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듄 신장판 6 - 듄의 신전
프랭크 허버트 지음, 김승욱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1월
평점 :
소설이 끝났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아마도 작가가 살아 있었다면 뒤를 이은 작품이 더 나왔을 듯.
듄은 파괴되었다. 명예의 어머니들이라는 집단에 의해. 베네 게세리트의 성적인 판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은 성의 힘으로 남성들을 종속시킨다. 그리고 자신들에게 반항하는 집단들을 무자비하게 파멸시킨다.
베네 게세리트 집단도 마찬가지로 파멸되어야 할 존재다. 명예의 어머니들과 이에 맞서는 베네 게세리트의 대결이 이번 권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고 하지만, 도대체 왜 신의 성전인지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신의 성전이라고 하면 신의 뜻을 받아들이고 이를 실행하기 위한 장소가 되어야 하는데, 지금까지 소설을 읽은 내 느낌으로는 베네 게세리트는 신의 뜻을 제대로 이해한 집단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작가는 이 집단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아니 어쩌면 전편에서 레토를 등장시켜 이 집단이 각성하게 만들었다고 해야 하나? 이들 집단에 아트레이데스의 혈통이 이어지게 해서, 과거의 기억으로 현재와 미래를 만들어가는 집단을 형상화하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들이 지닌 한계는 뚜렷하다. 이 한계를 인식하고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려는 인물이 이번 호에서 중심을 이루는 오드레이드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오드레이드에게 발견된(?) 시이나와 무르벨라에게서 더 나은 발전을 찾을 수도 있고.
하지만 시이나가 우주선으로 다른 곳을 찾아 떠나는 것으로 소설이 끝맺음하고 있으니, 베네 게세리트의 계획, 성공은 한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과거에 매여 있을 뿐이다. 사랑으로 결속되어 있지 않다. 사랑을 위험한 것으로 치부하는 그들에게 작가 역시 동의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들은 집단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살게 되지만, 레토가 제시한 황금의 길은 집단성보다는 개인의 자율성을 추구하지 않았나 싶다. 대이동, 인류의 대이동은 결국 인류가 자신들의 삶을 각자의 자율성에 따라 추구해야 한다는 말과 통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파괴된 듄을 재건하려고 하지 않고, 또 베네 게세리트의 참사회가 있는 곳에서 듄과 같은 모습을 만들려고 하지 않고 시이나가 다른 행성을 찾아 떠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인위적으로 환경을 만들어내는 것의 어려움을 형체가 정해지지 않은 시이나의 작품을 통해 생각하게 한다.
우리들의 삶이 과거에 매여 있기는 하지만 그 속으로 들어가 거기서 헤어나오지 못하면 안 된다. 과거는 현재를 살아가는 발판이 되어야 한다. 현재를 구속하는 장애가 아니라. 또한 사랑은 인간이 지닌 잃어서는 안 되는 삶의 요소다.
교단의 생존을 위해서 교배는 하지만 사랑은 거부하는 베네 게세리트들의 방식은 인류의 삶과는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이들의 성적 유혹에 침범당하지 않는 시이나를 작가가 창조한 것은 인간은 다른 존재에 의해 휘둘려서는 안 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명예의 어머니들과 베네 게세리트의 전쟁. 서로가 서로의 반쪽임을 인식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태. 즉 과거의 기억들을 보존하고 자손들을 퍼뜨리는 역할을 하는 것과 성적으로 남성들을 유혹해서 자신들의 뜻에 따르게 하는 것이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데...
그래서 명예의 어머니 출신인 무르벨라가 베네 게세리트의 최고 대모가 되고, 이 둘을 통합하는 역할을 맡게 될 수밖에 없다.
듄 출신인 시이나는 떠날 수밖에 없는 것이고. 다른 많은 갈등 요소들이 잠복해 있기는 하지만, 삶이란 그런 것 아니겠는가. 무엇 하나로 정해져 있지 않은, 순간 순간의 선택으로 다양한 삶들을 살아가게 되는 것. 여기에 사랑이라는 예측불가능한 변수가 바로 우리들의 삶이라는 것.
인류의 삶에서 그런 사랑을 거세해서는 안 되는 것이고, 사랑은 누가 누구를 이용하거나 종속시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이 사랑이 인류들 간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이런 사랑이 깃들여 있음을 알고, 그 존재 자체를 존중하고, 서로의 자율성 속에서 부딪치며 살아가는 것이 바로 인생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방대한 소설이다. 엄청난 우주 창조 속에서 다양한 존재들의 갈등 속에서 소설은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데... 각 권마다 숨어 있는 많은 요소들을 찾아낸다면, 그것들이 하나하나 토론의 주제가 될 수 있음을 생각한다.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대단히 흥미로운 소설이었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는 과거를 되풀이하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
당신은 인간이고, 인간들은 모든 것을 뷴류해서 꼬리표를 붙이고 싶어 하는 깊은 욕망을 갖고 있으니까요. ... 그렇게 하면 우리가 이름을 붙인 것에 대해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해의 소지가 있고, 아주 위험할 수도 있는 소유권을 당연한 듯 받아들이는 거지요. - P32
어떤 식으로든 폐쇄된 곳은 외부인들에 대한 증오의 비옥한 온상이 됩니다. 그것이 모진 수확물을 만들어내지요. - P35
삶은 항상 압력에 대한 반작용이었다. - P79
아주 깨끗한 석판을 가지고, 겉으로든 속으로든 아무것도 품지 않은 채 모든 것을 바라보아야 하오, 무엇이든 그 석판에 적히는 것은 저절로 적히는 거요. - P116
관료들이 지배적인 권력을 얻게 되면 항상 탐욕스러운 귀족으로 변한다는 걸 당신도 분명히 알고 있을 겁니다. - P160
억압받는 자들은 항상 억압자들의 행태를 배워 흉내 내곤 했다. 형세가 역전되면 복수와 폭력이 다시 한번 세상을 휩쓸고 지나갈 무대가 마련되었다. 서로의 역할이 바뀌었을 뿐, 그런 식으로 지겹도록 역할의 역전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 P253
배움에 천천히 제동을 거는 것은 성장이 아니라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의 축적이었다. - P341
지나치게 보수적인 사람이 된다는 건 뜻밖의 일에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뜻이었다.
- P559
고통을 보지 않은 사람은 두 번 생각해 보지도 않고 더 커다란 고통을 야기하기 쉽다. - P6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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