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적인 이미지들이 떠오른다. 그 이미지들이 하나로 합쳐져야 하는데, 합쳐지지 않는다. 시를 읽으면서 막연한 이미지를 떠올리고, 그런 이미지들이 어렴풋하게 계속 무엇으로 합쳐지려 하고 있다. 합쳐진 이미지가 시인이 의도한 이미지가 아닐지 몰라도...


  퀼트가 그런 것 아니겠는가. 조각조각들을 모아 다른 형태를 만들어내는 것. 


  하나의 형태 속에 다른 형태들이 있는데, 그 형태들은 독립해 있으면서도 전체의 구성으로 존재하는 것. 모자이크와 비슷하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이 시집에는 서랍이 참 많이도 나온다. 그래서 제목이 된 시에 나온 시어 '퀼트'와 '서랍'이 어떻게 연결이 되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서랍 역시 독립된 부분이다. 그러나 퀼트의 조각이 그렇듯이 서랍 역시 홀로는 완전한 존재가 되지 못한다. 때로는 다른 서랍들과 함께 더 큰 존재 속에 있어야 한다. 그때서야 서랍은 서랍으로서 기능을 하게 된다.


퀼트가 여러 조각들의 모임이듯이, 서랍은 더 큰 존재의 일부로 존재할 때 제 기능을 하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도 잃고 내용물도 잃는다.


이렇게 생각하니, 우리 인생이 바로 퀼트와 서랍 아닐까 한다. 삶의 단편들이라는 말을 많이 하지 않던가. 삶의 단편들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삶이라는 전체 속에서 조망했을 때 우리 삶을 이루는 부분이 된다. 그러니 단편들이라고 하지.


이런 단편들이 모여 우리 삶을 이룬다. 마찬가지로 우리들 삶에는 수많은 서랍들이 있다. 그 서랍에 채워놓은 것이 무엇이든, 많은 서랍들을 지니고 살고, 때로는 그 서랍들을 열어 밖으로 내보일 때도 있다.


하지만 모든 서랍을 꺼내놓지는 않는다. 그러면 존재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 시집에서 '퀼트와 서랍'을 통해 삶의 조각조각들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그런 삶들이 나라는 삶을 구성하고 있고, 이것들을 결코 없앨 수 없다는 것도. 시인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늘 말하지만 오독도 독해니까...


한밤의 퀼트(43쪽), 서랍들(69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를 즐기는 법 딱지책 3
박일환 지음 / 단비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설은 어렵게 여기거나 쉽게 여기는 사람으로 잘 나뉘지 않고 그냥 읽는 사람이 많은데, 시는 어떤 사람들은 즐기고, 어떤 사람들은 어려워 한다. 그래서 시를 즐기는 사람보다는 시에 거리를 두는 사람이 더 많다. 우리 도처에 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디 유명한 곳에 가 보라. 그곳에는 시가 적혀 있는 곳이 최소한 한 군데 정도는 있다. 유명한 시인의 시비가 있기도 하고, 지역 특색을 드러내는 시가 적혀 있는 비석들이 있기도 하고, 또 시를 적어놓은 팻말들을 전시해 놓기도 한다. 이렇듯 우리는 주변에서 시를 자주, 많이 만나게 된다.


서울같은 경우는(다른 대도시의 전철을 타본 경험이 별로 없어서) 지하철 역, 스크린도어에 시가 적혀 있는 곳이 많다. 유명 시인의 시도 있고, 시민이 쓴 시도 있다. 지하철을 기다리면서 시를 읽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이토록 시는 내 생활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럼에도 시를 어려워하는 사람이 많다. 학교에서 시험용으로 시를 배워서 그런가, 시에서 꼭 정답을 찾아내려고 하고, 정답을 찾기 힘드니 시가 어렵고, 어려우니 자연스레 멀리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시에 정답이 있을까?


모든 문학에, 예술에 정답이 있을까? 아니다. 작품은 작가가 이렇게 썼다(만들었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작가가 미처 깨닫지 못한 점들이 작품에 드러날 수도 있다. 사람은 무의식이라는 것이 있으니까.


또 작가의 의도와는 달리 읽는 사람에 의해서 다르게 해석되고 이해되는 경우도 있다. 자신의 마음에 쏙 들어오게 이해하고 공감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바로 이런 점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시에 조금이라도 가깝게 다가가게 하려는 마음이 잘 드러나 있는데... 시에 대한 여러 측면들을 살펴보면서 시가 우리 생활에 도움이 되고 있음을 잘 설명하고 있다.


작가는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모든 것이 모든 사람에게 꼭 필요한 것이 아니듯, 시 또한 그런 셈이긴 하지만 없어도 그만인 게 아니라 있으면 좋은 거라는 정도는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 시가 사라지면 세상이 지금보다 더 어두워질 것 같기는 합니다.' (21쪽)라고 하면서 시를 읽어야 하는 이유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면서 어떤 시를 읽어야 할까 하면서 자신의 마음에 드는 시를 우선 읽기를 권한다. 시에 대해서 잘 모른다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우선 알고 있는 시인의 작품부터 읽든지, 교과서에 실린 시인의 다른 시를 찾아 읽든지, 시를 모아놓은 시집을 읽으면서 마음에 드는 시 또는 시인을 찾아 더 읽든지 등등, 다양하게 하지만 여러 작품을 읽을 것을 권하고 있다. 읽다보면 마음에 드는 시를 발견하게 되고, 시를 더 깊고 넓게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시에서 질문을 찾아내고, 은유의 힘을 느껴보며, 시인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면 시를 깊고 넓게 읽으면서 '나쁜 시'를 멀리하게 될 수 있다고 한다. '나쁜 시'에 대한 규정이 좀 모호한데, 우리 삶을 왜곡된 방향으로 이끄는 내용의 시는 나쁜 '시'라고 할 수 있고, 자신의 입맛에 맞게만 해석하고 이해하려는 태도는 '나쁜' 시 읽기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만 조심하면서 자신의 마음에 드는 시를 읽고, 더 다양한 시를 읽는 태도를 지닌다면 그때는 홀로 읽기도 좋지만 여러 사람이 함께 읽는 것도 좋다고 한다. 그렇게 하면 내 생각에 다른 사람의 생각을 덧붙일 수도 있고, 나와 다른 해석이나 이해를 알게 되어, 시의 다양성을 경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저자는 시를 즐길 수 있는 여러 방법들을 쉽게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시대가 각박할수록 시를 읽는 사람이 줄어들 수는 있지만, 시대가 각박할수록 시를 읽는 사람이 늘어날 수도 있다. 시를 통해서 위로를 받고, 삶에 대해서 생각해 보며,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마음 속에 시 한편 품고 사는 것도 즐거운 삶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도록 해주는 책이다. 시를 어렵게만 여겼던 사람, 시가 무슨 필요야 하는 사람, 한 번 읽어보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속의 늙은 아이들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 민음사 / 202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녀들], [증언들] 얼마나 살벌한가? '미친 아담 시리즈' 역시 살벌하다. 새로운 역사, 그러나 우리가 겪는 현실을 다른 세계에 구현한 듯한 그런 소설 세계 속에서 전율을 느끼곤 했다. 대단한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


그런 애트우드가 최근에 펴낸 작품집이다. 소설집이라고 해야 하는데, 연결이 되는 작품도 있지만 연결이 안 되는 작품도 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작품들은 노년에 이른 사람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삶의 우여곡절을 겪고 이제는 죽음을 앞두고 있는 사람, 곁에 있던 사람이 세상을 떠난 뒤 남겨진 사람. 그런 사람의 감정이 잔잔하고 애잔하게 펼쳐지고 있다.


제목이 그 점을 암시해주고 있다. [숲속의 늙은 아이들]이라니.. '늙은'이라는 말과 '아이들'이라는 상반되는 낱말이 하나로 묶여 있다.


 이청준이 쓴 동화 '할미꽃은 봄을 세는 술래란다'를 연상시키고 있는데... 점점 나이 먹어가면서 어린이가 되어 가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는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 그런 할머니를 이해해 가는 과정이 그려진 동화.


  이 소설집은 그렇다. 바로 그렇게 이청준 동화에서 나온 할머니처럼 이미 세상에서 물러난 노인들이 나온다. 그것도 주로 여성 노인들이다. 어떤 노인들은 여전히 여성들이 차별받는 세상에 분노해, 여성들에게 걸맞는 직위를 주고자 노력하기도 하고 (비행 -심포지엄), 죽은 조지 오웰과 인터뷰하는 내용도 있으며(망자 인터뷰), 자신의 어머니를 소재로 한 듯한 (물론 소설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애트우드의 어머니가 정말로 이랬다고 하면 곤란하다) 소설(나의 사악한 어머니) 작품도 있다. 이 작품에서 사악한 마녀처럼 묘사한 어머니를 통해 나중에 어른이 된 인물이 사춘기의 딸에게 자신의 어머니를 이용하는 장면은 웃음을 머금게 한다.


함께 늙어가는 친구, 엉뚱한 상상으로 자신을 곤경에 빠뜨리지만 그 친구와 헤어질 수 없는, 그런 세월을 살아온 인생을 이야기하는 소설(역겨운 이)을 보면서 함께 늙어 온 친구란 이런 관계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물론 여성을 중심으로, 여성이라서 당하는 핍박에 대한 소설도 있고,(조개껍데기사(死)) 여성을 핍박하는 남성에 대해 복수를 하는 여성의 이야기도 있다. (참을성 없는 그리젤다)   


하지만 이 소설집의 앞과 뒤로 넬과 티그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장면들이 참 잔잔하다. 그리고 애잔하다. 마음을 찡하고 울린다.


특히 소설집의 뒷부분에 티그가 떠나고 난 뒤에 홀로 남겨진 넬의 이야기. 어디를 봐도 티그의 잔영이 남아 있는, 집 안 곳곳에서 티그가 남긴 것을 찾으면서 자신의 삶들을 돌아보는 그런 넬의 모습은 삶의 황혼기에 접어든 사람의 모습을 한 편의 사진처럼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서 죽은 티그의 말을 통해서 그들의 인생이 행복했음을 보여준다. 


'고마워요. 우리는 장거리 달리기를 잘해 왔어요. 당신은 괜찮을 거예요.'('나무 상자'에서. 412쪽)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이 소설집의 소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지 않아도 좋다. 다만, 1부 티그와 넬과 3부 넬과 티그는 꼭 읽어야 한다. 서로 연결이 되는 소설이기도 하고, 넬과 티그가 함께 살던 시기가 1부라면, 티그가 떠나고 남겨진 넬의 이야기가 3부니까. 


넬과 티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렇게 함께하는 부부의 모습이 얼마나 좋은가를 느낄 수 있었다. 서로의 단점을 지적하기보다는 감싸주면서 자신이 잘하는 부분에 집중하는 그런 관계. 그러면서도 상대를 위하는 마음이 절절하게 드러나는, 약해져 가는 상대의 모습을 보면서 안쓰러움과 동시에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최선을 다해 서로를 사랑하는 그런 모습을 소설에서 느낄 수 있다.


함께 살았던 시절의 행복과 그 행복을 반추하는 넬의 모습이 마음 속으로 들어와 박힌다. 넬의 그 모습 속에서 잔잔하면서도 애잔한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시녀 이야기, 증언들]에서 느낄 수 없었던 잔잔함. 사랑이 표내지 않고 흘러나오는 그런 소설들이다.


늙음으로 어린이가 되어가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는 넬과 주변 사람들의 모습이 이 소설을 읽으면서 계속 마음을 따스하게 해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름다운 애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8
오에 겐자부로 지음, 박유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설에는 작가가 직접 등장한다. 그렇다고 오에 겐자부로의 자전적인 이야기로 읽어서는 안 된다. 소설이니까. 그 점을 명심하고 읽으면 소설가를 등장시켜 작품을 전개해 나가는 이유가 무엇일까를 생각해야 한다.


소설가가 직접 등장해서 소설을 이끌어가고 있다는 것은 예술을 통해서 무엇인가를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작품에서는 소설과 시와 음악, 그리고 영화, 연극이 나온다. 사진까지 치면 다양한 예술이 나오는데, 그런 예술들이 융합되어 일본 현대사와 한 개인의 아픔이 융합되고 있다.


일본은 패전국이다. 지금은 패전국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지만, 그들도 패전이 된 다음에는 미군에 점령당한 경험이 있다. 점령군으로서의 미군. 하지만 일본인들은 점령군인 미군에게 어떤 반항도 하지 않는다. 


이런 미군에게 보호를 받고 성장한 한 여배우가 있다. 이 여배우를 중심으로 소설가인 클라이스트 탄생 200주년을 맞이하여 '미하엘 콜하스 계획'을 여러 나라에서 동시에 하기로 한다. 즉 그의 작품인 '미하엘 콜하스'를 각 나라에 맞게 각색하여 상영하겠다는 것.


본래 한국에서 하기로 했는데, 김지하의 투옥과 더불어 한국에서는 할 수가 없게 되고, 이를 일본에서 하기로 했다는 것. 김지하 석방 운동에 관여했던, 또 여러 작품을 발표했던 오에 겐자부로에게 시나리오를 맡기고 싶다는 것. 여배우로 출연하는 이미 오에 겐자부로도 알고 있던 '사쿠라' 씨와 만나고 오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이 '사쿠라' 씨는 오에가 좋아했던 에드가 알렌 포의 '애너벨 리'라는 시를 인용한 영화에 출연한 적이 있던 것. 거기서 하얀 옷을 입고 있던 소녀. 그리고 그 영화를 어린 시절에 봤던 오에. 하지만 무언가 고통에 시달리는 사쿠라.


내막은 나중에 밝혀진다. 영화 촬영 도중에 여학생들의 사진을 몰래 찍던 서양 작가의 활동이 밝혀지고, 영화가 무산될 때 사쿠라가 처음 나왔던 영화의 다른 버전을 보게 된 것. 거기서는 사쿠라를 보호해줬던 사람의 행위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것이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하지만 공개되지 않았던 것은 어린 소녀의 몸을 유린하는 장면이 있기 때문이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쿠라 씨는 그렇게 유린 당했던 것.


한국은 이렇게 일본에 유린당했던 과거가 명확하게 드러났지만, 일본은 미국에 당한 것들이 이 영화의 다른 버전처럼 아름답게 미화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작가의 생각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는 장면인데... 진실은 소녀를 유린하는 미군처럼, 일본 역시 미국에 알게모르게 당하고 있었다는 점을 깨닫고, 그것을 극복해야 한다고 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 장면이다.


그럼에도 거기서 멈추면 안 된다. 더 나아가야 한다. 30년이 지난 뒤, 그들은 다시 영화를 만들기로 한다. 이번에는 내용이 바뀐. 민간 전승에서 이어지던 내용을 계승해서.


일본에서 일어났던 민중반란, 그리고 그들을 이끌었던 여성, 메이스케 어머니에 대해, 사쿠라 씨가 충격을 받았던 애너벨 리의 영화 끝부분에 나오는 음악을 차용해서 하기로.


결국 작품 속의 작품에서도 여성은 유린을 당한다. 그러나 거기서 머물지 않는다. 더 한발 나아간다. 너희가 우리를 유린했지만 우린 꺾이지 않는다고... 우린 더 나아갈 거라고. 그런 다짐을 보여주는 넋두리로 영화를 찍기로...


결국 소설은 시와 소설, 영화와 음악을 통해 한 개인이 치유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지만, '미하엘 콜하스'라는 클라이스트의 작품을 통해서 반항하지 못하고 있던 일본의 당시 모습을 드러내주기도 한다.    


'미하엘 콜하스'는 남의 나라 일인 것처럼 여기는 일본 사회. 하지만 일본 사회에서도 이러한 '미하엘 콜하스' 늘 있어 왔음을... 그것을 메이스케 사건을 통해 드러내고 있으며, 이런 저항의 중심에 여성이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즉 여성은 부차적인 존재가 아니라 사회와 자신을 변화시키는데 끝까지 굴복하지 않고 살아가서, 결국 역사의 주역이 되고 있음을, 사쿠라와 메이스케 어머니의 존재를 통해서 작가가 말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번 호를 읽으면서 모두들 열심히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 사는 사람들. 자신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한다는 말에는 가치가 포함되어 있다.


  즉, 최선을 다한다는 삶은 내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존재와의 관계 속에서 서로를 위하는 방향으로 최선을 다한다는 말이다.


  다른 존재를 위해서 나를 갉아먹어서도 안 되고, 나를 위해서 다른 존재를 이용해서도 안 된다. 사람을 비롯해 모든 존재는 자신에게 목적이 되어야 하지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고등학교 때 배웠던 칸트의 말을 변주하면)


이런 당연한 사실을 [빅이슈]를 읽다보면 새삼 깨우치게 된다. 정말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많구나. 이런 사람들 덕에 이 험난한 사회에서도 희망이 있구나!


SNS가 유행하는 요즘, SNS를 하지 않으면 원시인 취급받는 요즘, 다시 책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고 있다.


SNS로 충족되지 않는 무엇을 책이 채워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호에 실린 오후의 시각 'SNS는 마약? 세계에 퍼지는 SNS 금지법'이라는 글이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많은 나라에서 SNS로 인해 일어나는 부작용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좀 살벌한 법률도 있다. 하지만 그것을 법률로 규제한다고 해결이 될까? 아마도 안 될 것이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하지 말아라."라고 금지하기보다는 할 수 있는 것, 해야 할 것들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줘야 한다. 


SNS를 금지한다고 하지 않을까? 청소년기에는 오히려 금지를 하면 더 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지 않을까? 더욱 음성화된 SNS활동을 어떻게 하려고?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오후는 시원시원한 결단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한다. 가령 종교적인 분쟁이 일어났다고, 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아예 배제하자고 하면 참 간단한 해결책이긴 하지만, 결코 해결될 수 없는, 문제의 본질은 건드리지 않는 방법일 뿐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토론을 통해서 다양한 의견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스스로 정리해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다. 그가 말한 것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민주주의란 원래 끝없는 토론과 불협화음, 무엇보다 불만족스러운 결과로 완성되는 것이니까'(27쪽)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열심히 살아야 한다. SNS가 아니더라도 열심히 사는 모습,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하지 마라"가 아니라 "이렇게 해도 좋겠네"가 될 수 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렇게 하면 좋겠네, 이렇게 해도 되겠네. 이렇게 한번 해봐야지"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순간의 혼란을 견디지 못하면 민주주의를 이룰 수 없다. 마찬가지다. 순간의 혼란을 견디지 못하고 늘 정리되어야 하고, 간단 명료한 해결책을 추구하는 것이 열심히 산다는 것과 통하지 않을 수 있다.


'열심히'라는 말에는 다양성이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호에 실린 정말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마음에 와 닿는다. 그들의 열심이, 나도 열심히 살아가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하고 있으니까.


더운 여름, 더 두터워진 [빅이슈]를 읽으면서 더위를 잠시 잊을 수 있어서 좋다. 이제 다음 호는 선선한 때에 만나게 되겠지. 그만큼 우리 사회도 선선해졌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