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아 시는 대체로 어둡다. 무언가 무거운 분위기를 풍긴다. 축제날이라고 할 수 있는 시 제목 축일도 끝부분에 가서는 반전이 일어난다.

 

  축일인데 네가 죽어야 할 날이 이런 날이라니... 어쩌면 이것은 우리들에게 삶과 죽음이 하나라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삶이 축제이듯, 죽음도 축제여야 한다. 장자를 예로 들 필요도 없다. 포레스트 카터가 쓴 "제로니모"에 보면 '죽기에 좋은 날'이라는 구절도 나온다.

 

  죽기에 놓은 날, 그날 죽는다면 그건 축제다. 행복이다. 그렇게 우리는 삶과 죽음을 동시에 살아간다.

 

죽음 이후는 도무지 알 수 없으므로. 죽음 이후를 기억할 수도 없으므로. 그러므로 기억을 통해 과거를 현재에 불러오지만, 미래를 불러올 수 없다. 기대, 예측은 할 수 있지만, 그것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은 아니다. 그러니 아직 오지 않은 미래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

 

현재를 보라. 자연은 그 자체로 살아간다. 동물도 그 자체로 살아간다. 이들은 그날을 산다. 그들에게는 그날이 바로 삶이고, 축제다. 그게 다다. 더 무엇을 이야기하랴.

 

하지만 우리 사람에게는 오늘이 그날이 아니다. 우리는 그날을 기다린다. 오지 않을 그날을 기다리며 오늘을 소모한다. 오늘을 제대로 살지 못한다. 이 얼마나 큰 낭비랴.

 

축제에 가서 다음에 올 축제를 기다리며 지금 자신이 참여하고 있는 축제를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사람에게 과연 행복이 올까?

 

정한아 시 '축일 祝日을 읽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축일(祝日)

 

꿀벌들이 붕붕거린다

희고 붉은 꽃들이 재빨리 피어난다

까치가 귀가 아프도록 짖어댄다

대기는 부드럽고 따뜻하다

 

너는 오늘에 대해서만 생각한다 그렇게

아름다운 네가 죽어야 할 날은 이런 날이다

 

정한아, 울프 노트, 문학과지성사. 2018년 초판 2쇄. 25쪽.

 

지금은 삶이다. 지금은 오늘이다. 오늘은 축제날이다. 그런 축제날을 두고 오지 않은, 불확실한 미래를 생각하고, 축제를 기대해서는 안된다.

 

바야흐로 좋은 날들이다. 축일이다. 이제 나도 오늘을 즐겨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