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왼손 어슐러 K. 르 귄 걸작선 1
어슐러 K. 르 귄 지음, 최용준 옮김 / 시공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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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름을 받아들이는 자세 - 낯선 행성에 도착할 때


소설은 낯선 행성과 친교를 맺기 위해 온 특사 '겐리 아이'와 그 행성을 이루는 나라 중 한 나라 카르히데의 수상인 '에스트라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보통 낯선 곳에 도착하여 자신들이 일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두려움이 앞선다. 자신들의 안전을 보장받아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보장받을까? 흔히 두려움때문에 무장을 하고, 혼자가 아닌 여럿이 낯선 곳에 함께 간다.


그렇다면 낯선 이들을 받아들이는 모습은 또 어떤가? 처음부터 환대를 하는가? 아메리카 대륙을 생각해보면 낯선 존재를 환대했다는 기록을 볼 수 있다. 낯선 이들을 환대하는 모습, 그것은 낯선 이들에게 침략당하지 않은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또한 다른 존재를 자신들과 다른 존재로 인정하고 그들에게 편리를 제공하려는 태도가 드러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낯선 이들을 경계한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게센 행성은 네 나라로 구성이 되어 있다고 하는데, 이 소설에 나타나는 주요 나라는 카르히데와 오르고레인이다. 자기 나라에 온 낯선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상반되는데... 카르히데에서는 낯선 사람을 환대한다. 반면에 오르고레인에서는 온갖 감시소에 여러 신분증명서를 요구한다. 물론 두 나라 다 낯선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게는 하는데...


에큐멘 행성에서 특사로 온 겐리를 통해 두 나라가 낯선 이를 만나는 방식을 보여주고 있는데... 우리가 낯선 이들을 만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과연 국경을 통제하면서 낯선 이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또한 낯선 곳에 갈 때 어떤 자세를 지녀야 하는지도 생각하게 하는데... 에큐멘에서는 낯선 행성으로 사람을 보낼 때 그 행성 사람들이 두려움을 지니지 않도록 가능하면 한 사람만 보낸다고 한다.


자신들이 지니고 있는 기술을 과시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낯선 행성을 정복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서로 신뢰를 지니고 교류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서 특사를 파견하니 한 사람이 낯선 행성에 도착해서 그들과 교류하고, 신뢰 관계를 쌓은 다음에 공식적으로 외교관계를 수립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이것이다. 낯선 곳, 낯선 이들을 만나려 할 때와 만날 때 우리가 지녀야 할 자세. 두려움을 떨치고 상대에 대한 믿음을 지니고 함께 하려는 태도. 르귄은 이 소설을 통해서 이런 만남의 자세, 특히 국가와 국가, 행성과 행성의 만남이 이루어질 때 어떠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해주고 있다.


2. 다름을 인정하기 - 성(性)에 대하여


게센 행성 사람들은 양성이다. 이들은 때와 장소에 따라서 남성이 되기도 하고 여성이 되기도 한다. 그들에게 한 성만 지니고 있는 사람은 성도착자에 불과하다. 그러니 겐리는 성도착자라고 할 수 있다. 


겐리는 우리 성 구분에 의하면 남성에만 해당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양성으로 구분된 세상에서만 살아왔던 겐리에게 양성을 다 지니고 있고, 때로는 남성, 때로는 여성으로 변하는 게센 사람들은 낯설기만 하다.


하지만 겐리는 최대한 이해하려고 한다. 물론 그들이 지닌 성은 겐리가 이해하고 말고를 떠나서 겐리가 어찌할 수 없는 그들 본유의 성 정체성이다.


마찬가지로 게센 행성 사람들에게 한 성만 있는 겐리는 성도착자에 불과하다. 그들 역시 겐리를 이해할 수 없다. 남성만, 여성만 있는 성을 만나보지 못했던 게센 행성 사람들에게 겐리는 역시 이해할 수 없는 존재다.


그런데 자신들이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어찌해야 한다고 하면 문제는 거기서부터 시작한다. 어찌할 수 없는 본유의 특성은 이해하고 말고를 떠나 받아들여야 한다. 그냥 다름일 뿐이다. 가치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


여기에 가치가 개입하는 순간, 다름은 틀림이 되고, 다름을 교정하려는 강압이 이루어지게 된다. 강압, 폭력이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타고난 내 모습을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이유로 바꾸게 강제한다면, 그보다 더 심한 폭력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니 성 정체성은 이해 여부를 떠나 받아들여야 할, 먼저 받아들여야 한다. 배척이 아니라 수용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겐리와 게센 행성 사람들을 통해 르귄은 이 점을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다.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을 붙일 필요도 없다. 소설에서는 너무도 당연하게 서로의 다름을 인식하지만 함께 살아가야 함을, 다름이 틀림이 아님을 인물들을 통해서 잘 보여주고 있다.


3. 환대와 인정만으로는 부족 - 겐리와 에스트라벤이 하는 모험


낯선 사람을 환대하고 다른 성 정체성을 지닌 모습을 인정한다고 해도 쉽게 함께 하지는 못한다. 이들이 함께 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 과정을 모험이라고 해도 좋겠다. 소설은 그래서 에스트라벤이 반역자로 추방당해 이웃나라 오르고레인으로 도망치고, 겐리 역시 카르히데에 더 이상 머물지 않고 - 자신이 온 목적을 달성하기 힘들어졌으므로 - 오르고레인으로 간다.


서로 영토 분쟁을 하고, 왕이 있고 왕이 통치하는 나라와, 또 친교인들이 공동 통치를 하는 나라를 겐리를 통해 경험하게 한다. 그리고 소설은 이들이 정보를 통제하면서 나라를 운영하는 모습도 보여주고 있는데, 겐리를 유일하게 완전히 믿고, 겐리에게 불신을 받는 사람인 에스트라벤이 이용가치가 없다고 수용소에 갇힌 겐리를 구출해 다시 카르히데로 가는 과정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더 알아가고 이해하는 과정을 서술하고 있다.


그렇다. 환대와 인정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들은 함께 일을 해야 한다. 함께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과정에서 마음을 열고 완전한 신뢰로 나아갈 수 있다.


적어도 낯선 행성, 낯선 나라, 낯선 사람과 만날 때는 반드시 이 과정을 거쳐야 한다. 쇠도 두드려야 강해지듯이 낯선 이들은 함께 하는 과정에서 더 강한 유대감을 형성한다. 이런 유대감을 통해 신뢰가 이룩되고, 그 신뢰를 바탕으로 더 좋은 관계로 나아가게 된다.


겐리가 카르히데를 떠나 다시 카르히데로 돌아오기까지, 에스트라벤과 함께 하는 과정에서 그는 마음으로 대화를 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어느 정도 마음으로 대화를 할 수 있게도 된다.


마음으로 대화를 하게 되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이들이 마음으로 대화를 하게 되면서 이들에게는 완전한 믿음이 형성된다.


우리가 남극을 횡단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그들이 겪었던 고난을 상상할 수 있듯이, 이 소설에서 오르고레인을 탈출해 카르히데로 가려는 이 둘의 모험은 남극을 횡단하는 모험을 하는 사람들이 겪었던 목숨을 걸 수밖에 없었던 모습을 떠올리게 해주고 있다. 그 과정에서 둘이 우정을 쌓아가는 모습도... 


4. 왜 어둠의 왼손인가 - 어둠의 왼손은 빛


소설 제목이 된 어둠의 왼손을 보면서 왜 어둠의 저편이 아니고 왼손이지 하는 생각을 했다. 보통 우리는 빛과 어둠이라고 하지 않나... 그러니 왼손이라는 말은 좀 낯설었는데, 소설을 읽다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빛은 어둠의 왼손 / 그리고 어둠은 빛의 오른손 / 둘은 하나, 삶과 죽음은 함께 있다. / 케메르를 맹세한 연인처럼, 마주 잡은 두 손처럼, / 목적과 과정처럼.' (321쪽)


게센 행성은 겨울 행성이라고 불릴 수 있다. 추위와 눈보라, 얼음으로 뒤덮인 행성이다. 그럼에도 이들에게도 봄은 있다. 어찌 겨울만 있겠는가? 추위 속에서도 따뜻함을 느낀다. 마찬가지로 낯선 곳에 온 겐리가 겪는 고난도 새로운 세상을 위한 희망과 다르지 않다.


하나로만 되어 있지 않다. 게센 행성 사람들이 양성을 구비하고 있듯이 이들에게 어둠의 왼손은 곧 빛이다. 그러니 고통은 곧 행복의 다른 면이다. 하나가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겨울 행성이었던 게센, 그리고 특사인 겐리의 말을 믿지 않거나 또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부정했던 사람들, 하지만 이것으로 끝나지 않음을, 이러한 어둠을 통해 빛으로 나아가게 됨을 르귄은 소설을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


결국 소설 제목인 어둠의 왼손은 여러 행성들이 서로 교류를 하면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세상인 빛을 향해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자, 우리에겐 무엇이 있나? 이것 아니면 저것? 아니다. 이것과 저것은 음과 양처럼 결코 떨어질 수 없다. 태극에서 음양이 나오고 어쩌고 하는 동양철학을 운운하지 않아도 된다. 세상은 결코 하나로만 존재할 수 없다.


그러니 이 소설처럼 어둠의 왼손은 빛이고, 빛의 오른손은 어둠이다. 또한 단일한 성을 지니고 있다고 하지만, 융이 주장하듯이 우리 역시 단 하나의 성만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지니고 있는 남성성-여성성 중에 어느 성이 더 우세하게 나타나는가 하는 점이 있을 뿐이다.


게센인들이 지니고 있는 양성이 때와 장소에 따라서 다르게 발현하듯. 그리고 그럼에도 이들은 한 성만을 지닌 존재도 인정해주는, 다름이 다름일 뿐이라는 인식을 지니고 살아가듯, 개인간 만남이든, 나라간 교류든, 또는 외계 존재와 만날 때든 우리가 어떤 자세를 지녀야 할지에 대해 이 소설은 생각하게 해주고 있다.


역시 르귄은 배신하지 않는다. 소설을 읽으며 마지막 장을 덮기가 아쉽다는 마음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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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07-07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kinye91 2021-07-08 04:4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이하라 2021-07-08 0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

kinye91 2021-07-08 04:4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왜 칸트인가 - 인류 정신사를 완전히 뒤바꾼 코페르니쿠스적 전회 서가명강 시리즈 5
김상환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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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 파스칼이 한 말이라나.. 우리 인간을 다른 종과 구별해 주는 특징으로 꼽을 때 생각하는 능력은 빠지지 않는다. 그만큼 인간은 생각하는 능력을 지닌 존재다.

 

이렇게 생각하는 능력이 잘 발현되는 부분이 바로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철학은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학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학교에서 철학을 잘 배우지 않고, 철학자들이 한 주장을 거의 한 문장으로 여약해 외우는 수준으로만 배우고 있으니 문제다.

 

철학보다는 철학자를 배우는 그런 교육을 받아서 그런지, 철학자들이 한 주장에 대해서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특히 칸트는 좋은 말을 인용할 때 찾아보고 써먹기도 하지만, 그가 펼친 철학의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어렵다. 어렵기도 하거니와 차분히 들여다볼 시간도 가지지 못했다. 그냥 학교에서 배운 피상적인 내용과 여러 사람이 해설해 놓은 책들을 몇 권 읽었을 뿐.

 

이 책은 '철학은 왜 칸트 이전과 이후로 나뉘는가'라는 질문을 하면서 그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칸트의 유명한 저작인 삼비판서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칸트 철학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그런 칸트 철학이 철학사에서 지닌 의미만이 아니라 우리 삶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까지 나아가서 설명해 주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어렵다. 사실 눈에 들어오는 개념들이 적기 때문이기도 하다. 선험적 종합판단이라는 말도 어려운데,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더 나아간다. 실천이성에서 판단력까지... 그리고 세계 평화까지... 그의 영구평화론을 보라.

 

칸트의 이상이 실현되었다면 세상은 전쟁으로 얼룩지지 않았을텐데, 하지만 칸트가 주장한 자율성, 바로 인간 중심의 철학... 물론 그는 신학을 배격하지 않는다. 당시 신학을 배격할 만한 철학을 어떻게 전개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지만... 신을 제외하고, 칸트가 주장하는 바를 따라가면 인간의 자율성, 능동성, 주체성을 최대한 살리고 있다.

 

우리가 우리 삶에 대해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 환경에 대해서, 또 우리의 행동에 대해서, 우리의 마음에 대해서, 우리의 느낌에 대해서 칸크는 삼비판서를 통해 탐구하고 있다.

 

그래서 과거 철학에서 인간이 주변으로 밀려나 있었던 것을 중심으로 끌어들인다. 그리고 인간은 진리를 만들어갈 수 있음도 보여주고 있다. 그렇게만 단순하게 이해하면 안 되겠지만 적어도 인간이 눈에 보이는 현상계를 벗어나 보이지 않는 초월적인 곳까지 나아가는 능력을 지녔다는 것은, 이미 결정된 것만을 받아들이는 상황을 넘어 인간이 결정할 수 있는 존재라는 의미를 지닌다고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러면 인간은 이미 있는 존재만을 발견하는 존재가 아니라 존재를 만들어가는 존재가 될 수 있다.

 

이 책은 칸트가 쓴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비판'을 순차적으로 해설하면서 이들이 지닌 관계를 설명하고, 이 책들이 기존 관념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를 설명해주고 있다. 그리고 이 책들을 통해서 우리 인식이, 삶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도 생각하게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어렵다. 어렵지만 어렴풋이나마 칸트란 사람이 인식을 포기한 '물자체'를 도입하고 멈춘 철학자가 아니라 거기서 더 나아가려고 하는 철학자였다는 느낌을 받는다.

 

차근차근 더 시간을 내어 읽어야 할 책이라는 생각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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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아름다운 수학이라면 - 내 인생의 X값을 찾아줄 감동의 수학 강의 서가명강 시리즈 3
최영기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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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수포자"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수학 공포심이 만연한 우리 사회에서 이런 제목을 달고 나온 책이 통할까? 


한때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란 책이 많이 팔린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가장 공부가 가장 어렵다고 말하는 학생이 다수일텐데, 이 책은 반대로 이야기하고 있으니...


다시 학생들에게 수학이 아름답냐고 물어보라. 아마도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대답이 나오거나, 이상한 질문을 하는 사람이라는 비웃움이 돌아올 것이다.


하지만, 수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수학이 아름답다고 말한다. 정말로 아름답다고... 그 아름다움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한다고. 그들에게는 수학은 아름다움의 절정이다. 숫자나 기호로 표시되는 너무도 아름다운 세계.


이런 아름다운 세계 속에서 그들은 황홀경에 빠져 산다. 그러다 몇몇이 기록으로 남겨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들이 발견한 수학이 알려진다. 다만, 그들이 느꼈던 아름다움을 느끼기 보다는 절망하거나, 어려움에 빠지는 사람이 더 많겠지만.


이 책은 수학이 지닌 아름다움을 사람들이 느꼈으면 하는 의도로 썼다고 한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여러분이 수학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느껴 수학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더불어 이제라도 우리가 어떻게 수학을 가르치고 배우고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12쪽)


이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마는... 우리나라 수학은 여전히 수학이 지닌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지 못하고, 오로지 정답을 찾아내는 일에 몰두하게 한다.


그것도 빠르고 정확하게 찾는. 주어진 시간 안에 주어진 문제를 모두 실수 없이 풀도록 하는 문제풀이 기계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것이 우리나라 수학교육이다. 아니라고 부정하지 못하리라.


대학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이런 바람으로 수학에 대해서 문제 풀이가 아닌, 수학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느끼는 교육을 해야 한다고 주장해도 대학입시가 버티고 있는 한, 여전히 문제풀이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이런 우리나라 학생들에게 수학에서 만나게 되는 애매함은 견딜 수 없는 장애다.


애매함, 모호함, 불명확함, 명료하지 않음 등을 인식하고, 명료함으로, 아름답게 정리되도록 한 수학자들은 애매함을 견뎌냈다고 한다. 이런 말이 이 책에 인용되고 있다.


미래가 요구하는 창의성은 불확실한 애매함을 견디는 것이다. (로버트 스턴버그의 말이라고 한다. 186쪽)


불확실한 애매함을 견디는 힘, 그것이 창의성일텐데, 수학은 바로 이러한 불확실한 애매함을 숫자나 기호를 통해 명료하게 정리해 내는 학문. 우리가 불완전함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기보다는 완전함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니. 소위 황금비율도 바로 수학 아니던가. 이렇게 불확실한 애매함을 견뎌내고 명료함, 완전함에 이르는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순간, 수학자들은 더이상 바라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시작하면서 괴테가 쓴 파우스트를 인용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겠다. 수학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순간, 그 순간 수학자들은 영혼을 악마에게 넘겨버리는 파우스트가 되어도 좋다고 생각하리라.


그렇다면 수학에 대해서 지긋지긋하다고, 인생에서 수학은 학교에서 시험볼 때 또 대학입시에서나 중요하지 다른 분야에서는 전혀 자신과 상관없다고 여기는 사람이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있다.


많은 수학 공식을 이야기하지 않고, 수학이 어떻게 우리들 삶에 들어왔는지, 세계를 인식하는 틀을 제공했는지 또 어떤 수학자들이 있었는지 등을 쉽게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단 한 권의 책으로 수학이 지닌 아름다움을 느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이런 책을 읽음으로써 수학이 문제풀이보다 더 많은 면모를 지니고 있음을 생각할 수는 있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법. 이렇게 기존에 갖고 있던 수학에 대한 인식에 균열을 내는 일부터 시작하면 된다. 그리고 이 책은 그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여기서부터 시작하면 된다. 수학에 질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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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드로 파라모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3
후안 룰포 지음, 정창 옮김 / 민음사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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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아메리카 문학에 관한 책 "어둠을 뚫고 시가 내게로 왔다'를 읽다가 발견한 작가다. 내게 좋은 책이란 바로 이렇게 다른 책으로 인도하는 책이다. 라틴아메리카 문학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많이 읽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가끔은 이렇게 책을 통해 소개받고 읽기도 한다.


후안 룰포라는 작가는 처음 듣는 이름인데, 라틴아메리카 문학에서는 고전의 반열에 든 작가라고 한다. 특히 이 소설 "뻬드로 빠라모'는 여러가지 기법이 실린 작품으로 '마술적 사실주의'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다고 한다.


마술적이라는 말과 사실주의라는 말. 서로 어울리지 않는 이 말이 하나로 합쳐져 환상적인 공간, 상상의 내용이 펼쳐지지만 그것이 사실을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 되고 있으니... 


라틴아메리카라는 이름에서 느껴지는 환상을 소설에서도 느낄 수 있다. 줄거리는 단순하지만 내용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꼬말라'라는 장소. 이곳에는 이제 사람이 살지 않는다. 이 도시는 파괴되었다. 이 도시로 뻬드로 빠라모를 찾아오는 후안 쁘레시아도로부터 소설은 시작한다. 그런데 그는 곧 죽는다. 죽는 과정이 나와 있지도 않는데, 죽어 있다. 그리고 죽은 자들이 이야기를 한다.


소설이 중간으로 넘어가면 후안 쁘레시아도는 더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이제는 뻬드로 빠라모가 등장한다. 이렇게 소설은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뻬드로 빠라모의 아들인 후안 쁘레시아도가 서술자로 등장하여 '꼬말라'가 지닌 면모를 보여주는 부분.


그가 만나는 사람들은 살아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리고 그도 곧 유령이 되어 유령들과 대화를 한다. 또 그는 옆 무덤에서 나오는 소리도 듣는다. 이 소리들이 다시 과거로, 유령들의 세계라기보다는 뻬드로 빠라모의 세계로 이끌어 간다.


혼란에 휩싸인 멕시코. 피폐한 민중들의 삶. 여기에 절대자로 군림하는 토호. 이도저도 못하는 종교. 그리고 반란. 이런 면들이 모두 표현되고 있는 소설인데...


뻬드로 빠라모를 통해 토호가 온갖 비행을 저지르면서도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모습. 부패한 정부도, 이들에게 봉사하는 지식인들의 모습을 표현하면서 당시 혼란스러운 멕시코의 상황을 드러내고 있다.


이것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죗값이라고 하는데... 뻬드로 빠라모가 죗값을 제대로 치렀으면 상황은 나아지겠지만, 그는 자신이 사랑했던 수사나의 죽음으로 오히려 꼬말라를 파괴한다. 죗값을 치르기는 커녕 더 큰 죄를 더하고 만다.


그의 죽음은 이러한 치르지 못한 죗값을 보여주고 있고, 그 결과 꼬말라는 안정되기보다는 계속 혼란에 빠지게 된다. 꼬말라에 사람이 살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마도 그가 죗값을 치렀다면 "꼬말라'를 그 아들인 후안 쁘레시아도가 재건하는 모습으로 그렸을 텐데...


그러지 않은 이유, 그 아들이 죽어버릴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가 죗값을 제대로 치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후세가 잘못을 딛고 일어설 수 없는지경에 이르게 만든 사람. 뻬드로 빠라모. 


자, 이것은 "꼬말라"라는 환상적인 장소에서 펼쳐지는 사람들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라틴아메리카가 한동안 혼란을 거듭할 수밖에 없었던 역사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렇게 마술적 사실주의 표현을 통해 라틴아메리카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결코 길지 않은 소설이지만 다양한 기법들이 쓰여서 여러 길로 상상의 날개를 펼치게 한다. 이제 "꼬말라"에는 더이상 사람이 살지 않는다. 오는 사람도 없다. 


소설은 이렇게 황폐한 꼬말라로 끝나지만 라틴아메리카는 그 황폐함 속에서 다시 일어서고 있다. 아마도 작가가 "뻬드로 빠라모"의 죽음으로 소설을 끝낸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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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의 결정적 순간들 - 독재부터 촛불까지, 대한민국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서가명강 시리즈 8
강원택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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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우리는 우리나라에 형식적 민주주의, 또는 절차적 민주주의는 확립되었다고 말한다. 쿠테타가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는 나라, 선거를 통해서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나라, 간혹 반발이 있기는 하지만 선거 결과에 승복하는 나라, 몇몇 분야에서는 여전히 국가보안법이 족쇄로 작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언론 자유는 보장되는 나라, 교육을 통해 또는 자신의 노력을 통해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기까지 수많은 곡절이 있었고, 그것들을 통해서 현재 우리는 이 정도 민주주의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정치가 지닌 힘이다. 그리고 정치가 여전히 우리에게 판도라의 상자에 남아 있는 희망 역할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책은 네 개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나라 정치를 네 개 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보고 있는데, 각자 독립된 부분처럼 서술되었지만, 읽다보면 다 연결이 된다. 그렇게 정치는 분절되지 않고 통합된다.


먼저 대통령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우리나라 정치는 대통령을 빼고는 이야기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제왕적 대통령이라고 하는데, 정치 영역에서 대통령에게 주어진 권한이 너무도 막강하다. 대통령이 누구냐에 따라 우리나라 정치 지형이 급격하게 바뀌곤 하니, 정말 중요한 직책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대통령에게 많은 권한이 주어졌을까? 그 연원을 따져보면 초대 대통령 이승만에게서 찾을 수 있다고 한다. 그는 삼권분립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지만 그에게 대한민국은 없었다. 오히려 그에겐 대한제국이 있을 뿐이다. 그는 바로 군주의 역할을 하고 싶어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첫단추가 이렇게 채워졌기에 대통령에게 주어진 막강한 권한이 계속 이어졌다. 권력 분립을 할 수 있는 헌법 개정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런 대통령에게 주어진 권한을 입법, 사법, 행정부에서 나눠야 하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이 책의 두 번째 부분인 선거를 살펴봐야 한다.


많은 선거가 있고, 이제는 공정성에 대해서는 약간의 시비도 있지만, 대체로 결과에 승복한다. 그렇기 때문에 선거 참여가 중요해졌고, 선거를 통해서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려는 자세를 지니게 됐다.


가장 중요한 선거는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등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 선거 역사에서 일어났던 부정선거들, 그리고 그 부정선거를 거부하면서 더 나은 정치, 더 나은 사회를 만들려는 노력이 어떻게 이루어졌던가를 살펴보고 있다.


우리가 원하는 사회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선거를 등한시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이 장을 통해서 알 수 있다. 하지만 선거를 통해 원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매개가 필요하다. 그 매개 역할을 정당이 해야 한다고 한다.


정당정치... 정권을 잡기 위해서 노력하는 집단이 정당이고, 정당을 통해서 정치를 하는 체제가 바로 대의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 정당의 역사를 훑어가고 있는 이 장을 통해서 과연 우리 정치는 바른 궤도에 들어섰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가령 국회의원 선거를 보면, 1인 2표제를 택하고 있지만, 턱없이 적은 숫자의 비례대표 의원으로 인해 국민들을 제대로 대표하고 있지 않은 선거제도임을 2부를 통해 알 수 있는데, 이는 정당들의 역사를 통해서 더 자세히 살펴보게 된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우리가 왜 다당제를 택하고 있으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양당제로 운영이 되는지, 여전히 공고한 지역주의 정당들이 왜 사라지지 않고 있는지를 알려주고 있어, 지금 정당들이 지닌 공과 과를 생각할 수 있게 해준다.


다만, 이 책이 2019년에 발간되어 선거 연령이 18세로 조정이 된 사실이 반영이 안 되어 아쉽지만, 이 책에서 제기하고 있는 정당을 통해서 정치에 참여해야 함에는 동의하게 된다.


직접민주주의를 할 수 있는 부분에서는 해야 하겠지만, 비례로 대의 민주주의를 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는 선거와 정당을 통해서 참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정당은 중요한데,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정당이 시민들의 영역에까지 내려와 시민들이 정치에 참여하게 하지는 못하고 있음을, 그래서 광장에 수많은 시민들이 나가게 되고, 또 국민청원이라는 이름으로 직접 정치권력에 요구하게 되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 우리는 대의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지만,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열망을 지니고 있고, 또 참여하고 있다. 시민들이 광장으로 뛰쳐나와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려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었고, 일정한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이렇게 시민들이 광장에 나와 정치를 할 때 정당이 매개가 되어 대안을 제시하면서 정치를 제도 안으로 끌어들여야 함을 제안하고 있다.


이렇게 4부를 통해 우리나라 정치가 걸어온 길을 살피고,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주고 있다. 여전히 우리에게는 정치가 희망이다. 우리가 포기해서는 안 되는 희망, 그런 희망이 정치니, 정치에 관심없다고 하지 말고 관심을 지녀야 한다. 


우리에게는 더 좋은 사회를 만들어야 할 의무가 있고, 그렇게 만들도록 정치에 참여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덧글


118쪽, 255쪽에 우리나라 선거 연령을 19세라고 하고 있는데, 개정된 공직선거법에 의해 18세로 바뀌었다. 이 책이 발간된 다음에 개정되었으니, 수정할 필요가 있다.


공직선거법 제15조(선거권) ① 18세 이상의 국민은 대통령 및 국회의원의 선거권이 있다. 다만, 지역구국회의원의 선거권은 18세 이상의 국민으로서 제37조제1항에 따른 선거인명부작성기준일 현재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람에 한하여 인정된다.  <개정 2011. 11. 7., 2014. 1. 17., 2015. 8. 13., 2020. 1. 14.>


124쪽 1대 부통령 선거를 이야기하면서 이시형이라고 나오는데, 뒷부분에서는 이시영으로 제대로 나오니, 소소한 오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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