듄 신장판 5 - 듄의 이단자들
프랭크 허버트 지음, 김승욱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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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권이다. 이상하게 5권까지 읽으면서 홀수 권들은 사건의 전개가 빠르게 느껴져 읽는데 속도가 붙으나, 짝수 권들은 내면 세계에 더 집중하고 있어서 읽는 속도가 느리다고 느껴졌다. 홀수 권이든 짝수 권이든 사건이 일어나고, 다양한 갈등들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사건이 종결되고, 그 종결된 사건으로부터 다음 사건으로 넘어가는 역할을 짝수 권들이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홀수 권들에서는 사건과 사건 사이의 긴장이 읽는 속도를 높이고, 짝수 권에서는 전에 벌어졌던 사건이 종결되면서 다른 사건으로 넘어가야 하기 때문에 읽는 속도가 느려진다고 할 수 있다.


이번 권은 홀수 권이니, 다양한 사건들과 갈등들을 통해 읽는 속도에 박차가 가해진다.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인물들도 많다.


사실 이단자라는 말에는 정통에서 벗어났다는 뜻이 있으니, 무엇이 정통인지 소설 [듄]을 읽으면서 그것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무엇이 정통인지 명확하지 않다. 폴이나 레토가 신으로 받들여지는 종교가 정통인 것인지, 이들을 메시아로, 신의 예언자로 정리한다면, 그들을 통해 섬기는 신이 정통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레토가 죽은 뒤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은 그들을 메시아나 예언자로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의 뜻에 따르는 것이 정통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단이란, 이 생각에 도전하는 사람들을 뜻한다.


즉, 폴과 레토와 비슷하지만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듄의 이단자가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소설에서는 레토가 말한 '황금의 길'이 명확하지 않고, (비록 이번 권에서 '저 멀리로 대이동을 나선 인간들은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해서 무한한 우주를 가득 채웠다. 폭군의 황금의 길이 마침내 확실하게 확보된 것이다-376쪽'라는 표현으로 황금의 길에 대해서 짐작하게 해주고 있지만, 그것이 명확히 무엇인지는 알기 어렵다) 이번 권에서 누구를 중심으로 읽어야 하는지도 헷갈린다.


소설의 시작에서는 골라인 던컨을 중심으로 읽어야 하나 했다가, 시오나의 후손이라 할 수 있는 시이나를 중심으로 읽어야 하나, 드디어 여성이 중심에 나서는가 했더니, 시이나는 여전히 가르침을 받는 미숙한 존재로 나올 뿐이니, 아니고, 골라인 던컨 역시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이번 권에서 핵심은 아니다. 그는 각성을 했지만 여전히 수단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앞에서 레토에게 위협당하고 축소당한 베네 게세리트들을 이단자로 보아야 하나? 그럴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폴이나 레토에게 맞선 존재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교배를 통해 자신들이 원하는 존재를 만들어내기를(낳는다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는다. 이들은 만들어내려 한다) 바란다.


결코 종교적이라고 할 수 없지만, 이들에게는 과거의 존재들로부터 기인한 기억들을 서로 전수하고 보존하는 능력이 있으니, 이 또한 종교로 손색이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이 권에서 나오는 베네 게세리트인 오드레이드인가?


아니다. 소설을 5권까지 읽어보면 작가는 베네 게세리트에게 호감을 갖고 있지 않다. 유전자를 교배해서 자신들이 원하는 존재를 만들어내는 집단을 좋아할 작가가 있겠는가? 과학기술의 위험성을 익스 인들을 경계하는 내용을 통해 보여주고 있고, 또 복제인간의 위험성을 틀레이랙스 인들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면, 베네 게세리트에게서는 유전자 조작의 위험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시도가 결코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소설을 통해 보여주고 있으니, 이단자들에 베네 게세리트가 포함되더라도 주인공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들을 제외하면 한 인물이 남는다. 멘타트이자 베네 게세리트 교육을 받은 지휘관인 마일즈 테그! 그에게서 폴의 잔향을 느낀다면 그것은 억측일까?


그는 베네 게세리트를 엄마로 두고 있고, 그들에게 훈련을 받았으며, 그들을 위해 복무한다. 베네 게세리트가 부여한 임무를 수여하는 과정에서 그는 각성을 한다. 소설의 후반부로 갈수록 그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데...


그럼에도 그를 이단자라 하기엔 좀 그렇다는 생각이 들고... 결국 듄의 이단자란 레토가 보여준 황금의 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집단들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아직도 


듄은 거의 파괴되고, 레토의 분신이던 모래 벌레들도 거의 다 죽었다고 볼 수 있는데, 듄에는 모래 벌레가 이제는 없다고, 시이나와 함께 온 모래 벌레 한 마리만이 있을 뿐이라고, 이 모래 벌레는 베네 게세리트의 손에 들고 소설이 끝나는데... 듄이 이렇게 파괴되고 말 것인지...


마지막 권에서 듄의 새로운 모습, 새로운 갈등이 펼쳐질 것인데... 이번 권에서는 인간을 복제하거나 유전자 조작을 하거나 해서 인간을 완전히 통제하려는 일들이 성공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예측은 예측으로 인해 다른 행동들을 유발한다는 점을 생각하게 한다.


틀레이랙스 인들이나 베네 게세리트들을 보면서 과거의 기억들을 보존하면서 사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야 한다. 


이 소설의 여러 인물들을 보면서 불교의 부처를 생각했다. 물론 기독교나 이슬람을 연상시키는 부분도 많다. 그 부분들은 명확하게 나타나니까, 더 말할 필요가 없지만, 불교에 대해 말하면...


부처는 과거의 모든 기억을 안고 살았다. 그러나 그 기억에 잠식되지는 않았다. 과거의 지혜가 필요하지만 과거에 매여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잊을 수 있는 것의 장점... 3권에서 레토나 가니마는 그러한 과거의 기억들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어쩌면 여기서 부처나 레토와 다른 틀레이랙스 인과 베네 게세리트들의 모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참조해야 할 기억이란, 과거란 어떤 것인지를...


이렇게 다양한 종교가 융합되어 이 소설에 나타난다. 여러가지로 생각할 거리가 많다.


이제 마지막 6권이다.


작가가 '[듄]을 쓰고 있을 때'라는 글이 이 권의 맨 앞에 실려 있다. 아마도 [듄]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은 메시아의 신화를 탐구하는 이야기가 되어야 했다.

  이 책은 인간이 점령한 행성을 에너지 생산 기계로 보는 것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만들어내야 했다.

  이 책은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정치와 경제의 작용을 꿰뚫어 보아야 했다.

  이 책은 절대적인 예언과 그런 예언의 함정을 조사하는 것이 되어야 했다.

  이 책은 의식 확장제를 등장시켜 그런 물질에 의존하면 무슨 일이 생길 수 있는지 얘기해 주 어야 했다.

  식수는 석유와, 날이 갈수록 양이 줄어들고 있는 물 그 자체에 대한 비유가 되어야 했다.

  그렇다면 이 책은 인간적 가치들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사와 사람들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 여러 가지 함축적 의미를 지닌 생태 소설이 되어야 했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을 쓰면서 항상 이 각각의 층들을 주의 깊게 감시해야 했다. (7-8쪽)


충족되지 않은 호기심은 스스로 대답을 만들어내는 경향이 있다. 추측은 사실보다 더 위험한 경우가 있다. -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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듄 신장판 4 - 듄의 신황제
프랭크 허버트 지음, 김승욱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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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황제' 사실 영어 제목을 보지 않았을 때는 새로운 황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제 아라키스에도 새로운 황제가 등장했구나. 3권의 레토에 이어 누가 대를 이어서 아라키스를 다스리고 어떤 사건이 벌어질까 궁금해 했는데... 아니었다. 신황제에서 신은 새로운이 아니라 말 그대로 신이었다. GOD!


황제가 신이다. 사실 종교와 정치가 분리가 안 된 사회에서는 왕은 곧 신이었다. 아니 신의 사제였다. 신의 뜻을 대리하는 존재. 그들은 유한한 존재였으며, 다른 사람들도 그들을 인간으로 생각했다. 즉 유한한 생명이었음을 인정한 것.


하지만 이번 권에서 듄의 황제가 된 레토는 거의 불멸의 존재다. 세상에, 3,500년이나 살아 있던 것. 그러니 다른 존재들이 죽어사라졌음에도 레토는 벌레의 몸으로 듄을 다스린다. 신이 되어서. 그래서 신황제라고 불리는 것.


거의 전지전능한 레토인데, 그가 보았던 황금의 길이 어떤 길인지 구체적인 상이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레토는 신황제로서 존재하지만 그것은 그가 황금의 길을 가기 위한 한 방편에 불과하다. 그런 그를 이해하는 사람은 없다.


그는 자신의 유전자를 지닌 아트레이데스 사람들을 만들어내지만, 그들은 레토와 같이 될 수가 없다. 그들은 아직까지 황금의 길을 가지 못하는 존재다. 이런 아트레이데스 가문의 사람들 중에, 신황제에 반대하는 반란자들이 있고, 이 반란자 중에서 뛰어한 사람을 레토는 자신의 편으로, 즉 황금의 길을 가는 징검다리가 되는 존재로 만들어낸다.


이 4권에서는 시오나가 등장한다. 이제 여성 주인공이 등장하는구나 생각하는 순간, 소설의 대부분이 레토의 이야기로, 또 골라인 아이다호의 이야기로 흘러간다. 시오나 역시 조연에 불과하다. 아직도 여성이 중심이 되는 사회는 되지 못하고 있다.


물론 물고기 대원들은 모두 여자다. 경호부대라고 할 수 있는 물고기 대원들을 여자로 삼은 이유는 남성들의 호전성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여성들도 사회에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시대임을 작가가 인식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1981년에 이 소설을 썼으니, 작가가 처음 듄 시리즈를 시작했을 때로부터 꽤 긴 세월이 흘렀다. 사회도 많이 변했고.


하지만 소설에서 흐른 3,500년의 시간 동안 사람들은 여전히 종속되어 있다. 인류의 역사와 맞먹는 기간 동안 사람들은 자율성을 잃고 신황제에 종속된 삶을 산다. 


주체성이 없는 인간. 그런 인간들에게 레토가 보여주는 황금의 길은 무엇인가? 그것은 힘들더라도 위험하더라도 자신이 선택하는 삶 아닐까 한다.


신황제의 집사장으로 반란군 중에서 선별한 사람을 뽑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즉 레토는 반란 역시 황금의 길을 가는데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절대권력은 고독하다. 이해를 받지 못한다. 아니, 이해를 받는다면 자신이 가야할 황금의 길을 놓치게 될지도 모른다. 남들에게 이해받지 못하지만 스스로를 그 길로 가게 해야 하는 레토. 그런 레토의 고독이 이번 권에서 잘 드러나 있는데...


이런 고독을 이해하고 공감한 존재가 바로 흐위 노리다. 익스의 대사로 파견된 여자. 하지만 레토의 인간적인 고독을 이해한 흐위로 인해 레토는 자신이 가야할 길을 간다. 바로 죽음의 길이다.


즉 흐위로 인해 아이다호가 이성을 잃고, 또 시오나는 황금의 길을 이해했지만 벌레가 되는 레토토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 이해할 필요가 없다. 과거는 과거로 사라져야 한다.


레토가 3,500년 넘게 준비해온 그 길을 이제는 다른 사람들이 가야 한다. 그리고 레토의 몸을 감싸고 있던 모래송어들이 다시 모래 벌레가 되기 위한 여정에 나서야 한다.


아라키스를 되살리기 위해서... 그렇게 되기 위한 과정이 이번 권에서 서술되고 있는데... 황금의 길이 명확하지 않아서, 시오나나 아이다호에게 감정이입을 하기가 힘들다. 오히려 레토의 고독에 감정이입을 하게 되고, 자신의 길을 홀로 갈 수밖에 없는 존재의 고독에 대해 전율하게 된다.


알면서도 갈 수밖에 없는 존재들. 그런 선지자들. 이번 권은 그런 선지자들의 고독, 쓸쓸함을 맛볼 수 있게 해준다.


많은 시간을 들여 듄의 세계관을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구절들이 다양한 생각과 논쟁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몇몇 구절들을 살펴보자.

기술은 무정부 상태를 길러낸다. 기술은 이런 도구들을 아무렇게나 퍼뜨린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폭력이 도발된다. 야만적인 과거의 도구를 만들어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은 필연적으로 점점 더 작은 규모의 집단들 손에 떨어지다가 마침내 집단이 아닌 한 개인의 손에 들어가게 된다.

- P69

~외부의 적이 없으면, 남자들만의 군대가 항상 가지 동족들을 공격했다고 말씀하셨소. 항상.

- P161

남자아이들끼리만 있으면 순전히 고통을 야기할 목적만으로 만들어낸 농담이 오가고, 자기네 무리에 속한 동료에게만 의리를 지키지....

- P162

종교는 항상 화려한 말을 이용한 전제 정치로 이어지지.

- P189

권력 기반은 아주 위험하지. 진정한 광인들을 끌어들이기 때문이다. 오로지 힘 그 자체만을 위해 힘을 추구하는 자들을 끌어들이기 때문이야.

- P191

~진실은 추구하는 자에게 위험한 것일 수 있다. 신화와 사람을 안심시키는 거짓말을 찾아 믿는 것이 훨씬 쉽다. 너희가 진실을 찾는다면,비록 그것이 일시적인 진실이라 해도 고통스러운 변화들을 요구할 것이다. - P208

전문가들은 믿을 수 없는 존재이다. 전문가들은 뭔가를 배제시키는데 통달한 사람들이지. 좁은 영역에서만 전문가야. - P278

기계 장치들 그 자체가 사용자들을 길들여서 그들로 하여금 기계를 사용하듯 서로를 사용하게 만든다. - P288

내 ‘천국의 미녀들‘은 성숙을 가르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반드시 남자들의 성숙을 감독해야 한다는 걸 알아. 이를 통해서 그들은 자신들의 성숙을 발견한다. 결국 ‘천국의 미녀들‘은 아내와 어머니로 융합되고 우리는 청소년기의 고착으로부터 그들의 폭력적 충동을 떼어놓는다. - P342

경찰은 범죄자들이 번성하는 것을 항상 지켜보지. 권위를 가질 수 있는 자리가 범죄자가 되기에 가장 유리한 자리라는 사실을 놓치는 건 아주 멍청한 경찰관뿐일 거다. - P367

감옥은 법원과 경찰이 유효하다는 환상을 제공해 주는 데에만 필요할 뿐이다. 일종의 직업에 대한 보험인 셈이지.

- P368

폭군이 찾아내기 가장 어려운 것 중의 하나는 실제로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이다.

- P394

그가 만들어낸 것과 같은 사회, 기술과 새로운 아이디어의 혼합을 제한하려고 애쓰는 사회조차 위험하고 폭력적인 작은 무기들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사실상 품지 못했다. 그런 물건을 통제하겠다는 생각 자체가 망상이었으며, 사람들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위험한 허구였다. 열쇠는 폭력에 대한 ‘욕망‘을 제한하는 것이었다. - P412

자기가 옳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에게 이치를 설명하려 해서는 안 돼! - P422

살아 있는 자들에게 삶을 달콤하게 만들어주는 것, 삶을 따스하게, 아름다움으로 가득하게 만들어주는 것, 이것이 바로 나 자신은 누리지 못하더라도 내가 보존하고 싶은 것이다. - P 429

특권은 오만이 된다. 오만은 부당함을 촉진하다. 파괴의 씨앗이 꽃을 피운다. - P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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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호다. 녹색 세상을 향해라는 편집자의 말이 있다. 그렇다. 녹색. 우리를 평안하게 해주는 색이다. 녹색을 자연의 색이라고 한다면,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가 추구하는 세상일 수도 있다.


하지만 녹음이 짙어가는 여름이지만, 과연 우리 세상은 녹색 세상일까? 삶창은 그런 세상을 꿈꾸면서 우리가 그런 세상에 살기를 바라고 있지만, 현재 우리 사회는 녹색과 멀어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이번 호에도 실렸지만 대구에 있는 팔현습지에 대한 글을 읽어보면 그나마 있는 녹색을 우리는 없애려고 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표지 그림이 금호강에 서식하고 있는 말조개라는데, 이 말조개도 금호강변에 즉 팔현습지에 탐방로가 생기면 살기 힘들어질 것이다.


금호강과 팔현습지에 살고 있는 다른 생물들도 마찬가지고. 인간들의 편리를 위해서 다른 생물들의 생존을 위협해야 하는 시대가 과연 녹색 세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 굳이 이러한 자연 환경을 이야기하지 않아도, 우리는 한 사람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고 있다.


강약약강(强弱弱强)의 세상. 힘 없는 사람의 죽음은 무시로 점철하면서 힘 있는 자의 잘못은 잘못이 아니라고 강변하고 있는 이 세상. 녹색 세상과는 거리가 먼 세상이다.


그럼에도 이번 호에 나와 있는 것처럼 녹색 세상을 만들려는 사람들이 있다. 함께 살아가자고, 사람들만이 아니라 다른 생물들, 무생물들 모두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어가자고...


그래서 꿀벌의 천적인 말벌에게도 측은지심을 느끼는 글도 있고, (최병찬, 천적은 적이 아니더라) 지리산과 그 산에 존재하는 것들의 아름다움을 알려주는 글도 있고(김인호, 섬진강 편지), 기후 재앙의 최전방에 있는 몽골의 아름다움을 알려주는 글도 있다.(김영언, 몽골 기행)


다른 사람을 믿지 못하고 오로지 자신들만을 믿는 사회에서 서로가 불신하는 이 시대에 그래도 사람들로 인해 치유받았던 경험을 이야기하는 글은 많은 울림을 준다.(김양미, 내 인생의 고마운 남자들)


그래, 아직도 우리에겐 희망이 있음을, 녹색 세상이 사라진 것은 아님을, 삶이보이는창, 이번 호를 읽으면서 다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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듄 신장판 3 - 듄의 아이들
프랭크 허버트 지음, 김승욱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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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이다. 이제 아이들의 시대다. 레토와 가니마. 그리고 폴의 여동생은 알리아가 벌이는 사건들.


폴에 의해 확립된 제국은 폴이 사라지면서 알리아가 섭정을 한다. 그리고 자신의 내면에 있던 소리에 잠식당한 알리아는 폴이 원하던 방향으로 나아간다.


듄이라 불리는 아라키스 행성도 마찬가지다. 이 행성에 물과 식물, 동물들이 돌아오고 있었지만, 지금 지구의 모습으로 말한다면 황폐한 사막이 숲으로 바뀌고 있는 상황인데, 그렇다면 좋아해야겠지만, 이 행성에는 사막이 없어지면 모래벌레들이 사라지고, 그렇게 되면 스파이스가 더이상 나오지 않게 된다는 문제점이 있다.


또한 풍요로 인해 사람들의 생활이 변해가고 있고, 정치는 점점 전제정치로 가고, 경제는 스파이스를 독점한 세력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2권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절대권력은 부패할 수밖에 없다. 이제 절대권력이 된 알리아는 자신의 뜻대로 하려고 한다. 절대권력자가 지니고 있는 불안감이 그의 내면 속에 존재하는 사악한 존재에게 자신을 맡기게 하고.


이번 권은 2권이 발표된 지 약 7년이 되어 발표되었다고 할 수 있다. 책에 1976년 출간이라고 되어 있으니. 그러니 작가는 2권에서 남겨두었던 일들을 3권에서 다루기 위해 많은 세월을 고심했으리라.


우리는 지구가 사막으로 변하는 것을 두려워하지만, 아라키스 행성은 사막이 숲으로 변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것은 바로 이 행성의 정체성을 위협하고, 또 스파이스가 나오지 않았을 때는 우주의 질서가 깨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라키스 행성을 지구로 생각하면 안 될 일. 이를 지금 우리 상황에 빗댄다면 차라리 무분별한 화석연료의 채취로 그것이 고갈되는 상황을 상정하면 될 것. 인류 문명이 의지하고 있는 많은 연료들이 사라진다면 지금의 인류는 큰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기본적인 지구 생태계를 유지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기도 한데...


아라키스 행성도 마찬가지다. 알리아의 통치 기간에 다른 행성에 사는 존재들이 모래벌레가 된다는 모래 송어를 유출하려고 하고, 더 많은 스파이스를 채취하려고 하며, 아라키스는 점점 사막이 줄어들게 된다. 이는 모래벌레가 점점 사라진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스파이스를 만들어내는 모래벌레들이 사라진다면 프레멘들의 삶을 유지시켜주는 방어막이 사라진다는 말.


여기에 다시 폴을 신으로 모시는 종교가 발생하고, 이것을 깨뜨리려는 설교자가 등장한다. 무엇이든지 하나가 되었을 때의 위험. 그것을 소설은 계속 제시하면서 결정론을 깨뜨리려고 한다.


폴의 아이들인 레토와 가니마가 하고자 하는 일도 그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쉽지 않다. 이들에게도 알리아와 같은 과거의 존재들이 내부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 과거의 존재들을 통제할 수 없다면 이들 역시 알리아와 같은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하여 이들은 자신들만의 길을 걷기로 하고, 레토는 죽음을 가장한 채 자신의 길을 간다. 마찬가지로 가니마 역시 남아서 자신의 길을 가고, 나중에 만나기로 한다.


레토의 각성을 통해 지금까지의 체제를 뒤집을 수밖에 없다는 결론. 그것이 또 제국을 위험에 빠뜨리는 전쟁을 벌일 수밖에 없지만, 그렇게 전복을 시켜야지만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다고 한다.


폴은 지하드의 전쟁을 보았지만 레토는 그보다 더한 전쟁을 본다. 그리고 그 전쟁이 제국을 파괴할 거라는 것도 한다. 이 파괴가 있어야지만 다시 시작할 수 있음을 인식하고 그 길을 가려는 레토.


파괴한 다음에 건설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과 결심이 필요하다. 가야만 할 길이기에 레토는 그 길을 선택한다. 자신의 내면에 있는 존재들을 이겨내고.

 

폴의 제국을 이어받을 존재가 되는 레토. 하지만 레토는 초인적인 힘을 얻는다. 이는 인간의 범위를 벗어났다는 것. 소설은 여기서 끝나지만 인간이 아닌 레토가 제국을 계속 다스릴 수는 없는 일일테고.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우리 내면에 있는 수많은 소리들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또한 인간이 미래를 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하게 해주고 있다. 여기에 초인적인 능력을 지닌 존재들을 보여주어서, 이 소설과 많은 다른 문화예술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3권은 1권만큼 흥미진진하다. 2권의 속도가 조금 느려졌다고 느껴졌다면.


이렇게 소설은 4권으로 넘어간다.


기억하고 싶은 구절들을 아래에 적는다.

미래는 분명하게 아는 것은 그 미래의 덫에 절대적으로 갇히는 것. - P166

무지에도 나름대로 장점이 있습니다. 뜻밖의 일들로 가득찬 우주가 바로 제가 바라는 거에요. - P167

어떤 일은 끝이 있을 뿐 시작이 없습니다. 시작만 있고 끝은 없는 일도 있죠. 그건 모두 그 일을 바라보는 관찰자가 어디에 서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 P180

자기기만의 교훈을 지나치게 잘 배운 자들은 그 기만때문에 사멸할 것이다. - P191

통치자에게 필요한 것은 감수성 뿐이오..... 훌륭한 정부는 법률이나 선례가 아니라 누구든 그 정부를 다스리는 사람의 개인적인 자질에 달려 있소.

- P 203

인간의 정신을 본뜬 기계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 P250

확실성이 절대적인 미래를 절대적으로 아는 것이라면 그것은 변장한 죽음을 뿐이다! 그런 미래는 ‘지금‘이 된다. - P402

절대적인 지식을 주장하는 것은 괴물이 되는 것이오. - P478

지식은 불확실성의 가장자리에 있는 끝없는 모험이오. 인생은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경험해야 할 현실이오. - P479

나를 통해서 너희와 그들은 혼돈에서 탈출하는 유일한 길을 찾게 될 것이다. 그 길은 ‘살아감으로써 이해하는 것‘이다. - P499

훌륭한 신민들은 반드시 죄책감을 느껴야 하지. 죄책감은 자신이 실패했다는 감정으로 시작되오. 뛰어난 독재자는 민중들이 실패할 기회를 많이 제공해준다오. - P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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듄 신장판 2 - 듄의 메시아
프랭크 허버트 지음, 김승욱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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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이다. 폴이 황제가 되었다. 그를 숭배하는 종교가 생겨났다. 종교와 정치가 결합되어 다른 행성들을 정복하기 시작한다.


선교라는 이름으로 자행되었던 제국주의의 침략의 역사를 듄에서도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절대 권력이 필요하다. 절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폭력이 필요하다. 


폴이 원한 세상이 이것이었을까? 프레멘들과 함께 하코넨과 황제를 물리칠 때 폴이 보았던 미래가 이것이었을까? 소설에서는 지하드라는 이름으로 나오는데, 폴은 이런 지하드를 멈추고 싶어한다.


그러나 우주가 제 뜻대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절대 권력을 숭배하는 사람들은, 종교라는 수레바퀴에 타고 더 빨리, 더 멀리 가려고 한다. 그렇게 지하드는 멈출 줄을 모른다.


반대로 절대 권력에 도전하는 세력이 나타난다. 그 권력은 너무도 달콤하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차지하고 싶어진다. 따라서 2권은 절대 권력자가 된 폴과 그를 떠받치는 종교적 힘을 상징하는 누이 동생 알리야가 한 축에 있고, 그에게서 권력을 탈취하려는 세력이 한 축에 있다.


한 권력에서 다른 권력으로 넘어가기만 하면 그것은 평화가 아니다. 또다른 전쟁을 유발할 뿐이다. 자신의 권력을 내놓을 수 있는 폴이지만, 그렇게 되었을 때는 전쟁이라는 우주의 폭력이 무한 반복될 수밖에 없음을 폴은 안다.


그는 이러한 폭력을 멈출 수 있는 방법을 찾고, 그것을 행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것이 가능한가? 폴은 미래를 통해 자신의 죽음을 본다. 그 죽음을 통해 우주의 평화를 이끌기를 원하지만, 예지를 통해 본 미래가 그대로 적용될 수는 없다.


미래로 가는 길에는 수많은 불확정성들이 존재하며, 한 사람 한 사람의 말과 행동이 우주의 미래를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바꿀 수 있는 미래를 현재가 선택할 수는 없다. 폴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의 죽음과 사랑하는 챠니의 죽음을 볼 수 있었음에도 그는 그것을 회피하지 않는다. 또하 챠니를 되돌릴 수 있는 기술을 지닌 자들과 거래도 하지 않는다.


죽음은 죽음으로 끝나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폴은 사랑하는 챠니와 함께 사라질 뿐이다. 직접적으로 폴의 죽음이 나와 있지는 않지만, 예견할 수는 있다. 눈 먼 자들은 사막으로 보내지는 프레멘들의 관습에 따라 폴도 사막으로 나아가니까.


하지만 사랑은, 현재에 충실한 사랑은 남는다. 그러한 사랑에 예지력은 필요없다. 그냥 사랑으로 존재하기만 된다. 폴과 챠니의 사랑이 바로 그렇다.


2권은 그래서 종교와 결합된 정치의 절대 권력을 보여주고 있다. 개인이 거부하려 해도 주위에서 그러한 권력을 만들어내고 이용하는 모습도. 


아주 많은 요소들이 나오고, 하코넨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난 사람들이 또다른 억압을 낳는 현실도 소설은 잘 보여주고 있다. 


악마와 싸우는 자는 자신이 악마가 되지 않으려고 해야 한다는, 니체의 말처럼, 절대 권력을 타도하는 사람이 절대 권력이 되는 현실, 그것에서 벗어나는 것이 무척이나 힘든 일임을 소설은 잘 보여주고 있다.


60년대에 쓰인 소설임에도, 우주에 있는 아라키스라는 행성을 중심으로 사건이 펼쳐짐에도 지구에서 우리가 겪는 권력들의 모습, 그리고 그러한 권력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절대 권력에 취하지 않으려면 얼마나 힘든 노력을 해야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폴의 최후가 마음 아프게 다가오지만, 스스로 선택한 길을 가는 폴의 모습이 쓸쓸하고 아름답게 다가온다. 이형기 시인의 낙화 한 구절을 떠올리는 장면이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는. 


이제 폴의 시대는 끝났다. 알리아의 시대가 올 것인지, 챠니가 나은 두 아이의 시대가 올 것인지, 또 그런 시대는 어떤 모습일지 3권으로 넘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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