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1세기 자본 (양장)
토마 피케티 지음, 장경덕 외 옮김, 이강국 감수 / 글항아리 / 2014년 9월
평점 :
방대한 양이다. 두꺼운 책. 손이 선뜻 가지 않는다. 하루에 300쪽씩을 읽어도 (사실 하루에 300쪽씩 읽기에는 벅차다) 이틀하고도 하루가 더 걸린다. 총 700쪽이다. 감사의 말까지 하면. 그러니 많은 사람들이 인용했고, 또 다루고 있는 책이라도 읽기에는 쉽지가 않다. 그것도 경제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더더구나. 나같은 사람 말이다.
경제쪽하고는 담을 쌓고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경제쪽과 담을 쌓고 살았다는 말은 경제학이라는 학문을 공부하지 않았다는 말과도 통하는데, 특히 숫자가 많이 나오는 거의 수학 수준의 경제학 책은 멀리하고 살았다.) 그럼에도 경제는 우리 삶에서 꼭 필요하다. 내가 살아가는 일들이 모두 경제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이 책도 그러하리라 생각했다. 얼핏 책장을 넘기면 수많은 도표가 나오니 말이다. 그런데 그 도표들이 비슷한 모습을 띠고 있다. 어라? 거의 백 년에 걸친 자료들을 분석한 이 책에서 비슷한 형태의 도표들이라니. 읽어보자는 마음이 인다. 비슷한 패턴을 보이는 도표들을 보며, 숫자보다는 좀 쉽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 도표들은 세계 경제가 비슷한 경로를 밟아왔다는 뜻이니 우리나라에도 적용이 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고, 한때 왜 사람들이 피케티, 피케티 했는지 알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기에 읽기 시작. 여기에 피케티 자신도 '이 책은 경제학 못지 않게 역사에 관한 책이다'(47쪽. 서장)라고 말하고 있으니, 세계 경제의 역사를 한번 살펴본다는 마음으로 펼쳤다.
이 책을 보면 개별 국가들이 다 다들게 발전해 왔고, 자본소득과 노동소득이 다 다르다고 생각하겠지만, 이 책에 나온 표를 보면 액수에서는 차이가 날지라도 변해온 추이는 거의 비슷하다. 그렇다면 공통점이 있다는 뜻인데, 피케티 주장은 세계는 불평등한 쪽으로 발전해 왔다고 요약할 수 있다.
그런가? 많은 자료들을 도표로 보여주고 있는데 이 도표들이 이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세계는 평등을 향해 왔다고 생각했고, 유례없는 평등의 시기가 요즘 아닌가 했는데, 아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 피케티는 이를 몇 가지 등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 중 불평등을 유발하는 등식은 자본 수익률(r)이 경제 성장률(g) 크다는 등식이다.(r>g) 이런 등식은 거의 깨지지 않았다고 한다. 즉 지금까지 100년이 넘는 역사에서 이 등식은 지속되어 왔으니, 양극화가 일어나고 점점 심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한다.
많은 경제학 용어들을 댈 필요가 없다. 자본이 수익을 얻는 비율이 경제가 성장하는 비율보다 높으면 자연스레 자본은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 즉 부익부 현상이 지속된다. 부익부가 되면 자연스레 상대적으로 빈익빈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불평등이 심화된다. 그렇다면 문제는 불평등을 줄이는 방향으로 경제가 나아가야 한다. 피케티 주장도 이것이다. 불평등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많은 방법이 있겠지만, 피케티 방법은 두 방향에서 나온다. 하나는 정치, 즉 국가의 사회화다. 사회적 국가라고 하는데, 경제를 시장에 맡겨두는 방식으로는 불평등이 해소될 수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이미 앞선 등식에 답이 나와 있기 때문이다. 이 등식에서 평등을 지향하려면 자본소득자의 선의에 기댈 수밖에 없는데, 선의에 기대는 방식으로는 불평등을 해소할 수 없다.
개인의 선의가 아니라 제도로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국가가 되어야 한다. 즉 법과 정치가 함께 해야 한다. 경제학이 정치경제학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 피케티 역시 이 말을 좋아한다고 한다. 그는 결말 부분에서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경제학을 위해'(692쪽)라고 하고 있으며, 직접적으로 '나는 정치경제학이라는 표현을 좋아한다'(592쪽)고 하고 있다.
왜냐하면 경제를 법과 정치에서 분리하려는 강단 경제학자들이 많은데, 그런 식의 경제학으로는 불평등을 해소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경제학자들도 사회학자들처럼 치열한 논쟁의 장에 참여해야 한다고 한다.
이런 논쟁의 일환으로 그가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제시하고 있는 사회적 국가론. 이는 민영화로 나아가는 현대의 흐름과는 배치된다. 민영화는 공공부분을 사유화하는 것으로, 이는 자본 소득을 더 늘리는 쪽으로 가게 될 뿐, 결코 공공의 부를 평등한 쪽으로 나누지는 못한다고 주장한다.
교육, 의료 분야 등 사회에서 꼭 필요한 부분을 국가가 관장하는 사회적 국가. 사회적 불평들을 줄일 수 있는 기본적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사회적 국가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재정이 확보되어야 한다. 국가의 재정이 무엇으로 확보되는가? 세금이다. 그렇다면 세금을 어떻게 걷어야 하는가? 누진세율이 이야기되는 이유가 이것이다. 누진세는 국가의 재정 확보뿐만이 아니라 사회적 불평등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세금을 더 줄이겠다고 하는 지금 새겨보아야 할 주장이다.
다른 한 방법은 경제학적인 방법이다. 세금을 걷는 일. 누구에게? 자본소득을 얻는 사람들에게. 그래서 그는 자본소득세를 도입하자고 한다. 그것도 한 국가 내에서가 아니라 전 세계를 통합하여.
그래야 명확한 소득이 밝혀지고, 그에 따라 소득세를 걷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본 소득세를 누진적 방법으로 걷는다면, 그것도 일회성이 아니라 해마다 걷는다면 소득 불평들이 더 심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한다.
가장 단순한 방법이지만 그만큼 가장 어려운 방법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조세 저항에 부딪히기 때문이다. 세계가 통합해서 재산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는다면 세금을 회피하기 위해서 다른 곳으로 재산을 은닉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런 경우에는 누진 자본소득세로 사회적 불평등을 줄이려는 노력이 효과가 없어진다.
하여 참 단순한 방법인데도 실현하기가 힘들다. 한 국가 내에서뿐만 아니라 세계가 여기에 동의해야 하기 때문이다.그렇기 때문에 피케티는 경제학만으로는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가 이 방대한 책을 통해 주장하는 일은 바로 사회학, 정치학 등과 결합한 경제학이다. 전세계 사람들이 이런 방법에 대해서 토론을 하자고 한다. 좀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학자들만이 아니라 시민들이 토론을 하고 방법을 강구하자고 주장한다.
피케티가 이 방대한 책을 쓴 이유는 그런 토론에 기초적인 자료를 제공해주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적어도 사실에 기반한 토론을 해야 하니 말이다. 지난 100년 동안 지구에서 자본주의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 왔는지를 그는 통계 자료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고, 이 통계자료에 의하면 세계는 불평등이 해소되는 방향이 아니라 심화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하니...
이렇듯 그의 책은 경제학 책이라고 하기보다는 정치경제학 책이라고 해야 한다. 사회를 좀더 평등한 쪽으로 만들어가기 위한 노력을 하자고 주장하는 책. 그가 제시한 방법에 대해서 과연 얼마나 토론이 되고 있는지... 그의 제안이 진행 중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는 건, 너무 비관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