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누가 이런 책을 읽어야 하나?

 

먼저 떠오르는 사람들은 대통령, 그리고 군 장성들.

이들은 전쟁이 나면 최선전에 뛰어들지 않는다. 이들은 전쟁이 나면 지하벙커로 들어간다. 안전한 곳. 포탄과 거리가 먼 그 곳으로 들어가 지도를 펼치고, 명령을 내린다.

 

전쟁터에서 터지는 포탄소리, 신음소리, 사방으로 튀는 피들은 이들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는다. 이들에게는 그저 병력의 이동과 점령된 지역이 지도 위에 있을 뿐이다.

 

'원피스'란 만화에서 니코 로빈이 하는 말이 있다. '지도 위에서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정확한 표현은 이미 머리에서 잊혀졌지만, 이런 내용이었다는 기억은 있다)

 

사람이 보이지 않기에 명령을 내리기가 쉽다. 그냥 이들에게는 지도상의 영토만 있으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에게 전쟁에서 보고 들을 수 있는 현실을 알려주는 책이 필요하다. 이 책은 그런 필요를 100% 채우고도 남는다.

 

전쟁을 다룬 책이나 영화에서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진실을 이 책은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왜 제목이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일까?

 

여성성. 이것은 바로 생명과 직결된다. 포용성, 사랑은 바로 여성성이 지니고 있는 대표적인 요소라고 한다. 그래서 여성이 정치를 하면 갈등보다는 융합을 추구한다고 한다. (물론 이 때 여성은 생물학적 여성이 아니라 사회학적 여성을 가리킨다. 생물학적으로 여성이라고 해서 다 포용, 융합, 사랑을 기본 원리로 삼고 살아가지는 않는다. 따라서 여성성, 남성성은 사회학적인 개념이다) 

 

이런 여성성의 대척점에 있는 것이 바로 전쟁이다. 전쟁에서 포용과 융합, 사랑은 증오 뒤로 사라져 버린다. 죽지 않기 위해서 죽여야 하는 상황. 분노, 슬픔, 증오와 같은 요소들이 전면에 나서게 되는 때가 바로 전쟁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전쟁에서 죽어갔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아무런 죄도 없이 그냥 그 자리에 있었단 이유만으로 죽임을 당했던가. 이게 바로 전쟁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은 여자의 얼굴, 즉 여성성을 지닐 수 없다.

 

그럼에도 전쟁에서도 여성성이 발현될 때가 있다. 이 책에서는 그런 점이 곳곳에 나온다. 이 책이 전쟁에 참여한 소련군 중에 여성을 대상으로 이야기를 듣고 기록했기에, 전쟁에서 여자지만, 여자일 수 없었던 그런 장면들이 주로 나오는데, 그럼에도 적군과 아군을 구분하지 않고 부상병을 치료해주는 간호사들, 그 전쟁의 와중에서도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몸부림 등이 잘 나와 있다.

 

전쟁터에서도 악세서리를 하고, 예쁜 옷을 입고, 아름다운 꽃들을 보면 감탄하는 그런 여성들의 모습에서 전쟁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할 수 없는 여성성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여성의 모습, 전쟁이 지속되면 사라질 수밖에 없게 된다. 그 점이 이 책의 많은 부분에 나와 있다. 전쟁은 결코 여자의 얼굴을 할 수가 없다.

 

무엇보다 이 책은 전쟁을 반대하게 만든다.

 

다른 어떤 점보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 어떤 형태로든 전쟁은 안된다라는 생각을하게 한다는 것이다.

 

비록 여성들이, 그것도 나이 어린 여자들이 조국을 지키기 위해 전쟁터에 나갔지만, 이들에게 돌아온 것은 영웅 칭호가 아니라 사회의 싸늘한 시선이었다.

 

결혼을 하기 위해서 찾아간 남자의 집에서 온갖 구박을 받는 모습, 마치 난잡한 생활을 하고 온 사람처럼 인식하는 사회의 눈들이 이들을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힘들게 한다.

 

이런 사회의 시선보다 더 힘든 것은 이들이 전쟁에서 벗어난 삶을 살아가는데 피나는 노력을 해야 했다는 것이다. 옷 입는 것부터 신발 신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까지 군대와는 다른 생활을 해야 했기에 겪는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전쟁이란 어떤 형태로든 일어나서는 안된다. 가장 훌륭한 정치가와 장군은 전쟁을 막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런 이유로도 이 책은 정치가들과 장군들이 읽어야 한다. 이들에게는 여전히 전쟁은 너무 멀리 있고, 지도상에만 있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지도상에서 보이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을, 전쟁터에 있는 사람을 보게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이 책이다.

 

피와 살이 있는, 따스함이 있는 사람이 어떻게 죽어가는지, 어떤 고통을 받는지,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이들의 고통은 사라지지 않음을 너무도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해준다.

 

그래, 읽어야 한다. 이 책은... 그런 정치가들이 읽지 않는다면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읽어야 한다. 전쟁이 바로 이런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주는데 이 책만큼 좋은 책은 없을 것이다.

 

전쟁에 대하여 살아있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이 책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 목소리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전쟁은 결코 낭만이 아니다. 그것은 참혹한 현실이다. 가급적이면 피해야 하는.

 

이 작업을 이 작가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정말로 해야만 하는 훌륭한 일을 했다는 생각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