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제13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임솔아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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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공통점을 찾으려면 찾을 수도 있겠지만, 한 편 한 편이 자기만의 세계를 지니고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 이 시대의 모습이 잘 드러나고 있다고 봐야 하는데, 짧은 단편 소설들 모음이지만 소설 속에서 우리 사회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서수진이 쓴 '골드러시'를 보면 한국에서 살기보다는 외국에서 살기를 선택한 사람 이야기가 나온다. 한때 이민을 가려고 하는 젊은이들이 많았다. '헬조선'이라는 말로 우리나라를 떠나 다른 나라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려고 하던 사람들.


그러나 그들이 꿈꾸었던 골드러시가 실현되었을까? 많은 사람들에게 골드러시는 환상으로 끝나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고통과 환멸만 남겨놓은. 그럼에도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상태. 소설은 그런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김멜라가 쓴 '저녁놀'은 발상이 재미있다. 딜도가 주인공이 되어 이야기를 한다. 성소수자 이야기이기도 하고, 그들이 살아가기에는 녹록치 않은 현실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소설은 남성 중심의 서사를 뒤집는다.


딜도가 다른 쓸모를 얻게 되는 과정에서, 함께 살아가는 두 사람의 마음이 따스하게 다가온다. 서로를 위하는 마음. 함께 하려는 마음. 그럼에도 세상은 참 살기 힘든.


새로운 관점에서 성소수자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읽으면서 어떤 비장감을 느끼지 않아서 좋은 소설이다.


이 소설과 다른 쪽에서 김지연이 쓴 '공원에서'를 읽을 수 있다. 이 소설은 비장하다. 자기의 언어를 갖기 힘든 상태가 나온다. '저녁놀'에서는 성소수자인 그들은 그들만의 언어를 지니고 살아간다.


그렇다. 자기 언어를 지니고 있느냐 없느냐는 살아가는데 무척 중요하다.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들과 자기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 지금은 좀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성소수자들은 여전히 자기 이야기를 잘 하지 못한다. '저녁놀'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자기들 이야기를 남에게 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이 소설에서 평온한 분위기를 느끼게 되는 이유는, 이들은 자신만의 언어를 만들어 쓰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모텔을 이들은 도서관이라고 부른다. 사랑을 나누는 행위를 책을 읽는 행위로 치환하고, 그렇게 부르고 있기 때문에 소설은 평온한 분위기를 유지한다.


반면에 '공원에서'의 주인공은 자신의 말을 하지 못한다. 사회적 통념에서 자기 말을 했다가는 오히려 피해자에서 비난을 받을 행동을 한 사람으로 전락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는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사회의 모습이기도 한데... 이런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피해자는 자신의 언어를 지니고, 자기 이야기를 하기 힘들다. 그에게는 자체 검열 기제가 작동한다.


그래서 '공원에서'의 주인공이 자신의 감정을 발산할 때 쓰는 말은 비명일 수밖에 없다. 언어로 정제되지 않고 나오는 비명, 이 비명은 절박함에서 나오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가 닿지는 않는다.


'공원에서' 결말 부분에서 주인공은 다른 존재에게서 위로를 받기는 하지만, 그 위로가 삶을 바꿀 수 있게 되고, 자신의 언어를 지니게 될지는 모른다. 아직도 진행 중이다. 약한 사람들의 자기 언어 갖고 말하기는.


나머지 네 편의 소설들에서는 '쓰기'를 발견한다. 쓰기. 언어로 남기기라고 할 수 있는 행위. 이 쓰기에는 주술적인 면도 있다. 언어에 주술이 담겨 있듯이... 


임솔아가 쓴 '초파리 돌보기'에서 소설의 결말이 어떻게 되는가와 사람의 건강이 연결이 되고, 김병운이 쓴 '기다릴 때 우리가 하는 말들'에서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써 달라는 부탁을 받게 되고, 김혜진의 '미애'에서는 삶을 위해서 포기할 수 없을 때 편지를 쓰게 되는 장면으로 소설이 끝난다. 서이체가 쓴 '두개골의 안과 밖'에서는 살처분되는 광경을 언어로 어떻게 남겨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나타나기도 하고.


모두 쓰기의 효용성을 다루고 있는데, 쓰기는 바로 자기 언어로 자신의 삶을 남기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쓰기를 통해서 증인이 되기도 하고, 쓰기를 통해서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기도 하며, 쓰기를 통해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기도 한다.


이렇게 쓰기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언어를 지녀야 한다. 언어, 우리 삶을 다른 삶과 연결시켜주는 역할도 하지만,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게도 한다.


'골드러시'에서 영주권을 얻게 되는 과정에서 영어라는 언어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그 언어로 인해서 삶이 어떻게 뒤틀리는지도 만나게 되고, '초파리 돌보기'에서는 산업재해를 다룬다고도 할 수 있지만, 그보다는 쓰기를 통해서 사람이 치유되는 모습이 나타난다. 그만큼 언어, 쓰기의 역할이 잘 드러난다고 할 수있다. 


그러므로 이번 수상작품집을 읽으면서 언어와 쓰기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가져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한 편 한 편 흥미 있는 소재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주고 있어서 좋았던 작품집이다. 다음 작품집도 기대하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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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깨주의의 탄생 - 누구나 함부로 말하는 중국, 아무도 말하지 않는 중국 보리 인문학 3
김희교 지음 / 보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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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도발적이다. [짱깨주의의 탄생]이라니. 짱깨라는 말이 긍정적이 아니라 부정적으로 쓰이는 말, 비하하는 말로 쓰이는데, 책 제목에 짱개라는 말과 이념을 뜻하는 주의가 합쳐졌다. 그런데 이 말이 과연 긍정적으로 쓰일까?


짱깨주의라는 말은 중국을 대할 때 흔히 지니는 선입견을 말한다. 편견이라고 할 수 있는 사고의 틀인데, 이는 역사적으로 또는 정치적으로 왜곡되어 전해졌다고 할 수 있다. 이미 한 나라를, 또는 그 나라 사람을 비하하는 말을 쓴다는 것 자체가 유사인종주의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일본을 쪽바리라고 하고, 중국을 짱깨 또는 짱꼴라라고 하는 말을 흔히 하는데, 같은 동아시아에 속한 나라들인데 이상하게도 좋은 감정으로 말을 하지 않게 된다.


일본이야 우리나라를 식민지배 했던 나라이고, 또 제대로 된 사과도 변상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부정적인 인식을 지니고 있다치더라도, (그렇더라도 제국주의 일본과 일본국민은 구분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제국주의 일본과 지금 일본도 구분해야 하고. 다만, 일본이 과거 제국주의 유산을 제대로 청산했느냐 하지 않았느냐는 것은 반드시 따져보아야 한다)


중국은 왜 그럴까? 예전에 사대를 했기 때문에, 또는 한국전쟁 당시 적대국으로 참전했기 때문에... 공산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등등 다양한 요소가 많을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중국은 우리보다 못하다는 깔보는 마음이 그런 말을 만들어냈을지도 모른다.


여기에 중국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에 대한 마음까지 더해져 그런 관점을 강화하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그러한 짱깨주의에 대해서 왜 그런 말을 하는지, 그런 관점이 무엇이 문제인지를 분석하고, 앞으로 우리가 지녀야 할 자세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짱깨주의 프레임을 네 가지로 이야기하는데, 유사인종주의, 신식민주의체제 옹호, 자본의 문제를 중국의 문제로, 신냉전체제 구축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담론을 유통시키는 매체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고, 우리 언론에 나타난 중국의 모습을 분석하고 있다.


긍정보다는 부정이 많은 보도들, 이런 관점에는 우리나라에서 진보냐 보수냐가 중요하지 않다고, 다들 비슷한 관점을 지니고 있다고, 그런 의미에서 '짱깨주의'라고 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중국과 교류를 단절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고, 중국과 미국이 경쟁을 하는 시대에, 중간 지대에 있는 우리나라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최근에 중국에 대한 인식이 나빠졌고, 중국과 교류하기보다는 미국 쪽에 확실히 서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고 하는데, 이 책은 왜 그런 태도가 문제인지를 지적하고 있다.


이미 세상은 한 나라가 세계를 지배할 수 없게 되었다. 다극체제, 또는 다자주의로 나갈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전세계와 무역을 하는 나라로 어느 나라와만 단절할 수 없다. 게다가 중국은 우리나라 최대 교역국이지 않은가.


그러니 현명한 대처를 해야 한다. 현명한 대처를 하기 위해서는 우리 처지에서 중국과 미국을 바라봐야 한다고 한다. 미국의 관점에서, 또는 서구의 관점에서 중국을 바라보지 말고, 우리의 현재 처지에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고.


결국 외교와 무역이란 우리가 손해보려고 하는 활동이 아니라, 우리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관계를 맺는 활동 아닌가.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중국을 제대로 바라봐야 한다고 한다. 짱깨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짱깨주의가 이미 왜곡된 틀이기 때문에 그 틀을 벗어나서 사고하고 행동해야 한다.


두터운 이 책은 중국에 관해서 너무 긍정적으로 이야기한다는 느낌을 줄 수도 있다. 중국에 대해서 그간 지녀왔던 부정적인 인식에 대해서 그것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를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중국에 대한 편향된 인식을 바로잡기 위해서 중국이 지니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중국도 문제는 있다는 식으로 넘어가고 있는데, 우로 한참 굽은 것을 중간으로 돌리기 위해서는 좌로 더 굽혀야 한다는 말이 생각나는 서술이기도 하다.


양비론을 이 책에서 비판하고 있으니,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짱깨주의'에서 벗어나려면 지금 중국이 지니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사례들을 들어 이야기해주고, 그런 점을 포함한 중국과 우리가 어떻게 관계를 맺어가야 할지에 대한 주장이 있었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우리는 미국과 중국의 경쟁 사이에 놓여 있다. 그들만의 경쟁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다. 우리는 그들의 경쟁에 어떻게든 관련이 되어 있으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때 '짱깨주의'로 표방되는 중국 무시 또는 중국 배제 정책이 우리에게 실효성이 있을까를 생각하게 하는데는 이 책이 도움이 된다.


우리의 처지에서 중국을, 미국을, 또는 세계 정세를 바라보는 태도를 지녀야 한다는 주장,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혹 중국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이 먼저 든다면 혹시 나에게도 짱깨주의가 작동하는 것은 아닌지 한번 생각해 보고, 다양한 관점에서 중국을 바라보려는 노력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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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온 2022-08-09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맘에 안든다. ˝글로벌 오랑캐의 탄생˝이라고 해야지!
 
바다 생물 콘서트 - 바다 깊은 곳에서 펄떡이는 생명의 노래를 듣다
프라우케 바구쉐 지음, 배진아 옮김, 김종성 감수 / 흐름출판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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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지'라는 말과 '공유지의 비극'이라는 말이 동시에 떠올랐다. 바다는 생명의 시원이라고 한다. 물이 없다면 생명체가 없다고 하고, 바다는 물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바다 속에는 엄청나게 많은 생명들이 살아가고 있다.


넓고 깊고 풍부한 바다. 그런 바다 속에 어떤 생명들이 살고 있을까? 이 책에서는 플랑크톤부터 시작해서 가장 크다는 대왕고래까지 많은 생명체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심해에 사는 생명들까지 소개하고 있어서 바다 생명들의 다양함을 만날 수 있다.


멀리서 보면 마냥 평화로울 것 같은 바다 생명들의 세계, 하지만 이 세계에서도 죽고 죽이고, 먹고 먹히는 관계들이 있고, 서로를 보살피는 관계들도 있다. 모든 생명은 이렇게 연결이 될 수밖에 없는데...


그 중 영화 '니모를 찾아서'에 관한 이야기. 이 영화가 바다 생물학자들에게 제대로 고증을 받지 않았다는 이야기. 새로운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니모는 흰동가리 종류의 물고기라고 하는데, 이 물고기는 가장 큰 물고기는 암컷이고, 그 다음으로 큰 물고기가 수컷이라고한다. 생식을 담당하는 수컷. (85쪽) 암컷이 죽으면 생식을 담당하는 수컷이 암컷이 되고, 그 다음 큰 물고기가 생식을 담당하는 수컷이 된다고 한다. 


영화 '니모를 찾아서'에서 엄마가 죽었으니, 그 다음 전개는? 86-87쪽을 보면 18세 이상 관람가가 되었으리라 하는데... 엄마대신 아빠가 엄마가 되고, 니모는 아빠 역할을 하게 될 테니...


이렇게 바다 속 생명들의 세계는 우리가 잘 알고 있지 못한 사실들이 많다. 상어 역시 그렇게 위협적이지 않다고 하는데... 영화 '죠스'로 악명을 얻은 백상아리... 하지만 다른 면도 있다고 하는데, 이 책에 실린 이 구절, 참고할 만하다.


1916년 뉴저지 해변에서 발생한 공격 사건...다른 사람들은 백상아리 암컷이 공격의 주범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이 일련의 공격 사건은 1974년 소설가 피터 벤츨리가 소설 [죠스]를 집필하는 데 영감을 주었다. 훗날 이 베스트셀러가 남긴 결과에 깊이 후회하게 된 작가는 그때부터 상어와 바다를 보호하는 일에 전력을 다했다. 소설이 출판된 지 불과 1년 후에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이 소설을 동명의 영화로 제작했다. 이 영화는 전세계적으로 백상아리와 그 친족에 대한 두려움을 불러일으켰고, 이는 오늘날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 연구자들은 인간에 대한 상어의 공격 중 다수가 호기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추측한다. 상어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저 살짝 '시식'을 해보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188-189쪽)


그럼에도 사람들은 상어, 특히 백상아리를 지금도 두려워한다. 영화로 인해서 머리 속에 들어온 공포심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만큼 처음에 제기된 인상이 중요한데... 조심해야 한다.


또 우리는 말소리가 안 들리게 말하는 사람을 보고 '붕어냐?'고 하는데, 물고기들도 소리를 낸다고 한다. 바닷속이 아주 조용할 것이라고 추측하는데, 온갖 소리들로 가득 차 있다고 하니... 여기에 바다 생물들에게도 병원 역할을 하는 곳이 있고, 치료 물고기도 있다고 하니...


생명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육지나 바다나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바다 생명의 풍부함, 신비로움을 이야기하고 있는 이 책은 읽으면서 바다 생명의 신비를 느낄 수 있게 해준다.


그러다 책 끝부분에 가면 인간의 문제로 돌아온다. 바다는 우리에게 공유지다. 그런 공유지를 함부로 대해 공유지의 비극이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바다를 지키려는 노력도 있지만, 아직은 부족한 상황.


자칫하면 이 공유지의 비극이 인류의 생존에 큰 위협으로 다가올 수 있음을 이 책 마지막 부분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생명의 보고를 인간이 깨뜨리고 있다는 현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바다를 지켜야 우리 생명을 지킬 수 있음을...


외계를 탐사하면서 외계 행성에 물이 있나 없나를 제일 먼저 파악하려고 하는데, 이는 물과 생명체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물이 가장 많은 바다를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대해, 공유지의 비극을 불러온다면 그것은 해서는 안 될 일이다.


하여 이 책은 바다 생명의 신비로운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것을 지키는 일이 우리의 생명을 지키는 일임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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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호, 편집장의 글을 읽으면서 분류라는 말을 생각했다. 편집장의 말과 더불어 이번호에 실린 글들도 이런 '분류'를 생각하게 했고.


  분류. 나누고 모은다. 간단한 말이다. 그런데 '분=나누다'는 말이 앞에 있다. 모으기 위해서는 먼저 나누어야 한다. 나누기 위해서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 무엇을 기준으로 삼을까?


  그렇다. 기준, 우리는 살아가면서 알게 모르게 어떤 기준을 작동시킨다. 그 기준에 부합하면 모으고, 기준에 맞지 않으면 모으지 않는다. 그래서 끼리끼리가 되는 경우가 많다. 기준에 부합하는, 비슷한 존재들이 모이게 되니까.


이 분류에 끼지 못하면 배제된다. 분류는 모으다는 말도 있지만, 배제한다는 말도 포함하고 있다. 이에 속하지 않으면 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데 이 분류가 참 무서울 때가 있다. 개인의 특성을 먼저 생각하기보다는 분류, 집단의 속성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집단 속에 개인은 무시당하기 일쑤다. 그리고 개인을 비난하는데, 이 집단을 이용하기도 한다.


또한 집단을 이용해서 비난을 하면 개인이 반박하기 힘들어진다. 편집자의 말에서 어떤 비애를 느꼈는데, 사실 확인을 하지 않고 비난하는 글이 실렸을 때, 그 비난은 집단을 향하고, 집단 속에 있는 개인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반박하는 글을 실어도 이미 버스 지나간 뒤에 손 흔들기가 된다. 사람들은 비난에는 민감하지만, 비난을 반박하는 글에는 무심하다. 대체로 그렇다. 이렇게 분류 속에 이미 자신의 사고틀을 집어넣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분류 기준을 바꾸는 일, 참 힘들지만 살면서 시도해야만 하는 일이다. '당신의 첫 번째 분류 기준은 무엇인가요?'라는 글을 보면 왜 그것이 첫 번째 기준이 되었을까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대체로 사람을 판단할 때 학벌, 지역, 성별. 신체조건 등을 첫 번째 기준으로 내세우는 경우가 있다. 과연 그래야 할까? 다양한 기준을 함께 적용할 수는 없을까? 


이런 기준은 사람들 생각과 행동을 규정짓기도 한다. '당신은 말을 못하는 게 아니라 특정 상황에서 얼어붙는 거예요'라는 글에서 이 점을 알게 된다.


중년 남성 앞에서 말을 잘 못하던 사람. 왜? 자라오면서 겪은 일들이 자신의 마음 속에 남아 있었기 때문. 그것을 인식한 순간부터 서서히 중년 남성 앞에서도 말을 잘할 수 있게 된다. 자신의 기준을 바꾸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재활용, 재사용에 관한 일들도 마찬가지다. '당신 곁의 재사용'이라는 글을 보면 우리가 삶의 기준을 바꾸었을 때 얼마나 많은 일들을 할 수 있는지를 알게 해준다. '나를 이루는 것의 팔 할이 전기다'도 마찬가지다.


별다른 생각없이 쓰는 전기에 대해서 기준을 한번 바꾸어 보는 삶. 그런 삶을 상상하고 실천한다면 어떨까?


[빅이슈]에 대한 생각도 그렇다. 노숙인들 이야기, 또는 집에 관한 아니면 젊은이들 취향의 글들이 실릴 것이라고만 생각하면 이 역시 분류의 함정에 빠져 있는 셈이다. [빅이슈]는 이런 잡지야 하고 규정짓고, 그 규정 안에서 [빅이슈]를 만나려고만 하게 된다.


이번 호에서는 그런 기준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기준을 통한 분류가 모으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나누고 배제하는 역할도 하고 있음을. 그래서 때로는 기준에 대해서 생각하고, 기준을 바꾸는 삶도 살아야 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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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2-08-07 18: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kinye님 덕분에 빅이슈 들어가봤는데 ˝당신곁의 재사용˝ 페이지 컬러감 넘 좋네요^^
일부러 구매해 읽거나 찾아보진 않겠지만 혹시 이 잡지 접하게 되면, kinye님 언급하신 꼭지는 꼼꼼하게 읽게 될 것 같습니다

kinye91 2022-08-07 19:24   좋아요 0 | URL
이 잡지 읽는 것 즐거워요. 직접 찾아서 읽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꼭 읽기 바랄게요.
 
21세기 자본 (양장)
토마 피케티 지음, 장경덕 외 옮김, 이강국 감수 / 글항아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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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대한 양이다. 두꺼운 책. 손이 선뜻 가지 않는다. 하루에 300쪽씩을 읽어도 (사실 하루에 300쪽씩 읽기에는 벅차다) 이틀하고도 하루가 더 걸린다. 총 700쪽이다. 감사의 말까지 하면. 그러니 많은 사람들이 인용했고, 또 다루고 있는 책이라도 읽기에는 쉽지가 않다. 그것도 경제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더더구나. 나같은 사람 말이다. 


경제쪽하고는 담을 쌓고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경제쪽과 담을 쌓고 살았다는 말은 경제학이라는 학문을 공부하지 않았다는 말과도 통하는데, 특히 숫자가 많이 나오는 거의 수학 수준의 경제학 책은 멀리하고 살았다.) 그럼에도 경제는 우리 삶에서 꼭 필요하다. 내가 살아가는 일들이 모두 경제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이 책도 그러하리라 생각했다. 얼핏 책장을 넘기면 수많은 도표가 나오니 말이다. 그런데 그 도표들이 비슷한 모습을 띠고 있다. 어라? 거의 백 년에 걸친 자료들을 분석한 이 책에서 비슷한 형태의 도표들이라니. 읽어보자는 마음이 인다. 비슷한 패턴을 보이는 도표들을 보며, 숫자보다는 좀 쉽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 도표들은 세계 경제가 비슷한 경로를 밟아왔다는 뜻이니 우리나라에도 적용이 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고, 한때 왜 사람들이 피케티, 피케티 했는지 알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기에 읽기 시작. 여기에 피케티 자신도 '이 책은 경제학 못지 않게 역사에 관한 책이다'(47쪽. 서장)라고 말하고 있으니, 세계 경제의 역사를 한번 살펴본다는 마음으로 펼쳤다.


이 책을 보면 개별 국가들이 다 다들게 발전해 왔고, 자본소득과 노동소득이 다 다르다고 생각하겠지만, 이 책에 나온 표를 보면 액수에서는 차이가 날지라도 변해온 추이는 거의 비슷하다. 그렇다면 공통점이 있다는 뜻인데, 피케티 주장은 세계는 불평등한 쪽으로 발전해 왔다고 요약할 수 있다.


그런가? 많은 자료들을 도표로 보여주고 있는데 이 도표들이 이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세계는 평등을 향해 왔다고 생각했고, 유례없는 평등의 시기가 요즘 아닌가 했는데, 아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 피케티는 이를 몇 가지 등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 중 불평등을 유발하는 등식은 자본 수익률(r)이 경제 성장률(g) 크다는 등식이다.(r>g) 이런 등식은 거의 깨지지 않았다고 한다. 즉 지금까지 100년이 넘는 역사에서 이 등식은 지속되어 왔으니, 양극화가 일어나고 점점 심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한다.


많은 경제학 용어들을 댈 필요가 없다. 자본이 수익을 얻는 비율이 경제가 성장하는 비율보다 높으면 자연스레 자본은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 즉 부익부 현상이 지속된다. 부익부가 되면 자연스레 상대적으로 빈익빈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불평등이 심화된다. 그렇다면 문제는 불평등을 줄이는 방향으로 경제가 나아가야 한다. 피케티 주장도 이것이다. 불평등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많은 방법이 있겠지만, 피케티 방법은 두 방향에서 나온다. 하나는 정치, 즉 국가의 사회화다. 사회적 국가라고 하는데, 경제를 시장에 맡겨두는 방식으로는 불평등이 해소될 수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이미 앞선 등식에 답이 나와 있기 때문이다. 이 등식에서 평등을 지향하려면 자본소득자의 선의에 기댈 수밖에 없는데, 선의에 기대는 방식으로는 불평등을 해소할 수 없다.


개인의 선의가 아니라 제도로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국가가 되어야 한다. 즉 법과 정치가 함께 해야 한다. 경제학이 정치경제학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 피케티 역시 이 말을 좋아한다고 한다.  그는 결말 부분에서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경제학을 위해'(692쪽)라고 하고 있으며, 직접적으로 '나는 정치경제학이라는 표현을 좋아한다'(592쪽)고 하고 있다.


왜냐하면 경제를 법과 정치에서 분리하려는 강단 경제학자들이 많은데, 그런 식의 경제학으로는 불평등을 해소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경제학자들도 사회학자들처럼 치열한 논쟁의 장에 참여해야 한다고 한다.


이런 논쟁의 일환으로 그가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제시하고 있는 사회적 국가론. 이는 민영화로 나아가는 현대의 흐름과는 배치된다. 민영화는 공공부분을 사유화하는 것으로, 이는 자본 소득을 더 늘리는 쪽으로 가게 될 뿐, 결코 공공의 부를 평등한 쪽으로 나누지는 못한다고 주장한다.


교육, 의료 분야 등 사회에서 꼭 필요한 부분을 국가가 관장하는 사회적 국가. 사회적 불평들을 줄일 수 있는 기본적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사회적 국가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재정이 확보되어야 한다. 국가의 재정이 무엇으로 확보되는가? 세금이다. 그렇다면 세금을 어떻게 걷어야 하는가? 누진세율이 이야기되는 이유가 이것이다. 누진세는 국가의 재정 확보뿐만이 아니라 사회적 불평등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세금을 더 줄이겠다고 하는 지금 새겨보아야 할 주장이다.


다른 한 방법은 경제학적인 방법이다. 세금을 걷는 일. 누구에게? 자본소득을 얻는 사람들에게. 그래서 그는 자본소득세를 도입하자고 한다. 그것도 한 국가 내에서가 아니라 전 세계를 통합하여.


그래야 명확한 소득이 밝혀지고, 그에 따라 소득세를 걷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본 소득세를 누진적 방법으로 걷는다면, 그것도 일회성이 아니라 해마다 걷는다면 소득 불평들이 더 심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한다.


가장 단순한 방법이지만 그만큼 가장 어려운 방법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조세 저항에 부딪히기 때문이다. 세계가 통합해서 재산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는다면 세금을 회피하기 위해서 다른 곳으로 재산을 은닉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런 경우에는 누진 자본소득세로 사회적 불평등을 줄이려는 노력이 효과가 없어진다.


하여 참 단순한 방법인데도 실현하기가 힘들다. 한 국가 내에서뿐만 아니라 세계가 여기에 동의해야 하기 때문이다.그렇기 때문에 피케티는 경제학만으로는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가 이 방대한 책을 통해 주장하는 일은 바로 사회학, 정치학 등과 결합한 경제학이다. 전세계 사람들이 이런 방법에 대해서 토론을 하자고 한다. 좀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학자들만이 아니라 시민들이 토론을 하고 방법을 강구하자고 주장한다.


피케티가 이 방대한 책을 쓴 이유는 그런 토론에 기초적인 자료를 제공해주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적어도 사실에 기반한 토론을 해야 하니 말이다. 지난 100년 동안 지구에서 자본주의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 왔는지를 그는 통계 자료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고, 이 통계자료에 의하면 세계는 불평등이 해소되는 방향이 아니라 심화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하니...


이렇듯 그의 책은 경제학 책이라고 하기보다는 정치경제학 책이라고 해야 한다. 사회를 좀더 평등한 쪽으로 만들어가기 위한 노력을 하자고 주장하는 책. 그가 제시한 방법에 대해서 과연 얼마나 토론이 되고 있는지... 그의 제안이 진행 중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는 건, 너무 비관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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