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평에 있는 이효석 문학관과 이효석 생가, 그리고 이효석 문학의 숲을 갔다 왔다. 어제.

 

세상에 가는 길에도 차를 보고, 한참을 달리고, 오는 길에도 차를 보고 한참을 달리고 이효석 문학의 세계를 보는데는 3분의 1도 채 되지 않았으니...

 

이효석이 그렇게 만나기 힘든 사람이었던가.

 

예전에는 교과서에서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을 쉽게

배웠고, 또 그의 수필 중에서 '낙엽을 태우면서'도 배웠는데...

 

메밀꽃은 이미 다 져서 추수가 되었고, 11월의 바람은 쌀쌀했는데...

 

그가 남긴 족적은 문학관이라는 이름으로, 문학의 숲이란 이름으로 남아 있으니...

 

생가 근처 식당에서 메밀 막국수를 먹는 맛도 좋지만, 그의 문학세계를 단지 순수문학으로만 치부하고 말기도 아쉬우니...

 

한 때 동반자 작가였던 그. 이후 순수문학으로 돌아서고, 그의 순수문학의 백미라 할 수 있는 메밀꽃 필 무렵이 탄생했으니...

 

장돌뱅이의 애환을 이리도 시적으로 표현해낼 수가 있다니..

 

왼손잡이가 유전이냐 아니냐라는 별 의미 없는 논쟁을 일으키기도 했던 작품인데... 과학적인 진실보다는 문학적 진실에서 이 작품을 읽으면 동이가 허생원의 아들일 거라는 추측이 자연스러워야 하는데...

 

어느덧 이런 작가들의 단편소설은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게 되었고, 수험생들에게나 시험용으로 읽히고 있지는 않은지...

 

교과서에 나오는 소설, 중학생이 또는 고등학생이 꼭 읽어야 할 소설이라는 제목을 달지 않고, 예전 작가들의 주옥같은 단편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문고판으로 다시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예전에는 문고판들이 싼 값으로 다양한 작품을 읽게 해주었는데...

 

내 젊은 시절 삼중당 문고, 을유문고, 서문문고, 한마당문고, 계림문고, 박영문고, 정음문고, 범우문고 등이 얇은 지갑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을 수 있게 해주었는데...

 

이들 문고본으로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으며, 좋은 단편들, 그리고 좋은 글들을 읽었는지...

 

지금, 범우문고는 아직도 존재해서 책을 많이 내고 있지만 다른 문고들은 많이들 사라지고 있으니... 비싸고 두꺼운 책으로는 명작이라고 할 수 있는 단편들이 우리에게 접근하기가 쉽지 않은데...

 

이효석조차도 점점 잊혀지고 있지 않은가. 요즘 학생들이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을 과연 쉽게 이해할 수 있을까? 그 정서를 느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메밀꽃 필 무렵을 재현해 놓은, 그리고 본문을 돌에 새겨놓은 이효석 문학의 숲에서조차 학생들은 글은 읽지 않고 그냥 건성건성 지나치고 있으니 말이다.

 

허생원의 삶은 지금 힘들게 살아가는 노점상들의 모습, 또는 비정규직들의 모습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텐데... 허생원과 함께 가는 동이는 바로 지금 2대 8사회를 살아가는, 88만원 세대라 일컬어지는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모습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단지 과거의 소설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삶과도 연결될 수 있다는데 좋은 작품이 있는데...그런 생각을 했으면 좋겠는데...

 

이효석의 문학세계를 찾아갔다 오면서 그가 나귀와 함께 느릿느릿, 자연의 서정을 느끼며 걸었던 길을 우리는 자동차로 씽씽 달리며, 차가 막힌다고 투덜대고 왔으니...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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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83호, 특집이 공교육에 대한 이야기다.

 

대안교육과 공교육, 그리고 공교육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혁신교육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늘 이야기가 되고 있고, 유력한 대선 후보들도 교육에 대한 정책들을 내놓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에 교육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공교육에 대한 이야기는 시의적절한 기획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번 호에도 나와 있지만 공교육과 대안교육은 같은 층위에서 논의할 것이 아니고, 마찬가지로 혁신교육과 대안교육도 같은 층위에서 논의될 사항은 아니다.

 

즉, 대안교육은 공교육과는 다르게 새로운 교육을 지향하는 것이고, 이는 공교육과는 대척점에 있다고 해야하니, 공교육의 체제와는 전혀 다른 교육을 하게 된다. 따라서 대안교육은 체제 밖에서 또다른 삶을 추구하는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반대로 공교육과 혁신교육은 체제 내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으로 체제 내에서 어떻게 교육을 바꾸어갈 것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지금 공교육에서 일어나고 있는 혁신교육은 공교육을 개혁하려는 움직임이고, 이런 혁신교육의 방법들을 대안교육에서 배워올 수는 있지만, 혁신교육이 대안교육과는 같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동의하고, 이러한 혁신교육이 공교육에 퍼지면 또다른 혁신교육이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대안교육은 공교육 너머에 있어서 공교육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혁신을 고민하게 하는 그런 교육이라고 한다면 우리 사회에서 공교육과 대안교육은 둘 다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지금처럼 공교육이 이루어진다면 이는 공(公)교육이 아니라 (空)교육이 되니, 교육을 진정한 공교육이 되게 하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무엇일까 하는 고민이 필요한 때이다.

 

공(空)교육이 공(公)교육이 되는 날, 공(公)교육은 대안교육과 더불어서 공(共)교육이 될 것이다.

 

때마침 대선과도 겹쳐 제대로 된 교육정책을 제시하는 후보가 누구인가도 판단해야 하고, 우리가 직접 할 수 있는 일도 찾아보아야 한다.

 

그것이 교육이 사는 길이다. 아이들이 사는 길이다. 그리고 부모들이 사는 길이다. 제대로 된 교육, 그것은 우리 모두가 사는 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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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시대에 대한 논쟁, 그리고 NLL에 대한 논쟁,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 대한 논쟁,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논쟁...

 

정말 이번 대선은 미래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과거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다.

 

검증이라는 이름으로, 네 과거는 이랬다... 어쩔래? 하는 모양.

 

물론 과거를 묻어버릴 수는 없지만, 과거에 매달려서도 안된다.

 

과거를 이야기하는 것은 미래를 제대로 기획하기 위해서이다. 과거로 끄집어내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현재는 과거를 바탕으로 하고 있고, 과거와 현재는 미래를 배태하고 있다고 한다면, 과거에 대한 철저한 공부는 필수적이다. 과거를 무시하고 넘어갈 수 없을 뿐더러, 과거는 과거일뿐이라고 할 수도 없고, 또 과거를 과거로 내버려두자고 할 수도 없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과거에 넌 이랬으니까 앞으로도 이럴 거야, 네 과거는 이랬어, 너는 그런 사람이야 하고 규정짓고 새로움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그것도 문제다.

 

우리가 과거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지금 이 자리에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이다.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래서 과거는 과거로, 즉, 역사는 역사로서 철저하게 공부해야 한다. 검증해야 한다.  과거에 대한 공과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그냥 두루뭉수리하게 넘어가서는 안된다.

 

그런데.. 도대체 역사가 뭐지? 역사란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라는 단재의 말도 있고,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란 E.H.카의 말도 있는데...

 

과거가 어떤 실체로 존재한다기보다는, 지금 여기에서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래서 이 관계를 통해 만들어지는 과거를 알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사실(이게 참 어렵다)에 대해서는 공통의 인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

 

 

 

 

 

 

 

 

 

 

 

 

 

 

지금...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온 유력한 세 명의 후보들... 기본적인 사실들에 대해 공통된 인식을 갖고 있을까? 만약 갖고 있지 않다면, 우리의 과거에 대한 공통된 인식과 누가 가장 가까울까 그 점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기본적인 사실들에 대해서 거의 기사식으로 정리해놓은 책.

 

강준만의 "한국현대사산책" 난 4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읽었는데... 이 시대에 대한 공통인식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우선은 가장 문제가 되는 60-70년대에 대해서 기본적인 사실을 알고, 그에 대한 공통인식을 갖춰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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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군인이 휴전선을 넘어 우리네 초소에까지 와서 노크를 하면서 귀순을 했다고 한다.

 

아직은 북한과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데, 북한 군인이 우리네 초소까지 오는데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게다가 우리네 군인들은 그것을 알지도 못하고, 이 북한 군인이 초소에와서 노크를 할 때까지 아무런 낌새도 채지 못했다는 것, 이것은 국방에 심각한 위험이 있다는 신호로 보면 정말 무섭다.

 

확실히 우리는 평화의 시대에 살지 못하고, 전쟁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북한군과 총부리를 마주 대하고 있는 우리나라 군인들이 그렇게 편하게 지내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전방에서 지내는 군인들이 별다른 위기의식을 지니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고 있다는 얘기는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어떤 믿음이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렇기에 그냥 그렇게 마음 놓고 있지 않았을까? 그러기에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넘어가는데 후방에 있는 우리는 국방이 뚫렸다, 안보태세에 구멍이 생겼다고 호들갑을 떠니, 우리 안에 어떤 공포가 잠재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직접 겪고 있는 사람들은 만성이 되어 있고, 후방에 있는 사람들은 공포를 내재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

 

그 뉴스를 보고 갑자기 한 편의 영화와 소설이 생각이 났으니, 이건 무슨 오지랖이냐.

 

심각한 문제에 그러한 작품들을 떠올리다니... 사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우리네 마음 깊숙한 곳에는 어떤 "공포"가 자리잡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지금 평화롭게 지내고 있지만, 이 평화는 언제든 깨질 수 있다는, 그것도 바로 저 편에 인간의 얼굴을 한 우리를 위협하는 세력이 있다는 생각이 마음 속에 있지 않나 하는 생각. 이 생각이 바로 "공포"이고, 이 "공포"가 어느 순간 튀어나오면 우리는 집단적으로 '공포 분위기'에 휩싸이게 된다는 생각.

 

평시에는 가만히 숨어 있다가 한 번 나오면 나도 모르게 어떤 행동을 하게 하는. 현재 웃으며 함께 지내지만 언젠가는 나를 위협할 수 있다는, 그럴 땐 나도 나를 지키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해야 한다는.

 

영화 한 편, "공동경비구역 JSA" 그리고 이 영화의 원작인 박상연이 쓴 "DMZ"

 

소설에서는 바로 이 "공포"가 어떻게 발현이 되는지, 그리고 그 공포를 우리가 마음 깊숙한 곳에 지니고 있기에 어떤 비극적인 상황에 처하게 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영화에서는 이런 "공포"의 문제가 빠져 있지만.

 

함께 보고 읽으면 좋은 작품들이다. 지금 이 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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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길상사에 다녀오다.

한성대입구 역에서 내려 5번 출구로 나가 한참을 걷다 보면 길상사가 나온다. 아직은 단풍이 들지 않았지만, 성북동에 자리잡은 안온한 자태를 뽐내는 곳이다.

 

법정 스님이 주지로 계시던 곳이기도 하고, 시인 백석과 관련이 있기도 한 곳.

 

아니, 시인 백석이라고 하기보다는, 백석을 사랑했던 한 여인과 관련이 된 곳.

 

길상화, 김영한(이름이 김진향이라고도 하고, 자야라고도 한다). 백석을 사랑했던 여인. 그리고 백석을 잊지 못했던 여인.

 

백석이 우리나라에서 한 동안 잊혀진 시인이었기에 그에 대한 그리움을 내비치지 못하다가, 백석이 해금된 이후에야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 여인.

 

백석의 시 중에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나타샤라고 말했던 여인.

(어떤 책에서는 나타샤가 서로 나라고 하는 여인들이 셋이나 된다는 내용도 있다. 그러나 "내 사랑 백석"이란 책에서 자야는 나타샤가 자신임이 분명하다고 한다. 이 책에는 백석과 만난 자야의 이야기가 소상하게 실려 있다)

 

조선시대 마지막 기생이라고 해야 하나? 요즘 말로 하면 종합예술인 정도 될텐데, 자신이 번 돈으로 만든 '대원각'이란 음식점(사실 술집이라고 요정이라고 해야 옳을 듯)을 법정 스님에게 맡아달라고 전부 기증을 했다는 여인.

 

그래서 절 이름이 길상화에서 따와 길상사가 되었다는.

 

길상사에 가면 법정 스님의 마음을 느낄 수도 있고, 자야와 백석을 생각할 수도 있다. 우리가 백석을 생각할 수 있는 곳, 그곳이 이곳말고 또 어이 있으랴. 백석은 고향이 북쪽이니 말이다.

 

법정 스님과 백석을 모두 생각할 수있었던 곳. 길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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