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벽의 시간 - 결국 현명한 자는 누구였을까
안석호 지음 / CRETA(크레타)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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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말미에 코로나19가 나온다. 이 코로나19로 우리는 자연스레 장벽을 쌓았다. 질병으로부터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어쩌면 앞으로 이런 감염병으로 인한 장벽이 많이 생길지도 모르고, 장벽이 일상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든다.

 

세계화라고 해서 서로가 쉽게 교류하게 된 세상에서 오히려 그러한 교류가 서로에게 장벽을 쌓게 만들고 있는데, 이런 장벽은 근래에 생기지 않았다. 인간을 서로 분리시키는 장벽은 예전부터 존재했다.

 

물리적인 장벽만이 아니라 심리적인 장벽도 많은데, 이 책에서는 눈에 보이는 장벽 3개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들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무역장벽이라는 장벽을 이야기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장벽은 지금 세 개다. 이 책에 언급된 4개 장벽 중에 베를린 장벽은 이제 무너졌기 때문이다. 베를린 장벽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었다. 아니 사실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독일에 가보지도 못했고, 그냥 베를린을 두 진영이 나누어서 점령했으니 우리나라 분단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한데 웬걸, 베를린이 동독 영토 안에 있었다니. 왜 그 생각을 한번도 하지 못했을까? 서베를린으로 동독 사람들이 넘어가기가 너무도 쉬운 구조였으니... 동독 측에서 베를린 장벽을 건설했는데, 그 이유는 서독의 침공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동독 사람들이 서독으로 넘어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니...

 

사람들의 교류를 억지로 막은 결과, 베를린 장벽은 무너지고 독일은 통일되었다. 자, 장벽으로 누가 이득을 보았는가? 자기 나라 국민들이 넘어가지 못하게 장벽을 세운 사실은, 그 나라가 국민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함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누가 이득인가? 당연히 서독이 이득이다. 자기 쪽으로 넘어오지 못하도록 건설된 장벽은 서독이 우월하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공표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무너진 베를린 장벽과 달리 여전히 건재한 장벽이 세 개 있다. 하나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통제하기 위해 만든 장벽, 또 하나는 미국과 멕시코를 가로지르는 장벽,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남과 북을 가로막고 있는 휴전선이라는 장벽.

 

갈등이 여전하고, 남과 북이야 이 장벽을 통해 사람들이 이동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으니 논외로 친다면, 가지구와 서안지구에 설치된 이스라엘 장벽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삶을 엄청나게 옥죄고 있다.

 

친척들을 만나러 가기 위해서도, 가기 위해서도 온갖 절차를 거치고 많은 시간을 보내야만 통과할 수 있는 장벽. 거기에 툭하면 봉쇄되는 장벽이라니. 멕시코 장벽은 어떤가? 멕시코인을 비롯한 남미 사람들이 살기 위해서 이 장벽을 넘어 미국으로 넘어가려 한다. 장벽을 통과해 미국에 도착하기 전에 죽어간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이렇게 사람들의 삶을 잘라놓고도 건재한 장벽이 왜 존재해야 할까?

 

그것은 인간이 이 유한한 지구에 내 땅, 네 땅이라고 구획을 정했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경계를 정하고 다른 사람들을 배척하기 때문이다. 본래 없던 경계를 나누고 이동을 제한하고, 그것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 장벽을 설치했다. 이스라엘도, 미국도, 남과 북도 그런 이유다.

 

자신들이 안전하고 풍요롭게 살기 위해서 장벽을 설치한다고 하지만, 그 장벽은 나와 남을 가르고 남을 위협하기에 결국 나에게 위협으로 돌아온다. 무역장벽도 마찬가지다. 함께 어울려 살아갈 수밖에 없는 지구에서 무역 장벽을 세우면 결국 자신들도 피해를 입게 된다.

 

물리적인 장벽도 마찬가지고... 그런 장벽의 역사를 살펴보고 있는 책이다. 읽으면서 김남주 시인이 쓴 '삼팔선은 삼팔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시가 떠올랐다. 이 장벽들은 특정한 어떤 장소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 지구에서 살아가는 우리들 모두에게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장벽들이 사라질 때에야 인류는 경계를 지닌, 장벽을 쌓은 특정한 집단들이 아니라 모두 하나가 되는 인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김남주 시인의 시에서 삼팔선을 장벽으로 바꿔보면서 이 책에서 말하는 장벽에 대해 더 생각해 보면 좋겠다.

 

삼팔선은 삼팔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김남주

 

삼팔선은 삼팔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걷다 넘어지고 마는

미팔군 병사의 군화에도 있고

당신이 가다 부닥치고야 마는

입산금지의 붉은 팻말에도 있다

가까이는

수상하면 다시 보고 의심나면 짖어대는

네 이웃집 강아지의 주둥이에도 있고

멀리는

그 입에 물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죄 안 짓고 혼줄 나는 억울한 넋들에도 있다

삼팔선은 삼팔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낮게는

새벽같이 일어나 일하면 일할수록 가난해지는

농부의 졸라 맨 허리에도 있고

제 노동을 팔아

한 몫의 인간이고자 고개 쳐들면

결정적으로 꺾이고 마는 노동자의

휘여진 등에도 있다

높게는

그 허리 위에 거재(巨財)를 쌓아올려

도적도 얼씬 못하게 가시철망을 두른

부자들의 담벼락에도 있고

그들과 한패가 되어 심심찮게

시기적절하게 벌이는 쇼쇼쇼

고관대작들의 평화통일 제의의 축제에도 있다

뿐이랴 삼팔선은

나라 밖에도 있다 바다 건너

원격조종의 나라 아메리카에도 있고

그들이 보낸 구호물자 속의 사탕에도 밀가루에도

달라의 이면에도 있고 자유를

혼란으로 바꿔치기 하고 동포여 동포여

소리치며 질서의 이름으로

한강을 도강(渡江)하는 미국산 탱크에도 있다

나라가 온통

피묻은 자유로 몸부림치는 창살

삼팔선은 감옥의 담에도 있고 침묵의 벽

그대 가슴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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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을 뚫고 시가 내게로 왔다 - 소외된 영혼을 위한 해방의 노래, 라틴아메리카 문학 서가명강 시리즈 7
김현균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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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90년대에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책들이 많이 번역되었다. 해방신학이라고, 기존의 체제를 옹호하는 종교가 아닌 기존 불합리한 체제를 전복시키는 종교를 주창한 해방신학. 그리고 라틴아메리카를 대표하는 저항시인으로서 파블로 네루다라는 이름이 알려졌다. 또한 우리나라 독재체제를 어떻게 종식시킬 수 있나 고민하면서 쿠바 혁명을 비롯한 라틴아메리카 혁명에 관한 책들도 많이 번역되었다.

 

그때 처음을 라틴아메리카에 관심을 가졌다고나 할까? 어쩌면 라틴아메리카는 여전히 미지의 대륙일지도 모른다. 큰 마음 먹어야 여행을 할 수 있는. 그리고 아직도 정치적으로 불안정하다고 여겨지는. 또한 경제적으로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이와 상반되게 축구를 엄청 좋아하고 잘하는 나라들이 모여있는 대륙으로.

 

라틴아메리카 사람으로 가장 유명한 사람은 내게는 '체 게바라'였다. 그 다음이 '파블로 네루다' 여기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 지리적 거리만큼이나 심리적 거리도 멀었다. 지구촌이라는 말, 고상한 척하는 사람들이 글로벌이라고 하는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과거의 시야에 갇혀 있었다.

 

오장환이 시를 통해 말한 '성벽'에 갇혀 있었다고 해야 할까? 그러다 읽게 된 이 책을 통해 라틴아메리카 문학이 변방 문학이 아님을 알게 됐다. 아니, 문학에 변방이 어디 있는가? 문학은 그 자체로 모두가 중심이다.

 

문학을 지구에서 차지하는 힘의 논리에 따라 '중심-주변'으로 나누어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 세계문학사가 유럽 중심으로, 백인중심으로 기술되었지만, 이제는 그러면 안 된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도 몇몇 학자들을 중심으로 동아시아 문학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졌고, 아프리카 문학을 포함한 다른 나라들의 문학을 연구하고 소개하는 사람도 늘어나게 되었다.

 

그 중에 라틴아메리카 문학, 그 중에서도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루벤 다리오, 파블로 네루다, 세사르 바예호, 니카노르 파라'는 라틴아메리카 문학이 변방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한 사람들이다.

 

모든 문학이 중심임을, 자신들의 삶을, 표현 양식을 반영하고 있음을, 그래서 가치가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이 네 시인을 중심으로 책을 썼지만, 이들 외에도 많은 라틴아메리카 작가가 나온다. 특히 소설에서 마르케스와 보르헤스를 빼놓을 수는 업다. 이들은 어느 한 나라, 대륙을 대표하는 작가가 아니라 우리들 모두를 대표하는 작가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라틴아메리카 문학이라고 해도 모두 같지는 않다. 같을 수가 없다. 문학은 문학자 수보다도 더 많은 특징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이 라틴문학이다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 책에서는 이 네 시인을 통해 그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문학이 무엇이었나를 보여주면서, 그들이 서로 주고받은 영향에 대해서도 알려주고 있다.

 

라틴문학을 세계문학으로 끌어올린 (이런 표현은 적당하지 않지만, 당시에 라틴아메리카는 변방이었으므로, 그들에게서 변방 문학이라는 의식을 없앴다는 표현으로 생각하자) 사람으로 루벤 다리오를 드는데, 그가 그렇게 인정받게 된 이유는 스페인에서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하여 변방문학이라는 의식을 떨칠 수 있게 되고, 이제 라틴문학은 주변-중심의 문제를 벗어나 그들의 문학을 하게 된다. 여기에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친 네루다가 나오고, 그와 교류를 하면서도 시집 몇 권을 내지 못했지만,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찾아가는 바예호, 그리고 시를 반시(反詩)로 기존 시에 도전하고 새로운 시를 만들어가는 파라까지.

 

여기에 더해 질문과 답이라는 각 시인을 소개한 글 뒤에 실려 있는 부분에서 우리나라 시인들과 비교해 주고 있는 점이 더 좋았다. 문학은 개별적이지만 보편적이기 하기 때문에, 파라와 같이 반시를 주장하는 사랆으로 대표적인 우리나라 시인 '황지우', 바예호처럼 절망을 노래하는 시인으로 '기형도'를 들고 있으니.

 

이 책 앞부분에 나와 있는 멕시코 시인 에르난데스의 발언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

 

'카프카가 우리 곁을 지나간다. 우리는 감격하여 인사한다. 그는 우리에게 눈길도 주지 않는다.' (30쪽)

 

카프카 역시 살아생전에 유럽 문학에서는 변방 아니었던가. 마찬가지로 라틴문학도 변방이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그들은 이 책에 언급된 세계적인 시인 4명 말고도 더 많은 시인, 더 많은 문학가들을 낳고 있다.

 

단지 그것만이 아니라 그들은 그들의 문학을 함으로써, 문학에서 '주변-변방'이라는 의미를 해체해 버렸다. 이 책은 그러한 해체의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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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정도라고 해야 하나. 한때 4.3에 관해서 소설을 썼다는 이유로 현기영은 정보기관에 끌려가 고문을 당했다고 했는데...

이산하는 '한라산'이라는 시를 써서 고통을 받았다고 했는데, 어느 때부터 4.3은 더이상 금기의 말이 되지 않았다.

 

  당당하게 말해도 된다. 그런데... 그러면 다 해결되었는가? 영문도 모르고 죽어간 사람들, 살아 있어서 살아가는 동안 받았던 고통들, 단지 후손이라는 이유로, 제주 출신이라는 이유로 받았던 고난들이 다 사라지는가?

 

  용서가 되는가? 대통령이 공식석상에서 몇 번 사과를 하면 그것으로 다인가? 그것으로 4.3은 끝났다고 할 수 있는가.

 

  무언가 이상하다. 그렇게 4.3은 해결된 듯이 보였는데,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와 비슷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4.3이 비로소 해결되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과연 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는가.

 

  학교에서

 

다행인가

교과서와 다르게 가르치지 않아도 되니.

국정 국사교과서 반대는 교사의 양심이었지만

대통령 탄핵바람에 징계를 피했으니

그것도 다행인가

 

두 세대가 지난 아이들이

4.3의 넋을 만나면

왜 이제야 왔냐고, 몰라서 미안하다고

서로 껴안고 우는데

대학 입학사정관들은 이제는 그 얘기

그만 쓰라 한다

 

극우 1종, 중도 미명의 7종 국사교과서

어디에서도 다 읽을 수 없는 진실을 찾아

제주에서는 여전히 교과서 너머를 가르치고

수학여행 온 학생들에게 4.3평화공원은

비올 때나 가는 곳이라 한다

 

국정 국사교과서

단 석 줄이었던 4.3

검인정 교과서 속에 조금 돌려놓았다고

그것으로 다행인가

 

(진순효, 학교에서)

 

신경림 외, 검은 돌 숨비소리. 걷는사람. 2018년. 158-159쪽. 

 

자. 이렇게 되었다고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가. 시인은 과연 이렇게 했다고 4.3이 해결되었다고 할 수 있는가라고 묻고 있다.

 

우리에게는 단지 어떻게 말을 하느냐가 아니라,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4.3을 제대로 해결하는 일이다.

 

4월도 지나고 5월도 지나가는데, 여전히 공장에서 저녁이 되어도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여전히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일들이 없어야 4.3이 해결된다고 할 수 있다.

 

하여 4.3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 ,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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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1-05-28 09: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입학사정관은...그만 쓰라 한다.. 아...

kinye91 2021-05-28 10:14   좋아요 1 | URL
저도 이 시를 읽으면서 그 구절에서 가슴이 턱 막히더라고요...
 
우리는 모두 별에서 왔다 - 138억 년 전 빅뱅에서 시작된 별과 인간의 경이로운 여정 서가명강 시리즈 9
윤성철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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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하늘을 잘 보지 않게 되었다. 하늘을 보더라도 우리 시야를 가리는 건물들이 많아졌기 때문에, 또 밤하늘의 별을 보려고 해도, 너무도 밝은 빛들이 우리 주변에 있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하늘을 볼 틈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하면서 그날그날을 살아간다. 하늘을 하루에 한 번 이상 보기도 힘든데, 우리 시야를 넘어 존재하는 우주에 눈을 돌리기엔 너무도 바쁘다.

 

그리고 너무도 시야가 좁아졌다. 최첨단 과학이 발달하면서 눈으로 볼 수 없는 아주 작은 존재들을 발견해 내기도 하지만, 또 망원경의 성능이 좋아져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별들도, 눈에 보이지 않는 광선들도 찾아낼 수 있지만, 그것은 나와 같은 장삼이사가 아니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나 해당하는 일이다.

 

이런 전문가들도 자신들 분야를 파고들어서 시야가 많이 좁아졌다고 할 수 있고. 그렇다고 해도 우주는 우리 인간을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요소다.

 

우리는 모두 별에서 왔다는 제목은, 결국 우리는 우주 속에서 존재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우주가 없다면 우리도 없다. 또한 우리 인간은 우주의 탄생 속에서 수많은 시간이 흐른 다음에 이 지구상에 나타나게 되었다.

 

아무리 부정하려고 해도 우주를 알지 않고는 인간을 이해하기 힘들다. 인간은 곧 우주이기 때문이다. 동학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인간이 곧 하늘이라는 말은 인간은 우주라는 말이다.

 

우주의 탄생, 그리고 생명체의 탄생은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또한 우주에서 별들이 사라져 가듯이 인간 생명 역시 유한함을 생각하게 한다. 이 책은 이러한 우주에 관한 이야기를 쉽게 풀어주고 있다.

 

물론 아무리 쉽게 풀어준다고 해도, 전문가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 있으니, 그 점에 대해서는 논의하지 않겠다. 다만 우주를 설명하는 이론, 지동설이 대세가 되고, 창조론보다는 빅뱅설이 과학에서 인정을 받게 되는 과정, 또한 우주의 나이를 측정해 대략 138억 년 정도라고 밝혀낸 일.

 

이러한 별들의 탄생 과정에서 얼음이 존재하고, 이 얼음들이 지구와 같은 별로 떨어져 물이 될 수도 있음을... 지구와 같이 생명체를 탄생시키고, 유지, 진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별들이 수백억 개가 넘음을 지금까지 이루어진 우주에 관한 과학을 통해 알려주고 있다. 그 중에 물에 관한 이 말... 내게는 새로운 말이었는데.

 

적어도 지구상에 존재하는 물이 지구와 충동한 소행성과 혜성으로부터 왔다는 사실은 명확해 보인다. (224쪽)

 

이 말에 의하면 우리 인간이 지구에 존재하게 된 원인도 별들에게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다른 존재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런 존재가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고 한다.

 

우주에 관심을 갖는 일은 바로 우리 인간에 관심을 기울이는 일이다. 그렇게 우리는 별에서 왔고, 우리 자신이 우주이기 때문이다.

 

가끔은 하늘을 보자. 광활한 우주 속에서 내가 어디에 있는지도 생각하는 시간을 갖자. 이 책은 그런 활동을 통해서 우리가 우리 자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음을 알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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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홀로 살아갈 수 있을까? 나를 둘러싼 수많은 존재들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다면, 함께 한다고 하지만 함께 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지지 않을까.


  리터러시라는 말. 문해력이라고 하는데, 읽기 능력 또는 이해력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 말을 꼭 문자 언어에만 적용할 필요는 없다.


  문자 언어에 당연히 적용되는 말이 리터러시지만, 읽기는 문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림도, 조각도, 또 건축도 읽기에 해당하고, 무엇보다  요즘 대세를 이루고 있는 영상 (특히 일명 너튜브라고 하는 유튜브로 대부분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얻는 세대들이 등장한 지금 시대에)에도 적용이 되어야 한다.


또 바로 우리 삶에도 리터러시가 적용되어야 한다. 내 삶을 읽을 수 있어야 하고, 나를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삶들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삶은 그냥 주어지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내가 적극적으로 읽어내야만 하는 존재다.


이렇게 삶을 읽을 수 있는 리터러시의 한 방법이 [빅이슈] 읽기라는 생각이 든다. [빅이슈]를 읽으면 나하고 가장 거리가 먼 삶들도 만나게 되고, 내가 원하던 삶 또는 나와 비슷한 삶도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이 만남을 통해 삶을 읽기 시작한다. 그냥 보기만 하지 않고 읽어내게 된다. 리터러시가 발동된다. 이번 호에서 '미디어 리터러시'를 주제로 다루고 있는데, 아마도 코로나19로 미디어에 더 많이 접하게 된 어린이, 청소년들에게 미디어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단지 어린이, 청소년만이 아니라 사실은 어른들을 향하고 있다.


미디어 리터러시는 어린이, 청소년들은 의식적으로 배우지 않는다. 그들은 태생적으로 미디어 리터러시를 행하고 있다. 마치 숨을 쉬듯이, 이들에게 미디어는 일상이다. 그러니 미디어 리터러시는 어린이, 청소년들이 아니라 어른들에게 더 필요하다.


미디어를 대하는 태도에서 거의 반대 방향에 서 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디어를 온몸으로 살아내고 있는 어린이, 청소년들에게 기존의 읽기 방식을 강요하면 안 된다. 오히려 어른들이 미디어 리터러시에 대해서 공부해야 한다.


어른들이 제대로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이들이 함께 '미디어 리터러시'에 대해서 고민할 때, 서로 다른 삶을 읽어내는 능력이 한 단계 더 올라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빅이슈] 251호에서 다양한 삶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런 삶 중에서 이슬람을 믿는 여성들이 머리에 쓰는 '니캅' - 히잡, 부르카 등등 아직도 잘 구분은 하지 못하지만, 얼굴을 가리는 천을 니캅이라고 한다는데 -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삶에 대해서 읽을 줄 알아야 함을 느끼게 한다.


그들에게는 코로나19가 오히려 '니캅'을 공공장소에서도 쓸 수 있게 해주는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하니, 다양한 삶을 한 가지 잣대로 해석하려 하면 안 된다.


영화배우 이제훈이 표지 모델로 나와 그가 출연한 영화(드라마)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그 이야기 속에서도 또 다른 삶을 만나게 된다. 주제는 비슷하지만 매번 다른 사람들이 나와 다양한 삶을 보여주고 있으니... 


이렇게 [빅이슈]는 삶을 읽는 리터러시를 경험하게 해준다. 한 달에 두 번 만나지만 만날 때마다 다양한 삶에 대해 읽을 수 있어서 좋다. 무의식 중에 삶을 읽는 리터러시를 익히게 해주고 있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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