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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겟돈을 회상하며
커트 보니것 지음, 이원열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9월
평점 :
전쟁이 일으키는 비극을 이성적인 동물이라고 하는 인간이 모를 수가 없는데도, 세상에서 전쟁이 끊이지 않는다.
자신들은 이런 비극 속으로 들어가지 않을 거라는 착각을 하는 건지. 악마에 씌웠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전쟁을 일으키는 자들은 자신들이 직접 전쟁을 겪지 않는다. 그들은 화면 속에서 겪을 뿐이다.
이들의 명령에 수많은 사람들이 전쟁 속으로 들어간다. 눈 앞에서 그들은 전쟁을 겪는다. 이 전쟁 속에는 참여하는 사람만 있지 않다. 전쟁과 관련 없이 살아온 사람들도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어간다.
빠져들면 빠져나오기 힘들다. 이게 전쟁이다. 사람을 사람이 아니게 하는 일. 그런 전쟁을 막기 위해 여러 단체들을 만들고 국제연합도 만들었지만, 전쟁은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 그것도 세계 도처에서. 또 전쟁이 일어날 위험이 있는 곳도 여럿 있고.
언제까지 인류는 자신들을 구렁텅이로 빠뜨리는 전쟁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우주의 긴 역사에서 인류가 지구에 등장한 것은 얼마 되지 않는 시간이라고 하는데, 그 얼마 되지 않은 시간 중에서도 전쟁이 없는 기간이 얼마나 될까?
참... 힘들다. 커트 보니것이 [제5도살장]을 비롯해 많은 소설을 썼지만, 그가 소설을 통해 전쟁의 참담함을 통렬하게 비판하기도 했지만, 세상은 그리 바뀌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가 절망할까?
그의 아들이 펴낸 이 책의 서문에 이런 말이 있다.
'내 아버지에게 글 쓰는 일은 신앙과 다름없는 행위였고, 당신이 유일하게 진정으로 믿는 일이었다. 아버지는 세상을 바로잡고 싶어했지만 당신의 글이 세상일에 큰 영향을 미치리라 믿은 적은 결코 없었다.' (7쪽)
그럼에도 그는 글을 썼다. 연설도 했다. 왜냐? 가능성을 포기하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글을 통해서 그는 가능성을 유지하고자 했다. 인간이 마지막까지 쥐고 있어야 할 것이 희망이라고 하는데, 이 희망이 바로 가능성이다. 될 수 있다는 것...
'글을 읽고 쓴다는 것 자체가 체제 전복적 행동이다. 읽고 씀으로써 전복할 수 있는 것은 '생각'이다. 세상이 지금 이대로여야 한다는, 당신이 혼자라는, 당신과 같은 것을 느껴본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그런 생각 말이다. ... 고작 책 한 권 읽었을 뿐인데 세상이 조금 다른 곳이 된다. 그런 일을 상상해보라.'(13-14쪽)
이것이 바로 그가 글을 쓰고, 우리가 글을 읽는 이유가 되기도 하겠다. 그렇게 조금 더 다른 나를 발견하고, 이 조금 더 다른 '나'가 '우리'가 되면 사회 역시 조금은 변할 테니까.
하여 커트 보니것의 이 소설집을 읽는 것은 우리가 전쟁에 대해 지니고 있던 생각들을 바꾸거나 또는 더욱 확신하게 할 수 있다. 전쟁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모든 거리에서 슬프도다 슬프도다 하겠다'는 소설을 보면 첫부분부터 전쟁이 지닌 비인간적인 모습이 나온다. 그런 사람으로 살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적어도 사람으로서 지녀야 할 품성을 지니고 싶어할 테니까.
'우리의 일은 제군들을 세계 역사상 가장 치사하고 비열한 싸움꾼으로 만드는 것이다. ... 어떤 방법이든 써서 죽여라. 죽여. 죽여. 죽여라. 알아듣겠나?' ('모든 거리에서 슬프도다 슬프도다 하겠다' 중에서. 53-54쪽)
이것이 전쟁이다. 전쟁에 참여하는 군인들이 지녀야 할 자세다. 그런 군인들이 전쟁이 끝난 다음에 어떻게 지낼 것인가. 그들은 전쟁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으로 괴로워한다. 이는 지금까지의 역사를 통해서 증명이 된 사실 아닌가.
그럼에도 아직도 전쟁을 하겠다고, 힘의 우위를 통해 상대를 무력하게 하겠다는 말을 하는 자들이 있으니... 내가 힘의 우위를 확보하려 하면, 상대 역시 힘의 우위를 확보하려 해, 군비 경쟁이라는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지구에는 지구를 파괴할 무기들이 계속 쌓여갈 텐데, 그 점을 당당하게 말하는 자들이 버젓이 있다는 사실이 참. 이들은 자신들이 인간을 인간이 아닌 존재로 만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면 쉽게 전쟁을 이야기할 수 없다.
하지만 전쟁이 쉽게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을 이 소설집에 실린 '1951년의 행복한 생일'이란 소설에서 만나게 된다. 슬프다. 좋은 날, 아이를 위해 나들이를 간 노인. 노인은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아이가 행복을 느끼기를 바라지만, 그것이 아이에게 가장 멋진 생일 선물이라고 생각하지만 아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노인이 만들어준 수레를 아이는 '탱크'라고 한다. 그리고 함께 가는 자연 속에서 아름다움과 평온함을 느끼기보다는 '녹슨 거대한 탱크'를 보고 그곳으로 가고 싶어한다. 이렇게 아이는 아직 전쟁의 고통을 모른다. 노인은 그 고통을 알기에 아이에게 가장 평화로운 하루를 선물로 주고 싶었지만 아이는 탱크를 찾아가고 있다.
전쟁이 없는 자연의 평화로움을 아이는 아직 느끼지 못한다. 이 아이에게 그러한 느낌, 경험을 주려고 노력하는 노인. 아직 그것을 못 느끼는 아이. 하지만 이 소설을 읽는 우리는 느낄 수 있다. 노인이 무엇을 주려 하는지. 아이가 느껴야 하고 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이것이 바로 읽기의 힘이지 않을까.
아이가 자연보다는 탱크를 좋아하는 이것이 현실이다. 과거로부터 배워야 하는데, 과거는 과거일 뿐이고 미래가 과거를 반복할 수 있다는 두려움. 커트 보니것이 그런 두려움을 이 소설에서 잘 표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밖에도 포로로 잡혀 있는 미군들의 생활을 그린 소설들. 또한 전쟁이 끝난 뒤 일어난 약탈 등을 묘사하면서 그는 전쟁이 인류에게 끼친 참화를 생각하게 한다. 그러한 전쟁은 일어나서는 안 된다.
예전에 읽었던 소설보다는 풍자적인 요소가 적지만 오히려 '전쟁 속의 인간'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게 하는 소설들이다. 반전(反戰) 소설집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전쟁이 인간에게 끼치는 나쁜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는 소설집이다.
다시 서문의 말을 생각한다.
'글을 읽고 쓴다는 것 자체가 체제 전복적 행동이다.'
그러니 많이 읽자. 보니것의 소설은 이 점에 딱 어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