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 갔다. 최근에 나온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이란 책을 보고 싶어서. 그 책을 빌리려고. 그것도 만화이지 않은가. 그런데 한 순간 제목이 생각이 안 났다. 기껏 생각난 것은 그것이 아나키스트에 대한 만화라는 것.

 

머리 속에는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죽음"이란 제목만 떠올랐고... 이게 그 제목인가 하고 이 책이 있냐고 물었더니 오래 전에 품절된 책이라고 한다.

 

'어? 이상하네. 올해 나온 책이라는데...'

 

인터넷 서점 사이트에 들어가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죽음'을 쳐본다. 책 표지의 사진이 나오는데, '어라, 이 책은 우리 집에 있는 책인데... 내가 읽은 책인데.. 그거 두루티에 관한 책이잖아. 이 책은 아닌데...' 하고 만다.

 

아무리 쳐도 이 책밖에는 없다.

 

그러면 분명 제목을 착각한 거다. 어리석게도 검색어를 '무정부주의자'로 친다. 또 똑같은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죽음"만이 뜬다. 이게 뭐야. 착각을 해도 너무 했나 싶다.

 

그런데... 누군가 혹시 이 책 아니냐고 한 책을 가져다 보여 준다.

 

 

"맞아요. 이 책이에요." 그러고 나서 제목을 보니... 이런... 참.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이다.

 

아나키스트를 무정부주의자라고 불렀던 예전 책들을 읽은 부작용이 제목을 착각하게 하고, 신문에 소개된 내용에 의하면 아나키스트가 죽었다고 하니, 고백이 죽음으로 변형이 되어서 머리 속에 남아 있었나 보다.

 

그래도 운이 좋다. 이렇게 책을 찾을 수 있었으니... 하여 토요일에 이 책을 열심히 읽었고, 젊은날의 이상과 나이 들어서의 좌절을 간접 경험할 수가 있었는데...

 

이 만화에 반갑게도 "두루티"가 나온다. 그가 암살당하고 그 신발을 행운의 신발이라고 신고 다니는 한 아나키스트, 그리고 그가 죽은 뒤 그 신발은 주인공인 '안토니오'가 신고 다니는데...

 

결국 이 만화와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죽음'이 이렇게 만나게 된다. 만화에서 두루티의 신발은 주인공이 더 이상의 이상을 포기할 때 태워버리게 된다. 그렇게 두루티는 주인공의 삶에서 사라지고, 우리의 기억 속에서도 사라진다.

 

하지만 책으로 남아 아직도 우리에게 아나키스트의 이상이 죽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아나키즘의 이상에 더 다가는 책이 있으니, 그것은 에스페란토어에 관한 이야기, 그 말을 만든 자멘호프라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바벨탑에 도전한 사나이"

 

평화의 언어, 에스페란토. 지금도 평화를 꿈꾸는 아나키스트들은 공통어로써 에스페란토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들의 언어는 국제적인 협력을 이루어내고 있으며, 특정 국가의 언어가 다른 언어 위에 군림하는 일을 막고 있다.

 

그래서 아나키스트의 이상은 "에스페란토어"를 통해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다. 이렇게 만난 세 책.

 

권위주의가 넘치고 있는 지금 이 땅에... 자율, 자치, 상호성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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