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의에 대하여 - 무엇이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가
문형배 지음 / 김영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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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연예인 못지 않게 얼굴이 알려지지 않았나 싶다. 어딜 가도 사람들이 알아보지 않을까? 작년 12월부터 올해 4월까지 방송에서 보던 얼굴이니... 출연 횟수로 따지면 어느 연예인 못지 않을 것이다. 


윤석열 탄핵 심판을 진행했던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문형배. 그리고 올해 4월 침착하게 읽어가던 탄핵심판 선고문. 그것을 많은 국민이 지켜보았으니, 그를 아는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다.


얼굴은 안다. 그런데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는 단편적으로밖에는 모른다. 그렇지 않은가. 우리가 법관의 신상을 어떻게 잘 알겠는가? 신상이라고 해봤자 언론에 알려진 아주 적은 부분밖에는...


그가 탄핵심판 선고 이후에 퇴임을 했다. 그리고 책을 냈다. 책? 좋은 기회다. 문형배라는 판사를 알 수 있는 자료가 주어지는 셈이니.


그가 판사로 재직하면서 자신의 블로그를 운영했다고 한다. 그 블로그에 안타까운 심정을 담아 올린 글도 있고, 기쁜 마음으로 올린 글들도 있었겠다. 여기에 자신이 읽은 책에 대한 독후감도 있었을 테고. 그의 블로그에 들어가보지 않아서 추측을 할 뿐. 이 추측은 책에 기반하고 있고.


자신이 올린 글 중에서 고르고 골라 이 책을 엮었다고 한다. 그러니 이 책에 실린 글들은 거의 20년의 시간을 두고 있다. 20년이라면 강산이 두 번 바뀌었다고 할 수 있는데, 지금처럼 더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는 두 번이 아니라 서너 번은 바뀌었다고 봐도 된다. 


그럼에도 과거 시기의 글들을 실은 이유는 그 글들이 과거에만 매어 있지 않고 현재에도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일상에서 경험하고 느낀 점을 쓴 글들과 읽은 책들을 소개하는 글들, 마지막으로 법원과 관련된 글들이 실려 있는데...


읽어가면서 판사 문형배(그냥 판사로 직함을 통일하련다. 전 판사라는 말도 좀 우스우니까)를 어느 정도는 알게 되었다는 느낌, 판사 문형배 속에 사람 문형배가 들어있음을, 그는 '비록 성공하지 못했지만 평균인의 삶에서 벗어나지 않고자 애썼던 어느 판사의 기록'(7쪽)이라고 했지만, 아니다. 그는 성공했다. (이 성공이 평균인의 삶을 살지 못했다는 것인지, 세속적인 의미에서 성공하지 못했다는 의미인지는 헷갈리지만, 두 경우 모두로 해석해도)


최근에 읽은 커트 보니것의 연설 중에 마크 트웨인을 인용한 글을 보면... 그 글은 이렇다.


마크 트웨인은 참으로 의미 있는 삶을 살았지만 노벨상은 못 받았죠. 그런 그가 삶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무엇을 바라고 사는가를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그는 마음에 드는 네 마디를 대답으로 떠올렸습니다. 저도 그 답이 마음에 듭니다. 여러분도 마음에 들 것입니다.

"우리 이웃의 좋은 평가" 

(커트 보니것,, 그래, 이 맛에 사는 거지. 문학동네. 2019년 1판 5쇄. 57쪽.)


이 글을 보면 문형배 판사는 의미 있는 삶을 살았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에 실린 '감사의 말'에 보면 그가 버스를 탔을 때 버스 기사님이 '이 버스에 문형배 재판관이 타고 있습니다. "박수 한번 칩시다"'(405쪽)라고 했다니, 이보다 더 좋은 이웃의 평가가 어디 있겠는가. 이는 바로 우리와 같은 삶을 산 사람에게 보내는 박수 아니겠는가. 이보다 더한 성공이 어디 있는가. 앞에서 언급한 두 의미 모두에서.


그만큼 책을 읽다보면 문형배 판사의 사람에 대한 사랑이 느껴진다. 그가 몇몇 글에서 '착한 사람이 법을 알아야 한다'고 계속 강조하고 있는데, 이보다 더 평균적인 사람에 대한 호의를 드러내는 말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착하게 사는 사람이 법을 몰라서, 그냥 사람은 다 자기와 같이 생각하고 행동하겠거니 해서 당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러니 착한 사람들이 법을 알아야 한다고, 사건이 터지기 전에 미리 준비할 수 있도록 최소한 법 공부는 해야 한다고 하니, 그가 사람에 대해 지닌 사랑을 이런 말을 통해서도 느낄 수 있다.


또한 그는 판사 재직 시절 사형 선고를 한번도 하지 않았다고, 그것을 무척 다행으로 여기고 있으며, 판사의 선고 이전에 당사자들끼리 조정을 하도록 유도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는 점을 봐도 그는 사람에 호의를 지닌 판사였음에 틀림없다.


그래서 그가 '여는 말'에서 평균인의 삶에서 벗어나지 않고자 애썼다고 하는 말이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판사가 아니라 사람들 곁에 있는 판사 생활을 했음을 짐작하게 해준다. 책에서 은인으로 언급하고 있는 김장하 선생의 말처럼 그는 자신이 받은 것을 다른 존재들에게 베푸는 삶을 살려고 노력했다고, 그것을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겠단 생각을 한다.


이런 점에서 성공하지 못했다고 표현한 것은 겸손의 표현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는 비록 판사로서 또 헌법재판관으로서 남들과 다른 삶을 살았지만, 본질은 평균인의 삶을 살았다고, 그런 평균인의 삶이 바로 그의 삶에 체화되어 있었다고 말하고 싶다.


읽으면서 추웠던 작년 겨울부터 올 봄까지를 다시 떠올리기도 했는데, 그 추위를 그의 탄핵 심판 선고문을 통해 따스한 봄을 맞이했다고 생각하니... 앞으로도 그의 삶을 통해 계속 그러한 따스함을 우리 사회에 전달해주기를 바란다.


그와 같은 판사들이 있다면 차가운 법이 아니라 따뜻한 법이 될 것이고, 그러한 따뜻한 법이 바로 우리 사회의 정의 실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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