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96호"를 읽다.

 

두 달에 한 번 오는 잡지. 교육에 대한 잡지라고 하는데, 이 때 말하는 교육이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이야기니, 이 책은 학생이나 청소년들만이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필요한 책이다.

 

오히려 무언가에 대해서 치열하게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책이니, 사실은 청소년이나 어른이나 고민없이 그때 그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별로 의미있게 다가올 책이 아니다.

 

문제를 제기한다는 것은 해결책이 있다는 말은 문제제기를 한다는 것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이고, 고민을 한다는 것은 해결책을 마련하려고 고민한다는 얘기다.

 

그러니 어떤 문제를 인식한 사람들에게 이 책은 해결책을 직접적으로 제시해주지는 않더라도 해결책의 단초를 마련하는 계기를 마련해줄 수는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호 특집은 "어른이 되는 길"이다.

 

정말, 참으로, 시의적절하게 특집을 잡았다는 생각이 든다.

 

과연 지금 우리나라에 "어른"이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른이란 시간이 흘러 특정한 나이가 되어서 상태가아니다. 단지 물리적인 시간으로 어른이 된다면 누가 "어른이 되는 것"에 대해서 고민을 하겠는가.

 

그러나 세계 각처에서 "통과의례"가 있었듯이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물리적인 시간의 경과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무언가 한 단계를 넘어서는 상태, 그 때 비로소 어른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통과의례"가 있었던 것 아니겠는가.

 

따라서 "어른"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니다. 치열한 고민을 거쳐서 그 고민을 넘어설 때 그 때 온전한 어른이 되는 것이다.

 

우리 말에서 어른은 "얼우다"라는 말에서 나왔다는 말이 있다. 얼우다라는 말은 관계를 맺다는 말이고, 이 때 관계를 쉽게 말하면 결혼을 하다 또는 남녀 관계를 맺다라는 말이니, 이 말은 어른이란 나를 책임지는 단계를 넘어서 또 다른 '나'를 책임지는 단계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

 

'어른이 된다는 것' 얼마나 힘든 일인가. 대부분 사람들이 자신들의 몸 하나도 책임지기 힘든데, 자신들과 더불어 다른 사람들까지도 책임져야 하니 말이다. 그런 사람이 진정한 '어른'이다.

 

그리고 그런 어른들이 사회에서 제 몫을 하게 된다.

 

다시 한 번 질문한다. 과연 우리나라에는 "어른"이 있는가?

 

이런 어른들을 우리는 "원로(元老)"라고 부르고, 무슨 일이 있으면 그들에게 조언을 구한다. 그들에게 의존한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물리적인 시간 뿐만 아니라,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인간적, 관계적 시간이 함께 있기 때문이다.

 

어른다운 어른이 없을 때 우리는 힘들어진다. 따라서 우리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 진정으로 "어른"이 되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우리 사회가 제대로 이루어진다.   

 

"어른"에 대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 이번 민들레 96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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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 2014-12-28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잡지가 있었군요. 읽어봐야겠어요 ㅎㅎ
 

추운 겨울.

 

물리적인 추위보다 심리적인 추위가 더 견디기 힘들다.

 

힘든 세월. 그것을 우리는 겨울에 비유하는데, 그러나 겨울은 언젠가는 간다. 봄은 온다.

 

그 봄을 위하여 그렇게 혹독한 겨울도 우리는 견디고 있는지도 모른다. 봄을 더 만끽하기 위해.

 

겨울이 영원히 지속된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지만, 지금 당장 여기에서 겪고 있는 겨울은 견디기 힘들다. 그래서 봄을 생각하기 힘들어지기도 한다.

 

이 때 눈에 들어온 시 한 편.

 

그래, 나무를 보자. 나무는 땅 속에 뿌리를 박고, 땅 위에서 자신들의 모습을 드러내고, 하늘을 향해 끝없이 자기를 성장시켜 나간다.

 

추운 날, 앙상한 가지만 있는 나무. 그러나 그 나무는 뿌리부터 봄을 준비한다. 다시 봄이 옴을 믿고...

 

겨울. 간다. 봄. 온다. 이것은 희망이 아니다. 이것은 진실이다.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 황지우

 

나무는 자기 몸으로

나무이다

자기 온몸으로 나무는 나무가 된다

자기 온몸으로 헐벗고 영하 13도

영하 20도 지상에

온몸을 뿌리 박고 대가리 쳐들고

무방비의 나목으로 서서

두 손 올리고 벌 받는 자세로 서서

아 벌 받은 몸으로, 벌 받는 목숨으로 기립하여, 그러나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온 혼으로 애타면서 속으로 몸속으로 불타면서

버티면서 거부하면서 영하에서

영상으로 영상 5도 영상 13도 지상으로

밀고 간다, 막 밀고 올라간다

온몬이 스러지도록

으스러지도록 부르터지면서

터지면서 자시의 뜨거운 혀로 싹을 내밀고

천천히, 서서히, 문득, 푸른 잎이 되고

푸르른 사월 하늘 들이받으면서

나무는 자기의 온몸으로 나무가 된다

아아, 마침내, 끝끝내

꽃 피는 나무는 자기 몸으로

꽃 피는 나무이다

 

전국국어교사모임, 문학시간에 시읽기3. 나라말, 2008년 초판 8쇄. 174-175쪽

 

지금 혹독한 겨울을 겪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나에게 이 시가 마음 속에 절절하게 박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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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이 험난한 시대에.

 

역사는 진보한다고 했는데, 어떻게 역사의 바퀴가 거꾸로 가고 있는지.

 

요즘은 기억의 중요성에 대해서 생각한다. 제대로 기억해야 한다. 기억과 용서가 다른 개념임을, 용서는 해도 기억은 해야 함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세상에서 아무 것도 잊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어떻게 살까?

 

그 사람이 막 살 수 있을까? 그렇지 못할 것이다.

 

그것이 기억의 힘이다.

 

따라서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기억을 해야 좋지 않은 역사가 반복되지 않는다.

 

부처가 생각났다. 그의 전생담을 담은 책, "본생경"

 

부처처럼 자신의 전생을 기억한다면, 어떻게 현생을 막 살 수 있겠는가.

 

오늘을 살고 있는 사람들, 이 사람들이 이러한 기억에 대해서 명심한다면 자신들의 판단 하나하나에 신중할 수밖에 없을텐데...

 

부처의 삶을, 그의 사상을 생각하면서, 그처럼 이렇게 기억을 한다면 정말 시공을 초월해 세상을 위해 살아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요즘, 기억의 필요성을 절감하면서, 자신들의 말과 행동이 얼마나 막강한 영향을 미치는지, 그들이 기억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면서...

 

힘있는 사람들, 이 "본생담"을 읽어봤으면 좋겠다...

 

      JATAKA

                 -出家는 세상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함께 하는 것이다.

 

옛날 자신의 삶을 모두 기억하는 사나이.

 

오늘의 나는 옛날의 나,

옛날의 나,

,

앞날의 나.

 

시공간을 초월해

나를 세상에 보내고

보내, 마침내

영원에 이른 사나이.

 

싯다르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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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이 사회를 풍요롭게 한다.

 

동양사상이 꽃 피웠던 시절은 춘추전국시대다.

 

그만큼 세상이 어지러웠기 때문에 세상을 구할 수 있는 사상도 많이 나왔다고 할 수 있지만, 다른 말로 하면 다양한 사상들이 서로 공존할 수 있는 시대이기도 했다는 말이 된다.

 

적어도 자신의 사상때문에 죽음까지 이르지는 않았을테니 말이다.

 

이런 사상이 유교 사상이 집권층의 사상이 되면서, 다른 사상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세상이 되면서 더이상 다양한 사상은 나오지 않게 된다.

 

다른 말을 하면 죽음에 이르는 세상에서 어떻게 다양한 사상이 발전하겠는가. 하다못해 유교에서도 주자학(성리학)만이 절대유일의 사상이 되고, 같은 유교임에도 양명학은 이단으로 취급받고 사문난적이라고 하여 목숨까지도 잃어야 하는 세상이 있었는데...

 

이런 일이 민주화 되었다는 현재에 일어날 줄이야. 물론 옛날 독재시대처럼 사상으로 인해서 목숨을 잃지는 않지만, 자신들의 사상을 펼칠 단체를 만들 자유를 박탈당하고 말았으니.

 

이를 민주주의라 할 수 있을까? 국가의 존립에 위험을 주는 정당이라 해산을 했다고 하지만, 어떻게 9명의 헌법재판관이 그것을 판단할 수 있을까?

 

우리 국민들이 87년 민주화 투쟁을 통해서 기껏 얻어낸 민주주의가 헌법재판소에 판결권을 넘겨주는 일이었다는 것밖에는 되지 않는데...

 

정당은 국민이 심판해야 한다. 정당은 폭력으로 정권을 전복시키려는 집단이 아니라, 국민들에게 호소해서 국민들의 지지를 얻어 집권하려는 목적을 지닌 단체다. 그렇게 배웠다. 그런 정당의 강령을 보고, 실천을 보고 국민들은 투표로써 그들에 대한 지지나 반대를 표명한다고 배웠다.

 

이런 정당이 해산되는 때는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할 때다. 그 때 정당은 자연스레 해산되고 소멸된다.

 

그런데 달랑 9명의 헌법재판관이 정당 해산을 결정해 버렸다. 8대1로.

 

그들은 절대 권력이다. 그들이 판결하면 즉시 효력이 발생한다. 뭐 이의고 뭐고 없다. 그냥 최종심이다. 국민들이 행사해야 할 권력을 그들이 모두 지니고 있다. 그런데 그들을 누가 뽑지? 국민이? 아니다.

 

이런 그들이 과연 국민의 뜻을 제대로 반영한다고 할 수 있을까? 이런 그들의 판결이 국민의 뜻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을까?

 

말이 막힌 사회, 그 사회는 더 이상 발전이 없는 사회다. 같은 말을 하기 위해 모인 정당을 해산하는 나라에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그냥 시키는 대로만 하는 기계인간이 될 뿐이다.

 

그러니 술만 마실밖에. 정말 술 권하는 사회다. 오래도 한참 오래된 현진건의 "술 권하는 사회"가 떠오르는 시대가 되다니... 슬프다. 더불어 이청준의 "잃어버린 말을 찾아서"가 생각난다.

 

또 얼마 전에 읽었던 이청준의 "소문의 벽"도 생각나고.

 

이 편이냐 저 편이냐를 강요하는, 그래서 견딜 수 없게 만드는... 그런 사회.

 

아니지. 지금은 그래서는 안되지. 적어도 다양한 사상들이 함께 해야 하고, 그들의 사상을 국민들이 가감없이 받아들여 판단하게 해야지.

 

우리나라 국민들처럼 교육 수준이 높은 사람들이 어디 있다고? 이들은 가만히 놔두어도 알아서 판단을 할텐데, 왜 이들의 판단을 다른 사람들, 그것도 달랑 9명에게 위임을 하냐고.

 

그 9명이 플라톤이 말하는 '철인'들이냐고. 공화국을 다스리는 철인, 그런 철인 정치는 플라톤 때나 하는 말 아니냐고. 우리 국민들이 어리석은 백성들(즉, 중우)이냐고. 그래서 지금이 중우 정치 시대냐고... 아니지.

 

우리 국민들은 현명하다. 공화국은 국민들이 주인이다. 판단을 국민들이 해야 한다. 누구에게 국민들의 권한을 위임해서는 안된다.

 

적어도 우리는 플라톤이 말한 "국가"시대에 살고 있지 않으니 말이다.  

 

이제 아무리 사회가 술을 권해도 술 속에 빠지지는 말아야겠다. 말을 막아버린 사회에서 말을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다양한 말들이 춤추는 사회, 그런 사회... 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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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4-12-21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떻게 이런 시대를 살고 있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추운날이다.

 

날이 추워지면 어려운 사람들에겐 더 힘든 나날이 된다.

 

따뜻한 일들이 일어나 사람들 마음과 몸이 훈훈해졌으면 좋겠다.

 

시집을 이리저리 넘기다 아, 이 시구나, 예전에 보았던 시인데...지금 이 시대 아버지들이, 청년들이, 아니 우리들 보통 사람들이 겪고 있는 현실 아니던가.

 

시에 너무도 적절하게 표현되어 있는 이 현실을... 시를 읽으며 공감하고.

 

  아버지 경제

 

한 방안이

점점 좁아지는구나

내가 밀려서 잠을 깨다 보면

요놈들은

키도 크고

넓어졌구나.

 

쌀도 한 말이면

일주일을 먹는데

요사이는 며칠 못 먹으니

아버지 경제는

찬바람이 불구나.

 

엄마는

추운데 밖을 나가고

아버지는 눈을 감고

몸부림치는구나.

 

봄이 오기 전에

모든 물가는 뛰고

아버지 경제는

더 더욱 적자운영으로

가득 채운 먹구름

주름살이

늘어만 난다.

 

이 시대는

식구들의

한 달 먹을 것이

벌써 걱정이니,

 

아버지의 경제는

어쩌자는 건가.

 

박봉우, 황지의 풀잎, 창작과비평사, 1979 3판. 14-15쪽.

 

춥다.

 

그렇다고 늘 움츠리고만 있을 수도 없는데. 그래, 겨울이 지나야 봄이 온다. 우리들에게 봄이 오기를 기다리며... 이 시. 다시 한 번 읽는다. 아버지의 경제를 어쩌자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우리들이 모두 편하게 발 뻗고 잘 수 있는 사회가 되게 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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