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사회의 종말 - 인권의 눈으로 기후위기와 팬데믹을 읽다
조효제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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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의 눈으로 기후위기와 팬데믹을 읽다'라는 작은 제목을 달고 있다. "탄소 사회의 종말'이라고 제목을 달았는데, 이것은 저자의 바람이라고 할 수 있다.


탄소 사회가 지속되면 기후위기가 더 심해지고, 그 결과 인류가 살아갈 수 없는 지구가 될 가능성이 많다. 인류가 살 수 없는 지구에서 어떻게 인권이 이루어지겠는가?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인권의 기반이라면, 살아갈 수 없는 사회로 변해가게 하는 것은 인권 침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기후위기는 인권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또한 팬데믹도 마찬가지다. 팬데믹은 전지구적으로 일어나지만, 그 위험은 개인적으로 감내할 수밖에 없다. 사회적 빈곤층일수록 팬데믹에 취약해질 수밖에 없으니, 팬데믹 또한 인권 침해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기후위기를 환경문제로만 보고 인권의 문제로 보지 않았던 경우가 많은데, 최근에는 기후위기와 인권을 연결하여, 기후위기, 팬데믹을 인권의 문제로 보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에 더해 이러한 문제들은 인권의 문제로 보아야만 한다고 한다.


왜 인권의 문제로 보아야 하는가? 인권으로 접근하면 강제성을 띨 수 있다고 한다. 국가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일이 아니라 인권 보호 차원에서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 된다고 한다. 그러니 기후위기나 팬데믹을 인권으로 접근하면 사회의 변화에 어떤 책무성을 부여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책은 이렇게 탄소 사회로 인해 일어난 기후 위기, 팬데믹을 인권의 문제로 보아야 함을 여러 근거들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코로나 19로 인해 우리 역시 인권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몸으로 느끼고 있지 않은가.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의미가 있는데, 지금 이대로 가다가는 인류가 살아가기 힘든 지구로 되어갈 거라는 위기의식이 있다.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서도, 또 인류만이 아니라 지구에 존재하는 다른 모든 존재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도 탄소 사회는 종말을 기해야 하고, 기후 위기에 전지구적으로 대처하면서 개인적인 실천도 해야 한다고 한다.


결과 중심주의 운동만이 아니라 원칙을 이해하고 관철시키려는 운동도 필요하다고 하는데, 인권은 결과도 결과지만 원칙에 있어서 철저하기 때문에 환경과 인권이 결합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결국 환경은 인권이다. 또한 인권에는 사회적 책임도 있다. 그러므로 현재 우리만이 살아가는 사회를 추구해서는 안된다고 한다. 인권은 수평적이자 수직적이기 때문에, 공간과 시간이 아우러져야 한다.


전지구적으로, 그리고 과거-현재-미래가 한데 어우러지게 해야 한다고 한다. 이것이 인권의 관점에서 본 탄소 사회의 종말이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 탄소 사회의 종말, 아니 정의로운 전환을 위해서 해야 할 여섯 가지 제안을 하고 있는데, 전환을 위한 관점 세우기, 언론-미디어의 역할, 사회적 동력, 젠더 주류화, 인권담론, 민주주의의 재발견을 제시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코로나19만이 아니라 지구온난화를 비롯한 기후위기를 몸소 겪고 있다. 이론으로만 존재하지 않고 실제 우리 삶에 이미 기후위기가 닥쳤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미래로 미뤄서는 안 된다. 이 기후위기는 미래세대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현세대가 해결해야 할 문제다. 인권으로 기후위기에 접근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저자의 제언, 곰곰 생각하고 실천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도 살고 미래 세대로 살 수 있다. 기후위기를 바로잡는 행동, 더이상 미뤄둘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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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11-05 16: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리뷰 당선 축하드려요~

kinye91 2021-11-06 15:39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초딩 2021-11-07 11: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 축하드립니다~

kinye91 2021-11-07 11: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창백한 푸른 점
칼 세이건 지음, 현정준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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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이 엄청나게 발전해서, 이십 년 전에 나온 천문학에 관한 책들은 이미 과거의 일이 되어버리기 십상이다. 그때 예측했던 결과들을 알 수 있게 되면 과거로 지금 읽을 필요가 없지만, 그 예측이 여전히 진행 중이라면 과거 책이라도 지금 읽을 필요가 있다.


또한 예측이 빗나갔더라도 왜 그렇게 예측했으며,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예측이 빗나갔는지를 발견할 수 있다면 과학을 다룬 과거의 책들도 읽을 필요가 있다.


천문학에 대해서는 잘 모르니까, 최근 발견된 사실에 대해서도 모르는 지식이 너무도 많으니, 칼 세이건이 1990년대에 낸 이 책을 읽어도 새로운 사실들이 너무나 많다. 그때까지 발견된 새로운 사실을 통해 세이건은 우리의 미래를 예측하기도 하고, 당부하기도 한다.


그래서 내게는 이 책은 여전히 읽을 만한 책이고, 앞으로 수십 년 동안에도 읽힐 필요가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 나온 화성에 인류가 이주하는 문제는, 영화 "마션"에서도 다뤄지고 있지만, 세이건 역시 진지하게 화성에 대해서 탐구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가 화성으로 이주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신중하게 검토해봐야 한다고 한다. 물론 세이건은 그냥 이주하자고 하지 않는다. 우리는 여전히 화성에 대해서 모르고 있고, 또 그곳에서 살아갈 수 있는 과학기술도 발전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 우리가 살아가는, 아직까지는 생명체가 살아가고 있다고 알고 있는 유일한 별인 지구가 얼마나 작은지 알 수 있다. 신의 지위까지 올려놨던 인간들의 지위가 엄청나게 격하되는 데는 천문학의 발달이 한몫했다고 한다.


그리고 세상의 전부로 알았던 지구가 우주의 극히 작은 '창백한 푸른 점'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인간을 더욱 작은 존재로 격하시키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격하가 인간을 상승시키는 요인이 되니, 그동안 모르고 있었던 우주를 탐사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는 인간과 비슷한 문명을 이룩한 외계 존재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인간은 우주에서 뛰어난 생명체로 인식하고, 다른 행성으로 진출하려고 한다.


그동안 잘 몰랐던 다른 행성들에 대해서 알아가고 있으며,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지금은 우주 여행을 하는 사람이 나오고 있으며(아직까지는 우주 여행에 엄청난 액수의 비용이 들어, 소수의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지만), 화성을 인간이 살 수 있게 만들겠다는 계획을 지닌 사람도 있다고 한다.


세이건이 이 책에서 말한 일들이 실현될 수도 있는데, 초기에 우주에 관심을 가지고 달 착륙 경쟁에 열을 올렸던 이유가 군사적인 이유가 많았다면, 지금은 인류의 생존을 위해서 우주에 관심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이 지구가 우리가 살기에는 더 이상 좋은 환경을 지니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인데... 세이건의 이 말이 아프게 다가온다.


  긴급성의 선후를 고려한다면 인류가 다른 세계에서의 육지 조성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때는 우리가 우리 세계를 제대로 바로잡았을 때부터일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이해와 약속의 깊이를 시험해볼 기회가 된다. 태양계 개조공사의 첫 단계는 지구의 거주 가능성을 보장하는 일이다.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는 소행성, 혜성, 화성, 태양계 외곽의 위성들, 그리고 그 너머로 진출할 준비가 마련되는 셈이다. (364쪽)


자, 우리는 화성까지 갈 생각을 하고 있다면, 우선은 이 지구에 닥친 위기부터 협동하여 해결해야 한다. 그리고 우주로 나아가는 일을 개인이, 개별 국가가 하지 말고, 전지구인이 협력해서 하자는 제안을 세이건은 하고 있다.


이제는 우주 속에서 지구는 작은 점에 불과하므로, 인류가 대륙별로, 또 국가별로, 인종별로 또 무엇무엇으로 나뉘어 서로 갈등하고 경쟁해서는 안 되고, 협력해서 이 지구를 우리가 지속해서 살 수 있는 장소로 만들고, 그 다음에 우주로 나아갈 준비를 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지 않았을 경우 과학기술은 또다른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런 인류의 협동, 다른 생명체를 가정하고 함부로 외계에 발들이지 않는 조심스러운 자세 등을 그는 강조하고 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코로나19를 겪고 있는 지금 우리들이 떠올랐는데... 코로나19로 인류는 지구 속에서 개별 국가의 국민으로서만 살아갈 수 없음을 몸으로 겪고 있다. 백신 문제도 마찬가지다. 경제적으로 풍족하고 백신을 쉽게 확보한 나라는 부스터 샷(추가접종이라고 하자고 한다)까지 세 번을 접종할 수 있는데, 가난한 나라들, 백신을 잘 확보하지 못하는 나라들은 1차 접종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


감염병은 전지구적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백신은 나라별로 접종되고 있으니, 변이 바이러스가 계속 나올 수밖에 없다. 


접종 문제만이 아니다. 세이건은 우주로 나아가는 문제에서도 세계 여러 나라가 협력해야 한다고, 자금이나 학자들, 기술들을 공유한다면 적은 비용으로 더 빠른 시간에 더 안전하게 우주로 나아갈 수 있다고 한다. 여기서 이득을 얻으려는 나라간의 경쟁은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고 그는 말하고 있는데...


코로나19 백신이나 치료제도 마찬가지다. 이윤을 얻기 위해서 하지 말고, 전세계 의학자, 과학자들이 협력해서 개발하고, 그 연구비용과 개발비용을 각 나라에서 갹출해서 지출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빠르게, 또 안전한 백신과 치료제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전지구적 재앙에 개별적으로 대응하지 말고 전지구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이 필요함을 세이건의 이 책, 우주 탐험에 대한 '창백한 푸른 점'을 통해서도 깨닫게 되는데... 세이건의 이 말.


나는 외계 공간에 진출할 자는 우리 - 현재의 우리 관습과 사회 전통을 그대로 지닌 - 가 아니라고 확신한다. 만약 우리가 계속 슬기로움은 소홀히 한 채 재능만을 축적한다면 우리는 틀림없이 우리 자신을 파멸시키고 말 터이다. 먼 훗날에도 우리가 존속하려면 우리는 우리의 제도와 우리 자신을 개조해야 한다. (415쪽) 


자, 이것이 외계 공간에 진출할 우리들에게만 해당하는 말일까? 전세계적인 감염병에 대처하는 현재의 우리들에게도 해당하는 말이 아닐까.


세이건은 우주 이야기를 하면서 결국 우리 이야기를 한다. 이것이 바로 과학이 지닌 장점이고, 그는 그것을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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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를 읽으며 먹먹해지는 순간이 있는데, 이 시집이 그랬다. 가끔은 웃음이 나기도 하지만, 마음이 찡해지는 장면들이 곳곳에서 나왔다.

 

  세상에! 싱그러움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할 십대에 이렇게 세상 쓴맛을 알아버리다니.

 

  무한한 가능성으로 현재보다는 미래를 꿈꾸며 자신의 몸을 한껏 하늘로 날아오르게 하는 십대에, 조숙하다고 해야 하나? 아니다. 조숙이 아니다. 사회가 그렇게 만들었다.

 

  보이지 않는 압력으로 우리 십대는 이미 늙어버렸다. 세파에 찌들었다고 해야 하나. 그런 세파 속에서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제 자리를 잡으려 애면글면 하고 있다.

 

그러니 이런 십대가 최저임금 인상으로 도처에서 짤리는 계약직들을 보면서 마음이 아프지 않을 리가 없다. 반대로 최저임금이 인상되었음에도 한 명도 자르지 않고 부담을 조금씩 나눠가짐으로써 모두가 일할 수 있게 된 아파트 공고문 앞에서 뿌듯한 마음을 지닌다.

 

'엘리베이터 거울에 붙어 있는 알림을 읽다가 / 경비 아저씨를 단 한 명도 자르지 않았다는 사실에/ 우리 아파트 좀 멋진 걸, 이라고 아주 잠깐 생각했다' ('최저 임금 인상에 대한 알림을 읽고' 부분. 34-35쪽)

 

이 시집에 나오는 십대는 밝고 명랑한, 세상 걱정 하나 없을 그런 십대가 아니다. 이미 세상의 편견과 압박에 시달리는 십대다. 그래서 돈을 벌기 위해 손님이 아닌 아르바이트생으로 갔을 때 받는 불합리한 대우에 마음 아파하기도 한다. (손님보다 알바생, 50-51쪽)

 

무엇보다 이 시집에서 화자는 십대 중에서도 학교 다니지 않거나 특성화고등학교에 다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평범하게(?우리나라에서 과연 학창시절을 평범이라는 말로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하고, 사회는 약육강식의 정글과 같다는 말이 있으니, 학교에서도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투쟁이 벌어지고 있으니, 그런 공간에서 눈에 띄지 않게 자신을 지키며 지내는 학생을 평범하게 학창시절을 했다고 하자... 사실, 우리나라 학교에서 평범하게 학교 생활을 한 학생들은 정말 비범한 학생들이다.) 지내는 다른 십대들보다 더 예민하게 자신을 인식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신분이 없어진 민주주의 사회라고 하지만, 과연 그런가? 아직도 학생 때는 교복으로 구분하지 않는가?

 

'교복과 교복 사이'라는 시를 보면 그렇다. 버스 안에 다양한 교복이 있을 때 알게모르게 서열이 작동한다. 저 학생은 무슨 학교, 저 학생은 무슨 학교 하는 식으로 아는 사람은 다 안다는 소위 명문고와 그 명문고에 진학하지 못한 학생, 그나마 인문계라고 하는 학교로도 진학하지 못한 학생으로...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평준화 시대에도 차이를 부각시키는 일이 생기고 있다)

 

'버스 안에서 내 교복 보고 수군덕대는 거 알아'(교복과 교복 사이 중. 48-49쪽)하면서 이미 사회이 서열을 익혀버린 십대. 그런 십대가 내 마음을 먹먹하게 한다.

 

그러나 거기에 함몰되어 헤어나지 못하고 있지는 않다. 이 시의 화자는 '문제아였던 나는 고등학교에 갈 수 있을지가 문제였거든 / 너희들은 믿을 수 없겠지만 / 그 힘으로 계속 너희들과 같은 버스를 타는 거라고 / 그러니까 버스 안 서열은 그냥 대충 넘어갈래'(교복과 교복 사이 중. 48-49쪽)라고 한다.

 

자기 자리에서 비교라는 틀에 갇혀 무덤을 파고 있지는 않다. 그 점이 희망을 보게 한다. 그런 희망을 지니게 하는 존재는 꼭 있다. 어떻게든 만나게 되어 있다. 그리고 그 만남이 바로 우리 삶을 희망으로 지탱하게 해준다.

 

  숙제

       - 이상한 나의 선생님 3

 

담임이 집에 가는 길에 쪼그려 앉아 꽃 하나를 보고 가라고 했다

 

다 둘러봐도 꽃 비슷한 것도 없었다

 

그냥 쪼그려 앉아 눈을 땅으로 내리꽂았다

 

신발들이 무심히 밟고 지나가는

 

보도블록과 보도블록 사이

 

초록이 가득한 한가운데 아주 작은 하얀 꽃 하나가 살랑거렸다

 

꼭 나 같았다 눈물이 찔끔 났다

 

유현아, 주눅이 사라지는 방법. 창비. 2010년. 78쪽.

 

너무도 잘 알려진 나태주의 '풀꽃'라는 시를 연상하게 하는 이 시는, 우리가 다른 사람을 대할 때 어떠해야 하는지, 특히 십대 때 자신의 감정을 잘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이렇듯 유현아의 이 시집은 이런 저런 시들이 청소년의 마음을 드러내고 있어서 읽으면서 다 다른 존재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해주는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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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1-10-07 12: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십대가 쓴 시.
지금 K를 생각한다를 옆쪽에 두고, 소개해주신 시들을 읽었는데 같이 봐야겠네요. 이런 친구들이 있어서 참 다행입니다.

kinye91 2021-10-07 12:44   좋아요 1 | URL
십대를 거쳐왔지만 잊거나 잃고 있었던 그 시절 느꼈던 감정들을 청소년시집들이 떠올리게 해요. 어른이 쓴 시든, 십대들이 쓴 시든 말이에요. 저는 아직 k를 생각한다를 읽지 않았는데 읽어봐야겠단 생각이 드네요.
 

셰계에서 가장 위대한 문자 가운데 하나라고 자랑하면서, 그 문자를 만든 과정과 원리가 나와 있는 책이 있음에도, 시중에서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음에도 과연 우리는 훈민정음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는가?

 

 

이런 질문을 하면 부끄러워진다. 훈민정음 해례본과 언해본이 있다고 하는데, 그 책들을 그냥 있다고만 알고 있으면서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하다못해 학교 국어시간에도 기껏해야 훈민정은 서문(세종어제 훈민정음)만 읽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지 않았는가.

 

이 참에 다시 한글날을 맞아 훈민정음을 한번 읽어보자. 책의 끝부분에 정인지가 서문을 쓰면서(세종의 서문은 책의 맨 앞쪽에, 신하인 정인지 서문은 맨 뒤에) 이렇게 말했다.

 

"지혜로운 사람은 하루 아침 안에 깨칠 것이요, 어리석은 사람도 열흘 안에 배울 수 있느니라."

우선 김슬옹이 펴낸 책을 먼저 읽을 것을 권한다. 훈민정은 해례본 강독이다. 그냥 따라 읽으면 된다. 여러 방법으로 읽게 만들었기 때문에 반복해 읽으면 훈민정음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이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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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해례본 입체강독본- 개정증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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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사진과 기록으로 읽는 한글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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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07 12: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0-07 12: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코리안 티처 - 제25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서수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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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정희 시 '그 많던 여학생은 어디로 갔는가'


이 소설을 읽으며 여러 생각이 났는데, 고학력 여성들이 가질 수 있는 직업이 무엇일까? 그 많던 똑똑한 여학생들은 다 어디에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을 보아도,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학생을 보아도 여학생이 많다. 그런데 정규직의 비율을 보면 여성의 비율이 많이 떨어진다고 한다. 조금씩 비중이 높아지고는 있지만, 아직도 낮은 편이다.


이 소설에서 똑똑한 여학생들은 한국어 강사로 일한다. 비정규직 강사. 그들에게는 재계약이 보장되지 않는다. 그러면서 온갖 평가가 따라다닌다. 이들에게는 권리보다는 책임과 의무가 더 강요된다.


그나마 대학강사라고 하지만, 이들에게는 수업을 계획할 권리도, 학생들을 재량껏 평가할 권리도 없다. 오로지 주어진 매뉴얼대로만 해야 한다. 마치 빈틈없이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처럼 이들은 거대한 기계를 이루는 한 부속품일 뿐이다.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데, 이 외국인들이 한국이 좋아서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서 오는 경우도 있지만, 학교에서 사업의 일환으로 많은 학생들을 데리고 오는 경우도 있다. 이들은 바로 이렇게 교육 장사를 한다.


이 소설에 나오는 베트남 학생들은 배움이 목적이기보다는 한국에 합법적으로 들어와 일자리를 찾으려 한다. 학교와 그들의 욕구가 맞아떨어지면서 많은 수의 베트남 학생들이 등록을 하게 되고, 그들을 가르칠 강사가 필요해서 많은 수의 강사가 채용된다.


학생 수에 따라서 다음 학기 계약이 되느냐 한 되느냐가 걸려 있는, 그 많던 여학생이 언제 계약이 만료될 지 알 수 없는 시간 강사로 살아가게 된다. 박사과정을 밟은 한희조차도 책임강사라고 하지만 계약직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교육 장사의 소모품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 이 소설 [코리안 티처]다.


2. 여성을 몸으로 인식하는 문화


한국인 강사들이 이 소설에서는 대부분 여성들이다. 그 많던 여학생들이 비정규직으로 삶을 이어가는데, 이들을 바라보는 학생들의 시각은 선생님이기도 하지만 여성이기도 하다. 몸으로서의 여성.


그래서 아무렇지도 않게 사진을 찍어서 올리고 공유한다. 그것이 잘못된 일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이런 면에서는 동서양 학생들이 차이가 없다. 여기에는 동양과 서양이라는 문화 차이보다는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별 차이가 더 크게 작용한다.


학생들은 강사의 사진을 찍어서 올리고, 예쁘다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공유한다. 소설의 처음에 등장하는 선이가 그렇다. 


자신은 선의를 다해 가르치는데, 그들은 선이를 교사이기 전에 여자로 인식하고 행동한다. 꼭 외국인 학생들 이야기만은 아니다. 최근에 우리나라에서도 교사의 사진을 찍어 올리고 공유하는 사례가 많이 문제가 되었으니.


여성을 능력보다는 몸으로 인식하는 문화, 그것이 이 소설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으며, 선이뿐이 아니라 그 점에서 벗어나려는 미주에게서도 그렇게 소비되는 여성에 대한 관점이 다른 면에서 부작용으로 작동함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학생들과 친하고 잘 지내던 가은 역시 몸으로 소비되는 자신을 보면서 강사직을 그만두게 된다. 


3. 그럼에도 희망은 있다


선이로 시작해, 미주, 가은, 한희의 이야기로 봄학기, 여름학기, 가을학기, 겨울학기가 서술되고, 마지막에 겨울단기로 소설이 마무리 된다.


학교에서 베트남 학생들이 집단으로 도망을 가니, 징계를 받지 않기 위해 중국인 학생들을 단기로, 그것도 학교 측에서 비용을 거의 대주는 식으로 받으들여 전체 정원을 늘린다. 그러면서 다시 단기로 강사들을 채용하는데, 이때 처음에 등장했던 선이가 등장한다.


물론 결과는 행복하지 않다. 선이는 계약이 만료되었다가 단기에 다시 등장하고, 미주는 내용 증명을 받아 재계약이 안 될 처지에 있으며, 가은은 충격을 받고 강사직을 그만두었으며, 한희는 책임강사 직을 휴직하고 아이를 낳게되면서 다시 자기에게 주어졌던 가은의 자리로 갈 수 없게 된다. 단기 강사직을 다시 했던 선이가 학생들에게 알려주었던 폭죽으로 기숙사가 불타버리고 마니 선이는 다시 계약하기 힘들 것이다.


이들은 이렇게 자기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희망이 있음을 한희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한희는 한국어에는 미래가 없다라고 했다가, '한국어의 미래시제 교수법'이라는 글을 쓰려고 한다. 미래는 있어야 한다. 바로 한희에게는 아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희는 영국으로 가자는 제이콥의 제안을 거절한다. 한국에서 자신은 버티겠다고 한다. 이제 한희에게 미래는 자신의 의지로 만들어가는 와야만 하는 시제가 된다.


여기에 소설의 끝에 다시 가은이 등장한다. 지방의 다문화언어강사 면접 대기실에 있는 가은. 포기하지 않았다. 다시 시작한다.


이들은 과거에 열심히 살았고, 현재에도 충실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미래는 보장되지 않았다. 미래는 불확실한 올지 안 올지 모르는 시제였다.


그렇게 끝나면 문정희 시 제목처럼 된다. '그 많던 여학생은 어디로 갔는가' 아니다. 갔는가로 끝나지 않고 여기에 있다, 여기에 있겠다로 소설을 맺고 있다.


이렇게 소설은 한국어 강사들을 통해 비정규직 여성들의 삶과 교육으로 장사를 하는 대학의 행태들을 보여주면서, 그럼에도 우리가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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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1-10-06 11: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페이퍼로 뽑혀서 많은 분들이 읽었으면....^^

kinye91 2021-10-06 12:06   좋아요 2 | URL
이 소설 읽으면서 ‘82년생 김지영‘도 생각났어요.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 많은데, 그것을 조금씩 깨뜨려나가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