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


  그러면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죽음과 삶은 양면이다. 한 면이 보이면 다른 면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은 아니다. 늘 함께 존재한다.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죽음은 삶과 함께 있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삶은 죽음과 함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살면서 죽음을 생각해야 한다. 


  죽음은 끝이라고 하지만, 그 끝은 개인에게 끝일뿐, 다른 존재에게는 지속일 수 있다. 결코 끝이 아니다. 기억 속에서 죽음은 삶으로 지속된다.


  그러므로 죽음을 생각하면 막 살아서는 안 된다. 죽음을 가볍게 여겨서도 안 된다.


세상 어떤 죽음이 가볍겠는가? 죽음은 한 사람에게는 전부다. 아니, 모든 사람들에게 죽음은 전부다. 그래서 죽음 앞에서는 다들 겸허해진다. 허튼 소리를 하지 않는다. 하지 않아야 한다고 해야 한다. 요즘은 죽음 앞에서도 허튼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있으므로.


하지만, 그런 허튼 소리를 하는 사람들 역시 언젠간 죽음에 이른다. 죽음에 맞닥뜨린다. 자신의 죽음이 아니더라도 자신과 관계 있는 죽음을 만나게 된다. 죽음 앞에서 겸허해져야 할 이유다.


김혜순 시집을 읽었다. 죽음에 관한 시 49편이다. 49재를 연상하게 하고, 티벳사자의 서에서 죽은 후 49일동안 겪는 일들을 생각하게도 한다.


웹툰과 영화로 나온 '신과 함께'도 연상하게 하고... 그렇지만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은 죽음들이 연속되지 않는다. 한 죽음이 49일동안 겪는 일이 아니라, 여러 죽음들이 나온다. 어쩌면 죽음의 양상들을 살피고, 죽은 뒤에 겪는 일들을 생각하게 하는지도 모른다.


어차피 죽음이란 결과는 같지만, 그 과정은 다들 다를테니까. 49일동안의 죽음 여정 또한 같을 수가 없겠지.


이 시집에서 34일째에 해당하는 시가 와닿았다. 요즘 일어난 사건들과 연관지어서. 이렇게 비슷한 사건들이, 막을 수 있었던,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사건들이 일어나는데, 제대로 된 사과는 그때나 지금이나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니...


우글우글 죽음

  서른나흘


네위에

네아래

네곁에

네밑에

네옆에

네너머

네뒤에

네안에


누가 밤을 면도날로 긁고 있다고 말해야 하나

면도날 긁힌 자리마다 밤이 잠깐씩 환해진다고 말해야 하나


네가 울고 있다고 말해야 하나

네가 칭얼거리는 어린 죽음들에게 젖을 물린다고 말해야 하나


통 잠을 잘 수 없다고 말해야 하나

우리는 지금 마악 만난 사이라고 말해야 하나


벽에 머리를 쿵쿵 박고 있다고

비명이 수정처럼 차오른다고

벌써 목구멍까지 투명하고 딱딱한 수정이 올라왔다고 말해야 하나


김혜순, 죽음의 자서전, 문학실험실. 2019년 초판 4쇄. 87-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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