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을 기록하라 - 작가들이 발로 쓴 한국 현대사 : 전태일에서 세월호까지
박태순.황석영 외 20인 지음 / 실천문학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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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못하는 사람, 모든 것을 기억하는 사람, 이 사람은 아마도 미쳐버리거나 성인이 되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불경에서 "본생담"이라는 책이 있다. '자타카'라고도 하는데, 부처의 전생을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의 내용을 믿는다면 부처는 자신의 모든 전생을 기억하고 있다.

 

그런 기억이 그를 성인의 반열에 오르게 했으리라. 다 기억하는데, 어떻게 안 좋은 일을 할 수 있겠는가? 그 일의 결과를 알고 있는데, 어찌 허튼 행동을 하겠는가?

 

그런데 반대로 자신의 자그마한 실수 하나도 다 기억한다면, 그것을 잊지 못한다면 어떻게 제 정신을 가지고 살 수 있을지... 아마도 미치는 것이 정상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성인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보인다. 기억을 다 한다면, 고칠 수 있는 방법, 그것이 초래하는 결과를 담담히 받아들이되, 다시는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는 것이다.

 

미치지 않고, 자신의 행위에 대한 결과를 받아들이되, 다시는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더 기억하는 것, 사건이 벌어진 다음에 기억으로부터 불러오는 것이 아니라, 사건이 벌어지기 전에 유추해서 사건을 방지할 수 있도록 기억을 작동할 것.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행복하게도 망각이라는 도구를 지니고 있다. 잘 잊어버린다. 그래서 정작 잊어서는 안 되는 일까지도 잊고 만다. 이것도 문제다.

 

망각은 자신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기도 하지만, 자신을 똑같은 상황에 처하게도 한다. 아니, 똑같은 상황이 아니라 더 나쁜 상황으로 자신을 몰아가게 하기도 한다.

 

이것은 큰 문제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편이 차라리 더 낫겠단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래서 예로부터 성인은 중용이 중요하다고 했나 보다.

 

잊을 것은 잊되, 기억할 것은 반드시 기억하는 것.

 

그것이 바로 중용 아니겠는가.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되는 것들을 잊어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더 악화된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지금, 우리나라 상황은 어떤가? 3.1운동부터 시작하여 4.19정신을 계승했다는 헌법을 지니고 있는 이 나라, 그 헌법이 87년 민주화투쟁으로 만들어졌는데...

 

과연 우리는 헌법에 명기된 정신을 제대로 계승하고 있는가? 헌법이 우리 사회에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혹, 우리가 무언가를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그 잊은 것이 무엇인가? 그에 대한 답을 이 책이 주고 있다. 바로 우리가 잊고 있었던 것은 민중들의 힘, 우리들이 바로 민중이었다는 사실이 아닐까 한다.

 

우리는 민중을 잊고, 민중임을 잊고, 오로지 소비자로서 그날그날을 소비하고만 있었던 것은 아닐지... 민중으로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잊었다면, 그것을 기록으로 기억해내야 한다.

 

기록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많은 역사 기록들이 있지만, 우리 곁에 생생하게 다가오는 기록들은 바로 문학으로써의 기록이다. 로포문학이라고 하는 것들...

 

지금은 많이 잊혀졌지만 한 때 이 '르포 문학'은 우리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 많이들 읽었고, 많이 읽혔다. 그리고 우리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방향을 제시해주기도 했다.

 

그런 기록들, 이제 와 새삼 다시 펴내는 것은 우리가 민중을 잊었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보라고, 이 기록들을, 우리가 이렇게 살아왔다고. 이것은 과거의 일이 아니라 바로 지금, 우리의 일이라고.

 

이 책은 전태일의 분신으로 시작해서 세월호로 끝난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일어난 주요 사건들에 대해서 그때그때 작가들이 기록한 것을 모아 놓은 책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직접 읽어야 더 의미가 있다. 근 45년의 역사 중에서 우리 사회에서 큰 역할을 했던 일들을 그 상황에서 멀지 않은 때 작가가 직접 쓴 글이다. 그 당시의 느낌을 생생하게 전달받을 수 있다. 더 구체적인 설명은 필요없다. 직접 읽어야 한다.)

 

당시의 분위기를 느낄 수도 있고, 지금은 많이 멀어진 사건들이어서 마음에 와 닿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 책에 기록된 민중들의 삶, 민중들의 행동이 지금 우리를 만들어 왔다는 것을 안다면 이 기록들은 잊혀져서는 안된다.

 

또한 이 기록들은 현재에 머물지 않고 미래의 우리들을 만들게도 될 것이다. 그래서 이 기록들은 더욱 의미가 있다. 잊지 말아야 할 일들을 잊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역사를 살아가는 인간들이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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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처럼 - 신영복의 언약, 개정신판
신영복 글.그림 / 돌베개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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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그냥 곁에 두고 읽으면 될 것을.

 

읽지 않아도 된다. 그냥 보아도 좋다.

 

글과 그림과 글씨가 다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 잠언이 있어 좋은 말씀이 우리 삶으로 다가오는데...

 

잠언과 더불어 시편은 말씀들이 하나하나 시로 우리 가슴에 다가오는데...

 

신영복 선생이 자주 하는 말

 

세상에서 가장 먼 여행, 머리에서 가슴까지, 또 가슴에서 발까지.

 

이 책은 머리에서 가슴까지 우리를 단숨에 인도한다.

 

한 편 한 편의 글과 글씨와 그림이 머리와 함께 가슴을 울린다.

 

눈에 들어오는 순간, 가슴 한 켠에서 어떤 울림이 일어나는데...

 

잔잔한 물에 떨어진 돌멩이가 일으키는 파문,

 

이 책은 우리들 가슴에 동심원을 일으키며 퍼져 나간다.

 

가슴에 도달한 이 책은 다시 발까지의 여행을 하도록 한다.

 

이것은 바로 이 책을 세 번 읽는 것이다.

 

텍스트를 읽고, 작가를 읽고, 그리고 바로 읽는 자신을 읽는 것.

 

삼독이라고 하는데, 마지막 단계,

 

독자를 읽는다는 것은 바로 가슴에서 발로 여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작은 제목이 '신영복의 언약'이다.

 

머리에서, 가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발까지 가야 한다는.

 

우리는 머리 좋은 사람보다, 마음 좋은 사람보다, 손이 좋은 사람보다,

 

발이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바다는 낮아서 모든 것을 다 받아들여 '바다'라는

 

함께 가는 길, 그것이 바로 '관계'이고 삶임을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그냥 주변에 두고 손에 잡힐 때마다 들여다 보면 될 것을.

 

들여다 보고 들여다 보아

 

마음 속에 담아두고, 이제는 발로 함께 가면 될 것을.

 

그것이 이 책의 의미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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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숲 - 신영복의 세계기행, 개정판
신영복 글.그림 / 돌베개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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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하나는 약하다. 그러나 나무들이 모여 숲을 이루면 강하다. 무언가를 지킬 수가 있다. 사람 하나하나를 놓고 보면 참 연약한 존재다. 그러나 사람들이 모이면 강한 존재가 된다. 세상을 바꿀 수가 있다.

 

더불어 숲이 되자. 이것은 사람들이 모여 좋은 세상을 만들자고,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는 것을 막자는 말이기도 하다.

 

신영복 선생이 오래 전에 낸 책이다. 국내 여행을 하면서 엽서 형식으로 보낸 글들이 "나무야 나무야"라면 이 "더불어 숲"은 세계를 여행하면서 느낀 점들을 편지 형식을 빌어 쓴 글들이다.

 

편지 형식이기 때문에 읽으면서 친근감을 느낄 수가 있다. 마치 나에게 속삭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글쓴이와 일체감을 느끼기도 한다. 글쓴이의 생각에 더 쉽게 동의하기도 한다.

 

이것이 편지 형식이 지닌 장점이다. 어떤 사상을 읽는다는 느낌보다 그 사람의 사적인 목소리를 듣는 듯한 느낌을 받는 것.

 

스페인의 우엘바 항구에서 시작하여 중국의 태산과 황허에서 끝나고 있다. 이 두 글만 보면 근대의 출발점에서 시작하여 고대 사상의 완성에서 끝난다고 할 수 있다. 시대의 흐름과는 반대되는 방향이다.

 

이는 신영복 선생이 근대에 대해서 비판적 시각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근대란 침탈로 시작했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엘바 항구는 콜럼버스가 출항한 항구다. 그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대륙을 발견하여 유럽의 지평을 넓혔다. 그러나 그가 넓힌 지평은 본래 살고 있던 원주민들에게는 줄어드는 공간과 살아가기 힘듦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것이 근대다. 어느 지역을 중심에 놓고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확장과 축소로 나뉠 수 있는, 이분법이 작동했던 시대가 바로 근대다.

 

그러나 이제 이 근대는 극복되어야 한다. 어떻게 극복될까? 바로 인간다움,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찾아야 한다. 이것은 고전에서 찾을 수 있다.

 

서양 사람들이 동양정신을 배우려고 하듯이 인간과 인간이 함께 사는, 더불어 숲을 이루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 정신을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에, 돌고돌아 여행은 결국 자신에게 돌아오게 된다. 근대의 출발점에서 시작한 여행이 동양 사상의 완성으로 돌아온다.

 

여기서 다시 출발해야 한다. 우리는. 바로 우리가 발딛고 있는 이 자리에서.

 

글들 하나하나가 읽을 만하고, 생각에 잠기게 한다. 이것이 신영복 선생의 글이 주는 장점이기도 하겠지만...

 

굳이 세계를 다 돌아다니라고 하지 않는다. 그것은 공간의 이동이 아니라, 정신의 이동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정신의 여행.

 

안동의 작은 마을, 교회의 종지기로 평생을 살았지만, 그래서 그가 움직인 공간은 좁디좁았지만, 그의 정신은 세계를, 우주를, 과거와 미래를 넘나들었던 권정생 선생처럼... 우리의 여행은 정신의 여행이어야 한다.

 

그런 정신의 여행을 세계 곳곳에서 신영복 선생이 보여주고 있다. 그의 글을 통해 나 역시 여행을 함께 했고, 또 내 정신의 여행을 시작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두고 두고 읽고 읽어 내 정신을 풍요롭게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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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 -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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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선생이 돌아가신 다음, 그의 책을 읽고 있다. 사실, 몇 권 읽지 않았음에도 그의 글에 깊은 감명을 받았었는데...

 

마지막 강의라는 제목이 붙은, 강의 녹음을 토대로 책으로 펴낸 신영복 선생의 사상이 집대성되어 있다고 할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은 동양 고전에서 시작하는데, 이는 세계와 사람에 대한 인식을 정립하는데 도움을 주고, 그 다음에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처음 부분이 다소 어려울 수 있는데, 이는 우리가 동양고전의 세계에서 멀어졌기 때문이다.

 

대부분 시경이나 주역 또 논어, 맹자와 같은 책이름과 공자, 맹자, 노자, 장자, 한비자, 묵자 등의 이름은 들어보았지만, 그들의 사상에 대해서는 깊게 배운 경험이 별로 없다.

 

서양 것을 추구하면서도 사실 서양 고전철학에 대해서도 동양고전에 대해서 무지한 것과 별 다를 것이 없다. 그만큼 우리는 교육과정을 통해서 고전과 가까워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멀어진 생활을 해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고전은 지금도 의미가 있기에 고전이고, 이런 고전은 결국 사람읽기, 삶살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는데, 사람과 삶은 결국 관계로 결정이 되고 만다.

 

우리는 고립되어 살 수 없고, 지금 내 삶을 유지하는 것도 온갖 관계들이 얽히고 설켜 만들어지고 있다. 우리가 의식하든 하지 않든 이런 관계가 곧 자신임을 알아야 한다.

 

이렇게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데... 이 책의 핵심 단어를 고르라고 하면 단연 석과불식(碩果不食)이다.

 

신영복 선생이 좋아하는 말이고, 또 글씨로도 많이 썼다고 하는데... 씨과일은 먹지 않는다는 뜻이다. 아무리 어려워도 씨과일이 보존되어 있다면 그것이 나무가 되고 다시 숲이 된다는 것.

 

하여 어려운 시절이라고 해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그 씨과일을 잘 보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어려운 시절에 씨과일이 무엇일까? 신영복 선생의 이 담론을 읽고 그것은 바로 사람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씨과일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어려운 지경에 처하더라도 사람을 포기하면 안된다. 사람이 살아갈 수 있게 해야 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행복이고, 이 살아감은 바로 '석과불식(碩果不食)'에 해당한다. 사람이 살아감에 필요한 요소가 무엇일까?

 

바로 공부(工夫)다. 하늘과 사람을 잇는 것, 그리고 그 잇는 일을 하는 존재가 바로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하던데... 공부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수 요소다.

 

단지 자신이 출세하기 위해서 하는 공부가 아니다. 이 때 공부는 사람됨의 공부고, 사람과 사람이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를 추구하는, 머리로만 인식하지 않고, 마음에 닿게 하고, 그 마음에서 다시 발로 가게 하는 공부다.

 

신영복 선생이 강조한 머리에서 마음으로, 다시 마음에서 발로. 인식에서 공감으로, 공감에서 실천으로 가는 공부, 그것이 진정한 공부고, 이 공부의 핵심이 바로 '사람'에게 있다.

 

그러므로 사람을 포기하는 사회는 지속가능하지 않은 사회다. 씨과일을 먹어버리면 그 다음은 없다. 사람은 씨과일이다. 아무리 사회가 어려워도 사람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 정책을 펴야 한다.

 

사람이 도구가 아니라 목적이라는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누구나 인정해야 하는 당위 아니던가. 그러니 우리는 어려운 시대일수록 사람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 사람이 살아갈 수 있도록 실천해야 한다.

 

그것이 바른 관계를 맺는 길이기도 하다. 신영복 선생이 이 담론에서 하는 말이 바로 이것이다. 사람이라는 씨과일을 소중하게 보존하고, 그 씨과일이 성장하고 다시 씨앗을 심도록 하자는 것.

 

하여 나를 보려면 사람을 보아야 한다. 내 주변의 사람들 뿐만이 아니라 나를 적대시하는 사람들까지도. 그들에게서 나를 발견하고, 나를 자라게 할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나는 씨앗이므로, 그냥 자랄 수는 없으므로, 자랄 수 있는 환경을 관계에서 찾아야 한다. 그리고 자라야 한다.

 

석과불식(碩果不食)!

 

사람은 절대로 무시될 수 없다. 사람이 바로 희망이고, 미래고 바로 우리의 현재다. 그렇게 사람이 사랍답게 살 수 있도록 하는 사회를 추구하는 사람, 그렇게 머리가 아니라 마음과 발로 살아가는 사람, 그런 사람이 필요할 때다.

 

곧, 선거다. 아직까지는 유일하게 우리가 주권이라고 하는 것을 행사할 수 있는 순간이다. 신영복 선생의 이 말을 누가 실천할 수 있는지 살펴볼 일이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바로 나 자신이 이런 관계를 맺는 삶을 살도록 머리로 인식하고 마음으로 받아들여 발로 걸어가야 한다. 그런 생각을 다짐하게 한 책이다. 이 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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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방을 찾아서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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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선생이 돌아가신 다음, 그가 쓴 책들을 골라서 읽고 있는 중. 그의 글을 평소에도 좋아하고 있었지만, 글 자체가 아니라 그의 글과 그의 사람됨이 일치하지 않나 하는 생각, 인품이 글에 배어나온다는 생각에 그의 글을 좋아했었다.

 

이제 그는 우리 곁에 없지만 글로써 남아 있을 것인데... 이 책은 책으로써 남아 있는 신영복 선생을 만나는 것 외에도 글씨로써 신영복 선생을 만날 수가 있다는 데서 의미를 찾을 수도 있다. (물론 신영복 선생의 글씨는 소주에서, 처음처럼이라는 그 글씨를 만날 수 있다.)

 

제목이 '변방을 찾아서'다. 이 때 변방은 주변이라는 공간을 의미하지 않는다. 현재에 안주하지 않는, 무언가 변화를 추구하는 그런 장소를 변방이라고 한다. 따라서 이 변방에는 사람도, 철학도, 행위도 모두 포함된다.

 

변방, 어떤 변방, 신영복 선생이 글씨를 써준 곳을 찾아가서 그곳에서 느낀 점들을 글로 써낸 것인데...

 

신영복 선생에게 글씨를 부탁한 사람들은, 중심에 있어 안주하는 사람들이 아니고, 무언가 옳음을 향해 온몸을 바치는, 이 책에서 말하고 있듯이 '세상을 자신에게 맞추려는 어리석은 사람'들을 기리고자 하는 사람들인데, 그런 사람들에게 써 준 글씨를 찾아 그들과 또 그들이 기리려는 사람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기행문이라고도 할 수 있고 철학적 사색을 담은 글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신영복 선생이 그곳에서 무엇을 느꼈는지를 알 수 있는 책이다.

 

땅끝마을의 서정분교 도서관 이름인 '꿈을 담는 도서관'에서 시작하여 봉하 마을의 고 노무현 대통령 묘석까지...

 

글씨도 보고, 그 글씨를 쓰게 된 내력도 알게 되고, 그곳에서 우리는 어떤 변방을 발견하게 되고, 그 변방을 통하여 변혁을 어떻게 이루어낼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신영복 선생의 삶 자체도 변방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고, 그래서 우리는 그를 선생이라고 부르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는 고인이 된 신영복 선생. 내가 선생이 쓴 책을 읽는 것 또한 변방을 찾는 행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늘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에게 중심은 없다. 그는 중심에 들더라도 변방을 추구한다. 중심에 안주하는 삶, 그것은 고인 물이 되는 삶이다. 변방의 삶은 끊임없이 흐르는 물의 삶이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

 

 

붙이는 말 : 선생이라는 말을 쓰기가 참 쉽지 않다. 그냥 다른 사람을 높여서 선생이라고 하는 경우는 형식적인 언어 활동에 불과하겠지만, 선생은 자신보다 먼저 깨달은 사람을 나타내는 말이니 함부로 쓸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이 책에서 '선생'이라는 호칭 때문에 곤란에 처한 경우가 나온다. 바로 벽초 홍명희의 문학비에 쓰인 해설에서 '선생'이라는 말을 가지고 모 단체에서 시비를 걸었다는 말이 나온다. 자신들과 뜻이 맞지 않으면 무조건 배제하고 보는 그런 사람들, 이들은 보수를 자칭하고 있지만, 보수가 아니라 단순한 수구에 불과하다. 

 

엄밀히 말하면 홍명희는 그의 사상 여부를 떠나 일제시대에는 독립운동을 한 독립운동가요, 우리나라 소설사에 한 획을 그은 "임꺽정"의 작가로서 '선생'이라는 말을 들을 자격이 충분하고, 그의 사상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라기보다는 민족주의라고 할 수 있고 - 대부분의 평이 이렇다고 알고 있는데 - 이런 점으로 보아 그가 바로 '보수'라고 할 수 있는데...

 

보수를 자청하는 사람들이 진정한 보수를 보수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이런 현실을 무어라 해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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