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 정치인류학 논고
피에르 클라스트르 지음, 홍성흡 옮김 / 이학사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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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샀다. 사실 아나키즘과 관련이 될 거라는 생각에 망설이지 않고 산 책이고. 이 책은 정치인류학 논고라는 작은 제목이 붙어 있듯이, 아메리카 인디언 사회를 분석한 책이다.

 

아메리카 인디언 사회를 사람들은 흔히 원시사회라고 말한다. 이들은 국가를 형성하지 않았기에, 원시사회라는 말은 진보가 되지 않은, 무언가 부족한 사회라는 생각을 하기 쉽지만, 이 책의 저자는 인디언 사회를 원시사회라고 하는 것과 뒤쳐진 사회라고 하는 것은 관계가 없다고 한다.

 

원시사회를 뒤쳐진 사회라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직선적 사고 방식에 빠져 있기 때문이고, 이런 직선적 사고방식은 서구의 역사를 바라보는 방식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만약 역사가 이렇듯이 단계적으로 직선으로 발전하는 것이라면 1900년대까지 국가 없는 사회가 어떻게 남아 있겠는가라는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즉 우리는 편의상 원시사회라고 하지만, 이는 인류가 구성한 최초의 또는 바람직한 사회 형태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렇게 보면 원시사회라는 말은 곧 아나키 사회라는 말과 통하고, 박홍규가 북아메리카 인디언 사회에서 아나키 사회를 보고 "인디언 아나키 민주주의"라는 책을 썼지만, 이 책은 그것보다 훨씬 전에 나온 남아메리카 인디언 사회의 아나키 민주주의를 알려준 글이라고 할 수 있다.

 

한 권의 책을 기획하고 쓴 글이 아니라, 여러 매체에 발표했던 글을 모은 책이긴 하지만, 내용은 매 마지막 장인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로 수렴된다.

 

그래서 각 글들은 독립적이지만 서로 연결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아나키적인 생활 아니겠는가. 나는 나대로 살지만 우리로서 살아간다는.

 

인디언 사회에서도 물론 부족이 존재하고, 부족은 부족들끼리 나름대로의 규칙을 지니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들도 추장을 선정한다. 그러나 그 추장은 우리가 생각하는 지도자가 아니다.

 

추장의 특징을 이 책에서는 세 가지, 아니 하나를 더해 네 가지로 정리해 놓고 있다.

 

1) 추장은 "평화의 중재자"이다. 그는 집단의 조정자로서 그것은 때때로 평화로울 때 와 전쟁할 때의 권력의 분화로 나타난다.

 

2) 추장은 자기의 재화에 대해 집착해서는 안 된다. "피통치자들"의 끊임없는 요구를 거절할 수 없다. 거절하는 것은 곧 스스로를 부정하는 것과 같다.

 

3) 말을 잘하는 자만이 추장의 지위를 얻을 수 있다. (39쪽)

 

4) 사회-정치적 단위의 형태와 인구 규모를 불문하고 거의 모든 사회가 일부다처제를 인정하나, 또한 이들 사회의 대부분이 그것을 추장의 배타적 특권으로 인정한다는 사실이다. (43쪽)

 

이것은 바로 교환이라는 것이다. 추장에게는 자신의 이러한 역할에 따른 교환으로 여자들이 따라오는 것이고, 이 교환에 실패한 추장은 자격이 없는 사람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러니 그가 권력을 강화해서 자신의 지배권을 돈독하게 한다는 얘기는 성립할 수가 없다고 한다.

 

여기서 말을 한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말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말하는 권력을 소유하는 것이다. 또는 권력의 실천은 말하기의 지배를 확실하게 하는 것, 즉 주인만이 말할 수 있는 것이다. (190쪽)

 

라고 하는데, 인디언 사회에서 말하기는 추장의 의무라고 한다. '추장은 사람들에게 들려주기 위하여 말하는 것이 아니다.'(193쪽).라고 한다.  추장의 말하기는 '의례화된 행위'(193쪽)에 불과하여 그는 '거의 매일 지도자는 새벽이나 황혼 무렵에 자기 집단에게 말을 걸어야'(193쪽) 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자기가 하던 일을 할 뿐이라는 것이다.

 

도대체 이 말은 사회를 유지 결속시켜주는 역할을 하고, 이 말을 하는 사람이 단지 추장일 뿐이라는 것이다.

 

우리네 말과 엄청나게 다르다. 우리는 조금 높다 싶은 사람이 말을 하면 그 말은 곧 성문화된 법의 위력을 지니고 사회에 작동하기 시작하는데... 인디언 사회에서 이런 말의 권력은 없다고 한다.

 

그래서 글쓴이는 이러한 인디언 사회는 '고대적 사회, 각인의 사회는 국가 없는 사회,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이다. 모든 신체에 똑같이 새겨진 각인은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즉 너희들은 권력의 욕망을 지니지 않을 것이고 복종의 욕망을 지니지 않을 것이다.'(232-233쪽)라고 말한다.

 

그렇다. 우리들이 추구하는 사회는 지배자가 없는 사회이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인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라는 장에서 앞에서 이야기한 모든 내용들을 정리하고 있다.

 

왜 그들은 국가를 만들지 않았는가? 그것은 필요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왜 잉여생산물을 만들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노동하지 않았는가?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왜 그들은 지도자에게 권력을 부여하지 않았는가?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잘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 반대로 그렇게 하지 않았기에 잘 살 수 있었다고 해야 한다.

 

이제야 겨우 8시간 노동제를 쟁취한 나라, 선진국이라고 하는 데는 6시간 노동제를 실시하고 있기도 하지만, 인디언 사회에서는 정말로 많이 일해야 4시간 노동이었다고 하니... 그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환경에 최적화된 노동만을 했을 뿐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우리의 환경을 파괴하고, 우리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노동을 인디언 사회보다 두 배 이상 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러면서도 우리는 모두 삶에 허덕대며 노동의 늪에서 권력의 눈치를 보며 허우적 거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어쩌면 이 책은 이미 존재하고 있는 인디언 사회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그 노동의 늪에서, 권력의 늪에서 벗어나라고 우리가 잡고 나올 막대기를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벌써 40년 전에... 그런데 우리는 스스로 그 막대기를 필요없다고, 이 곳이 바로 우리가 살 곳이라고, 이 곳 아니면 우리는 살 수가 없다고, 권력을 스스로 인정하고, 불필요한 노동을 하면서 살아오지는 않았는지...

 

아직도 늦지는 않았다. 최근에 아나키즘이 다시 고개를 들고 나오는 이유도 우리가 더이상 늪에서 허우적거리다가는 영원히 빠져나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 때문이지 않겠는가.

 

아나키즘은 우리에게 막대기를 다시 던져주고 있다. 잡고 나오라고. 충분히 나올 수 있다고. 그것은 바로 우리 의지 문제라고.

 

내용들이 전문적인 것도 있지만... 맨 마지막 장을 읽으면 다 잘 정리가 된다. 아니, 마지막 장 하나만으로도 충분할지도 모른다. 이 권력과 노동의 늪에서 빠져나오는 데는.

 

그래도 '교환과 권력:인디언 추장제의 역할', '활과 바구니', '말하기의 의무', '원시사회에서의 고문',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이렇게 다섯 장은 꼭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고, 우리 삶을 되돌아 볼 수 있고, 이 늪에서 나와야 한다는 생각이 들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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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사도 - 도킨스가 들려주는 종교, 철학 그리고 과학 이야기
리처드 도킨스 지음, 이한음 옮김 / 바다출판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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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유전자"로 유명한 리처드 도킨스의 글 모음집이다.

 

그의 글들을 모아 놓아서 도킨스의 자전적 성격이 강한 글인데, 악마의 사도라는 말은 다윈의 글에서 따왔다고 한다.

 

신의 입장에서 보면 이렇게 진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악마의 사도일지도 모르겠다. 요즘도 창조과학학회라는 곳에서는 학교에서 과학 시간에 진화론을 가르치면 안된다고 하니 말이다.

 

그들에게 인간을 비롯한 동물들이 환경에 따라 서서히 변화해왔다는 진화론은 받아들일 수 없는 주장이고, 신을 거부하는 주장일테니, 모든 학생들이 배우는 과학시간에 진화론을 가르치는 것을 반대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 창조론자들의 가장 대척점에 서 있는 사람이 바로 리처드 도킨스이고, 이 책 곳곳에서 그는 이러한 창조론자들에 대해서 혐오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심지어는 창조론자들과 하는 토론회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자신이 그런 토론회에 참석하는 것 자체가 창조론자들을 돕는 행위라고까지 하니, 창조론자들에게 도킨스라는 사람은 정말 악마의 사도일지도 모르겠다.

 

그는 이성의 힘을 믿는다. 그리고 이성의 힘이 바로 우리 인간을 인간답게 한다고 믿고 있다. 이성의 힘을 믿기에 교육에도 관심이 많다.

 

학생들을 그릇된 방향으로 이끄는 교육에 대해서 상당히 비판적이다. 이미 다른 책에서도 만나볼 수 있는 '위험을 무릅쓰며 사는 기쁨:온들의 샌더슨' 같은 글은 지금 우리 교육현실에서도 참조할 점이 많다.

 

작년 세월호 사건으로 인해 학교에서 "안전, 안전"하는 목소리가 더 커졌고, 심지어 단체활동을 할 때는 안전지도사가 없으면 단체활동도 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소리도 있는데...

 

'온들의 샌더슨'은 반대로 주장하고 있다. 학생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무언가를 해보지 않으면 어떻게 발전하겠는가라는 질문을 하는 것이다. 이는 외국에서 놀이터를 너무 안전하게 만드는 것에 반대하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큰 사고가 나지 않도록 방지해야 하겠지만, 충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하겠지만, 안전 만능주의로 가서는 발전이 없다는 것도 사실이지 않을까.

 

이런 점에서 이 책에 실린 '온들의 샌더슨'은 꼼꼼하게 읽어볼 필요가 있다.

 

마찬가지로 그는 이성의 힘이 사람을 사람답게 하기에 이 책의 맨 마지막 장에서 딸에게 쓰는 편지인 "믿음의 좋은 이유와 나쁜 이유"에서 조심해야 할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증거는 무언가를 믿기 위한 좋은 이유가 되지. 그리고 나는 무언가를 믿기 위한 나쁜 이유 세 가지를 조심하라고 네게 알려주고 싶어. 그것은 '전통', '권위', '계시'라고 불리지.' (449쪽)

 

이 말은 우리 모두에게 해당된다. 우리는 무언가를 믿을 때 증거에 기대지 않고 전통이나 권위 또는 계시에 의존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사실이 아닌 것을 믿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무언가에 대해서 들었을 때 그것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습관을 지니는 것이 좋겠다.

 

도킨스의 생각이 잘 드러나 있는 이 책. 도킨스라는 생물학자가 들려주는 과학이야기와 더불어 종교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삶에 관한 이야기를 이 책에서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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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는 삶이다 - 복지국가 전문가 이상이의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도전
이상이 지음 / 밈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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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들은 선거철만 되면 복지를 말한다.

 

아니다. 선거철만 되면이 아니라, 선거철에만 복지를 말한다. 그들에게 복지란 투표용지에 다름 아니다. 그러니 복지는 선거가 끝나고 나면, 이미 당선이 확정되면 폐기처분되고 만다.

 

그렇게 몇 년을 폐기처분되었다가 다시 선거철이 되면 또 나타난다. 이번에는 진짜라고, 꼭 실현하겠다고... 마치 양치기 소년 같이 또다시 복지를 들먹인다.

 

"복지가 나타났다! 복지를 이루겠다! 내가 하겠다! 우리가 하겠다!"

 

양치기 소년은 쉬지 않고 소리 친다. 그런데 아직 이 양치기 소년이 거짓말을 세 번을 하지 않았는지, 아니면 딱히 다른 말을 믿을 것도 없다고 여기는지 사람들은 이런 말을 또 믿어준다. 이번에는 복지가 이루어지겠지 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이 역시나로 끝나고, 사람들은 이제 복지는 우리나라에서는 불가능하다고, 보편적 복지는 불가능하니 선별적 복지나 제대로 하자고 말한다. 그리고 그런 정치인들을 지지한다.

 

얼마나 당했으면 하는 마음이 일기도 하지만, 양치기 소년은 거짓의 대가를 호되게 치렀는데, 우리 정치인들은 거짓의 대가를 아직도 치르지 않고 있다. 그러니 거짓이 반복될 수밖에.

 

이 책은 복지전문가, 아니 복지국가 전문가인 이상이의 주장이 나타난 글이다. 우리나라 복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대안을 제시하는 책이겠거니 했다가 처음을 보고 놀랐다.

 

어린시절 자신의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어린 시절, 사고로 후천적 지체장애인이 되어야 했던 자존감을 잃었던 학창시절, 공부로 극복하고, 우여곡절 끝에 의대에 들어가 비로소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았던 젊은 시절.

 

자서전을 읽는 느낌을 주었다. 처음 부분은. 그의 자전적 내용으로 책이 끝까지 이어지는데, 이런 청년 시절을 거쳐 그는 보건의료정책의 전문가가 되어 우리나라 보건의료의 공공화를 위해 노력을 한다.

 

그가 개입한 일만 해도 많은데, 그 중에 현대사의 격랑을 거쳐온 것들을 이야기하면 의료보험의 국민건강보험으로의 통합, 의약분업, 의료민영화 저지, 건강보험 하나로 등이 있다.

 

이렇게 의료 분야에서 전문가로 활동하던 그가 의료분야 만으로는 우리나라 복지를 이룰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른다. 그래서 이 때부터 그는 복지 전문가가 아닌 복지국가 전문가가 되기로 한다.

 

함께 모여 공부하고 홍보하고, 정책을 강제하고 하는 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한다. 그런 노력을 지금까지 하고 있는데, 여러 시민단체와 연계하여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활동이 효과가 있으려면   

 

'역동적 복지국가로 가기 위해서는 세 축의 동시 전략이 필요하다. 첫 번째 축(X)은 복지국가의 담론과 정책을 생산하는 일이다.  ... 두 번째 축(Y)은 복지국가의 담론과 정책을 풀뿌리 시민사회 속으로 확산하는 일이다.  ... 세 번째축(Z)은 복지국가 청치세력화이다.' (282쪽)

 

이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그런데 과연 그러한가. 첫 번째, 두 번째 것은 그가 속해 있는 단체와 또 여러 시민단체들이 연합하여 어느 정도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나 세 번째 축은 아직도 요원하다.

 

진보정당이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작용하고 있겠지만, 제1야당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데도 큰 원인이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박근혜 정부가 복지국가 공약을 철회 또는 파기하는 데서 보듯, 야당의 적극적인 비판과 견인 없이는 이 정권이 스스로의 의지로 복지국가를 건설할 가능성이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야당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 어떻게 해서든 현 정부가 복지국가의 길로 나아가도록 정치력을 행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일을 할 의지와 능력이 없어 보인다.' (280쪽)

 

그러니 여당이나 청와대가 잦은 실정으로 민심을 잃어가도 야당이 떠오르지 않는다.

 

왜? 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제대로 된 정책 하나 내놓지 못하고 있으며, 정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뿐만이 아니라 집권 여당이나 청와대에 대해서 제대로 견제조차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니 복지정책은 자꾸 후퇴만 하고, 대통령의 공약을 하나하나 철회하고 폐기해도 어쩌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정치권을 어떻게 확보해야 하나? 이는 선거제도의 개선을 통해선만이 가능하다. 지금의 선거제도로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또 그놈이 그놈인, 양치기 소년들만 득시글거리는 정치권을 양산할 뿐이다.

 

하여 그는 말한다.

 

'복지국가 정치의 기치는 장차 이런 변화의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가능해지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선거제도가 지금의 소선거구 단순다수대표제에서 비례대표제를 대폭 강화하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래서 실질적인 다당제가 출현해야 한다. 이는 자연스럽게 합의제 민주주의의 새로운 정치질서를 만들어낼 것이며, 이런 정치 환경 속에서 복지국가 건설 과제는 꾸준하게 추진될 수 있을 것이다.' (283쪽)

 

이 말이 맞다. 그러나 시민들 다수가 선거제도의 개혁을 강제할 수 있는 힘이 없다면 이미 기득권을 차지하고 있는 정치세력들이 선거제도를 개혁할 리가 없다.

 

그러니 뭐니뭐니 해도 깨어 있는 시민들이 많아져야 하고, 그들이 각자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 책을 보면 이런 사정을 그는 진보정권 10동안 뼈저리게 깨달았다. 시민들의 힘이 있어야 정책을 강제할 수 있음을, 진보 정권이라고 해도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치고 민영화라는 이름의 사영화 정책을 펼쳐서 공공성을 해칠 수 있음을 자신의 사례를 통해 잘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사영화나 공공성 파괴를 막는것은 결국 정치권이 아니다. 정치가들이 어떻게 변질되는지는 이 책에 언급된 우리가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정치가들을 통해서도 알 수가 있다. 그러니 우리가 깨어 있어야 한다.

 

우리가 깨어있어야 하기 때문에 이상이는 '복지국가 소사이어티'를 창립하여 복지 담론을 만들어내고 또 홍보하고 퍼뜨리고, 현실성 있는 정책으로 다듬어가고 있는 것이다.

 

하여 이 책은 우리가 살아야 할 국가의 모습에 대해서, 우리 모두가 행복한 국가는 어떤 국가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천천히 읽으며 30여 년간 우리 사회가 어떻게 공공성을 확보해 왔는지, 어떻게 복지가 확대되어 왔는지를 살펴 보자.

 

여기에 더하여 그럼에도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음을 직시하고 그렇게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일지 생각해 보자.

 

너무 좋게 읽었다. 한 사람의 일대기로 읽어도 좋고, 우리나라 현실에서 어떻게 복지를 이룰 것인가를 중심에 놓고 읽어도 좋은.

 

덧글

 

참... 이 책에서 보편적 복지를 이루기 위해서는 세금을 올릴 수밖에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세금을 올리지 않고 복지 정책을 펴는 것은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증세를 이야기하지 않는 복지 정책은 양치기 소년의 말과 같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국민이 모두 증세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국민이 증세를 반대하는 것은 세금이 제대로 쓰인다는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세금이 정말 필요한 곳에, 보편적 복지 실현에 제대로 쓰인다면 우리 국민들도 증세에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증세를 국민들이 반대한다는 것은 세금 내기 싫어하는 국민들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되고, 지금까지 얼마나 세금 운용을 잘 못했으면 국민들이 그렇게 생각할까 정치권은 고민해야 한다.

 

보편적 복지로 세금이 제대로 쓰인다는 믿음이 있다면 세금 증세에 누가 반대하겠는가. 그런 믿음, 지금까지는 정치권들에 양치기 소년들이 너무도 많았기에 국민들이 반대하는 것이다.

 

국민을 비난하기 전에 정작 비난을 받을 사람이 누구인가 먼저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또 하나, 그는 보건의료 활동과 국민건강보험 통합, 의약분업 등으로 의료 공공성을 확장하는데 앞장섰다. 그 결과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이었다. 1심 재판에서 유죄, 2심 재판에서 선고유예, 3심에서 무죄 파기 환송, 결국 최종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지만, 그 과정이 무려 8년이 걸렸다고 한다.

 

김대중 정부 말기였고, 재판 진행은 노무현 정부 때 계속 이루어졌다. 의료 공공성이 사회주의, 공산주의 정책이라고? 북한에 동조하는 것이라고 그랬단다. 물론 무죄 판결이 나긴 했지만... 이런 국가보안법, 아직도 무섭게 존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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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전환 - 21세기 노동해방과 녹색전환을 위한 적록동맹 프로젝트
김현우 지음 / 나름북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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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전환"

 

전환이 필요한 때임은 확실한데, 어떤 전환을 이루어야 하느냐에서 "정의로운" 전환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책.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말이 우리나라보다는 외국에서 먼저 쓰였고, 영어로는 'just trasition'이라고 하는데, 이 개념이 어렵다면 조금 쉽게 노동운동과 환경운동이 결합하는 일이라고 보면 된다.

 

예전에 "녹색은 적색이다"라는 책도 있었고, "녹색희망"이라는 책도 있어서 노동운동과 사회주의 운동, 그리고 환경운동이 따로 가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가야 함을 주장하기도 했었는데, 이 '정의로운 전환'은 이를 현실에 맞게 구체화시킨 운동이라고 보면 된다.

 

하여 사회를 위협하는 일자리를 그냥 없애자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자리를 사회에 유용한 일자리로 전환하는 노력을 하고, 그렇게 하자는 운동, 이것이 바로 '정의로운 전환'이다.

 

자동차가 배출하는 배기가스가 지구 온난화의 주범이니 자동차 산업을 모두 없애야 한다고 말하기는 쉽지만, 자동차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에겐 자신들의 생계가 걸린 문제이니, 자동차 노조에서 자동차 산업을 폐기하자고 주장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여기에 적용될 수 있는 '정의로운 전환'은 무엇인가? 

 

다양한 방법들이 있겠지만, 이를 친환경적인 산업으로 전환하는 일이다. 자동차 기술이 다른 교통 관련 기술에도 쓰일 수 있으므로, 이들의 기술을 친환경 분야의 기술로 전환하게 하여 고용과 환경을 함께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것. 그것이 바로 '정의로운 전환'이다.

 

이러한 '정의로운 전환'이 우리나라에서 언제 시도가 된 적이 있었나? 적어도 전환까지는 안 갔더라도 함께 할 수 있음을 보여준, 그래서 '정의로운 전환'의 단초를 보여준 일이 바로 밀양의 송전탑 건설 반대 운동에 영남권 건설 노동자들이 밀양 송전탑 공사 협조 거부 의사를 밝힌 적이 있고, 반대 운동에 함께 했던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노동자와 송전탑' 참조)

 

건설 노동자들은 송전탑을 건설해야 하지만, 그 송전탑이 환경에도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고 그들은 건설 협조 거부 표시를 한 것이다. 이렇게 서로 함께 할 수 있음을 잘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원자력 발전, 즉 핵발전에서도 마찬가지다. 핵발전노조는 그들의 기술이 재생에너지 기술로 전환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런 전환이 가능함을 보여주어야 하고, 환경 운동도 마찬가지로 "핵발전 폐기하라"에서 한 단계 나아가 핵발전을 폐기하고, 이런 발전으로 전환하면 노동자도 좋고, 시민들도 좋고, 자연에도 좋은 방법이 있음을 제시해야 한다.

 

그런 사례들은 이미 외국에서도 많이 나와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이것은 노동자들과 환경 단체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면 될 일이고, 그래서 비정기적으로 이루어진 이들간의 만남이 정기적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이 책에서도 나오는데 누군가 그랬다고 한다. 노동운동 단체와 환경운동 단체에서 한 명씩이라도 서로 사람을 파견보내 인턴 근무를 하게 하자고. 돈이야 각 단체에서 대면 되니, 이렇게 인적 교류가 이루어지면 자연스레 내용 교류도 이루어지고 대안을 함께 마련해 갈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이 책 244쪽부터 248쪽 참조)

 

이것이야말로 노동운동이나 환경운동 단체의 지도부가 먼저 해야할 일 아니겠냐고. 지도부는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급급하는 것이 아니라 당면문제부터 먼 과제까지 내다보고 대책을 세우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지도부가 힘든 것이기도 하겠고.

 

그래서 이 책의 마지막에 지은이가 한 말이 아프게 다가온다. 좋은 말은 역시 입에 쓰다. 그러나 현실을 직면하게 한다.

 

이제는 노동운동과 환경운동이 함께 가지 않으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그러니 이 책에서 말걸기를 시도한 지은이의 말에 적극 응답해야 한다.

 

'... 민주성과 계급성을 잃지 않고 조직을 잘 지켜온 노동조합들이 지역사회 실천과 녹색전환에서도 앞장서고 있다. 이미 코앞으로 다가온 미래를 선취하지 않는다면 궁색하고 외로운 방어 투쟁으로 끊임없이 후퇴하고 말 것이다. 후퇴가 아닌 공세를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면 이제 거기에는 노동과 산업 자체의 전환, 우리의 살림살이와 유대 방식의 전환을 위한 모색이 함께해야 한다. ... 이 책은 그런 기대를 담아 적색과 녹색, 녹색과 적색의 씨앗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말 걸기다.' (2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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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 그 먼 길 - 우리 사회 아시아인의 이주ㆍ노동ㆍ귀환을 적다 우리시대의 논리 15
이세기 지음 / 후마니타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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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 시대라고도, 지구촌이라고도, 국경이 없는 세상이 되었다고도 하는데, 그래서 이주노동자들이 세계 각국으로 퍼져 살고 있는 세상이 되었는데, 과연 그런가 하는 의문이 든다.

 

특히 이런 종류의 책을 읽으면 더 큰 의구심이 든다. 세계화시대, 지구촌이 맞아?

(국경 없는 마을, 말해요 찬드라. 아빠 제발 잡히지마, 완득이 등등)

 

우리나라도 이제는 바야흐로 다문화국가가 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농촌에 가면 다문화가정들이 급속도로 늘고 있고(이들은 결혼으로), 도시에 가면 공장에 이주노동자들이 모여 살아서 다문화 주거지역이 있고(이들은 합법이든 불법이든 이주 노동자들이 모여들어서 집단 주거지를 이루고 있다), 서울에는 '지구촌 학교'라는 다문화 학교도 있다.

 

그런데, 다문화 다문화 하는데, 이 다문화는 사실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 문화에 빨리 동화되기를 바란다는 의미로 많이 해석이 된다. 그들이 우리나라의 문화에 빨리 적응하도록 교육하는 쪽으로 흐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인데...

 

이 책은 이런 다문화 시대, 지구촌 시대에 과연 그러한가 하는 의문을 가지고, 우리나라에 들어온 이주 노동자들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해주고 있다.

 

아주 오래 전 이야기가 아닌 불과 몇 년 전 이야기. 이주노동자가 합법적으로 '산업연수생'이라는 명목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 1994년이니, 올해로 20년이 되었다. 물론 그 전에도 이주 노동자들은 있었을테고, 본격적으로 이주 노동자들에 대해서 관심을 가진 것이 이 때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산업연수생 제도는 말대로 연수생, 즉 기술을 가르친다는 의미보다는 싼 값에 노동력을 착취하는 현대판 노예제도라는 비판을 받았고, 이들 중 대다수는 차별과 학대를 견디지 못하고 돌아가거나 산업현장을 이탈해 불법 이주 노동자가 되기도 했다.

 

그 후 산업연수생 제도는 고쳐졌지만, 이주 노동자에 대한 법적인 처우는 아주 조금 좋아진 정도지, 국제협약 수준에도 못 미치는, 그들에게 아주 불리한 제도로 우리나라에 남아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합법으로 들어와도 곧 불법의 신세로 자의적이든 타의에 의해서든 전락하고 마는데, 이들은 이런 상태로 10년 20년을 우리나라에서 일해도 한 순간에 추방당할 위험에 처해 있다.

 

불법 이주 노동자들의 삶. 그것은 인간이 견디기 힘든  일이고, 이런 이들의 신분을 이용해서 10시간 이상의 노동을 강요하고, 임금이 체불되는 경우는 다반사고, 아예 주지 않는 경우도 많고, 또 퇴직금을 떼어먹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고 하니, 이들이 '코리안 드림'이라는 꿈을 안고 우리나라에 왔지만, 이들에게 닥친 현실은 차별과 학대, 그리고 돈을 주지 않고 추방하는 그런 고통이 될 경우가 많다.

 

과연 이런 사회를 다문화 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 이 책에서 이주민들은 말한다. 우리도 사람이라고. 당신들과 똑같이 빨간 피를 지닌 인간이라고. 우리를 피부색이나 언어로, 또 출신 국가로 차별하지 말라고.

 

그렇게 차이를 보기 전에 같은 사람임을 보라고. 그들은 절규한다. 그들이 많은 것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단지 그들도 사람으로, 같은 사람으로 대우해 달라는 것, 그것이 바로 그들이 바라는 꿈이다. 희망이다. 이건 희망이라고 하기에도 창피한 일이다. 그렇게 만든 우리 사회가.

 

적어도 이 나라에서 3년 이상 일했다면, 아니 이 나라에서 기간에 상관없이 일하고 있다면 이 나라 사람들이 받는 권리와 동등한 권리를 이들에게도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들에게도 최저임금을, 근로기준법 상의 노동시간과 초과수당 등의 임금을, 또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권리를, 교육받을 권리를, 쉴 수 있고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사람으로서 당당하게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는 권리를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진정한 다문화 사회 아니던가.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말이 있다. 사람은 사람으로서 누구가 동등하다는 말이다. 동등한 사람으로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자꾸 돈 위에 돈 있고, 돈 밑에 사람 있다는 말로 이 속담이 바뀌어 들리는 것은 웬일일까?

 

지구촌 시대라고 하지만 돈에는 국경이 없고 차별이 없는데, 사람에게는 국경이 있고 차별이 있으니, 지구촌, 세계화는 돈에만 해당이 되는지...

 

그래서 힘있는 나라에 온 사람들은 같은 이주민임에도 대우받고 존중받는데, 못 사는 나라, 힘 없는 나라에서 온 사람들은 차별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너무도 절절한 차별의 현장, 그러나 사람이 살아 있는 현장의 모습이 이 책에 담겨 있어서 읽으면서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나 역시 우리나라에서는 기득권을 누리는 사람이기에, 나 역시 알게모르게 이들을 차별하는데 가담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 가만 있는 것이 차별에 가담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편하지 않다.

 

적어도 주변에서 이주 노동자들을 보면 시선을 피하는, 찡그리는 모습을 보이지 말아야 하겠단 생각을 하게 됐다.

 

이제 우리는 순혈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니, 순혈주의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양성이 인간을 지금의 인간으로 만들었을텐데, 무슨 순혈?

 

이 책에 나오는 말이다. 화이부동(和而不同).-36쪽

 

말을 바꾼다. 대동소이(大同小異)

 

그들과 우리는 이것이다. 화이부동, 같지는 않지만 조화를 이루어야 하듯이, 우리는 아주 많은 부분에서 같고, 아주 적은 부분에서 다를 뿐이라고.

 

우리는 모두 같은 사람이라고. 그래서 우리는 함께 살아야 한다고. 적어도 국경은 돈에만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람들 사이에도 없어야 한다고.

 

이 책은 그러한 국경, 마음의 장벽을 없애야 함을 생생하게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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