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 - 중요한 것들에 대한 사색
어슐러 K. 르 귄 지음, 진서희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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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슐러 K. 르귄의 소설을 많이 읽지는 않았다. 달랑 세 권. 그럼에도 이 작가에게는 사람을 끄는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르귄의 이름을 듣는 순간 읽고 싶어지니 말이다. 아마도 "배앗긴 자들'이 여전히 마음 속에 남아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여간 이 책은 르귄의 수필집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구절들이 있다. 그 중에서 예술가의 자의식을 이야기한 이런 구절.


예술이 갖는 의미는 과학적 의미와 다르다. (68쪽)


글쓰기는 위험한 입찰이다. 무엇도 보장되지 않는다. 운에 맡겨야 한다. 나는 기꺼이 내 운을 걸었다. 그리고 그 자체를 너무 좋아한다. 내 글이 오독되고 오해받고 오역되더라도. (69쪽)


이보다 더 작가 의식을 드러낸 구절이 있을까 싶다. 그렇다. 글쓰기는 자신을 던지는 모험이다. 입찰이라고 하는 표현을 하면 낙찰이나 유찰을 생각하게 되는데, 그것도 모험이다. 자신을 이해하는 독자를 만나거나 만나지 못하는 기나긴 여정을 떠나는 모험.


그러니 르귄이 자신의 글이 잘못 읽히더라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다는 것. 작가들이 이렇다. 그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우선. 독자를 먼저 생각하지 않는다. 독자를 먼저 생각하면서 글을 쓰는 작가를 르귄은 좋아하지 않는다. 


예술은 해설이 아니다. 예술가는 예술을 할 뿐 설명하지 않는다. 내 생각은 그렇다. (69쪽)


이런 작가의 작품은 한 방향으로 고정되지 않아서 좋다. 어떤 방향으로 해석해도 좋다. 그리고 읽을 때마다 다른 생각이 들 수 있다. 르귄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를 젊었을 때와 나이 들어서 읽었을 때 다르게 느꼈다는 것으로 예술의 힘을 알 수 있다.


무의미한 보상의 끝없는 순환에 갇힌 인간의 상상력은 굶주림에 갇혀 회생 불가능해진다. (76쪽)


자, 예술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구구절절 설명하는 이유는 자신이 또는 자신의 작품을 인정받고 싶어서다. 자신의 작품 활동에 대한 인정을 받고자 하는 욕구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건 일종의 보상이다. 무의미한 보상이 아닐지 몰라도 이렇게 보상을 바라고 작품 활동을 하다보면 결국 상상력의 고갈을 부른다. 


상상력의 고갈은 진부한 이야기만을 반복하게 된다. 그렇게 쉬운 길을 택하게 되면서 자신을 변명하게 된다. 르귄이 이렇게 지적한 것처럼.


용이함은 경솔함과 그럴싸함만 낳는다. (76쪽)


용이함, 편리함, 쉬움. 이런 것만 추구하면 어려움을 배제하게 된다. 그런데 쉬운 길로만 가면 결국에는 모두가 파멸하는 입구로 들어서게 된다. 성장, 성장, 발전, 발전 하고 외쳐왔던 인류가 지금 어떤 지경에 처해 있는지 우리는 모두 잘 알고 있다. 그것을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지구는 어려움에 빠져 있으며, 인류는 곤경에 처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사고의 전환을 이루어야 하는데.. 르귄은 그것을 양을 추구하던 세계에서 음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한다.


우리가 마침내 시작한 '인류의 지배와 무한의 성장이라는 목표를 인류의 적응과 장기적 생존으로 어떻게 바꿀 것인가' 하는 사고의 전환이 바로 양에서 음으로의 전환이다. 그 사고에는 덧없음과 불완전함에 대한 수용도 포함되며 불확실성과 임시변통에 대한 인내도 포함된다. 물과 어둠, 그리고 땅과의 우호적인 관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139쪽)


이렇게 사고의 전환을 할 수 있는 것. 그것은 바로 르귄이 자신의 예술관을 관철하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은 남들이 보지 않으려 하는 것도 본다. 남들이 말하지 않으려 하는 것도 말하려 한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벌거벗은 임금님'에 등장하는 어른들처럼 지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눈 감고 있다. 보이는데도 보지 않으려 하고, 자신이 본 것을 믿지 않으려 한다. 그냥 눈 감아 버린다. 그래서 세상은 더더 나쁜 쪽으로 간다. 


우리의 왕이 벌거벗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우리는 진정 한 아이가 왕이 벌거벗었다 말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단 말인가? 누군가의 버릇없는 내적 꼬마가 지껄이기를 참고 기다릴 셈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앞으로 벌거벗은 정치인들을 아주 많이 보게 될 것이다. (199쪽)


이 구절을 읽고 얼마나 마음이 뜨끔했는지... 정말, 벌거벗은 정치인 투성이인데, 우리는 그들에게 벌거벗었다고 말을 하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지.


자신들이 벌거벗은 줄도 모르고 세상에서 가장 귀한 옷을 입은 양 말하고 행동하는 정치인들을 보면 그들을 탓하기에 앞서 눈 감고 지내는, 아니 눈 뜨고도 못 보는 우리들의 모습을 반성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어쩌면 지금까지 나 자신을 반성하지 않고 그들에게 분노만 하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 구절이 있다.


분노가 모욕과 무례의 올바른 대처법이긴 하지만 현재의 도덕적 풍토에 따르면 자신의 생각을 꾸준하고 단호하게 표현하며 도의적인 행동을 할 때 가장 큰 효과를 보게 되는 것 같다. (214쪽)


바로 이 말. 그들에게 벌거벗었다고 단호하게 이야기하고, 그것이 왜 벌거벗은 모습인지를 보여줄 수 있게 꾸준하고 단호하게 도의적인 행동을 하지 못했음을 반성하게 한다. 그냥 분노만 하는 것이 아니라.


거부된 권리는 분노를 통해 강력히 지적할 수 있다. 하지만 분노로는 권리를 잘 이행할 수 없다. 권리는 집요하게 정의를 추구함으로써 제대로 행사할 수 있다. (215쪽)


지금까지 권리를 찾기 위해 분노를 모아 사회 변혁을 이루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 더 집요하게 정의를 추구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사회 정의의 실현은 지지부진하니말이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이 책에 나온 르귄의 말을 가슴에 새기기로 한다. 나도 우리나라가 이런 나라였으면 한다. 


나는 진실을 중요시하고 선을 나누는 행동이 내 나라에서 이질적인 것으로 취급받지 않으면 좋겠다. 그래서 내 나라가 남의 나라처럼 느껴지지 않기를, 나는 바란다. (186쪽)


이렇게 사회, 정치를 생각하게 하는 글들도 있지만, 고양이 파드와 지내는 소소한 일상에 대한 이야기도 실려 있다. 르귄의 수필집... 소설만큼이나 마음에 드는 글들이 많다. 


여기에 언급하지 않았지만 '너무 필요한 문학상'이라는 제목을 단 글을 읽으면 여러가지 생각을 할 수 있다. 최근 우리나라 문학상을 두고 벌어졌던 일과 관련지어서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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