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順天)

- 강은 길이다


큰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는 말을 왜곡한 토건족은 더 큰 도로를 내기 위해 운하 건설의 삽을 뜨는데, 이는 불필요한 항생제 남용으로 면역력을 저하시키듯 정비란 처방을 일삼아 강의 자정능력을 떨어뜨리는 일인데, 길은 도로가 아닌 골목길, 늙은길*임을, 늘 우리와 함께 해 온갖 것들을 감싸안고 그렇게 제 길을 가고 있을 뿐이니 강물이 연 길에는 사람도, 짐승도, 나무도, 풀도, 돌멩이도, 흙도, 보이지 않는 것들도 모두 함께 하고 있음이니.


토건족에겐

길이란

도로일 뿐

쭉 쭉

씽 씽

곧게, 곧게

넓게, 넓게

빠르게,

쉬어야 한다고?

휴게소 건설

주변은 

방해물

주변을

살펴

달려!

오직

뚫음이

가둠이 되는

역천(逆天)


본디 강이란 직선이 아닌 곡선, 빠름이 아닌 느림, 젊음이 아닌 늙음으로 이것 저것 밀고 당기고 가두고 거두고 모든 것을 아우르며 보듬어 안는 것이나니, 이것이 비로소 길을 연 강물이었나니.


강물이 

길을 열기 위해선

밀어내고 떨궈내는 것이

아니라

다름과

함께 하고 있어야

함이니, 그것이

자연의 이치일지니.

 

 

*이육사, 광야에서

*김훈, 섬진강 기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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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07 08: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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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07 13: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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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내지 않을 편지 3


  미네르바를 만났습니다. 남들이 좋다는 과정을 밟아 얼굴에 구김이 하나도 없는 아이였지요. 마음이 편해지고 즐거워지는 순간 앞에 있는 것이 당신이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직 살아온 날이 적은 당신이지만, 하늘 무게가 너무 무거워 보이는 당신이기에, 보통 과정을 밟는 당신이기에, 당신이 미네르바처럼 즐겁고 당당하게 세상을 살았으면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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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31 09: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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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31 09: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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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 무너짐

- 삶과 죽음


선이 있다고

명확한 경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삶을 충실히 살고,

죽음을 향해 가야한다고,

한 면과 다른 면이

같지 않다고,

만나지 않는다고,

선을 넘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안과 밖이

하나임을,

한 쪽을 달리다 보면

이미 

다른 쪽에 와 있음을,

선과 선이

엉켜있음을,

삶이 곧 죽음인 것을

나이 들어

비로소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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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4 09: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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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4 09: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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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의 죽음을 꿈꾸며

- 어느 먼 앞날에 알량한 생각의 권리는 무덤 속으로 가고, 우린 좋은 건 무조건 함께 갖고 느끼게 되었나니


좋은 건 나누자.

내 것, 네 것이 아니라

우리 것.

함께 하는 것일 뿐이다.

함께 읽고, 느끼고

권유하는 것

왜 가운데 돈이 있어야 하나.

쓸모를 살리고

돈에서 벗어나

사람이 사람을

사람으로 보게 하자.

줄 수 있다는 것,

대가 없이 그냥, 그냥,

좋아서 준다는 것

사람이 사람인 이유일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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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온 2018-01-17 08: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 좋은 것을 만드는 것이 생업이고 그것으로 생존을 지탱받는 예술가, 창작자들을 위해서는 필요하죠. 너무 낭만적인 생각이에요.

kinye91 2018-01-17 08:21   좋아요 1 | URL
너무 낭만적인 생각이라는 것에 동의합니다. 그들의 생존, 생활에 필요한 대가는 반드시 지불해야 하죠. 물론 돈을 떠나 재능을 기부하는 사람들도 많고요. 하지만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해요. 저작권이라는 것에 너무 옭아매여있지 않나 하는...

2018-01-17 09: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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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17 13: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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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넋들을 위하여


순간

퍽~ 불꽃이 일고

몸은 그 자리에서

뜨거운 불덩이가 되었다

멈추지 않는 속도가

불을 일으켜

피할 수도 없었던 불길

소리조차 지르지 못 하고

형체조차 남기지 못 하고

불꽃으로 변한 순간


세상은 아비규환

의지와는 전혀 관계없이

남의 뜻에 의해

내 몸이 찢겨지는 고통

산산히 흩어지는 영혼

그리고

영원히 남은 그 찰나


속도를 줄이고

주변을 보아야 한다

내 주위에

떠다니는 영혼이

얼마나

많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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