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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돈키호테 1~2 (리커버 특별판, 세트 박스 미포함) - 전2권
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 지음, 안영옥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2월
평점 :
품절
돈키호테, 또는 동키호테.
기사도 소설에 취해 자신이 기사라고 착각하고 모험을 떠났으나 사람들에게 웃음만 주고 만 사람. 어쩌면 역사는 첫번째는 비극이지만 두번째 일어났을 때는 희극이라고 하는 말이 잘 들어맞는 모습을 지닌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중세시대, 기사들의 모험은 사람들에게 환상을 심어주었을지 모르지만, 근대에 들어 기사란 존재해서는 안 되는 계급에 불과하다. 이미 끝나버린 시대를 다시 되살리려는 모습은 얼마나 우스운가.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로 돌리려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짓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은 진지하다. 아니, 진지하기 때문에 웃음을 유발한다. 그들이 자신들이 하는 행동이 시대에 맞지 않음을 알고 행한다면 그것은 희극이 아니라 비극이기 때문이다.
과거 시대를 다시 되살리려고 몸부림을 치는 사람. 안 되는 줄 알면서도 하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연민이 일 수밖에 없다. 비록 그가 적절한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그에게는 미쳤다는 소리를 할 수 없다. 자신이 그 행동의 의미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돈키호테와 같은 사람은 자신이 하는 행동의 의미를 모른다. 그에게는 과거가 현재일 뿐이다. 그 과거가 지금도 계속 유지되고 실현되어야 하는 현실일 뿐이다. 그런 그의 생각에 맞춰서 모든 것이 재조합된다.
그는 관념으로 모든 것을 만들어내지만, 행동에는 머뭇거림이 없다. 그냥 돌진할 뿐이다. 자신의 신념을 위해서 앞뒤 가리지 않고 돌진하는 돈키호테.
그런 사람이 돈키호테뿐만이겠는가. 현대에 들어서도, 민주주의 시대에 들어서도 여전히 과거의 정치를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 역시 돈키호테와 똑같이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서 반성적 사고를 하지 못한다. 과거와 현재를 구분짓지 못하고, 현실과 환상을 구분짓지 못한다.
단지 그것만이라면 이 소설이 기사도 소설을 풍자한 소설이라고 하는 면에서 무언가 부족하다. 오히려 돈키호테의 모험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나오면서 그들의 사건이 1권에서 전개된다. 그 사건들이야말로 정상적인(?당시의 감각으로 시대에 충실한 감각 정도로 해두자) 사람들이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그 이야기들이 기사도 소설에서 이루어지는 사건 전개와 비슷하다.
사랑에 빠진 남녀, 불의의 사건으로 헤어지게 되고, 우여곡절 끝에 오해가 풀리고 행복한 만남으로 귀결되는 그런 사건들. 돈키호테를 데리러 간 사람들과 돈키호테에게 말려들어 사건에 휩쓸린 사람들이 나중에 보면 엮이고 엮어 연결이 된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겪은 이야기를 하는데, 사건 속의 사건들이 기사도 소설의 낭만성을 드러낸다. 그래, 기사도 소설을 풍자한다는 것이 두 가지 방향에서 그렇다고 볼 수 있다.
하나는 돈키호테의 정상적이라고 할 수 없는, 과대망상에 빠진 기사 행각이다. 그런 모습을 통해 이제는 기사도라는 것이 통하지 않는 과거의 유물임을 드러내고 있다.
다른 하나는 바로 이야기 속의 이야기, 돈키호테가 만나는 인물들이 겪는 사건이다. 이 사건들이야말로 중세 기사 소설의 구성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데,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돈키호테를 미치광이 취급하면서 자신들은 정상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을 거리를 두고 보게 된다.
그런 종류의 행복한 결말은 중세 소설에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여러 가지 재미를 준다. 돈키호테의 기이한 행각을 웃음과 더불어 읽어도 좋고, 이야기 중간중간에 나오는 또다른 사건들을 중세 사랑이야기로 읽어도 된다.
1권에서는 돈키호테가 집으로 끌려온 것으로 끝난다. 1권에서 두 번 집을 나갔다 돌아왔는데, 세번째로 집을 나가면서 모험을 하는 것이 2권이라고 한다. 다음에 2권으로 넘어간다.
2권.
풍자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2권에서부터다. 무엇을 풍자했을까? 돈키호테가 이미사라진 기사도를 실현하는 행동을 시대에 뒤떨어진 행동으로 풍자했다고 할 수 있다. 나중에 정신이 돌아온 돈키호테가 기사도에 대한 언급을 하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유언을 지키지 않은 것이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그렇다.
하지만, 과연 이것으로 끝일까? 읽으면서 자꾸만 돈키호테를 통해 당시 권세 있는 사람들을 비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돈키호테 이야기를 책으로 읽은 사람들, 그에 대한 소문을 들은 사람들 중에서 권세가 있는 사람은 돈키호테를 맞이하여 그가 모험을 하도록 꾸민다. 그들은 장난으로, 재미를 위해 돈키호테를 이용한다.
2권에서 돈키호테가 만나는 공작부부는 특히 더 그렇다. 이들에 의해 돈키호테는 웃음거리가 되지만 읽는 사람인 나는 공작부부의 위선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된다. 여기에 통치자가 되었다고 착각한 산초의 모습에서는 당시 사회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산초는 당나귀와 함께 지냈던 시간이 더 행복했음을 알고 통치자의 자리를 기꺼이 물리친다. 이것은 당시 통치자들이 얼마나 위선에 빠져 있었는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2권에서는 모험이랄 것도 없다. 많은 인물들이 이미 돈키호테의 정체를 알고 그를 놀리기 위해 여러 행동을 할 뿐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을 파악하지 못하는 돈키호테에게는 그조차도 모험에 들어가겠지만, 이런 이야기들을 통해 당시 귀족들의 위선을 엿볼 수 있게 된다.
참으로 방대한 분량이다. 1500쪽이 넘는 분량인데, 축약본으로 읽었던 것과 다른 느낌을 준다. 돈키호테를 단지 웃음만으로 만나는 것이 아니라, 그를 중심으로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그때 귀족층들의 모습, 그리고 돈의 힘으로 신분 차이를 넘어서는 모습 등등을 만날 수 있게 된다.
여하튼 돈키호테로 인해 몇 주간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