤을 먹고 자라는 폭력을 없애는 방법은 폭력이 용인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일이라고 한다.


그런 지원을 하고, 성공 사례를 이 책의 후반부에서 다루고 있는데... 타당한 지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경찰, 검찰, 법원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다면, 힘이 없는 사람들은 계속 당할 수밖에 없다. 이들에게 주어지는 원조는 그들에게 갈 수가 없다. 


부패와 비리와 폭력이 판치는 사회에서 빈곤은 더욱 빈곤을 부를 뿐이다. 권력은 권력과 부를 낳고, 집중시키는 반면에 빈곤은 계속 빈곤을 낳을 수밖에 없는 현실. 그것은 비리와 부패, 폭력이 쌍을 이루는 사회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법체계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폭력은 반드시 처벌된다는 것을 각인시킨다면? 또 폭력은 용인될 수 없다는 사회적 인식이 있다면?


그런 사회에서는 폭력은 더이상 증식할 수 없다. 줄어드는 일밖에 없다. 그러므로 빈곤을 해소하는 일에 폭력을 처벌하는 것이 꼭 필요함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후반부에 자신들의 활동에 대해서 자부심을 느끼고, 그것의 성공 사례를 과시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약간의 거부감이 들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옳은 이야기다. 


사법체계가 제대로 작동해야지만,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을테니. 그렇다고 사법체계에만 전적으로 의존해서도 안 된다. 저자들이 이렇게 말하고 있듯이.


'법집행은 폭력의 복잡한 사회적 원인, 곧 문화 규범, 젠더 편견, 경제적 좌절과 불평등, 교육 부족, 약자의 소외 따위를 중재하는 활동과 반드시 연계해야 효과가 크다.' (170-171쪽) 


우리는 이제 선진국에 들어섰다고 한다. 폭력을 용인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도 형성되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약자에게는 강하고 강자에게는 약한 사법체계를 지니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 봐야 한다.


아직도 약자들의 시위를 불법으로만 몰아가는, 그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서는 안 되는,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그런 행위를 한다고만 보고, 법으로 그들을 처벌하려고만 한다면, 과연 법은 누구를 위해서 존재하는가 하는 질문을 하게 된다.


앞에서 인용한 저자들의 말, 약자들을 위해서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법은 강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약자를 위해서 존재해야 한다. 이 책에서 법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나라는 반대로 법이 작동한다고 하는데... 그렇게 되지 않게 해야 한다. 그래야 가난, 불평등 등이 해소될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