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이발소에 주로 걸려 있던 시가 있었다. 푸시킨의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 로 시작되는 말.

 

그 뒤의 구절은 잊어버렸지만, 아직도 이 두 구절은 머리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그만큼 강하게 다가왔고, 또 그 의미를 여러 번 되새길 대도 있었다.

 

공자가 말했다던가, 시로 말하면 이렇게 되는 이야기를 공자는 "애이불상(哀而不傷)"이라고 했다. 슬퍼하되 상처받지 말라고.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얼마나 우리는 삶에서 많은 좌절을 겪는가, 그를 삶이 속인다고 했는데, 장미빛 미래를 약속할 것 같았던 세상이 우리를 끝없는 나락으로 빠뜨리려 하고 있을 때, 이 말을 쓸 수 있다.

 

그래 삶은 늘상 우리를 속일 수 있다. 그것이 삶, 아니던가. 어느 나라 말인지 모르지만 "쎄라비"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그것이 인생이다!

 

삶에서 힘들고 괴로울 때 외로울 때 이렇게 시 한 편은 힘이 되어준다. 시를 내 곁에 가까이 두고 있으면 그만큼 나는 힘들 때 위로받을 수 있는 친구를 많이 두었다고 할 수 있다.

 

7-80년대엔 많은 학생들이 연필을 썼고, 연필 자국이 배기지 않도록 책받침을 공책에 받쳐놓고 글씨를 썼는데.. 그 책받침에 시가 적혀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림과 시가 어우러진 시화들. 그렇게 우리는 시를 삶에서 쉽게 접하고, 그 중 마음에 드는 시가 있으면 외우기도 하고 그랬는데...

 

정말로 세상이 힘들다고 느낄 때, 이육사의 "절정"을 읊기도 하고...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 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

어디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 한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감아 생각해 볼밖에 /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이 절망에서, 도저히 더 나아갈 곳이 없는 그런 상태에서도, 무언가를 했던 육사.

 

이 시에서 위로를 받곤 했다. 그런데... 지금...

 

자꾸만 과거로 회귀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우리 사회... 87년 민주화운동으로 참 많은 것을 이루었는데... 이제는 과거로 돌아가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무언가 잘못 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

 

특히나 젊은이들이 살기 힘들어진 시대. 그럴 때 이 책... 삶에게, 사회에게 책임을 모두 전가하면 안 되겠지만... 적어도 사회로 인해 내가 다치는 일은 없어야 하기에...

 

나를 먼저 추스리고 그 다음에 사회에, 삶에 정면으로 도전해야 하지 않겠는가.

 

신현림이 자신의 딸을 위해서 시를 편집해 내었다. 자신의 딸만이 아니라 그 나이 또래의 사람들이 읽고서 자신을 추스릴 수 있게, '슬퍼하거나 노여워 하지' 않고 세상과 정면으로 맞서 자신의 길을 갈 수 있게...

 

그래, 좋다.

 

이 시대. 시가 더 필요한 시대다. 상처를 치유한 개인들이 모여 우리를 이루고, 그 우리들이 모여 사회를 바꿀 수 있는, 그런 기회라고 생각하자.

 

그래서 시에서 많이도 멀어진 시대 같지만 오히려 시가 더 필요한 시기라는 생각이 든다. 시집을 읽자. 시를 읽자. 도약하기 위해서라도.

 

외국 시인의 시가 많은 것이 약간의 단점으로 다가오지만 그거야 뭐.. 시에 동서양을 따질 필요가 없으니...

 

이 시... 요즘 시대에 필요한 시가 아닌가 한다. 이미 우리는 잘 알고 있다고 하겠지만, 그래도... 시를 통해서 접하는 것과는 느낌이 다를 것이니.

 

슬퍼하지 마라

 

만사가 안 된다고 걱정하거나 마음 상하지 마라.

생명수는 어둠 속에 있으니

형제들이여, 가난을 슬퍼하지 마라.

역경 속에 기쁨이 숨겨져 있으니

세월의 모순된 변화에 슬퍼하지 말고 참아라.

쓰디쓴 날 뒤에 반드시 다디단 날이 오리리.

 

- 사디

 

신현림 엮음, 딸아, 외로울 때는 시를 읽으렴1-인생편. 걷는나무 2013년 초판 29쇄. 1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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