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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왼손 ㅣ 어슐러 K. 르 귄 걸작선 1
어슐러 K. 르 귄 지음, 최용준 옮김 / 시공사 / 2014년 9월
평점 :
1. 다름을 받아들이는 자세 - 낯선 행성에 도착할 때
소설은 낯선 행성과 친교를 맺기 위해 온 특사 '겐리 아이'와 그 행성을 이루는 나라 중 한 나라 카르히데의 수상인 '에스트라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보통 낯선 곳에 도착하여 자신들이 일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두려움이 앞선다. 자신들의 안전을 보장받아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보장받을까? 흔히 두려움때문에 무장을 하고, 혼자가 아닌 여럿이 낯선 곳에 함께 간다.
그렇다면 낯선 이들을 받아들이는 모습은 또 어떤가? 처음부터 환대를 하는가? 아메리카 대륙을 생각해보면 낯선 존재를 환대했다는 기록을 볼 수 있다. 낯선 이들을 환대하는 모습, 그것은 낯선 이들에게 침략당하지 않은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또한 다른 존재를 자신들과 다른 존재로 인정하고 그들에게 편리를 제공하려는 태도가 드러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낯선 이들을 경계한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게센 행성은 네 나라로 구성이 되어 있다고 하는데, 이 소설에 나타나는 주요 나라는 카르히데와 오르고레인이다. 자기 나라에 온 낯선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상반되는데... 카르히데에서는 낯선 사람을 환대한다. 반면에 오르고레인에서는 온갖 감시소에 여러 신분증명서를 요구한다. 물론 두 나라 다 낯선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게는 하는데...
에큐멘 행성에서 특사로 온 겐리를 통해 두 나라가 낯선 이를 만나는 방식을 보여주고 있는데... 우리가 낯선 이들을 만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과연 국경을 통제하면서 낯선 이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또한 낯선 곳에 갈 때 어떤 자세를 지녀야 하는지도 생각하게 하는데... 에큐멘에서는 낯선 행성으로 사람을 보낼 때 그 행성 사람들이 두려움을 지니지 않도록 가능하면 한 사람만 보낸다고 한다.
자신들이 지니고 있는 기술을 과시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낯선 행성을 정복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서로 신뢰를 지니고 교류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서 특사를 파견하니 한 사람이 낯선 행성에 도착해서 그들과 교류하고, 신뢰 관계를 쌓은 다음에 공식적으로 외교관계를 수립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이것이다. 낯선 곳, 낯선 이들을 만나려 할 때와 만날 때 우리가 지녀야 할 자세. 두려움을 떨치고 상대에 대한 믿음을 지니고 함께 하려는 태도. 르귄은 이 소설을 통해서 이런 만남의 자세, 특히 국가와 국가, 행성과 행성의 만남이 이루어질 때 어떠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해주고 있다.
2. 다름을 인정하기 - 성(性)에 대하여
게센 행성 사람들은 양성이다. 이들은 때와 장소에 따라서 남성이 되기도 하고 여성이 되기도 한다. 그들에게 한 성만 지니고 있는 사람은 성도착자에 불과하다. 그러니 겐리는 성도착자라고 할 수 있다.
겐리는 우리 성 구분에 의하면 남성에만 해당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양성으로 구분된 세상에서만 살아왔던 겐리에게 양성을 다 지니고 있고, 때로는 남성, 때로는 여성으로 변하는 게센 사람들은 낯설기만 하다.
하지만 겐리는 최대한 이해하려고 한다. 물론 그들이 지닌 성은 겐리가 이해하고 말고를 떠나서 겐리가 어찌할 수 없는 그들 본유의 성 정체성이다.
마찬가지로 게센 행성 사람들에게 한 성만 있는 겐리는 성도착자에 불과하다. 그들 역시 겐리를 이해할 수 없다. 남성만, 여성만 있는 성을 만나보지 못했던 게센 행성 사람들에게 겐리는 역시 이해할 수 없는 존재다.
그런데 자신들이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어찌해야 한다고 하면 문제는 거기서부터 시작한다. 어찌할 수 없는 본유의 특성은 이해하고 말고를 떠나 받아들여야 한다. 그냥 다름일 뿐이다. 가치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
여기에 가치가 개입하는 순간, 다름은 틀림이 되고, 다름을 교정하려는 강압이 이루어지게 된다. 강압, 폭력이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타고난 내 모습을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이유로 바꾸게 강제한다면, 그보다 더 심한 폭력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니 성 정체성은 이해 여부를 떠나 받아들여야 할, 먼저 받아들여야 한다. 배척이 아니라 수용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겐리와 게센 행성 사람들을 통해 르귄은 이 점을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다.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을 붙일 필요도 없다. 소설에서는 너무도 당연하게 서로의 다름을 인식하지만 함께 살아가야 함을, 다름이 틀림이 아님을 인물들을 통해서 잘 보여주고 있다.
3. 환대와 인정만으로는 부족 - 겐리와 에스트라벤이 하는 모험
낯선 사람을 환대하고 다른 성 정체성을 지닌 모습을 인정한다고 해도 쉽게 함께 하지는 못한다. 이들이 함께 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 과정을 모험이라고 해도 좋겠다. 소설은 그래서 에스트라벤이 반역자로 추방당해 이웃나라 오르고레인으로 도망치고, 겐리 역시 카르히데에 더 이상 머물지 않고 - 자신이 온 목적을 달성하기 힘들어졌으므로 - 오르고레인으로 간다.
서로 영토 분쟁을 하고, 왕이 있고 왕이 통치하는 나라와, 또 친교인들이 공동 통치를 하는 나라를 겐리를 통해 경험하게 한다. 그리고 소설은 이들이 정보를 통제하면서 나라를 운영하는 모습도 보여주고 있는데, 겐리를 유일하게 완전히 믿고, 겐리에게 불신을 받는 사람인 에스트라벤이 이용가치가 없다고 수용소에 갇힌 겐리를 구출해 다시 카르히데로 가는 과정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더 알아가고 이해하는 과정을 서술하고 있다.
그렇다. 환대와 인정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들은 함께 일을 해야 한다. 함께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과정에서 마음을 열고 완전한 신뢰로 나아갈 수 있다.
적어도 낯선 행성, 낯선 나라, 낯선 사람과 만날 때는 반드시 이 과정을 거쳐야 한다. 쇠도 두드려야 강해지듯이 낯선 이들은 함께 하는 과정에서 더 강한 유대감을 형성한다. 이런 유대감을 통해 신뢰가 이룩되고, 그 신뢰를 바탕으로 더 좋은 관계로 나아가게 된다.
겐리가 카르히데를 떠나 다시 카르히데로 돌아오기까지, 에스트라벤과 함께 하는 과정에서 그는 마음으로 대화를 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어느 정도 마음으로 대화를 할 수 있게도 된다.
마음으로 대화를 하게 되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이들이 마음으로 대화를 하게 되면서 이들에게는 완전한 믿음이 형성된다.
우리가 남극을 횡단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그들이 겪었던 고난을 상상할 수 있듯이, 이 소설에서 오르고레인을 탈출해 카르히데로 가려는 이 둘의 모험은 남극을 횡단하는 모험을 하는 사람들이 겪었던 목숨을 걸 수밖에 없었던 모습을 떠올리게 해주고 있다. 그 과정에서 둘이 우정을 쌓아가는 모습도...
4. 왜 어둠의 왼손인가 - 어둠의 왼손은 빛
소설 제목이 된 어둠의 왼손을 보면서 왜 어둠의 저편이 아니고 왼손이지 하는 생각을 했다. 보통 우리는 빛과 어둠이라고 하지 않나... 그러니 왼손이라는 말은 좀 낯설었는데, 소설을 읽다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빛은 어둠의 왼손 / 그리고 어둠은 빛의 오른손 / 둘은 하나, 삶과 죽음은 함께 있다. / 케메르를 맹세한 연인처럼, 마주 잡은 두 손처럼, / 목적과 과정처럼.' (321쪽)
게센 행성은 겨울 행성이라고 불릴 수 있다. 추위와 눈보라, 얼음으로 뒤덮인 행성이다. 그럼에도 이들에게도 봄은 있다. 어찌 겨울만 있겠는가? 추위 속에서도 따뜻함을 느낀다. 마찬가지로 낯선 곳에 온 겐리가 겪는 고난도 새로운 세상을 위한 희망과 다르지 않다.
하나로만 되어 있지 않다. 게센 행성 사람들이 양성을 구비하고 있듯이 이들에게 어둠의 왼손은 곧 빛이다. 그러니 고통은 곧 행복의 다른 면이다. 하나가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겨울 행성이었던 게센, 그리고 특사인 겐리의 말을 믿지 않거나 또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부정했던 사람들, 하지만 이것으로 끝나지 않음을, 이러한 어둠을 통해 빛으로 나아가게 됨을 르귄은 소설을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
결국 소설 제목인 어둠의 왼손은 여러 행성들이 서로 교류를 하면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세상인 빛을 향해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자, 우리에겐 무엇이 있나? 이것 아니면 저것? 아니다. 이것과 저것은 음과 양처럼 결코 떨어질 수 없다. 태극에서 음양이 나오고 어쩌고 하는 동양철학을 운운하지 않아도 된다. 세상은 결코 하나로만 존재할 수 없다.
그러니 이 소설처럼 어둠의 왼손은 빛이고, 빛의 오른손은 어둠이다. 또한 단일한 성을 지니고 있다고 하지만, 융이 주장하듯이 우리 역시 단 하나의 성만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지니고 있는 남성성-여성성 중에 어느 성이 더 우세하게 나타나는가 하는 점이 있을 뿐이다.
게센인들이 지니고 있는 양성이 때와 장소에 따라서 다르게 발현하듯. 그리고 그럼에도 이들은 한 성만을 지닌 존재도 인정해주는, 다름이 다름일 뿐이라는 인식을 지니고 살아가듯, 개인간 만남이든, 나라간 교류든, 또는 외계 존재와 만날 때든 우리가 어떤 자세를 지녀야 할지에 대해 이 소설은 생각하게 해주고 있다.
역시 르귄은 배신하지 않는다. 소설을 읽으며 마지막 장을 덮기가 아쉽다는 마음이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