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홀로 살아갈 수 있을까? 나를 둘러싼 수많은 존재들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다면, 함께 한다고 하지만 함께 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지지 않을까.


  리터러시라는 말. 문해력이라고 하는데, 읽기 능력 또는 이해력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 말을 꼭 문자 언어에만 적용할 필요는 없다.


  문자 언어에 당연히 적용되는 말이 리터러시지만, 읽기는 문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림도, 조각도, 또 건축도 읽기에 해당하고, 무엇보다  요즘 대세를 이루고 있는 영상 (특히 일명 너튜브라고 하는 유튜브로 대부분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얻는 세대들이 등장한 지금 시대에)에도 적용이 되어야 한다.


또 바로 우리 삶에도 리터러시가 적용되어야 한다. 내 삶을 읽을 수 있어야 하고, 나를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삶들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삶은 그냥 주어지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내가 적극적으로 읽어내야만 하는 존재다.


이렇게 삶을 읽을 수 있는 리터러시의 한 방법이 [빅이슈] 읽기라는 생각이 든다. [빅이슈]를 읽으면 나하고 가장 거리가 먼 삶들도 만나게 되고, 내가 원하던 삶 또는 나와 비슷한 삶도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이 만남을 통해 삶을 읽기 시작한다. 그냥 보기만 하지 않고 읽어내게 된다. 리터러시가 발동된다. 이번 호에서 '미디어 리터러시'를 주제로 다루고 있는데, 아마도 코로나19로 미디어에 더 많이 접하게 된 어린이, 청소년들에게 미디어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단지 어린이, 청소년만이 아니라 사실은 어른들을 향하고 있다.


미디어 리터러시는 어린이, 청소년들은 의식적으로 배우지 않는다. 그들은 태생적으로 미디어 리터러시를 행하고 있다. 마치 숨을 쉬듯이, 이들에게 미디어는 일상이다. 그러니 미디어 리터러시는 어린이, 청소년들이 아니라 어른들에게 더 필요하다.


미디어를 대하는 태도에서 거의 반대 방향에 서 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디어를 온몸으로 살아내고 있는 어린이, 청소년들에게 기존의 읽기 방식을 강요하면 안 된다. 오히려 어른들이 미디어 리터러시에 대해서 공부해야 한다.


어른들이 제대로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이들이 함께 '미디어 리터러시'에 대해서 고민할 때, 서로 다른 삶을 읽어내는 능력이 한 단계 더 올라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빅이슈] 251호에서 다양한 삶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런 삶 중에서 이슬람을 믿는 여성들이 머리에 쓰는 '니캅' - 히잡, 부르카 등등 아직도 잘 구분은 하지 못하지만, 얼굴을 가리는 천을 니캅이라고 한다는데 -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삶에 대해서 읽을 줄 알아야 함을 느끼게 한다.


그들에게는 코로나19가 오히려 '니캅'을 공공장소에서도 쓸 수 있게 해주는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하니, 다양한 삶을 한 가지 잣대로 해석하려 하면 안 된다.


영화배우 이제훈이 표지 모델로 나와 그가 출연한 영화(드라마)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그 이야기 속에서도 또 다른 삶을 만나게 된다. 주제는 비슷하지만 매번 다른 사람들이 나와 다양한 삶을 보여주고 있으니... 


이렇게 [빅이슈]는 삶을 읽는 리터러시를 경험하게 해준다. 한 달에 두 번 만나지만 만날 때마다 다양한 삶에 대해 읽을 수 있어서 좋다. 무의식 중에 삶을 읽는 리터러시를 익히게 해주고 있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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