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아 시는 대체로 어둡다. 무언가 무거운 분위기를 풍긴다. 축제날이라고 할 수 있는 시 제목 축일도 끝부분에 가서는 반전이 일어난다.

 

  축일인데 네가 죽어야 할 날이 이런 날이라니... 어쩌면 이것은 우리들에게 삶과 죽음이 하나라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삶이 축제이듯, 죽음도 축제여야 한다. 장자를 예로 들 필요도 없다. 포레스트 카터가 쓴 "제로니모"에 보면 '죽기에 좋은 날'이라는 구절도 나온다.

 

  죽기에 놓은 날, 그날 죽는다면 그건 축제다. 행복이다. 그렇게 우리는 삶과 죽음을 동시에 살아간다.

 

죽음 이후는 도무지 알 수 없으므로. 죽음 이후를 기억할 수도 없으므로. 그러므로 기억을 통해 과거를 현재에 불러오지만, 미래를 불러올 수 없다. 기대, 예측은 할 수 있지만, 그것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은 아니다. 그러니 아직 오지 않은 미래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

 

현재를 보라. 자연은 그 자체로 살아간다. 동물도 그 자체로 살아간다. 이들은 그날을 산다. 그들에게는 그날이 바로 삶이고, 축제다. 그게 다다. 더 무엇을 이야기하랴.

 

하지만 우리 사람에게는 오늘이 그날이 아니다. 우리는 그날을 기다린다. 오지 않을 그날을 기다리며 오늘을 소모한다. 오늘을 제대로 살지 못한다. 이 얼마나 큰 낭비랴.

 

축제에 가서 다음에 올 축제를 기다리며 지금 자신이 참여하고 있는 축제를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사람에게 과연 행복이 올까?

 

정한아 시 '축일 祝日을 읽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축일(祝日)

 

꿀벌들이 붕붕거린다

희고 붉은 꽃들이 재빨리 피어난다

까치가 귀가 아프도록 짖어댄다

대기는 부드럽고 따뜻하다

 

너는 오늘에 대해서만 생각한다 그렇게

아름다운 네가 죽어야 할 날은 이런 날이다

 

정한아, 울프 노트, 문학과지성사. 2018년 초판 2쇄. 25쪽.

 

지금은 삶이다. 지금은 오늘이다. 오늘은 축제날이다. 그런 축제날을 두고 오지 않은, 불확실한 미래를 생각하고, 축제를 기대해서는 안된다.

 

바야흐로 좋은 날들이다. 축일이다. 이제 나도 오늘을 즐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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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 - 중요한 것들에 대한 사색
어슐러 K. 르 귄 지음, 진서희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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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슐러 K. 르귄의 소설을 많이 읽지는 않았다. 달랑 세 권. 그럼에도 이 작가에게는 사람을 끄는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르귄의 이름을 듣는 순간 읽고 싶어지니 말이다. 아마도 "배앗긴 자들'이 여전히 마음 속에 남아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여간 이 책은 르귄의 수필집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구절들이 있다. 그 중에서 예술가의 자의식을 이야기한 이런 구절.


예술이 갖는 의미는 과학적 의미와 다르다. (68쪽)


글쓰기는 위험한 입찰이다. 무엇도 보장되지 않는다. 운에 맡겨야 한다. 나는 기꺼이 내 운을 걸었다. 그리고 그 자체를 너무 좋아한다. 내 글이 오독되고 오해받고 오역되더라도. (69쪽)


이보다 더 작가 의식을 드러낸 구절이 있을까 싶다. 그렇다. 글쓰기는 자신을 던지는 모험이다. 입찰이라고 하는 표현을 하면 낙찰이나 유찰을 생각하게 되는데, 그것도 모험이다. 자신을 이해하는 독자를 만나거나 만나지 못하는 기나긴 여정을 떠나는 모험.


그러니 르귄이 자신의 글이 잘못 읽히더라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다는 것. 작가들이 이렇다. 그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우선. 독자를 먼저 생각하지 않는다. 독자를 먼저 생각하면서 글을 쓰는 작가를 르귄은 좋아하지 않는다. 


예술은 해설이 아니다. 예술가는 예술을 할 뿐 설명하지 않는다. 내 생각은 그렇다. (69쪽)


이런 작가의 작품은 한 방향으로 고정되지 않아서 좋다. 어떤 방향으로 해석해도 좋다. 그리고 읽을 때마다 다른 생각이 들 수 있다. 르귄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를 젊었을 때와 나이 들어서 읽었을 때 다르게 느꼈다는 것으로 예술의 힘을 알 수 있다.


무의미한 보상의 끝없는 순환에 갇힌 인간의 상상력은 굶주림에 갇혀 회생 불가능해진다. (76쪽)


자, 예술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구구절절 설명하는 이유는 자신이 또는 자신의 작품을 인정받고 싶어서다. 자신의 작품 활동에 대한 인정을 받고자 하는 욕구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건 일종의 보상이다. 무의미한 보상이 아닐지 몰라도 이렇게 보상을 바라고 작품 활동을 하다보면 결국 상상력의 고갈을 부른다. 


상상력의 고갈은 진부한 이야기만을 반복하게 된다. 그렇게 쉬운 길을 택하게 되면서 자신을 변명하게 된다. 르귄이 이렇게 지적한 것처럼.


용이함은 경솔함과 그럴싸함만 낳는다. (76쪽)


용이함, 편리함, 쉬움. 이런 것만 추구하면 어려움을 배제하게 된다. 그런데 쉬운 길로만 가면 결국에는 모두가 파멸하는 입구로 들어서게 된다. 성장, 성장, 발전, 발전 하고 외쳐왔던 인류가 지금 어떤 지경에 처해 있는지 우리는 모두 잘 알고 있다. 그것을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지구는 어려움에 빠져 있으며, 인류는 곤경에 처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사고의 전환을 이루어야 하는데.. 르귄은 그것을 양을 추구하던 세계에서 음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한다.


우리가 마침내 시작한 '인류의 지배와 무한의 성장이라는 목표를 인류의 적응과 장기적 생존으로 어떻게 바꿀 것인가' 하는 사고의 전환이 바로 양에서 음으로의 전환이다. 그 사고에는 덧없음과 불완전함에 대한 수용도 포함되며 불확실성과 임시변통에 대한 인내도 포함된다. 물과 어둠, 그리고 땅과의 우호적인 관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139쪽)


이렇게 사고의 전환을 할 수 있는 것. 그것은 바로 르귄이 자신의 예술관을 관철하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은 남들이 보지 않으려 하는 것도 본다. 남들이 말하지 않으려 하는 것도 말하려 한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벌거벗은 임금님'에 등장하는 어른들처럼 지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눈 감고 있다. 보이는데도 보지 않으려 하고, 자신이 본 것을 믿지 않으려 한다. 그냥 눈 감아 버린다. 그래서 세상은 더더 나쁜 쪽으로 간다. 


우리의 왕이 벌거벗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우리는 진정 한 아이가 왕이 벌거벗었다 말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단 말인가? 누군가의 버릇없는 내적 꼬마가 지껄이기를 참고 기다릴 셈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앞으로 벌거벗은 정치인들을 아주 많이 보게 될 것이다. (199쪽)


이 구절을 읽고 얼마나 마음이 뜨끔했는지... 정말, 벌거벗은 정치인 투성이인데, 우리는 그들에게 벌거벗었다고 말을 하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지.


자신들이 벌거벗은 줄도 모르고 세상에서 가장 귀한 옷을 입은 양 말하고 행동하는 정치인들을 보면 그들을 탓하기에 앞서 눈 감고 지내는, 아니 눈 뜨고도 못 보는 우리들의 모습을 반성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어쩌면 지금까지 나 자신을 반성하지 않고 그들에게 분노만 하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 구절이 있다.


분노가 모욕과 무례의 올바른 대처법이긴 하지만 현재의 도덕적 풍토에 따르면 자신의 생각을 꾸준하고 단호하게 표현하며 도의적인 행동을 할 때 가장 큰 효과를 보게 되는 것 같다. (214쪽)


바로 이 말. 그들에게 벌거벗었다고 단호하게 이야기하고, 그것이 왜 벌거벗은 모습인지를 보여줄 수 있게 꾸준하고 단호하게 도의적인 행동을 하지 못했음을 반성하게 한다. 그냥 분노만 하는 것이 아니라.


거부된 권리는 분노를 통해 강력히 지적할 수 있다. 하지만 분노로는 권리를 잘 이행할 수 없다. 권리는 집요하게 정의를 추구함으로써 제대로 행사할 수 있다. (215쪽)


지금까지 권리를 찾기 위해 분노를 모아 사회 변혁을 이루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 더 집요하게 정의를 추구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사회 정의의 실현은 지지부진하니말이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이 책에 나온 르귄의 말을 가슴에 새기기로 한다. 나도 우리나라가 이런 나라였으면 한다. 


나는 진실을 중요시하고 선을 나누는 행동이 내 나라에서 이질적인 것으로 취급받지 않으면 좋겠다. 그래서 내 나라가 남의 나라처럼 느껴지지 않기를, 나는 바란다. (186쪽)


이렇게 사회, 정치를 생각하게 하는 글들도 있지만, 고양이 파드와 지내는 소소한 일상에 대한 이야기도 실려 있다. 르귄의 수필집... 소설만큼이나 마음에 드는 글들이 많다. 


여기에 언급하지 않았지만 '너무 필요한 문학상'이라는 제목을 단 글을 읽으면 여러가지 생각을 할 수 있다. 최근 우리나라 문학상을 두고 벌어졌던 일과 관련지어서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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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많은 날들이 있다. 일년만 해도 365일이 있다. 그런 날들 가운데 이름이 붙은 날들이 있다. 다 알지는 못하지만, 특정한 날들은 기억하고 기념한다.


  국경일, 명절 등등. 이런 날들 중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날이 있다. 바로 여성의 날. 남성의 날은 없냐고? 있다. 그런데도 남성의 날은 잘 기억하지 않는다. 잘 기념하지도 않는다. 


  왜냐고? 남성은 여전히 주류이기 때문이다. 주류이기 때문에 그리 신경을 쓰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농담으로 (아마도 진담일 수 있다) 3월 8일을 제외한 364일이 우리나라에서는 남성의 날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만큼 남성의 권력이 강하다는 얘기다. [빅이슈] 이번호는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하여 일본의 이토 시오리와 우리나라 브장, 디담 작가를 인터뷰한 글을 실었다.


여기에 이토 시오리의 마지막 말이 가슴을 울린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데...


"함부로 사람을 범주화해 차별하지 않고, 그 누구라도 진심으로 나는 나대로 살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바랍니다" (37쪽)


존중받는 사람으로서 함께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사람들. 그들이 있기에 사회는 조금씩 조금씩 좋아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그들을 알아간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자기만의 세계에 또 자기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월의식에 사로잡혀 행동할 수 있음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빅이슈]를 읽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 주변에 관심을 가져야 하기 때문에. 이번 호에서는 일본과 한국 두 작가의 인터뷰 외에도 늘 꼭지를 차지하고 있는 글들도 읽을 만하다.


읽을 만한 정도가 아니라, 꼭 읽어야 한다. 읽는 것 자체만으로도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요즘 대세가 된 유튜브에 관한 글도 좋았다. 자기 나름대로 삶의 방식을 선택해 살아가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통해 다양성이 인정되는 그런 사회를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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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돈키호테 1~2 (리커버 특별판, 세트 박스 미포함) - 전2권
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 지음, 안영옥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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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 또는 동키호테.

 

기사도 소설에 취해 자신이 기사라고 착각하고 모험을 떠났으나 사람들에게 웃음만 주고 만 사람. 어쩌면 역사는 첫번째는 비극이지만 두번째 일어났을 때는 희극이라고 하는 말이 잘 들어맞는 모습을 지닌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중세시대, 기사들의 모험은 사람들에게 환상을 심어주었을지 모르지만, 근대에 들어 기사란 존재해서는 안 되는 계급에 불과하다. 이미 끝나버린 시대를 다시 되살리려는 모습은 얼마나 우스운가.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로 돌리려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짓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은 진지하다. 아니, 진지하기 때문에 웃음을 유발한다. 그들이 자신들이 하는 행동이 시대에 맞지 않음을 알고 행한다면 그것은 희극이 아니라 비극이기 때문이다.

 

과거 시대를 다시 되살리려고 몸부림을 치는 사람. 안 되는 줄 알면서도 하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연민이 일 수밖에 없다. 비록 그가 적절한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그에게는 미쳤다는 소리를 할 수 없다. 자신이 그 행동의 의미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돈키호테와 같은 사람은 자신이 하는 행동의 의미를 모른다. 그에게는 과거가 현재일 뿐이다. 그 과거가 지금도 계속 유지되고 실현되어야 하는 현실일 뿐이다. 그런 그의 생각에 맞춰서 모든 것이 재조합된다.

 

그는 관념으로 모든 것을 만들어내지만, 행동에는 머뭇거림이 없다. 그냥 돌진할 뿐이다. 자신의 신념을 위해서 앞뒤 가리지 않고 돌진하는 돈키호테.

 

그런 사람이 돈키호테뿐만이겠는가. 현대에 들어서도, 민주주의 시대에 들어서도 여전히 과거의 정치를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 역시 돈키호테와 똑같이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서 반성적 사고를 하지 못한다. 과거와 현재를 구분짓지 못하고, 현실과 환상을 구분짓지 못한다.

 

단지 그것만이라면 이 소설이 기사도 소설을 풍자한 소설이라고 하는 면에서 무언가 부족하다. 오히려 돈키호테의 모험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나오면서 그들의 사건이 1권에서 전개된다. 그 사건들이야말로 정상적인(?당시의 감각으로 시대에 충실한 감각 정도로 해두자) 사람들이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그 이야기들이 기사도 소설에서 이루어지는 사건 전개와 비슷하다.

 

사랑에 빠진 남녀, 불의의 사건으로 헤어지게 되고, 우여곡절 끝에 오해가 풀리고 행복한 만남으로 귀결되는 그런 사건들. 돈키호테를 데리러 간 사람들과 돈키호테에게 말려들어 사건에 휩쓸린 사람들이 나중에 보면 엮이고 엮어 연결이 된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겪은 이야기를 하는데, 사건 속의 사건들이 기사도 소설의 낭만성을 드러낸다. 그래, 기사도 소설을 풍자한다는 것이 두 가지 방향에서 그렇다고 볼 수 있다.

 

하나는 돈키호테의 정상적이라고 할 수 없는, 과대망상에 빠진 기사 행각이다. 그런 모습을 통해 이제는 기사도라는 것이 통하지 않는 과거의 유물임을 드러내고 있다.

 

다른 하나는 바로 이야기 속의 이야기, 돈키호테가 만나는 인물들이 겪는 사건이다. 이 사건들이야말로 중세 기사 소설의 구성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데,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돈키호테를 미치광이 취급하면서 자신들은 정상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을 거리를 두고 보게 된다.

 

그런 종류의 행복한 결말은 중세 소설에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여러 가지 재미를 준다. 돈키호테의 기이한 행각을 웃음과 더불어 읽어도 좋고, 이야기 중간중간에 나오는 또다른 사건들을 중세 사랑이야기로 읽어도 된다.

 

1권에서는 돈키호테가 집으로 끌려온 것으로 끝난다. 1권에서 두 번 집을 나갔다 돌아왔는데, 세번째로 집을 나가면서 모험을 하는 것이 2권이라고 한다. 다음에 2권으로 넘어간다.


2권.


풍자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2권에서부터다. 무엇을 풍자했을까? 돈키호테가 이미사라진 기사도를 실현하는 행동을 시대에 뒤떨어진 행동으로 풍자했다고 할 수 있다. 나중에 정신이 돌아온 돈키호테가 기사도에 대한 언급을 하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유언을 지키지 않은 것이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그렇다.


하지만, 과연 이것으로 끝일까? 읽으면서 자꾸만 돈키호테를 통해 당시 권세 있는 사람들을 비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돈키호테 이야기를 책으로 읽은 사람들, 그에 대한 소문을 들은 사람들 중에서 권세가 있는 사람은 돈키호테를 맞이하여 그가 모험을 하도록 꾸민다. 그들은 장난으로, 재미를 위해 돈키호테를 이용한다.


2권에서 돈키호테가 만나는 공작부부는 특히 더 그렇다. 이들에 의해 돈키호테는 웃음거리가 되지만 읽는 사람인 나는 공작부부의 위선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된다. 여기에 통치자가 되었다고 착각한 산초의 모습에서는 당시 사회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산초는 당나귀와 함께 지냈던 시간이 더 행복했음을 알고 통치자의 자리를 기꺼이 물리친다. 이것은 당시 통치자들이 얼마나 위선에 빠져 있었는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2권에서는 모험이랄 것도 없다. 많은 인물들이 이미 돈키호테의 정체를 알고 그를 놀리기 위해 여러 행동을 할 뿐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을 파악하지 못하는 돈키호테에게는 그조차도 모험에 들어가겠지만, 이런 이야기들을 통해 당시 귀족들의 위선을 엿볼 수 있게 된다.


참으로 방대한 분량이다. 1500쪽이 넘는 분량인데, 축약본으로 읽었던 것과 다른 느낌을 준다. 돈키호테를 단지 웃음만으로 만나는 것이 아니라, 그를 중심으로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그때 귀족층들의 모습, 그리고 돈의 힘으로 신분 차이를 넘어서는 모습 등등을 만날 수 있게 된다. 


여하튼 돈키호테로 인해 몇 주간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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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21-03-23 18: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음 달에 조승우배우의 [맨 오브 라만차] 예매했습니다

‘그‘ 안 되는 줄 알면서도 하려고 하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이 올라오네요

kinye91 2021-03-23 20:37   좋아요 1 | URL
즐거운 관람되시길 바랍니다. 책으로 읽는 것도 좋지만 뮤지컬로 보는 것도 좋겠지요.
 

  이번 호 표지는 영화 '미나리'다. 아마 얼마 전부터 우리들에게 가장 많이 이름을 알린 영화일 것이다. 미국에서 또 다른 나라에서 엄청나게 많은 상을 받은 작품이라고.


  영화를 보지는 못했지만, 너무도 많은 언론에서 다루어서 본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데... 이 영화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전문가들에게 호평을 받는 이유도 바로 '연결'이 아닐까 한다.


  미국은 다문화, 다인종 사회인데, 다양한 문화를 존중하고,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면서 나라를 이루었는데, 어느 순간 자신들이 영토에 담을 쌓아 다른 존재들을 배척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 연결을 거부한다. 오로지 미국을 위한 미국인을 위한 정책이 판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예전에 미국으로 이민와 자리를 잡아가려는 사람들 이야기. 이것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것이고, 다문화, 다인종 사회임을 망각했던 사람들에게 그런 사회가 미국임을 인식시켜주는 연결인 것이다.


그러니 이번 호에서 편집장이 여는 글 제목을 '연결'로 한 것과 표지 사진이 적절하게 연결이 된다. 그리고 '연결'은 바로 우리 사람이 사람으로서 존재하는 기본이 아닌가 한다.


'사람은 사회적 관계의 총체'라는 마르크스가 한 말처럼, 또는 사람은 사회적 동물, 정치적 동물이라는 말처럼 사람은 서로 연결되어 살아가고 있다.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을 보아도 산 속에서 홀로 살아가는 것 같은 그 자연인들도 다른 존재들과 연결되어 있다. 사람과도 연결되고, 자연과도 연결되어 살아간다. 자연인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그렇게 연결되어 살아가고 있으니, 우리는 홀로 살아갈 수 없다.


특히 외롭고 힘든 사람일수록 '연결'은 중요하다. 관계는 곧 연결이다. 그래서 코로나19로 격리되어 생활하더라도 온라인을 통해서라도 서로 연결되려고 한다. 온갖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일명 SNS'에 사람들이 참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빅이슈]는 이러한 연결을 추구한다. 그것도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과의 연결. 그들이 고립되어 있지 않음을. 홀로 존재하지 않음을. 그들과 많은 사람들이 또 많은 다른 존재들이 연결되어 있음을 [빅이슈]는 잘 보여주고 있다.


단지 빅이슈판매원(빅판)만이 아니라 [빅이슈]에 글을, 사진을, 그림을 기고하는 사람과 [빅이슈]를 읽는 사람, 또 다른 사람들과도 연결하고 있다. 그래서 [빅이슈]는 소중하다. 우리들에게 수많은 관계를 선물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빅이슈] 이번호를 읽으며 이중섭 그림이 생각났다. 가족과 헤어져 힘들고 지친 이중섭이 그린 그림에는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 그는 그렇게 가족들과 떨어져 있고 싶지 않았나 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가끔 우리가 다른 존재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지만, 아니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영화 '미나리'도 그렇다. 먼 과거와 먼 나라 이야기 같지만, 아니다. 그것은 바로 지금 우리와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영화 '미나리'에 환호하는 것이리라.


  영화 '미나리'뿐만 아니라 이번 호에 실린 글들. 다른 호에 실린 글들과 사진들, 그림들, 그리고 광고까지도 모두 우리를 연결한다. 그렇게 '연결'에 대해서 [빅이슈]는 생각하게 한다. 우리는 누구도 외롭게 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으니. 남의 외로움은 곧 나의 외로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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